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예스 리뷰어 클럽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숨이 턱 막힌다.
뉴스에서 떠드는 비상식적인 죄의 양형을 포함한 판결, 재판부 역겨운 저울질에 대해 나는 분노하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법이 모두에게 평등한가?', '누구나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그 잣대는 공정한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NO'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로서 평등한 법 집행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이 사회에는 그 반례가 너무 많다.
돈 있는 사람은 비싼 변호사를 잘 사서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적은 형량을 선고받고, 돈 없고 힘없는 자들은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지나치게 긴 법정 싸움에서 고통받는다. 오로지 일의 잘잘못을 가리고 옳고 그름이 판결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하는 법정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도무지 건강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볼 수 없다.
물론 사건을 잘 해결한 사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는 사법부 불편한 소식의 성격은 '옳지 못한 판결에 대한 고발성'을 띄기 때문일 것이다.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꿋꿋이 지키고 계신 선량한 법조인분들까지 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선량한 법조인분들에게까지 피해가 생긴다 하더라도 이런 불공정함을 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지금의 20대가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30세대는 '공정'이라는 가치에 목을 맨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시작점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미 기울어린 바닥에 가진 게 많지 않은 젊은 세대는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평등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책상머리에 앉아있고 가장 많이 배운 세대가 원하는 '사회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가치는 기성세대가 "라떼는 말이야"로 훈계할 수 있는, 생각 없는 어린애들의 투정처럼 쉽게 뭉갤 수 있는 가치 없는 것일까?
노력하면 누구나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안다. 하지만 출발선마저 공정하지 못하다면 이건 너무나 슬픈 일이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인간만이 태어난 그대로 살지 않는다. 자유의지로 명명되는 인간의 심리 깊은 곳에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봉건시대 신분제 사회의 태어난 그대로의 삶을 산다면 민주주의 공화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부끄럽다. 변화 없는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은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국민 1인 GDP가 3만 불이 넘어가는 대한민국. 청년의 설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현재 상태를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초급자일수록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 거기서부터 상급자로 가는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평생 법정의 불공정에 돌을 던져온 최정규 변호사가 보는 사법계의 불편한 현실. 2030이 원하는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현재의 모습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할 것이다. 책표지에 기재된 나온 '이유 없고,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판결을 향한 일침'은 꼭 필요한 것이고, 정의로운 사회로 가기 위한 지침으로써 중요한 책이라고 필자는 추천하고 싶다.
책에서는 크게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들,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이상한 판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이 불공정한 일에 마주했을 때 대항할 수 있는 베테랑 변호사의 소소한 팁도 담겨있다. 케이스스터디 형식으로 각 챕터가 길지 않아 흐름이 끊겨도 다시 몰입하여 읽기 쉽다. 좋은 편집이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치를 포함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이제 죄악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정(사법부)을 크게 견제할 수 있는 유효한 장치는 없다. 앞으로도 책에서 거론된 일 같은 열받는 일이 계속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불공정한 일을 당하면 목소리를 내고 이에 항의하고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 쏟아지고 있는 '불량 판결문'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계속해서 예의 주시하자.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생산한 판결문을 알고 있다."
책을 읽으며 그동안 몰랐던 숨겨진 미담으로 세상 따뜻한 법정의 모습도.
분노에 부들부들 떨며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드는 불량 판결문들도 보게 되었다.
앞으로 돈 없고 힘없는 이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최정규 변호사님의 행보가 언제나 그 마음처럼 따뜻하길 바란다.
좋은 책을 서평 할 기회를 주신 블랙피쉬 출판사에게도 감사드린다.
여러분 하루하루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굳이 읽어도 안읽어도 되는 글
우리 나라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하고 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우리나라의 법 집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알면 이 책을 읽는데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형사 사건의 흐름을 살펴보자. 법을 위반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그 사건을 '인지'하게 되면 경찰과 검찰에서 그 사건을 '입건'하게 되고 정식 형사사건이 된다.
