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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리뷰 총점 9.4 (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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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프랑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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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서평] 사르트르 - 구토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2 | 2023.08.02 리뷰제목
인생 책을 만나다!   '구토'는 정말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와 인생책이 되었다.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사유, 통찰, 감정, 감각이 아주 잘게 잘게 서술되어 있는데 평소에 하던 생각들과 상당히 겹치고 맞물린다. 맞장구의 연속이다. 뒤로 갈수록 '나도 이런 생각했는데! 나도 느껴봤어!'라고 공감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느려진다. 와닿는 문장에 치여서
리뷰제목

 


인생 책을 만나다!

 

'구토'는 정말 생각지 못한 순간에 찾아와 인생책이 되었다.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사유, 통찰, 감정, 감각이 아주 잘게 잘게 서술되어 있는데 평소에 하던 생각들과 상당히 겹치고 맞물린다. 맞장구의 연속이다. 뒤로 갈수록 '나도 이런 생각했는데! 나도 느껴봤어!'라고 공감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느려진다. 와닿는 문장에 치여서 곱씹다 보면 속도가 느려지고 만다. 마치 눈에 담을 게 너무 많아서 천천히 걷게 되는 여행지의 감각과 비슷하다.    

 

내겐 책을 읽을 때 포스트잇을 적는 습관이 있다. 구토를 다 읽었을 때, 표지 뒤에 붙여둔 포스트잇이 층을 이룬 걸 보면 붙잡는 대목이 많았단 뜻이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적었다. (1) 마음에 드는 구절, (2) 인상적인 비유와 묘사, (3) 스쳐가는 생각들.

 

'구토'가 인생책이 된 걸 기념할 겸 마구마구 적었던 세 가지를 '잘'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포스트잇을 펼쳐두고 나름의 그룹핑을 거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인 '구토'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 주인공인 로캉탱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남겨본다.

 

 


구토가 상징하는 것은?

 

p.34
물체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만질 수 없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사용한 수에는 제자리에 두고, 그것들 가운데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유용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다르다.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데, 이게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 난 마치 살아 있는 짐승들과 접촉하듯 그것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제 알겠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주인공 로캉탱은 어느 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던지다가 손에 쥐고 있던 돌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다. 그가 '구토'라고 이름 붙인 이 불쾌감은 어떤 물체의 존재를 인지할 때 혹은 사물과 자신 사이의 거리를 인지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너무도 익숙해서 거기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문득 존재감을 드러낼 때 다가오는 생경한 느낌! 또는 우리가 정의 내린 규칙과 습관의 지배하에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갑자기 어색해지는 느낌! 나는 이것이 일종의 미시감(자메뷰)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구토의 한 줄 정의는 이러하다.

 

'구토는 존재에 대한 발작이다.'

 

 


Some of these days

'머지 않은 날' 찾아온 혁명

 

p.21
나는 내가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간단한 해답이다. 가장 불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종종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략)
내가 주의하지 않는 사이에 무수한 작은 변화들이 내 안에 축적되다가 어느 날 말 그대로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 내 삶은 이런 급작스럽고도 일관성 없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초반에 나오는 대목으로, 로캉탱은 마치 나중에 겪게 될 자신의 변화를 예견한 듯 말하고 있다. 물론 이때의 그는 '혁명'같은 순간이 올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겠지만!

 

p.406
"마들렌, 그 음반을 다시 한번 틀어줄래요? 떠나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부빌을 떠나기 직전, 로캉탱은 자주 들르던 카페 랑데부 데 슈미노에서 직원의 권유로 좋아하는 재즈곡 'Some of these days'를 듣고 한번 더 틀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곡을 만들었을 유대인 작곡가와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흑인 여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 창작자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에 빠진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신이 쓴 글을 읽으면서 누군가도 이렇게 나를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다.

 

이 책을 읽고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심오하고 아득한 분위기가 너무 짙어 로캉탱이 진정한 행복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재즈곡 제목처럼 정말 '머지 않은 날'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좋아하는 재즈를 들으면서 앞으로 쓸 새로운 글과 독자를 상상하며 행복을 말하고 있다. 나는 비로소 로캉탱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자각했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이제 롤르봉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필요도 없고, 존재를 지탱하던 안니와의 과거는 그저 옛일로 남았다. 로캉탱의 존재를 증명하는 대상들은 모두 사라졌고, 마침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게 된 것이다. 롤르봉을 부활시키려던 목표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로캉탱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남을 위한 글쓰기 아닌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실천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래에 적어둔 대목은 주인공 로캉탱의 말이지만, 마치 사르트르가 '구토'라는 책을 왜 쓰게 됐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읽힌다.

