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뇌에 일어난 오작동이 일으킨 나비효과. 뇌 질환이 바꾼 세계사의 장대한 판도를 날카롭게 파헤친 뛰어난 저작!"
중요한 순간에 개인이 내리는 결정 및 취하는 행동으로 인하여 역사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러한 상황이 워낙 중차대한 상황이어서 심사숙고 끝에 그런 결정이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되지만, 그것이 만약 신체적인 결함이나 질병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일본 뇌신경내과 전문의인 고나가야 마사아키는 뇌질환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것이라 생각하여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를 썼다고 한다. 그동안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불굴의 의지와 냉철한 생각을 통하여 업적을 이루었다고 알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들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생각과 행위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 뇌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미국의 역사에서 남북전쟁(1861 ~ 1865)은 오늘날 최강대국이 된 배경 중 하나이다. 만약 전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남과 북으로 나뉘었거나 또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남북이 계속 갈등을 유지하였다면 오늘날의 미국이 없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북군이 남군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관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역사에서 전쟁은 승리자에게는 영광을, 패배자에게는 가혹한 처분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1822 ~ 1885) 장군은 '무자비한 학살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면서 남군을 궁지로 몰아넣은 인물이기에 실제 남군 입장에서는 항복을 하면서 가혹한 처분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전쟁은 끝났소. 반란군이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라고 말하며 남군의 패잔병을 포로로 삼지도 않았으며 식량까지 챙겨주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한 것이다. 비록 미국 남부는 전쟁의 대가로 한동안 정부로부터 일정부분 대가를 치뤄야 했지만, 그랜트의 이러한 조치는 분명 전쟁으로 인한 내부 갈등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크게 기여한 셈이다.
보통 역사에서는 이 대목을 남북의 화합을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조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랜트 장군의 결단 이면에 극심한 두통 직후의 '정신적 변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즉 격전 중에 편두통을 심하게 앓고 있던 그랜트 장군이 남군의 리 장군이 보낸 항복 사절이 도착했을 때, 그러한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이로 인하여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남군에게 관대한 처분을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접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러한 분석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라도 편두통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랜트 장군과 같이 꼭 중대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사람들 역시 편두통을 앓다가 그것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면 분명 흥이 나서 보다 긍정적인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분석이 다소 일차원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전쟁 이후의 남북의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기 위한 대승적 차원의 결정으로 분석하지만 그러한 결정과 판단에 뇌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 ~ 1945)는 뉴딜 정책을 극복하면서 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에서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질시를 받기도 하였다. 도대체 왜? 이는 전쟁 막바지에 미국이 소련을 과대평가하여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 양보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사실 우리 입장에서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 본토에 상륙하면 엄청난 피해를 감안해야 할 것을 우려하여 소련에게 아시아 전선에 개입을 요청하였고, 그로 인하여 한반도 역시 남과 북으로 갈리는 운명을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한 루스벨트의 지도력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전략적 오판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루스벨트의 '고혈압뇌출혈'이 일정부분 그러한 판단에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한다.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인하여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지도력은 신체적인 결함을 극복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1945년 2월에 열린 얄타회담에서 그의 혈압은 무려 300/170mmHg라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루스벨트는 영국, 소련과 함께 전후 상황을 논하는 회담 자리에서 고혈압에 따른 뇌출혈로 인하여 소련에게 밀리는 결과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오늘날 혈압이 140(수축기)을 넘어도 고혈압이라고 판단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별다른 고혈압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무려 300을 넘나드는 그의 혈압으로 인하여 심각한 뇌손상(심지어 몇달 후 그는 사망한다.)을 입었다면 이 또한 납득할만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힌덴부르크와 히틀러 역시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저자는 이들의 행동 역시 뇌질환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우선 힌덴부르크는 1차세계대전 당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에 대승을 거둔 인물로서 독일인들에게 전쟁 영웅으로 각인된 인물이다. 