그 후의 흐름은 경찰이나 검찰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검찰은 1차적으로 기소, 불기소를 결정한다. 기소는 재판을 통해 심판을 요청하는 것이다. 불기소는 말 그대로 기소를 하지 않는 것이다.
기소는 경찰에서는 할 수 없다. 수사만 가능할 뿐. '검찰'은 기소권에 대한 독점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법원에 '사건'에 대한 재판을 바로 청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찰에서 입건된 '사건'은 결국 검찰로 송치되고 이때 검찰에서 '사건'에 대해 기소의견이 결정되면 재판부에 구형한다. 그후 법정에서 재판하고 '사건'에 대한 죄의 유무와 올바른 양형을 정하는 것은 법원, 재판부의 일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이기에 사법부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와 그로 인한 억울한 사람의 발생을 막기 위해 사법시스템에는 안전장치로 '변호사'라는 존재가 사건 내내 피의자(기소 이후는 피고인)의 편에 서서 변호한다.
모두의 자리에서 자신의 할일을 묵묵히 진행한다면 큰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판결'이라고 하면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불공평한 판결들로 인해 정의에 대한 믿음은 땅에 떨어져 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까? 왜 사법 시스템은 불공정한 것일까?
"검찰에서는 피의자 ㅁㅁㅁ에 대해 10년형을 구형하였습니다." 라는 검찰의 구형은 재판부의 판단에 아무런 강제도 하지 못한다.
담당 검사의 의견일뿐 피고인의 형량은 재판부의 판사가 결정한다. 같은 사건에 대한 검찰부와 재판부의 양형 의견과 판단은 왜 이렇게 다른 것인가.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피고인이 감형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구멍들이 있다.
반성문. 탄원서. 음주, 정신병력으로 인한 심신미약 등 정상참작이라는 구실 좋은 변명을 만들어 놓고 이유로 이를 악용한 피고인이 받을 형이 감형된다. 문제는 또 있다.
그런 결과로 만들어진 '판례' 라는 것이 다른 비슷한 사건의 재판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사건에 대한 전후관계나 옳고 그름의 판단의 영역에 '전에 판례가 그랬다.'는 것이 영향을 끼치는게 맞는 것일까?
정의를 집행하는데 있어서 '판례'라는 것은 얼마나 투명한 잣대가 될 수 있을까?
1. 변화란 결국 쉬운 해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의미 있는 질문의 수를 늘려가는 것이고, 이기든 지든 필요한 싸움을 찾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
2. 5p <불량 판결문> 추천의 글 中 |
1. 좋은 법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다. |
2. 229p <불량 판결문> |
인터넷 포털창을 열고 메인에서 만날 수 있는 뉴스란에서는 거의 매일 이슈가 되는 사건의 재판 결과를 만나게 된다. 요즘은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이전과 달리 메인 내용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더 먼저 보게 될 때도 있다. 반응은 크게 2가지 이다. 다른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정치권 등 주요 유명 인사들의 재판결과물과 해당 기사 속 재판 결과를 비교하며 비난 하는 댓글(예: ~~는 ~~년 인데, 이건 ~~년이라고?), 그리고 다른 반응은 AI 판사를 도입하자는 댓글 말이다. 일반인도 이렇게 답답한 반응인데, 늘 법정에서 그런 상황과 마주해야 되는 변호사들은 오죽 답답할까? 그래서 그런지 이런 일반인들의 반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면접관 : 길거리에서 누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주먹을 휘두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수험생 : 맞받아치겠습니다. 법은 멀리 있고 주먹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위 대화는 사법시험 3차 시험인 면접에서 있었던 실제 내용으로 아주 많은 언론사에서 사법시험 탈락자의 면접 사례로 두고 두고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다. '사법시험 면접 탈락자', '사법시험 면접 레전드' 등으로 검색하면 관련 기사는 물론 유머 게시글에 도배 될 정도로 유명한 일화이다. 위 내용에서 면접관의 질문 의도는 '정당방위'와 관련된 내용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와 같이 답을 한 수험생은 그 어렵다는 1차와 2차 시험에서 꽤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면접에서 탈락하였다고 한다. 이 황당한 사연을 보며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웃었다. 아마 드라마에서나 나옴직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어이 없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진짜 웃은 이유는 겉으로 드러내진 못해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어이 없는 재판 결과에 대한 소식 때문에 위 사례를 보며 조금은 후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 더 궁금했던건 위 수험생이 그렇게 답해야했던 답변 의도였다. 면접관의 의도를 알면서도 갑자기 청개구리 본능이라도 발동했던 것인지? 원래 그런 천성이었는지? 위와 같은 사례를 보며 배꼽잡고 웃기 보다는 그런 상황에 허탈해 하며 화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는 변명을 한다. 어쩔 수 없다고. 그런 황당하게 짝이 없는 사례(저자의 재판정 방청 중 목격담)가 이 책에 등장한다.