 

p.409
나도 한 번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어떤 음악은 아닐 테고... 다른 장르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어떤 책이어야 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하지만 어떤 역사책은 아니다. 역사는 존재했던 것에 대해 말하는바, 존재자는 결코 다른 존재자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 내가 범한 실수는 롤르봉 씨를 부활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다른 종류의 책이 필요하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으며 인쇄된 단어들 뒤에서, 페이지들 뒤에서 존재하지 않을 어떤 것, 존재 위에 있는 어떤 것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야기,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어떤 것, 어떤 모험 같은 것이리라. 그것은 아름답고 강철처럼 단단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를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략)
한 권의 책. 물론 그것은 우선은 지루하고도 피곤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롤르봉과 로캉탱

서로의 존재를 위한 존재

 

p.230
롤르봉씨는 나의 동업자였다. 그는 존재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고, 나는 내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나는 원료를 제공했다. 내가 되팔아야만 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원료, 바로 존재. 나의 존재를 제공했다. 그의 역할은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 앞에 있었고, 그의 멋진 삶을 연기하여 내게 보여주기 위해 내 삶을 빼앗았다. 내가 먹고, 숨 쉬는 것은 그를 위해서였고, 나의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는 바깥에, 저기에, 내 앞에, 그에게 있었다.

 

로캉탱이 롤르봉에게 느끼던 것을 가장 가감 없이 드러낸 부분! 로캉탱은 그동안 롤르봉에게 자신의 존재를 제공해왔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앞서 등장했던 '부빌미술관의 거북한 초상화들'이 떠올랐다. 화가인 보르뒤랭의 손에서 카메라필터를 씌운 듯 새로 태어난 부빌의 인사들. '장점'만 드러나도록 허구 섞여 그려진 초상화를 보면서 로캉탱은 롤르봉과 그림 속 인물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 듯 했다. 롤르봉도 본인이 쓴 글 안에서 부활하겠지만 결국 멋진 삶을 연기하는 허구 섞인 위인이니까!

 

나중에 로캉탱이 그에 대한 역사적 글쓰기를 관두고 다른 글을 쓰겠다고 다짐할 때, 나도 모르게 벅찬 감정을 느꼈다. 다른 존재를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던 수동적 사고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킨 로캉탱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다. 이 벅찬 감정은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픈 나의 바램과도 닿아있었다.

 

 


독학자와 로캉탱

모험에 대한 새로운 정의

 

독학자는 모험을 동경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름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면서 누구보다 개성 강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도서관에서 그 많은 책을 알파벳 순으로 읽고,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인 '척'을 한다. 그리고 나름 반전이었던,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그의 불미스러운 사건! 독학자는 날 것의 욕망은 감춘 채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가식적인 지식인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책에 더 빠져들게 된 부분 중 하나가 독학자가 로캉탱에게 '모험'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 대목이었다. 그 뒤로 로캉탱이 모험에 대한 생각을 막 펼쳐놓는데 그 구간이 흥미로웠다. 덕분에 '구토' 뿐만 아니라 '모험'이라는 단어를 재정의할 수 있었고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해석했을 때, 로캉탱이 말하는 '모험'은 예기치 못한 특별한 감정의 시작과 끝, 그 사이의 여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험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굉장한 사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뭔가가 일어나고 있어!'라고 느끼는 감정의 시작점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감정이 사그라들면 그때야 비로소 하나의 모험이 남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작은 배낭 하나만 들고 세계여행을 다녀왔어. 엄청난 에피소드들이 쌓였지!"와 같이 누가 봐도 대단한 일만 모험이 아니라 "그 재즈곡은 도입부터 미쳤어!"와 같이 감정을 동요하게 만드는 3분짜리 재즈곡을 듣는 순간도 모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끝이 날 것을 알기에 더 아쉬운 여정이라면 그 어떤 순간도 다 모험이 될 수 있다.  

 

p.96-97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은 끝나기 위해서다. 모험은 한정 없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죽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중략)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가 딱 하고 부러져버린다. 모험이 끝나고, 시간은 그 일상적인 느슨함을 되찾는다. 고개를 돌려보면, 내 뒤에서 선율 같은 저 아름다운 형태가 온통 과거에 잠겨 들고 있다. 그것은 줄어들고, 힘을 잃으며 쪼그라들고, 이제 끝은 시작과 하나가 된다.

