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의 거장 / 레오 페루츠 /열린책들 >
환상과 서스펜스로 새로운 장을 열었던 레오 페루츠. 나치의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1938년 팔레스타인으로 망명을 했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오스트리아로 오가며 글을 썼지만 예전처럼 명성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작품이 재 출간 되면서 호응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추리와 역사 소설,환상 소설 등 현대 문학성과 비슷한 구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 지금 읽어도 전혀 시대 흐름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읽은 내내 흥미로웠다는 점도 말하고 싶다. 또 [심판의 날의 거장]은 저자의 대표작으로 당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그럴까?
먼저 소설은 요슈 남작이 남긴 글로 시작이 된다. 화자인 동시에 요슈 남작이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소개를 하는데 이는 지인이었던 궁정 배우인 오이겐 비쇼프가 어느 날 자신의 저택에서 자살을 했다. 그 전까지 아무런 증상도 없었을 뿐더러 그곳에 요슈 남작, 오이겐과 그의 아내 디마, 처제인 펠릭스 그리고 고르스키 박사와 엔지니어인 졸그루프가 초대 되었다. 음악 연주회가 끝나고 오이겐은 최근 자신이 겪었던 한 장교에 대한 자살을 이들 앞에서 말하는데 그 사건이 참으로 기이하다. 죽은 장교는 동생 역시 자살로 죽었고 이를 의심해 자신이 왜 동생이 죽었는지 진실을 파헤치다가 결국 죽게 된 것이었다. 오이겐으로서는 너무 희귀한 사건으로 어떤 해답도 없는 일을 이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 역시 곧 자살로 죽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요슈 남작이 범인으로 지목되는데 그건 과거 오이겐의 아내 디나와 남작은 연인이었지만 헤어졌다. 여전히 디나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는데 하필 상황이 딱!! 남작이 질투로 오이겐을 죽였다는 것으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반박을 해야할까? 그리고 그때 졸그루프는 남작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진실을 찾겠다고 나선다. 이에, 남작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혼자 행동을 나서게 된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말 죽였는지 의심을 하게 되는 요슈 남작은 디나의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 집을 나올 수 밖에 없었고 잠깐 이나마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졸그루프가 오히려 남작에게 다가와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여행시간을 미루로 남작은 오이겐이 죽기 전 갔던 행적을 찾아 나서고 마침, 오이겐이 죽은 후 그 집으로 걸려왔던 의문의 여성을 찾기 시작한다. 혼자서 움직이는 요슈 남작 그리고 둘이 같이 사건을 찾아나서는 졸그르푸와 고르스키 박사. 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보면 사실 어떤 용의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도달한 그 시점에서 이들이 찾는 것이 점점 하나로 좁혀지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진실이 드러난다. 현재의 사건이 아닌 과거의 한 화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진실 그때 그 화가에게 일어났던 또 하나의 일이 오이겐 뿐만 아니라 마지막 진실을 밝히려던 졸그루프에게도 닥친다. 도대체 마지막 졸그루프가 고르스키 박사에게 전화로 고함을 쳤던 그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게 두텁지 않는데 페이지인데도 읽는 동안 묵직함이 느껴진 작품이다. 원한도 아닌 인간의 가장 두려운 공포로 인해 일어난 사건들 뭐랄까? 가장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인해 공포로 들어가게 된 사람들. 음, 전혀 생각지 못한 전개로 책을 덮고 나서 왜 레오 페루츠인지 다시 한번 각인이 된 소설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긴장감이 흐르고 난 후 '자살'로 보이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너무 쉽게 '자살'이라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암시가...타살로 추정할 수 있는 스토리가 등장한다. 여러 관계들..그 관계속에 화자로 등장하는 남작이 우선 용의자로 지목된다.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이는 설정...사실 조금은 뻔한듯 디나의 남동생의 추리가 어설퍼..보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묘한 기분은 뭐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신 번쩍 나게 하는 장면.내가 범인이 아니어도 혹시 내가 범인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착각의 암시 "나는 불안에 사로잡히고서 놀라서 자문했다.나는 이 방에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보았고 내가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결코 내 입술에서 나오지 않는 말을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죄가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착각이다! 백일몽이 나를 가지고 논 것이다! 낯선 의지가 나로 하여금 내가 저지르지 않은 행위를 떠맡도록 강요하려 한 것이다!"/85쪽
"내가 뭘 두려워한 거지? 나는 아무 죄가 없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겁낼 필요는 없어.평온하게 내 갈 길을 가면 돼.나는 어제처럼 평온하게 사람들의 얼굴을 바바롤 수 있어.여느 날처럼 평온하게"/109
