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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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리뷰 총점 8.5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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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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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서양 중심의 중세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 평점6점 | YES마니아 : 로얄 i*****n | 2020.10.22 리뷰제목
'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부제를 단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동서양의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를 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평가되고 있는 서양의 중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가치가 절대적 권력으로 작동하던 서양의 중세는 일반적으로 상식보다 권위가 앞서던 '암흑의 시대'라 지칭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암흑을 뚫고 시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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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부제를 단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동서양의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를 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흔히 '암흑의 시대'라 평가되고 있는 서양의 중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가치가 절대적 권력으로 작동하던 서양의 중세는 일반적으로 상식보다 권위가 앞서던 '암흑의 시대'라 지칭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암흑을 뚫고 시작된 이른바 근대 이후는 그 시절과 어떻게 다른가? 절대적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저술한 저자의 관점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맞춰져 있다고 이해된다.

 

한 마디로 서양의 관점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중세에 대한 의미와 평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특히 서양 중심의 세계사 서술에서 중세와 근대를 비교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는가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서양의 중세만이 아니라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로 대표되는 동양, 그리고 이슬람 문화까지 아우른 종합적인 고찰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서구 중심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판단, 여전히 그것을 절대적 가치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라고 하겠다.

 

중세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조명’,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반적으로 서양의 중세만 다루어져온 것과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서양 근대 중심 세계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면서,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1장은 '중세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움베르토 에코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된 서양의 중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종교였던 기독교의 성격을 서술하고, 서양의 중세를 '폐쇄와 불관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으로 저자는 가장 먼저 '인도의 중세'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 여전히 사회적 갈등과 종교 분쟁이 진행되고 엄격한 신분 구분을 당연시하는 카스트제도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인도는 지금도 중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밖에도 전체 4개의 장에 걸쳐서, 인도의 사상(3)과 문학(4) 그리고 예술(5)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가 현장을 찾아 직접 목격한 인도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일반적인 관점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고 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이 어우러져 인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친일파'였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인도에서는 '간디'가 경멸시되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중세라는 기간을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서양 중심에서 벗어나, 인도를 대상으로 시작한 중세에 대한 진단은 이슬람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 자행된 초등학교 교사의 '참수사건'으로 인해 언론에서는 이슬람의 폭력성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에서는 이를 이슬람의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하고 있지만, 저자의 진단에서는 이슬람 율법인 코란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일부 신자들의 '맹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종교의 경전을 자의적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 신도들에게 이를 절대적 신앙으로 주입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그 뿌리가 같은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면서, 서로 적대적인 감정으로까지 발전한 종교 전쟁의 성격도 배제할 수가 없다. 저자는 인도의 근대와 함께, 과연 이슬람의 근대도 얼마나 중세의 '암흑'에서 벗어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이 '이슬람 중세 이야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모두 고유한 저마다의 문명이지, 어떤 문명이 다른 문명을 대체하는 우월성을 가진 것일 수가 없다.' '물질주의에 사로 잡힌 인문이 아닌 진짜 인문 이야기'를 표방하며, 저자가 그동안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양 중심의 문화사를 지양하며, 이슬람과 인도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중세에 대해 조명한 내용인 것이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계상은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으며, 암묵적으로 우리 역시 그러한 시각에 물들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편향된 시각을 조정 혹은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을 강조하며, 각 문화의 고유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이슬람을 호전적인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는 서구 언론의 시각이 그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구호는 중세의 신학자인 코마스 아퀴나스가 '이슬람을 폄훼하기 위해 퍼뜨린 과장된 선전'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종교적 권위에 눌렸던 서양의 중세에 비해, 이슬람의 중세는 사상과 문학 그리고 예술적으로 더 다채로웠음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중세의 전부인 것처럼 그려졌던 서양 중세의 경우 '제국주의'와 십자군으로 대표되는 호전적이고 침략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중세 당시 서양의 사상과 문학 그리고 예술조차도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는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조명하고 있다.서양의 중세를 제국주의라는 제목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흔히 위진 남북조로 구분되던 시기를 중국의 중세로 설정하고,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중세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족보가 자신의 뿌리를 찾는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조상의 위세를 앞세워 사회적 명망을 획득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나 역시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강하게 내세울 수는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태도는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에는 저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해서 의견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으나, 기존의 보편적 견해와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댓글 0
종이책 중세는 과연 암흑의 시대였는가? 평점8점 | y*****2 | 2021.03.07 리뷰제목
흔히 기독교가 주도한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럽의 중세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의 박승찬교수님이 쓴 <중세의 재발견; http://blog.yes24.com/document/10907159>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중세가 암흑의 시대가 맞고, 동양의 각 지역은 개명시대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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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독교가 주도한 유럽의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유럽의 중세를 다시 조명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의 박승찬교수님이 쓴 중세의 재발견; http://blog.yes24.com/document/10907159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의 중세가 암흑의 시대가 맞고, 동양의 각 지역은 개명시대였다고 주장하는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 째 이야기을 읽게 되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박홍규교수가 쓴 이 책은 고대 인문학을 재평가한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기왕의 중세사가 일반적으로 서양의 중세만 다루어져온 것과 달리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인문을 서양 중세 인문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고 했습니다. 서양의 중세도 다루기는 했지만, 분량으로 보아 동양 문명들과 비슷한 정도로 맞추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한다라고 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논리의 전개에 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큰 틀에서는 중세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중세는 게르만민족의 대이동(4-6세기)이 있던 5세기부터 르네상스(14-16세기)와 더불어 근세(1500-1800)가 시작되기까지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특히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라고도 합니다. 한국사에서는 고려시대(9181392)에 해당한다고도 했습니다.