 

 


안니와 로캉탱

그들의 모험 같은 사랑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안니에 대한 로캉탱의 사랑이었다. 모든 대상과 필요 이상의 거리를 두는 그가 유일하게 거리를 두지 않는 안니. 타인에겐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염세적인 그가 유일하게 안니 앞에서 긴장하고 작아진다. 그에게 그녀는 어떤 존재인걸까?

 

안니와 로캉탱이 아주 오랜만에 만나 한참 얘기를 나누는데 안니가 이런 말을 건넨다.

 

p.349
"그거 알아? 우리가 모험가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자기는 일어나는 모험을 겪는 사람이었고 나는 모험을 일어나게 하는 사람이었어. 나는 '난 행동하는 인간이야'라고 말하곤 했지. 기억이 나? 자, 이제 난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어. 우리는 행동하는 인간이 될 수 없어."

 

여기서 로캉탱이 왜 안니를 사랑하게 됐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안니는 사람 자체가 '모험'인 인물이었고 로캉탱은 그녀를 통해 모험을 경험하는데, 이건 그의 사랑과 그리움을 증폭시키는 큰 이유가 되었다. 안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걸 로캉탱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내 덕에 모험을 했다고!

 

이런 거침없는 모험형(?) 안니에게 필요한 건 당연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였을 것이고, 그래서 안니는 로캉탱에게 당신이 내 이정표였다고도 고백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세드앤딩. 안니는 더 이상 행동하는 삶을 포기하고, 로캉탱은 그런 안니에게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서로가 사랑했던 건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서로라는 걸 깨닫는다.

 

둘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면서 사르트르와 그의 아내였던 보부아르가 떠올랐는데,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의 결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로캉탱은 사르트르의 페르소나, 안니는 보부아르의 페르소나가 아니었을까?

 

 


더 떠들고 싶은 이야기

 

실존주의 - 인간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사유

이 책은 사르트르가 서른셋이었던 1983년 출간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하는 사유는 결국 비슷하다는 걸 읽는 내내 느꼈다. 분명 시대적 상황과 환경은 크게 다르지만 '살아가는 존재'라는 본질이 같아서인지 우리는 결국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하는 물음에 본능적으로 답을 찾으려고 애쓰게 된다. '구토' 덕분에 실존주의에 대한 흥미가 더 깊어진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이제 구토를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

예전에 어떤 강의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김춘수가 쓴 '꽃'이라는 시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 말이었는데, 어떤 현상도 이름이 붙여졌을 때 생명력을 갖는다는 말이었다. 그동안 내가 느끼던 이름 없던 감각반응도 '구토'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이다. '아, 지금 내가 구토를 느끼고 있구나!'라고. 이제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특별한 사랑방식

사르트르의 평생 짝이었던 보부아르에게도 관심이 간다. 두 사람은 사랑을 둘만의 전유물로 여기지 않고, 각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해도 그것을 이해하는 관계였다고 한다. 나라면 정말 허락할 수 없는 일이라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생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표현했다. 두 사람을 모두 다룬 책인 '사르트르 VS 보부아르'에도 흥미가 가는데 한번 읽어 볼 생각이다.

 

 


 

 

이제 진짜 마무리. '구토'를 읽는 내내 로캉탱에게서 나를 보았다. 어느 순간에는 로캉탱인지 나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빠져들었다. 몰입의 시간이 끝나서 아쉬운 책이지만 로캉탱의 앞날을 응원하는 마음을 스스로에 대한 응원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내게도 '머지 않은 날' 찾아올 '모험' 같은 사건들을 꿈꾸면서!

2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1 댓글 15
종이책 구토 평점8점 | s*****1 | 2021.04.25 리뷰제목
이 책 구토는 저자 사르트르 철학, 문학의 결정판이라 할수 있겠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저 소설로서 대면해 읽는다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며 재미없는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그랬었다. 나에게 구토는 그 언제적 교양 필독서 목록을 섭렵해 나가다 스쳐간 따분한 내용으로 가득한 기억만 남아있는 희미한 추억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최신판 책을 펼쳐보아도 난해함은 변함이 없다
리뷰제목

이 책 구토는 저자 사르트르 철학, 문학의 결정판이라 할수 있겠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저 소설로서 대면해 읽는다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며 재미없는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그랬었다. 나에게 구토는 그 언제적 교양 필독서 목록을 섭렵해 나가다 스쳐간 따분한 내용으로 가득한 기억만 남아있는 희미한 추억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최신판 책을 펼쳐보아도 난해함은 변함이 없다.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 반전없는 이야기 전개와 지루함.