추리 접근 방식이 독특한 걸까 생각이 드는 순간 알 수 없는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 두어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하며,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가 범인으로 지목할 이유가 되는가..에 대한 물음.추리사건에 환상이 접목되면 이렇게 다른 느낌이 되는 걸까...순간 순간 밀려오는 공포와 두려움..그러면서도 계속 범인을 따라 가야 하는 상황에서...범인은 사람이 아닌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환각과 환상,혹은 정신 착란 같은 괴물...그러니까 자살인데 사실은 자살이 아닌 또 다른 외부적 요인이 있었을수도 있겠다는...그런데 이 짧은 소설은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혹시나 하면서도 섣불리 단정지을수 없게 만들었던 그것이 실은 진실이란 말씀.뭔가에 한방 얻어 맞은 기분이였다. "노련한 형법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형법학자들은 그것이<정황 증거로 장난치기>라고 지적한다.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많은 이들에게서 관찰되는 이 자학적 충동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의 정황 증거를 억지로 다르게 해석하고 운명이 상화을 달리 이끌었더라면 자신에게 죄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에게 자꾸만 제시하려 한다"/239쪽 보르헤스선생께서 이 소설을 범뵈 소설 시리즈<제7지옥> 에 포함시켰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는데..읽는 내내 포함시킬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에 환상문학이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시너지를 맛본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추리물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읽었던 추리 소설과는 결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범인을 유추하는 과정에서부터 인물 중심이 아닌 공포,불안 환상,망상,정신착란 같은 것들이 중심에 내세운 것도 그랬고..해서 누가 범인일까를 추리하는 사이 사이 길을 잃기도 했지만 더 선명하게 보게 된 것도 있다. 눈에 보인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진실이라 생각되는 것도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다...는 사실
나는 알고 싶었다. 알아야만 했다. 그리고 내 눈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엔지니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그가 이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의 미로에서 나가는 길을 알기라도 하는 양. 이 순간 내 적의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우세했는지 나는 모른다. 분노였는지 초조함이었는지 흥분이었는지 짜증이었는지, 아니면 실망이었는지 말이다. 마음속에서 무엇이 일어났든 간에 그는 그것을 숨기는 데 성공했다. 그의 얼굴은 다시 정중하고 친절한 표정을 띠었다. p.87
1909년 9월 26일, 요슈 남작은 유명 궁정 배우인 오이겐 비쇼프 집에 친구들과 함께 방문을 한다. 바이올린을 챙겨 간 그는 친구들과 실내악 연주를 하고, 오이겐 비쇼프는 자신이 초대한 손님들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오싹할 수 있습니다. 아마 오늘 밤 늦도록 잠을 못 이룰 겁니다....'로 시작된 그 이야기는 수수께끼 같은 한 자살 사건이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젊은 장교에게 화가인 동생이 있었는데, 어느 날 자살을 했다고 한다. 유서조차 없었기에 유족들은 납득이 가지 않았고, 형이 진상 조사에 나선다. 형은 동생이 살던 집으로 이사해, 동생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자살의 원인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고, 그는 결국 동생처럼 자살을 하고 만다. 그가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오이겐 비쇼프는 잠깐 자리를 비운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권총 자살을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 뒤 남겨진 가족들과 손님들은 요슈 남작을 비쇼프를 죽음으로 몰아간 인물로 지목한다. 그는 비쇼프의 아내와 과거 연인 사이로 그녀에게 아직 연정을 품고 있고, 비쇼프의 자살을 유도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명을 벗기 위해 요슈 남작을 비롯한 일행들은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가면서, 이러한 자살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요슈 남작은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벌어지는 연쇄 자살 사건들의 진실은 무엇일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내일 만 쉰 살이 되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오랜 세월 동안 글쓰기를 피한 끝에 오늘 진실을 고백하고, 그날 밤 조반시모네 키기, 일명 카테반차에게 닥친 일을 회고록으로 남기려 한다. 대단히 유명한 건축가이자 화가인 그를 오늘날 사람들은 <심판의 날의 거장>이라고 부른다. 내가 나 자신과 모든 피조물이 용서받기를 바라듯 하느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p.204