그러한 인기와 함께 전후 힌덴부르크는 독일의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그의 능력과 인지도를 감안한다면 분명 그는 히틀러와 나치스의 대두를 막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었다면 2차세계대전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문제는 힌덴부르크의 나이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그 시점에 그는 치매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 힌덴부르크가 점점 기억을 상실하고,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것에 열중하던 그는 제대로 정치를 벌일 수 없었고, 막바지에는 그렇게 경멸하던 히틀러에 대하여 감동까지 하는 상황은 확실히 노년기에 찾아 온 치매였다. 사실 치매라는 것은 오늘날 평균 수명이 증가함에 따라 노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우리는 그 증상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힌덴부르크가 평범한 노인이 아닌 독일의 수장이었다는 점에서 치매로 인하여 결국 히틀러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였으며 그것이 훗날 제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저자의 설명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국 힌덴부르크의 죽음과 함께 총통이 된 히틀러 역시 전쟁 막바지에 비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가 56세에 자살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위는 노년의 힌덴부르크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저자는 히틀러에 대한 기록과 전쟁 막바지에 담은 그의 영상을 통하여 그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한다. 왼손이 박자를 맞추듯 규칙적으로 덜덜 떨리는 모습과 어눌한 동작, 균형감각 상실등이 히틀러에게 포착되는데, 이는 전형적인 파킨슨병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영화 또는 역사적인 기록에서 히틀러가 점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작전을 입안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그가 점점 전쟁으로 인하여 궁지에 몰려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파킨슨병에 의하여 그러한 상황을 초래하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치매와 더불어 오늘날 파킨슨병 역시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병의 증상을 살펴보면 히틀러의 말년과 유사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 줄어들면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신체적인 증상 이외에도 점점 치매와 비슷한 증상도 있었으니 히틀러의 그 이해할 수 없는 결정과 작전 역시 파킨슨병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중요한 순간 또는 노년에 오히려 뇌질환과 같은 신체적인 요인에 의하여 정신이 지배를 받았으며,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꼭 뇌질환이 부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 책에서는 함께 언급된다.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평가받는 잔 다르크. 그녀는 실제 영국군을 격파하면서 프랑스의 왕세자가 국왕으로 취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고, 당시 패배가 일상이 되어버린 프랑스에 승리의 기운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특히 잔 다르크에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녀가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전쟁에 나섰다는 점이다.
열세 살에 '신의 목소리'가 앞으로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온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웠어요. (중략) 그분이 저를 부르시는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지요. (중략) 세 번째 빛을 보았을 때 저는 천사의 목소리라는 걸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중략) 그 '목소리'는 제게 "프랑스를 구하라", "오를레앙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어요.
- p. 30 中에서 -
나이 어린 소녀가 전장에서 활약하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한 부분은 분명 신앙과 그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잔 다르크에게 큰 영향을 준 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측두엽뇌전증'을 언급한다. 측두엽은 소리나 음성은 인식하는 청각기능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부분의 병변으로 환청이 일어날 수 있으며 또 환청을 비롯한 환각 내용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잔 다르크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환청이라든지 가끔씩 발작을 일으켰다는 부분은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도 볼 수 있지만, 뇌질환의 측면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측두엽뇌전증'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잔 다르크의 신앙심과 당시 조국인 프랑스가 처한 위기의 상황으로 인하여 그녀가 들은 환청은 신의 목소리로 들렸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애국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잦은 발작과 환청을 경험하였는데, 이 역시 측두엽뇌전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심각한 음주와 더불어 전형적인 알츠하이머를 앓은 리타 헤이워드. 사실 이 여배우가 직접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의 감옥이 벽에 붙어 있던 화보를 통하여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마릴린 먼로가 롤모델로 삼을 정도였던 리타 헤이워드는 점점 술에 의존하면서 노년에는 알츠하이머로 인하여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이 유명인의 뇌질환은 그녀의 딸의 노력으로 인하여 알츠하이머 연구를 위한 재단이 설립에 영향을 끼쳤으니 이 또한 뇌질환이 가져온 뜻밖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불치의 병으로 남아있지만, 리타 헤이워드의 죽음과 함께 본격적인 알츠하이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뇌질환이 가져온 긍정적인 역사라 할 수 있다.