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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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언어의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

리뷰 총점 9.2 (9건)
분야
인문 > 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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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언어의 마법에 대한 투쟁 평점9점 | a******2 | 2017.02.19 리뷰제목
나에게 두 과목(인식론, 언어철학)의 A를 안겨주신 우리 과 교수님께서 내신 책. 학점을 어마어마하게 짜게 주기로 악명이 높은데다, 하얗게 샌 흰 머리에 옛날식 서울말씨를 쓰는 조금 고집 있어 보이는 교수님이셨지만, 분석철학 전공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딱딱한 느낌과 달리 석가모니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비교적 덜 딱딱한 철학자들에 대한 조예도 깊은 분이다. 이 책은
리뷰제목

나에게 두 과목(인식론, 언어철학)의 A를 안겨주신 우리 과 교수님께서 내신 책. 

학점을 어마어마하게 짜게 주기로 악명이 높은데다, 하얗게 샌 흰 머리에 옛날식 서울말씨를 쓰는 조금 고집 있어 보이는 교수님이셨지만, 분석철학 전공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딱딱한 느낌과 달리 석가모니에서 니체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비교적 덜 딱딱한 철학자들에 대한 조예도 깊은 분이다.

 

이 책은 교수님이 쓴 논문들을 모아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대략적인 테두리가 그려지도록 배열한 책이다. 그렇기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전체 개념들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입문서라기보다, 이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는 이들이 참조하기에 적당한 책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초반부터 나오는 '논리의 자율성'과 같은 개념을 이해하는데 애먹었는데, 조금 더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이 개념을 다른 것들과 비교하는 서술을 통해 희미하게 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언어의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목적의식이 곧 이러한 언어의 마법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논리철학논고>>를 통해 전개되는 전기 사상에서나, <<철학적 탐구>>를 통해 드러나는 후기 사상에서나 동일하다. 언어의 마법이란, 즉 언어가 언어로서 말할 수 있는 것 너머에서 말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구체적 내용을 뺀 채로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전기 사상에서는 '언어로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진리치('참' 혹은 '거짓')가 알려질 가능성이 있는 언명들이다. 그러한 언명을 명제라고 하며, 오직 이러한 명제만이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명제는 일어나는 사실들을 그림으로 모사한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명제란 응당 그 명제가 말하는 바가 현실에서 일어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을 올바르게 기술하는 명제는 참이며, 잘못 기술한 명제는 거짓이다. 그러나 참이든 거짓이든 모두 그 진리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의미 없는 진술이다. 그것이 말하는 바가 도대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없는 진술들. 흔히 윤리적 명제, 미학적 명제, 종교적 명제라 불리는 것들이 이러한 진술에 속한다. 윤리학이나 미학이 다루는 가치는 어떠한 사태의 존립이 아니다.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실들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 당대에는 헤겔주의를 비롯하여 다분히 가치 판단이 많이 개입된 이론들이 널리 유행했었고, 종교의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엄밀한 지식체계가 이러한 이론들이나 종교에 오염되는 꼴에 불쾌감을 느낀 철학자들에게 반갑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도 요즘 '인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소위 문화이론가, 환경주의자, 채식주의자, 페미니스트 등등의 일군의 '학자'들이나 문화예술인들의 모습에 염증을 많이 느낀다.

 

"종차별/젠더차별적인 육식이성중심주의는 타자를 잡아 먹고 삼켜서 '나'로 동화시키는 문화이다. 육식이성중심주의는 동물을 완전히 박멸해버렸다. 동물은 이제 동물원에 가지 않는 한 만날 수 없다. 동물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비쳐줄 거울은 사라졌다."

임옥희-젠더 감정 정치

 

이런 글이 전형적으로 '의미없는' 진술이라 할 수 있다. 대관절 육식이성중심주의란 뭐란 말인가? 다분히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가치에 국한되는 생각을 교묘하게 마치 존립하는 사태에 대한 진술인 양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사실이 진실로 어떠한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 비트겐슈타인보다 앞서서 진화생물학자들이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이러한 무책임한 진술이 사람들을 감정적이기만 한 방향으로 호도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인문학은 걸핏하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차연', '증상', '주아상스', '미소지니' 등등. 그러나 과연 저들이 의미 있게 논의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흔히 위와 같은 언어를 만들어 내는 '인문학자'들은, 대체로 <<논고>>식의 엄밀하고 분석적인 입장이 세계의 참모습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다고 변호하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 소통이 가능해야만 한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 내에서 항상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설명을 따르자면 사회성과 규칙성이 있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놀이'라고 부르는 언어 사용의 규칙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그 규칙에 따라 사용할 때에만 언어는 의미있게 이야기 될 수 있다.

