기기인 도로는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이라는 주제 아래 다섯 작가의 작품들을 실어 놓은 앤솔러지입니다. 참고로 스팀펑크란 증기기관과 같은 기술이 과거에 도입되었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지는 대체 역사를 일컫는 개념인데요. 기기인 도로는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이라는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조선시대에 이미 증기기관이 도입이 되었다는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후의 내용들에서는 기기인 도로 속 각 작품들에 대한 상세한 줄거리 설명이 들어가 있으므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지는 걸로..)
기기인 도로의 문을 여는 작품인 정명섭 작가의 증기사화는 실존 인물이었던 조광조가 증기 기술의 신봉자였다는 설정 아래 사관 이천용이 조광조 등이 숙청을 당했던 기묘사화에 대한 기록을 하기 위하여 여러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 속에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알아가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내에서 조선의 기득권층으로 통하는 이들은 증기라는 기술에 의하여 자신들의 포지션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만 주목하여 이를 배척하려고만 들며, 임금이라는 작자는 증기를 하나의 기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를 이용하여 양 세력 간의 균형을 맞추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자 한다는 식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이는 아마 역사적 사실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증기라는 기술이 조선에 들어왔었음에도 어째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이라는 세계관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작가로서의 의무이자) 정명섭 작가님 나름의 대답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이렇듯 기기인 도로의 첫 번째 수록작이었던 정명섭 작가의 증기사화가 증기라는 기술에 대한 조선의 지배층들의 시선을 잘 드러내고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면, 기기인 도로의 두 번째 수록작인 박애진 작가의 군자의 길은 백성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도 있었던 증기라는 기술이 조선에 유입되었음에도 어떠한 연유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는 여전히 그대로였던가에 대한 대답으로 앞서 증기사화에서 제시된 이유 말고도 조선시대의 엄격한 신분제라고 하는 다른 요소도 작용하였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앞서의 이야기들에서는 조선에 증기 기술이 들어오게 되면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러한 기술들이 활용은 되고 있었다고 한다면, 기기인 도로의 세 번째 수록작인 김이환 작가의 박씨부인전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제는 증기 기술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을 상정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인데요. 박씨부인전에서는 증기의 사용에 따른 기술의 발전 때문에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걱정하고 있는 지배층 인사들에 의하여 증기의 활용이 엄격히 통제가 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눈을 피하여 증기 기술을 사용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박씨 부인과 이시백의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의 세 번째 작품인 박씨부인전까지는 꽤나 매끄러운 전개를 선보였던 기기인 도로였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기기인 도로에 수록된 나머지 두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의 연관성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렇게까지 어울리는 작품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요. 박씨부인전의 내용이 국가적 차원에서 증기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이에 저항하는 세력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다음 작품인 박하루 작가의 염매고독에서는 증기 기술에 대하여, 그중에서도 기기인과 관련하여 무언가 아는 자들이 조용히 처리가 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니 이 두 작품의 순서를 바꿔 게재하는 편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혹시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요? 작 중 주인공인 이산을 곁에서 보좌하는 강태호는 어떤 인물의 뒤통수에다 이런 말을 남기는데요.
사람이 이렇게 인간미가 없어.
(옷소매 붉은 끝동 6화 25:00
w*vv*)
그 드라마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던 저로서는 그의 대사를 보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야 그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기기인 도로의 마지막 수록작인 이서영 작가의 지신사의 훈김은 바로 그 인물이 기기인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단편으로, 2021 SF 어워드 중단편 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인데요. 저 역시 하나의 단편으로서의 완성도 자체는 상당히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기기인 도로라는 책으로 놓고 보자면 다른 네 작품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거기에 더하여 만약 기기인 도로의 후속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이 작품이 기기인 도로라는 책의 마무리라고 보아야 할 텐데, 이 작품이 그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고는 보이지 않기에 그러한 의미에서 놓고 보자면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조선 스팀펑크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다른 작품들 및 기기인 도로를 소재로 한 책들의 출간 소식에 따라 변동 가능성이 있습니다.) 끝으로, 얼마 전에 군자의 길을 쓰셨던 박애진 작가님께서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의 두 번째 책인 명월비선가를 출간하셨던데, 기기인 도로도 그렇지만 조선 스팀펑크라는 것이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는 설정이니만큼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조선 스팀펑크 연작선 도서들이 계속해서 출간되면서 지금보다도 더 큰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추천받아서 샀는데 생각보다 더 취향이라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제목이 독특해서 무슨 내용인지 호기심이 생겼다가 앉은 자리에서 금세 다 읽었습니다 독특한 구성과 에스에프 적 감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만족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받아서 샀는데 생각보다 더 취향이라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제목이 독특해서 무슨 내용인지 호기심이 생겼다가 앉은 자리에서 금세 다 읽었습니다 독특한 구성과 에스에프 적 감성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만족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앤솔로지 너무 좋아요. 응원합니다ㅠㅠ 대체 우리 조선시대와 스팀펑크를 조합할 생각은 누가 하신 건가요.. 너무 행복했어요. 스팀펑크 세계관 자체를 좋아하는데 또 역사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환장의 필승조합. 하필 이름도 기기인 도로. 멋짐이라는 것이 폭발했고요. 정말 모든 단편들이 다 좋았어요. 특히 군자의 길 읽을 때는 후반부로 갈수록 감탄하면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