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는 인물과 뇌질환의 콜라보로 이루어진 역사책이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의 행보와 중요한 결정이 정신이 아닌 신체의 영역, 즉 뇌질환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100%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롭다. 최근 역사를 시대와 사건, 인물로 서술하던 종래의 관점과는 달리 다양한 관점, 이를테면 음식, 질병, 사물 등과 같은 것들로 설명하는 책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러한 범주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마음에 든다. 뇌신경내과 전문의가 자신의 전공 분야와 연관지어 역사를 서술한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를 보다 폭넓은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에 대한 기존의 서술 방식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고 또 새롭다고 해서 모두 맞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라든지 얼마든지 재해석이 가능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읽어 본다면 분명 얻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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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것들이 참 많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카오스 이론에 의하면 ‘베이징에서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하니 무엇이든 역사 속에서 바로 그런 일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다른 경로를 탔다면 역사의 경로 역시 바뀌었을 것이다. 다만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니,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이 필요 없다고 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다른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은 가능한 일일뿐더러, 오히려 그래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세계사를 바꾼(사실 더 정확한 표현은 “세계사를 바꿀 뻔한”이 아닐까 싶다) 것들에서 이번에는 유명인의 뇌질환 얘기다. 또 생각해보면 이것 역시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인간의 사고가 이뤄지는 게 뇌이니만큼, 세계사에 영향을 미쳤던, 미칠 수 있었던 유명인의 뇌질환이야말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또 누구든 어느 정도의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만큼 뇌질환 역시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을 것이니 유명인의 뇌질환은 역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뇌과학 책이 매우 유행을 타고 있고, 뇌질환에 대해 쓴 (좋은) 책도 적지 않다. 그런데 신경내과학을 전공한 일본인 저자인 고나가야 마사아키의 이 책이 그런 책들과 다른 점은, 뇌질환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기보다(그러면서 유명인의 뇌질환이 언급되는 게 아니라) 역사 속 유명인의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뇌질환을 다룬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좀 더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 속의 그 인물이 가졌던 뇌질환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어떤 유명인이 어떤 뇌질환을 앓았을까? 그건 다음과 같다.
잔 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의 측두엽뇌전증(흔히 ‘간질’이라 불렸던 뇌질환)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의 뇌하수체 거인증과 말단 비대증
클레오파트라가 죽음의 방식으로 택했던 코브라의 독이 일으키는 중증근무력증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이었던 그랜트 장군의 편두통(남군의 항복하는 시점에 묘하게 편두통이 사라지면서 아주 관대한 결정을 내렸다)
나치와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치매와 히틀러의 파킨슨병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더들리 파운드의 뇌종양
2차 세계대전의 종전 당시 소련의 의도에 말려들게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고혈압뇌출혈
중국 마오쩌둥의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하는 근위축측삭경화증
소련의 붕괴에 방아쇠를 당긴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혈관치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드렁크 증후군
시인 보들레르의 창작열을 지피고, 마피아 알 카포네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매독
미국 포크송의 대가 우디 거스리의 헌팅턴병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방에 붙여져 있던 사진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의 알츠하이머병
미국 스리마일섬과 소련 체르노벨의 비극을 가져온 수면무호흡 증후군
천재 골퍼로 추앙받아 바비 존스를 추락시킨 척수공동증
페라리사의 후계자를 요절하게 만든 근위축증
이렇게 보면 꼭 세계사를 바꾸었을까 싶은 꼭지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애처롭게 불쌍해보이지, 위험하게 여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뇌질환이 그들의 삶을 급격하게 바꾸었고, 그렇게 급격하게 바뀐 한 사람의 운명이 역사의 물길을 완전히 뒤바꾸거나, 혹은 조금이라고 경로를 바꾸게 한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질병 중에는 아직도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질병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헌팅턴병은 그 유전적 원인이 최초로 밝혀진 병임에도 치료할 수 없고, 근위축측삭경화증(루게릭병) 역시 많은 기기들로 예전보다 생활할 수 있는 여지가 늘었을 뿐 치료할 수 없다. 알츠하이머병도 초기에 발견한 경우에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완전한 치료법이 발견된 경우가 드물다.