 

저자는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보는 것은 근세에 들어와 힘을 얻은 유럽이 유럽 이외의 세계를 침략한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서양의 중세가 기독교의 지배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서양 중세를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된 예수의 시대까지 거슬러 오를 뿐 아니라 중세와 근세의 경계를 모호하게 잡고 있기도 합니다. 무릇 이론을 세우려면 논리의 대상에 대한 조작적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변화가 거의 없는 암흑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중세가 무려 1천년이나 되는 장대한 세월이고, 논의의 대상인 인문학 역시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아우르는 영역이라고 보면 주로 유라시아의 중세를 한권에 몰아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하물며 논의의 대상이 인문학에서 예술과 건축에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다보니 논점이 흐려지고,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이론에 대한 지나친 저항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중세라는 특정한 시기를 개괄한 뒤에 인도, 이슬람, 서양, 중국, 한반도 등 5개 지역으로 나누어, 해당 지역의 중세를 간략하게 살핀 뒤에 사상, 문학, 예술로 구분하여 논의를 전개합니다. 일종의 비교문화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중세라는 시기의 특성을 이야기하다보니 논점이 섞이는데다가 저자의 주장을 앞세우는 관계로 개별 지역의 중세적 특성이 분명치 않아 보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사에서의 중세를 삼국시대에서 고려까지로 본 저자는 조선이 오히려 중세보다 암흑기였다고 주장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중세사를 논함에 있어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끌어다 비유하는 것도 적절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2019년에 시작한 코로나 대유행이 1980년대 이후 생긴 지구화 정책이 초래한 미증유의 대유행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길게 보면 16세기에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는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오독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우한폐렴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하여 중국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었지만, 코로나 대유행의 흐름은 분명 중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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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Think 1. 모두 돌려까기를 할 수 있는 용기에 반했다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z******8 | 2020.12.21 리뷰제목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다. 박홍규의 '또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섭렵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돌려까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의 인문학적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정면으로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예리하게 벼리고선 말이다.  각설하고, 1권에 해당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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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흥미로운 책이다. 박홍규의 '또 다른 책들'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섭렵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돌려까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동안의 인문학적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들에 정면으로 '비평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예리하게 벼리고선 말이다.


  각설하고, 1권에 해당하는 <인문학의 거짓말>이 '고대 인문학'을 돌려깠다면, 이 책은 '중세 인문학'에 관해서 사정없이 돌려까고 있다. 일단 '중세'라고 하면 으레 '서양'만을 떠올리기 일쑤인데, 이 책에서는 서양뿐만 아니라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 등의 중세 인문을 다각도로 다루고 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한참 낯설 판인데, 아예 '서양의 중세'는 이 책의 일부일 뿐이고, '비서양의 중세'를 더 자세히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가시는가.


  하지만 '중세'라고 해서 모두 곳에서 '서양의 중세다운 것'은 절대 아니다. 시기적으로 비슷하더라도 다른점투성이고, 역사적으로 유사한 점이 엿보이더라도 그 원인과 결과마저 유사하지 않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 겨우 박홍규의 비평의 칼날에 정면으로 얻어맞는 충격을 받지 않고 읽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쯤되면 이 책의 내용이 매우 궁금하실 테지만, 마땅히 소개할 내용을 고를 수가 없다. 고를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책, 자체'가 전부 생소한 내용으로 범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충격적인 흥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내용들이 나름 '전문가'들이요, '대학 교수'이신 분들인 탓에 실명을 거론하면 실례가 될 정도로 돌려까고 돌까대고 있다. 하긴 저자가 '대학 교수'이니 그 친구나 지인들이 전부 '대학 교수'가 아니겠나.