 

그렇다. 구토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음미하고자 한다면, 사르트르의 철학 사상과 그의 삶을 먼저 이해한 후에 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해석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떠한 목적없이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져, 연약한 목숨을 부지해 가다 우연히 죽는 그런 보잘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생물과 달리 어떤 본질도 목적도 의무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우연히 왔다가는 존재이다.

 

사르트르의 인간관과  세계관, 그의 철학 기반이 무엇인지, 이 작품 구토에 아주 잘 녹아들어 있다.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인간과 주변 사물간의 규정된 관계들, 자본주의가 초래한 물신주의와 과도한 인간의 욕망 등,,,

세상에 던져진 나를 둘러싼 모든 과잉된 것들이 '구토' 증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6년간 해외를 돌아다니다 작품 속 배경인 '부빌' 시에 자리잡고, 18세기 인물인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연금을 받으며 혼자 살며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다.

 

그가 인간적 교류를 나누는 사람이라곤 몇년에 한번씩 만나는 옛 연인 '안니', 가끔 사랑을 나누는 단골카페 여사장 '프랑수아르', 그리고 주 생활공간인 시립도서관에서 알게되며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이름모를 '독학자' 뿐이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려 집어든 돌맹이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구토' 증상은 생활 곳곳에서 찾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람 많은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구토는 시간이 지나며 북적이는 카페에서도 찾아오게 되고 아예 몸에 들러붙어 있게 된다.

 

이야기 곳곳에는 실존 속에서의 고뇌들이 배치되어 있다.

세상에 의미없이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고독과 불안감.

그것은 뿌연 안개로 다가온다. 거리에, 집에, 가게에, 도서관에서...

무겁게 스며드는 안개는 현실의 본모습을 가리고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안개 짙은 어느날 카페에는 늘 자리를 지키던 사장과 카운터 직원이 등장하지 않고, 로캉탱은 죽음의 상상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완전한 어둠이 아닌 흐릿함, 진짜 위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모호함에 로캉탱도 그렇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도서관의 정적속에서 다가오는 안개, 부둣가를 평화롭게 떠돌다 갑자기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공포, 눈만 감으면 바로 사라질 것만 같은 실존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도록 만든다.

 

무의미한 삶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삶의 흔적들에 '경험'이라는 잣대로 미래를 재단하고, 죽음을 향해 해체되어가는 정신과 육체를 숨기고 싶은 본능으로 현실을 사는 존재들에게,

현실은 짙은 안개이고 두려움뿐인 것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삶에서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자유에 대한 결단과 의지가 투영된 대목도 있다.

인적없는 어두운 길에서 만난 호텔직원 '뤼시'의 불행과 마주하며, 단조로운 삶의 고통을 반복하는 것보다 화끈하게 고통받고 절망 깊숙이 빠져보고 싶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보지만, 현실에 꼼짝없이 묶여있는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불가능할 것이라 자문한다...

 

우연히 던져진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화끈하게 고통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가 분명히 있지만, 실천과 실행을 위한 결단과 의지는 자신의 의지로만 가능하기에 실존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선택이 싶지 않다.

결국 실존에 연약한 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다 세상에 왔던 것처럼 우연히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로캉탱은 파리로 돌아가 예전과 다르게 변한 옛 연인 안니를 만나고, 그녀가 새로운 연인과 기차를 타고 파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로캉탱은 과거 인물인 롤르봉 후작을 부활시키는 작업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존재하지 않는 의미 부여, 무가치한 목적의식을 걷어버리고, 그저 현실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느낀 그는 이제 이 추한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건조하고 지루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덮고 눈을 감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잔잔한 안도의 파문이 전해져 온다.

  '어둠이 내린다, 프랭타니아 호텔 2층의 창문 두 개에 불이 들어왔다. 신축역사 공사장은 축축한 냄새를 짙게 풍긴다. 내일 부빌에 비가 내리리라'

 

내용을 완벽히 흡수하여 공감하기엔 아직 어렵다.

이 책 속에 보물찾기 처럼 숨겨놓은 가득한 실존 의미의 메세지를 이번엔 몇개나 찾았을까?