이건 또 무엇을 말할까? 앞으로도 뇌질환으로 역사의 경로가 수도 없이 바뀔 것이란 얘기인가? 그러나 그렇게 바뀐 역사의 경로가 실제로는 결정된 과거로서 우리가 겪는 역사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다만 여러 지도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질환을 가지고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 국가적 비극을 가져왔다. 어떤 지도자를 가질 것인가는 국민이 할 바이다. 유명인의 뇌질환에 대해서 읽는 게 그저 흥밋거리만이 아닌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이 책은
이 책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는 역사책이다. 역사의 역사적 순간을 바꿔놓은 질병, 그 사연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고나가야 마사아키, <1949년 지바현에서 태어나 1979년 나고야대학교 대학원 의학 연구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신경내과학을 전공했다. 현재 일본 국립병원기구 스즈카 병원의 명예 원장으로 있으며 파킨슨증과 ALS·근이영양증 등의 신경 관련 난치병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
이 책의 내용은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전후 처리를 둘러싸고 연합국 정상들은 소련의 얄타에 모여 회의를 연다. 거기에는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 그리고 미국의 루스벨트가 모였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난 후, 결과 몇 가지 중요한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대부분 소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대채 왜 그런 일이 생긴 걸까?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특기할 게 있는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회의 내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앉아 있기만 했을뿐 토론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49쪽)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시 2차 대전 때의 일이다.
영국의 해군 수장인 더들리 파운드는 당시 영국 해군을 총지휘하는 ‘퍼스트 시 로드’였다.
요즘으로 하면 ‘해군참모총장’ 격인 인물이다. (120쪽)
그런 그가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른다.
1942년 6월 소련으로 향하는 원조물자를 가득 싣고 가는 수송선 33척을 호위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의 지휘가 문제가 된 것이다.
독일 함대가 출몰하는 지역을 통과해야 하기에, 수송선단의 호위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었다.
작전 회의에서 그는 뜻밖의 결정을 내린다.
“수송선단을 해산하고 각 함대들은 흩어져 목적지로 향하라.”
“호위 함대는 스코틀란드 연안 정박지로 돌아가라.”
주위 참모들이 말렸으나 그의 명령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수송선 33척 중 23척이 수장되고, 소련과 연합국간의 공동전선도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 (126쪽)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책에는 그렇게 의문을 갖게 하는 상황이 등장한다.
역사적 순간,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리더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데 대체 왜 그런 일이 생겼던 것일까
우리가 리더들에게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함을 지닌 전략형 두뇌의 지휘관이나 도무지 두려움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용감한 돌격형 지휘관이 그런 이미지다. (120쪽)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 또는 수상에게도 위의 이미지는 동일하다. 리더라면 응당 그런 모습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은 대체 무슨 일 때문인가
이 책의 저자는 역사적 순간 그렇게 포착된 이연에는, 리더의 건강상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측면에서 역사적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첫 번째 사례인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우,
미국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만든 질병은 바로 고혈압 때문이라 진단한다. 루스벨트의 혈압은 300/170 mmHg 인 경우도 있었다 한다. (149쪽)
두 번째 사례인 영국 해군 제독 더들리 파운드의 경우는
저자는 더들리의 증세를 살펴본 결과 뇌종양으로 추정한다. (128쪽) 뇌 속에 종양이 생기면 정신 기능과 함께 지적 기능도 저하되며, 이 경우 치매 증상을 보이거나 인격에 급격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바로 그런 증상이 더들리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이 책은 그런 사례를 비롯하여, 다음과 같이 세 파트로 나누어, 세계사의 갈림길에서 질병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Part 1_ 무서운 질병이 영웅과 군주의 뇌를 조종하여 세계사를 뒤흔들어놓다
Part 2_ 강대국 리더들이 결정적 오판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게 한 치명적 뇌 질환
Part 3_ 넘사벽 천재와 최고의 대가도 무릎 꿇게 한 끔찍한 질병
각 파트별로 각각 어떤 인물이 해당되는지, 알아보자.