소액 사건 심리가 진행중인 재판정이었다고 한다. 원고와 피고, 각 당사자가 출석했고, 재판도중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비난할 정도로 당사자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이 재판장이 당사자들을 진정시키고, 보완 부분을 지시하며 재판이 끝난다. 문제는 그 다음 벌어진 상황이다. 일단 그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재판이 끝났다는 걸 알고 나왔는데, 너무 흥분 했는지 재판장이 지시한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다시 확인 해야 했는데, 그들은 다시 판사에게로 돌아가서 확인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의논까지 하면서 말이다. 재판정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감정이 골의 깊은 당사자가 서로에게 현재 상황을 의논할까? 그것도 진지하게 말이다. 그만큼 법원이라는 곳과 판사는 아주 높고도 높은 문턱이다. 더군다나 재판 당사자들이라면 더욱이.
더 큰 문제는 저런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판사들에게만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서기관 등 법원 담당 공무원들 또한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변호사 사무실을 시작할 즈음엔 혼자서 관련 서류 구비까지 혼자해야 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서류 제출 과정에서 저자가 인지와 관련해 실수를 했던 모양이다. 대게 그런 경우 보완점이 기술된 서류를 통해 알려 오는데 법원 공무원이 전화해서 다짜고짜 이런거 하나 똑바로 못하냐며 고압적인 태도로 나왔다고 한다. 저자가 상황 정리하기 위해 자신이 변호사라고 했더니 그 법원 공무원의 태도가 180도로 바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상황을 검찰청의 수사관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적이 있어 무슨 상황인지 잘 알고 있다. 같은 건물내에서 근무하는 직원끼리도 그런다. 누군지 확인도 안하고 목소리를 듣는 순간 좀 어리다 싶으면 일단 말놓고 고압적인 태도로 떠들다 수사관이다, 검사다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태도가 180도 돌변하는 것 말이다. 저들끼리도 저런데, 외부인이지만 매일같이 방문하고 그들의 일상 중의 일부여야 하는 힘없는 변호사들에게 대하는 태도야 굳이 설명해봤자 숨만 찬다.
이러한 일상적인 문제들이 정말 일상적인 것에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일상속 그들의 태도들은 재판의 여러 과정 심할때는 판결문이나 재판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여러번 범행을 저질러 법원을 밥먹듯 들락날락 거리는 범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간단한 소액사건 재판의 당사자나 증인 등으로 법원에 출석해야 되는 그 자체가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일단 소송이 시작되면 당사자들은 모든 과정에 있어 법원이 정하는 것에 따라 일방적으로 기다려야만 한다. 물론 소송이 마트가서 원하는 거 고르고, 가고 싶은 날짜를 예약하듯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절대 그래서도 안되고), 적어도 그들이 기일을 지정하고 명령을 내렸다면, 최소한 그것을 지켜야 할 것이고, 부득이하게 변경된다면 그것에 대한 납득이 갈만한 이유 또한 명시되어야 하지만, 그런 사례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몇 분 안되는 재판에 참여하려고 당장에 자신의 생업을 포기하고 와야하는 사람들에겐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가슴칠일이다. 그렇게 열일 제치고 달려와 제시간에 도착해도 신속한 재판 운운하며 변론 시간을 '단 10초'만 주기도 한다. "10초만 하세요."라고. 우사인 볼트가 아니라면 100m를 10초 안에 들어오기 힘든데, 그 안에 억울함을 호소하라니..