  진보적인 견해를 전혀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진보적'으로 '기존의 학설'을 탄탄한 논리로 까대는 통에 읽어가는 내내 숨가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볍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묵직한 한 방으로 '지인들 또는 친구들'일지도 모를 '그 분들'을 하나하나 근거를 대며 잘근잘근 밟아주고 있다. 개중에는 내게도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내용도 사정없이 두들겨 부수는 통에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조곤조곤 까대는 '박홍규의 썰'을 읽고 있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마력을 뿜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비평의 근거가 '나의 상식'과 죽이 맞을 경우에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지만, 반대로 '나의 상식'과는 정면으로 대치하는 경우에는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간만에 승부욕이 돋는 책을 만나 즐겁기 그지 없다. 전적으로 '저자의 편'에 설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면서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의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댓글 0
종이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h | 2020.10.16 리뷰제목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이 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는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굵직한 물음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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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이 책은 

 

이 책 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굵직한 물음을 부제로 하고 있다.

 

저자는 박홍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서

 

이 책은 인문학의 거짓말의 후속편으로, 첫 번째 책에서는 고대를 다루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세를 다루고 있다.

 

다른 인문학 책들이 다루고 있는 지역이 대개는 유럽 쪽인데 비하여 이 책에서는 서양도 다루고 있지만 그 비중은 적은 편이다. 대신 인도, 이슬람 지역, 그리고 동양에서 중국과 한반도를 다루고 있다.

 

지금껏 인문학이란 타이틀로는 가보지 못한 시대와 지역이다.

해서 일단 서구 쪽으로만 향하던 인문학에서 벗어나 그 인식의 지역이 넓어지니 자연히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서양의 중세 하면 보통 암흑기로 알고 있는데, 해서 서양이 그러니 다른 지역들도 모두 전세계적으로 암흑시대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못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암흑기였지만, 인도, 이슬람, 그리고 동양은 문화가 발전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세의 인문학을 얘기하면서, 서양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인도 등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 한 마디로 

 

저자가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을 붙인 것이 저자의 주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타이틀 하에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들 - , 주장, 사상 -을 거침없이 검토하고 비판의 대상으로 올려 놓는다.

 

그래서 인문학의 거짓말이란 제목의 의미는, 인문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의 주체가 인문학이 아니고, 그 대신 거짓말을 하는 주체는 인문학을 거짓으로 사용하는 자 ? 그게 사람이든, 시대든, 또는 경향이든 ? 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러한 거짓을 하는 사람들, 그런 경향을 비판하고, 인문학을 제대로 살려보자고 하는 주장이 담긴 책이다.

 

몰랐던 것, 잘 못 알고 있던 것들 - 바로잡게 된다.

 

타고르는 그 유명한 시를 왜 썼을까?

 

우리나라를 동방의 어쩌고 하면서 찬양했다고 타고르를 유별나게 치켜세우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타고르가 스스로 쓴 시가 아니라 한국인이 부탁해 억지로 내갈긴 메모 한 귀퉁이를 해방 후에 교과서에 실었던 이유는 그것이 소위 저명한 외국인 작가가 한국에 대해 쓴 유일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일분자인데도 2011년 서울에 그의 흉상까지 세운 것이리라. (60)

 

당시 타고르는 일본에서 유명했고 특히 그 어떤 외국인보다 일본 문화에 탐닉했기 떄문에 환영받았다. (59)

 

타고르에게 한국을 위한 시를 써달라고 부탁한 사람 이름을 저자는 밝히지 않고 있어 아쉽다.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

 

이슬람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오로지 무력으로만 전파되었다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게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중세 기독교를 대표하는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십자군 전쟁에서 싸운 적인 이슬람을 폄훼하기 위하여 퍼뜨린 과장된 말이다. (110)

 

아리비아 나이트가 호색문학?

 

아라비안 나이트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제국주의가 시작되면서다. (……) 호색문학이나 성애문학 측면이 강조된 것은 아랍세계를 음란한 비도덕적 사회로 오해하도록 해서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126)

 

이슬람 세계에서 인간이나 동물을 형상화 하지 않는 이유는?