Part 1 무서운 질병이 영웅과 군주의 뇌를 조종하여 세계사를 뒤흔들어놓다
잔 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 - 측두엽 간질/
로마 황제 막시미누스 - 하수체성 거인증·말단 비대증/
클레오파트라 - 코브라 독·중증 근무력증/
Part 2_ 강대국 리더들이 결정적 오판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게 한 치명적 뇌 질환
그랜트 장군 - 편두통 / 바이마르공화국 힌덴부르크 대통령 - 치매
영국 해군 제독 더들리 파운드 - 뇌종양 / 프랭클린 루스벨트 - 고혈압성 뇌출혈
히틀러 - 파킨슨병/ 중국의 마오쩌둥 -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루게릭병)
브레즈네프 - 뇌혈관성 치매
Part 3_ 넘사벽 천재와 최고의 대가도 무릎 꿇게 한 끔찍한 질병
무하마드 알리 - 펀치드렁크 증후군/ 시인 보들레르와 암흑가의 제왕 알 카포네 - 매독
우디 거스리 - 헌팅턴병/ 리타 헤이워스 - 알츠하이머 증후군
‘운디네의 저주’ - 수면 무호흡 증후군/ 바비 존스 - 척수 공동증
페라리사 후계자 - 근위축증
새롭게 알게 된다.
클레오파트라는 어떻게 죽었을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서는 “뱀에 물려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는 독사에 물린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69쪽)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자신이 모시던 여주인의 저승길 동무로 따라나선 시녀가 ‘왕가의 자녀답게 고결한 최후를 맞이한’ 그의 죽음을 로마군에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전했다고 한다. (70쪽)
사람이 코브라에 물리면 즉시 눈꺼풀 등의 얼굴 근육에 이상이 생겨 몽롱하게 졸린듯한 표정을 짓게 된다. 클레오파트라의 시신을 본 사람들이 그가 편안하게 잠자듯 저세상으로 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와 반대로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해 가슴을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데, 아무리 손을 허우적대려 애써보아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숨이 끊어지듯 극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고통스러움을 나타내는 표정조차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방울뱀 등의 독에는 마약과 같은 작용을 하는 오피오이드 펩타이트 (opioid peptide) 성분이 들어있다고 하니, 어쩌면 클레오파트라의 몸속으로 코브라의 독이 들어갈 때 고통을 덜 느끼게 해주는 물질이 함께 들어갈 수도 있다. (71쪽)
그러니, 저자가 살펴본 바와 같이 클레오파트라가 코브라를 이용해 죽었다면, 혹시라도 고통을 덜 느끼면서 죽어갈 수도 있었겠다.
소련과 중국의 지도자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는
소련의 지도자 브레즈네프는 비만형 체질에 지병인 당뇨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골초였으며, 거의 날마다 말술을 마셨다.
그 결과 그는 치매로 시달리면서, 마지막 몇 년 동안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내면서도 사직하지 않고 최고 지도자 자리를 고수했다. (205쪽)
그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이 그를 대신하여 다른 후계자를 찾는 것보다, 그런 상태의 브레즈네프를 세워놓고, 자기들의 권세를 부리는 게 훨씬 좋았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80세가 넘어서자 언어장애에 시달렸으며, 근위축 측삭 경화증(루게릭병)으로 보행 장애 그리고 심지어는 손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오직 그 옆에 수발들던 개인 여비서만이 그의 입술의 움직임을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한다.
이런 역사의 이면에 있던 이야기들은 정사 역사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브레즈네프 이후 소련의 급격한 쇠락에 이르는 과정과 중국에서 마오쩌둥 사후 일어난 변화에 대한 기록도, 이 책을 통하여 그 숨겨진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저자가 의사인지라, 저자가 이 책에 나온 질병을 먼저 앞세우고, 그 질병을 설명하는 식으로 책을 꾸몄다면, 나는 이 책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접근하지 않고, 저자가 역사 차원에서 질병을 바라본 게, 이 책을 흥미있게 만들고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저자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위인과 유명인이 질병으로 고생했고, 결국은 그 질병이 그 사람을 움직이고, 더 나아가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는 점에 착안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를 움직인 숨어있는 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서 역사와 그 역사를 움직인 위인 그리고 그 위인을 움직인 질병, 이렇게 세 개의 연결구도를 이해하게 된 것, 저자의 덕분이다.
역사란 게 참으로 묘하다. 묘한 부분과 우연인 부분이 함께 하는 가운데 역사의 바퀴는 굴러간다. 그걸 알게 해준 책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