심지어 소액사건 판결문의 경우에는 판결 이유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이유가 명시된 경우에도 복붙한듯한 불친절한 단 몇 줄의 문구만 명시해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문구는 몇 십번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숱하게 지켜본 저자는 사람들이 판사를 AI로 대체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제기되는 문제는 넘쳐난다. 제도를 만들어 놓고 태만하여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남용하는 건 이제 놀랄일도 아니다. 이러한 숱한 문제제기 중에서도 저자가 가장 크게 문제로 삼는 건 '법해석'의 문제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법해석' 문제는 2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는 입법과 관련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불량 판결문 양산 문제다. 흔히 법은 '국회'에서 만든다고 알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입법부인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사법부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판사(법관)는 판결하기 위해 그 법을 해석한다. 즉, 다시 말하면 법관의 해석에 의해 내려진 판결에 문제가 있을 경우 추후 입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법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국회의 몫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법관에 의헤 잘못 해석되어진 법은 불량 판결문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판결문 모니터링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2013년 부터는 '판결문 공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여전히 제대로된 서비스로 정착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공부하고 있는 분야의 사건과 관련해 좀 더 정확히 알아보고자 할때는 반드시 판결문 원문을 확인하려고 서비스를 종 종 이용하는 편인데, 물론 개인정보 등의 문제로 열람이 불가능 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그런 문제가 아닌 경우에도 유료 서비스를 이용해야 열람이 가능한 경우도 많아 불편할 때가 많다. 단지 유료 서비스라고 해서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료열람과 유료 열람의 기준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다. 올해 1월(2021년 1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현행 대법원 판결문 공개 제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현직 법조인이 변호사가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임에는 틀림 없다. 법조인 조차 열람이 어렵다면 일반인은 훨씬 더 어려울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지만, 묵묵하게, 그런 제도를 더 좋게 만들려는 노력이 일부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협업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불량 판결문을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지금도 판결문 모니터링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한가지 주요한 팁을 알려주고 있다. 바로 판사의 막말에 대처하는 방법인데, 이 방법은 변호사들 뿐만 아니라 소송 당사자인 일반인에게도 매우 중요하며, 조금 멀게 내다보면 불량 판결문 저지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인 것 같다. 재판정에서는 재판과정을 녹음하거나 속기해달라고 미리 신청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민사소송법 제159조와 형사소송법 제56조의2에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준용을 통해 민사, 형사, 가사, 행정재판 등 대부분의 재판에서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제도를 몰라서 활용을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중요한 건 이러한 제도가 있어도 막상 신청을 하면 판사들이 딴지를 건다는 것이다. 신청 이유가 뭐냐고.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말이다.
이럴 때 저자는 이렇게 대처하라고 한다. "판사님이 오늘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텐데 제가 잘 이해하고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되서 나중에 다시 듣고 읽기 위해서요."라고.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면서 품위도 지킬수 있고, 혹시 모를 법관의 뒤끝작렬 불이익을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이유가 참 씁쓸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인 것 같다. 법원도 어찌보면 서비스 기관인데, 불친절한 그들의 제도를 우리 손으로 친절하게 만들어야 되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법원의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는 내용이 핵심이라 문제가 가득한 사례가 가득하다.(딱 한 번 감동적인 존댓말 판결문 사례가 등장하긴 한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정말 진심을 다해 성심 성의껏 일하고 좋은 세상 만들려는 분들은 존재한다. 법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한 그들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할 정도로 안좋은 문제거리를 만들어 내는 경우가 더 많아서 문제다.