 

교내 인문학연구소에서 보조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느낀 바가 있다. 도대체 인문학자라는 이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여는데, 전혀 서로 소통이 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의미있는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다. 자꾸만 프랑스나 이탈리아, 미국, 일본 등지의 낯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그 자리에서 본인만 알고 있는 그 낯선 철학자의 낯선 개념을 술술 풀어낸다. 보통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이러한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개념들은 대체로 현실에 대한 진지하고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관찰을 결여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개념인 경우가 많다. 아무도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라, 딱히 최소 두 사람 이상의 이해가 일치하기가 처음부터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세미나는 항상 서로서로 본인의 지식 자랑으로 끝나고 아무런 결실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이해의 불일치를 칭송한다. 그야말로 다양하고 창조적인 새로운 이해를 낳는 원천인게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거꾸로 그것이 인문학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본다. 인문학자들이 자꾸만 어떠한 맥락에서도 제대로 사용하는 게 의미없는 개념들을 들여오는 상황이, 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제대로된 의견을 공유할 수 없게 만들면서 도리어 인문학을 잘게 해체해 결국 아무것도 아닌걸로 없애버린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어떠한 메세지도 주지 못하고,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이 책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사용이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한다고 보았다. 가서 밥을 먹어라는 명령은 그 말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실천을 하게 한다. 이해하는 사람이 누구든 대체로 동일하다. 그러나 '육식이성중심주의'를 벗어나자는 말은 도대체 어떤 실천을 하게 한단 말인가. 결국엔 아무런,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구체적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개념, 모두가 공유하는 언어놀이의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는 개념, 현실에 존립하는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는 개념...

 

그런 점에서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언어와 이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본다. 비록 비트겐슈타인 본인의 문체 역시도 모호한 부분이 많다. 이 책을 보니 비트겐슈타인 전공자들 간에도 세세한 논의에서 서로 의견이 많이 갈리나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어의 마법에 빠져드려는 욕망을 다스리기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만큼 좋은 치유제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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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내면 평점10점 | s******5 | 2017.03.04 리뷰제목
쎄인트의 冊이야기 2017-041  【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 : 언어의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       _이영철 저 | 책세상     1.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미지를 담는 것은 쉽지 않다.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그가 ‘시인이자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의 철학자’라는 평을 했다. 소설가의 철학자라   2.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철학적 탐구》의 서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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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 이야기 2017-041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 언어의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

      _이영철 저 | 책세상

 

 

1.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이미지를 담는 것은 쉽지 않다. 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그가 시인이자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의 철학자라는 평을 했다. 소설가의 철학자라 

 

2.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철학적 탐구의 서두에서 자신의 책을, 광대한 사고영역을 종횡무진으로, 모든 방향으로 편력하는 얽히고설킨 긴 여행에서 생겨난 다수의 풍경 스케치들을 담고 있는 하나의 앨범에 비유했다. 자신의 철학적 소견을 입체파화가처럼 그려냈다는 또 다른 표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3.

이 책의 지은이 이영철 교수(부산대학교 철학과)는 십 수 년 동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관한 논문을 썼다. 2006년에 7권의 비트겐슈타인 선집을 내기도 했다. 이 책에 비트겐슈타인의 모든 것을 정리해보고자 애쓴 노력이 보인다.나는 가능하면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특정 시기나 특정 측면이 아니라 전체 시기와 전체 모습을 요점적으로 살피는 가운데 그의 철학의 의의를 살피고 싶었다.”

 

4.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철학관, 그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에 대해,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관, 심리철학, 종교관에 대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5.

비트겐슈타인의 심리 철학 중 내면과 외면에 주목한다. 심리철학은 그가 언어철학 및 수리-논리철학과 더불어 주력했던 분야 중 하나이다. 심리철학은 마음의 본성과 관련된 철학적 문제의 영역이다. 그에게 심리철학은 심리학의 철학으로 이해된다. 그의 과제는 철학적 문제들을 일으키는 심리학적 용어들의 사용을 문법적으로 고찰하는 것이었다.

 

6.

지은이는 비트겐슈타인 심리철학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고찰들을 중심으로 그의 생각을 분석하고 조망한다.

7.

1차 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은 전장(戰場)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철학의 종언을 선언한다. 그는 철학의 문제가 대부분 언어의 논리나 문법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다. 논리-문법적 문제를 해결하면 오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문법적 탐구로서의 철학은 어디까지나 명료화를 추구하는 실천적 활동이다. 그렇다면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 목적이 가치의 전도에 있다고 했다. 우리의 삶이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되기를 바랐다.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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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언어에 대하여 평점8점 | l****w | 2017.06.12 리뷰제목
차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은 전장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철학의 종언을 선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가 대부분 언어의 논리나 문법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논리-문법적 문제를 해결하면 오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인식의 문제나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뜻의 해명으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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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대전에 참전한 비트겐슈타인은 전장에서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다. 그리고 호기롭게 철학의 종언을 선언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가 대부분 언어의 논리나 문법에 대한 오해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논리-문법적 문제를 해결하면 오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통적인 인식의 문제나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뜻의 해명으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전환은 ‘진리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뜻에 대한 물음으로의 이행’으로 철학의 물길을 돌려놓았다. 이를 두고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우리의 오성에 걸린 마법에 대한 하나의 투쟁”이라고 이야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문법적 고찰을 통해 철학을 바라보려 한 이유는, 철학을 일상 언어로 되돌려 보내 종국에는 더 이상 철학이 따로 필요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트겐슈타인이 추구했던 철학은 우리의 일상적 삶이 곧 철학적 삶이 되고, 철학적 삶이 곧 일상적인 삶이 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문법적 탐구로서의 철학은 어디까지나 명료화를 추구하는 실천적 활동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명료화 작업인가? 비트겐슈타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가 성취하거나 추구한 것들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언어 비판과 해명은 물론 그 자체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과 의의는 더 넓은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 목적이 ‘가치의 전도’에 있다고 보았다. 철학적 명료화 작업이 결국 가치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가치의 영역을 그 나머지로부터 명확히 경계 지음으로써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세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추구했던 철학의 종언이며 새로운 철학의 모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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