 

생명체를 표현하는 것이 이슬람 미술에서 처음부터 금지되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코란성경처럼 이야기가 아니어서 형상화할 사건이 없다. 즉 형상화가 불가능하기에 없을 뿐이다. (146)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 관능적인 것 

 

구스타프 클림프의 그림은 종교적이라고까지는 하지 못해도 정적의 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클림프의 그림이 곧잘 관능적인 것으로 오해되어 유감이다. (214)

 

밑줄 긋고 새겨야 할 말들

 

언제 어디서나 외부의 적을 만드는 비열한 가짜 보수의 방식이 정치판과 똑같이 득세한다.(106)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없는가? 도리어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제대로 따르는 참된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 하지 않는가?( 113)

 

종교가 재앙으로 변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화될 때라기보다는 권력화될 때라고 보는 것이 옳다. (120)

 

이런 글은 어떤지? - 그 내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바울은 할례와 식사 규정을 없애는 동시에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 등 사람들을 매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많이 첨가했다. (17)

 

바울이 <(마리아의) 처녀 출산이나 3일만의 부활을 첨가했던가 

 

불교는 서서히 몰락하다가 12세기 이후 인도에서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다.

물론 이슬람 세력은 불교와 힌두교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승려들을 학살했다. 특히 나란다 불교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불교 사원을 파괴해 승려 대부분이 네팔과 티베트, 남인도로 떠났다. 티베트에서는 그곳의 고유 종교와 융합해 라마불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슬람은 전래 이후 불교나 힌두교와 공존을 모색했다. (39)

 

그러나이후의 발언은 앞의 말과 배치된다.

 

게다가 봉제사(奉祭祀)와 대가족제도를 대단한 이상사회로 미화하는 소위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아연하다. (47)

 

페미니스트는 봉제사 등 대가족제도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저자가 월간 인물과 사상20182월부터 20199월까지 연재한 글을 엮은 책이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여 쓰여진 책이라는 것이다.

 

특히 주류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는 것은 더 힘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쏟은 땀이 제대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 있는 책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간 읽었던 인문학 책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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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문학의 거짓말 - 박홍규 평점9점 | YES마니아 : 골드 t******8 | 2020.10.09 리뷰제목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어떤 주제에 상관없이) 주로 서양이나 동아시아를 다룬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 위치하니, 동아시아에 관심이 쓰이는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고,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재패한 것이 서양이니 서양의 역사와 문화가 큰 지배력을 가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인도나 이슬람은 우리에게 '낯선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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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를 불러일으키거나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은 (어떤 주제에 상관없이) 주로 서양이나 동아시아를 다룬 것들이다.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 위치하니, 동아시아에 관심이 쓰이는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고, 근현대사에서 세계를 재패한 것이 서양이니 서양의 역사와 문화가 큰 지배력을 가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인도나 이슬람은 우리에게 '낯선 어떤 곳'으로 인식되고 많은 역사서에 등장하는 이방인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의 거짓말>은 흔히 암흑시대로 일컬어지는 중세 시대가 실제로 인문학의 정체기 혹은 퇴행기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동시대에 서양, 인도, 이슬람, 중국, 그리고 한국의 문화(사상, 문화, 예술)를 고찰함으로써 서유럽 중심으로 짜여진 역사관에 회의감을 표현한다.


서양 근대사에 등장한 제국주의는 유럽을 벗어나 전세계를 향했다. 새로운 대륙과 국가의 발견은 정복전쟁과 식민지화를 초래했고 피정복자의 찬란한 문화와 유산은 파괴되고 폄하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도, 중국, 이슬람, 한국 모두 그런 피해를 입었다.


중세시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고 점점 더 다양해지는 듯하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동로마제국의 멸망까지, 서로마의 멸망부터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인을 쫓아내고 대항해시대가 열리는 시점까지, 서로마의 멸망에서 교황권의 쇠퇴가 급격히 이뤄진 시기까지 등등 관점에 따라 중세 시대는 다양하게 구분된다. 학자에 따라 중세의 시작점으로 언급된 서로마 제국의 멸망 시점에 대한 이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중세시대의 정의와 의미를 재해석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으며 문명의 암흑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문명의 여명기로 여겨지는 추세인 듯하다. 


<인문학의 거짓말>의 저자 박홍규는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라는 관점은 서양사에 국한된 편협한 시각으로 행해진 단조로운 구분이며, '세계사라는 지구의 영역'에서 같은 시기의 다른 문명을 고찰한다면 중세시대가 암흑시대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또한 각 대륙이나 국가마다 중세라 칭할 수 있는 시기도 달라지게 된다. 


서양 제국주의가 세계를 정복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함으로써 잊혀져 간 문명들 또한 개성있는 훌륭한 문화를 이뤄냈고, 물질문명에 젖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등한시하는 현대사회를 정화하기 위해 이들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절실히 필요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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