레오 페루츠의 작품은 전부터 궁금했던 터라 <9시에서 9시 사이>가 나왔을 때부터 구매해서 읽어 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스웨덴 기사>, <심판의 날의 거장>이 나오기까지 시작하지 못했었다. 아직도 책장 한 구석에서 읽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상태로 먼지가 쌓여 가고 있는데, 어쨌든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심판의 날의 거장>을 처음으로 레오 페루츠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레오 페루츠는 '환상 문학의 거장'이라는 문구로 설명되는 작가인데, 여기서 환상문학이란 초자연적 가공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을 말한다. 물론 기이한 일을 표현한다고 해서 모두 환상문학이라고 하지는 않고, 보통 ‘단절과 공포감’, ‘애매성과 의혹’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런 장르의 작품들은 자연스레 미스터리와 공포를 유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대표적인 환상 문학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레오 페루츠와 프란츠 카프카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작가라는 점도 흥미롭다. 생전보다는 사후에 명성을 얻은 카프카에 비해 페루츠는 당대에 베스트셀러 작가였다고 한다. <심판의 날의 거장>은 페루츠의 전성기 대표작으로, 당시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출간된 지 거의 100년이 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고전들에 비해서 굉장히 잘 읽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앨프리드 히치콕, 그레이엄 그린, 이언 플레밍 등 세계의 많은 거장들이 페루츠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현대의 장르 문학들에 견주어도 될 만큼의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환상 문학으로서의 작품성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서스펜스, 추리, 공포와 환상이 절묘하게 조합된 이 작품을 만나 보자. 능숙한 이야기꾼 페루츠의 솜씨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스터리를 읽을 때 으스스하다, 오싹하다 같은 단어는 쉽게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단어를 지금까지 미스터리나 추리소설, 스릴러를 읽을 때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심판의 날의 거장]은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이 '으스스하다, 오싹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대체로 독서를 새벽에 해서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다른 책들도 새벽에 읽었음에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909년 9월 26일부터 닷새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 기록자는 요슈 남작으로,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저택에서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권총자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심스러운 정황 속에서 범인으로 몰리는 요슈 남작. 그는 비쇼프의 아내인 디나와 과거 연인 사이였던 데다 비쇼프가 절망할만한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저택에 초대받은 또 다른 인물 발데마르 졸그루프만이 그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런 저런 단서를 찾아 헤매면서 진상을 밝히려는 졸그루프와 고르스키 박사.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희대의 범인은 대체 누구인가. 상상하지 못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진다!!
작품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비가 오는 밤'을 떠올리게 한다. 가라앉아있고 축 처진 기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도무지 어떤 트릭을 사용해서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느낌이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어떤 저주가 걸려 있어서 작품 밖에 있는 나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은 아닐까, '글루미 선데이'처럼 이 책을 읽다 나도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오싹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게다가 요슈 남작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란! 사실은 이 남자가 진짜 범인인 거 아니냐며, 이게 반전인 거나며 호들갑을 떨었을 정도!!
그 와중에도 졸그루프와 고르스키 박사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울리는 듯, 작은 유쾌함을 선사한다. 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을 떠올리게 하는 콤비. 비록 고르스키 박사가 왓슨에는 좀 못미치기는 하나 졸그루프의 뒤를 따라다니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반 디나가 졸그루프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에 요슈 남작은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특히 그 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가 보인 행동은, 마치 셜록 홈즈가 모리아티 교수와 대적하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과 비교할만하다는 생각이다.
일행이 밝혀낸 범인과는 달리 작품의 마지막에는 또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손짓하며 독자를 들었다놓았다 하는 레오 페루츠의 환상문학! 그를 감히'오싹함의 거장'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