저자는 자신의 사법연수원 시절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자신이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1년 선배가 교육을 받다 사망하며 연수원 도서관 옆에 분향소가 설치되었었다고 한다. 사법연수원에서는 점심시간도 없이 8시간 동안 판결문을 쓰는 기록형 시험을 반드시 치러야 된다고 한다. 그 사망한 선배는 이 시험을 마친 후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병원 후송 도중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교수와 연수생들이 모여 간담회가 열렸지만, 당시 교수진들은 법원 공무원 신분인 사법연수생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반드시 이 시험을 치러야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단 한명도 반기를 들지 못한 채 그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 역시 그 시험을 치르는 날을 맞이한다. 다만 그 제도에서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시험보는 도중에 점심시간이 되자 방송으로 시험을 잠깐 중단하고 점심 챙겨먹으라고 안내 한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시험은 연수원 수료후 임용을 좌우하는 시험이라 방송 후에도 미동하는 동료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관행을 깨고 싶었던 저자의 소심한 반항은 시험날 아침 사온 김치김밥을 그 시간에 펼쳐놓고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달걀로 바위깬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당장에야 바위를 깨지 못하겠지만, 계속 해서 께진 달걀이 바위에 쌓이면 첫째는 냄세에 못 견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서 단단한 바위가 부서지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으며 현직 법조인의 답답한 심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책 초반에는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몇 페이지에 걸쳐 여러 사람들의 추천사가 담겨있다.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언론사 기자들이 었다.(물론 그들도 저자에겐 아주 큰 힘이 될 것이다.) 그 다음은 장애인과 노동계, 인권계 시민단체의 추천사였다. 변호사 등 법조인의 추천사는 단 1건도 없었다. 법조계는 여러의미에서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자존심도 정말 강하다.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도 상당히 드물다. 재심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런 그들의 반대편에 있어서 일까. 물론 저자와 뜻을 함께 하는 동료들도 분명 여럿 있기는 하지만, 김치김밥으로 소심하게 싸우려 했던 그가 이제 한 발 더 나와 책을 통해 싸우려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함께 힘을 실어준 동료의 추천사가 가득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씁쓸했다. 김치김밥에서 책으로 그 다음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저자의 싸움 도구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여전히 쉽진 않겠지만, 그 옳은 생각 지치지 않기를 독자로서 조용히 응원해 본다.
** 본 게시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가끔 판결문을 볼 기회가 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누가 이겼다는건지, 왜 이겼다는건지, 이자를 누가 언제 언제부터 얼마나 줘야하는지..
그럴 때면 난 나의 문해력을 의심하곤 했다.
법률 시스템과 용어를 모르니까 그런가보다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이해를 못한 거라면 내용에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요?"라고 말했어야 하는 건가
공무원과 경찰, 검찰을 상대하면서 투철한 봉사정신에 국민의 일을 자기 일처럼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모두에게 직업일 뿐이다
검찰에 탄원서를 넣으면 바로 움직여 주겠지? 하루에 쏟아지는 사건이 몇 건이나 되는지 아느냐, 내가 당신 건만 처리하려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힐난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다
소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처리되지 않는다
기일 연기는 얼마나 잦는지, 기다림은 얼마나 길던지...
변호사를 고용할 때도 변호사가 내 모든 권리를 알아서 찾아주고 보호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나홀로 소송을 하듯이 빠진 내용이 없는지, 주장에 모호함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를 지배해 왔던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를 지배했던 말들이 그저 지배층이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한 말들이었구나 싶었다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판결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그렇다, 법이 그렇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유전무죄 무전유죄, 튀지마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보복이 더 무섭다라는 숱한 말들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과거가 떠오른다
그런 우리에게 작가는 말한다
의심하라
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구체적으로 타당한지 확인하라
판례가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자
계란으로 바위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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