보물찾기는 더 계속 되어야 할 것 같다.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댓글 0
종이책 구매 구토 평점10점 | k*****0 | 2021.02.20 리뷰제목
국내에 사르트르의 저작들이 여러 권,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일반 대중들이 쓴 후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초반부를 읽어보면서 왜 그런지 알았다. 일단 로캉탱의 의식을 따라가는 일이 내겐 너무 버거웠다. 생각보다 두껍지 않길래 이번 연휴에 마음을 다잡고 철학과 관련한 문학을 읽어보자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선 실존주의에 관한 내 기본 지식 배경이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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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사르트르의 저작들이 여러 권,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일반 대중들이 쓴 후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초반부를 읽어보면서 왜 그런지 알았다. 일단 로캉탱의 의식을 따라가는 일이 내겐 너무 버거웠다. 생각보다 두껍지 않길래 이번 연휴에 마음을 다잡고 철학과 관련한 문학을 읽어보자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선 실존주의에 관한 내 기본 지식 배경이 너무나도 얕아서 글이 생경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만만하게 봤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책이라 문학책처럼 술술 넘겨 읽기보다는 공부하는 전투자세로 읽어야 그나마 진도가 나갈 것 같다. 그래도 집 책장에 사르트르 책 한권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면서 표지가 주는 만족감이 크다.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댓글 0
종이책 장 폴 사르트르의 고전문학 구토 평점10점 | k*****7 | 2021.02.10 리뷰제목
고전문학에 빠져들다 보면 정말이지 옛날것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글에서 주는 깊이와 표현들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생각하는 작가의 위대함을 알게 되어서 더욱 그런것 같다. 저자인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은 읽어 보지 않아서 처음부터 읽고 싶다고 막 읽어 달라는 아우성이 들렸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다. 이 노트들은 주
리뷰제목

고전문학에 빠져들다 보면 정말이지 옛날것이 좋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글에서 주는 깊이와 표현들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 시절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생각하는 작가의 위대함을 알게 되어서 더욱 그런것 같다. 저자인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은 읽어 보지 않아서 처음부터 읽고 싶다고 막 읽어 달라는 아우성이 들렸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다.

이 노트들은 주인공인 앙투안 로캉탱의 서류 가운데 발견 되었고 첫 번째 페이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지만, 이 부분이 본격적인 일기의 첫 부분보다 몇 주 먼저 쓰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따라서 그것은 늦어도 1932년 1월 초 무렵에 쓰였을 것이다. 로캉탱은 중부 유럽, 북아프리카, 극동지역을 여행한 후 3년 전부터는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제 연구를 마치고 부빌에 정착하여 지내고 있었다.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앙투안 로캉탱이 이 책을 썼어. 카페에서 빈둥대던 빨간 머리 친구지." 마지막 410페이지까지 로캉탱의 부빌에서의 존재한다 것에 대한 일기속에 빠져든다. 이것을 실존주의라 한다. 여기서 실존주의는 지식백과에 20세기 전반(前半)에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 사르트르의 생각으로는, 인간에게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先行)하며,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서 스스로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선택하게끔 운명지어져 있다. 샤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임을 주장한다. 사실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조금은 어렵지만 책 속에 존재라는 것이 많이 등장하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이제 알았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맹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p34~35

여기까지 읽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책 제목이 왜 구토가 되는지 알기 시작하게 되고 이제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잘 읽혀지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많이 어렵고 힘들어 주춤한 구간들이 많았지만 이해를 한번 읽는 것으로는 하지 못할듯 계속 읽기를 반복했다. 로캉탱의 첫 구토 체험에서 시작되고 거울 속 모습, 고독, 사람들이 없는 자연, 맥주잔이나 문손잡이 아돌프의 연보라색 멜빵, 카페, 공원, 모든 것에서 구토가 이어진다. 이해가 될듯 읽을 수록 점점 이해가 된다.

방금 일어난 일, 그것은 구토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정적 속에 목소리가 드높이 올라가자, 나는 내 몸이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을 구토가 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한순간에 말이다. 이렇게 단단해지고 밟게 빛나는 것은 거의 고통스럽기조차 했다. 동시에 음악이 지속되는 시간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물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것은 그 금속성의 투명함으로 홀을 가득 채우며 우리의 초라한 시간을 벽에 대고 짓누른다. 나는 음악 안에 있다. p61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끈 부분이 또 있다. 찾아보기였다. 카페에서 흘러나온 노래들이나 신청곡들 그리고 가사가 적어 있는 것들이나 책속의 책들이었다. 특히 신청곡을 찾아 들을 때 Some of these days는 그 시절로 돌아가 로캉탱과 함께 있는 느낌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 다음 읽다가 잊혀져가지만 거기에 책속에 책도 검색하면서 읽었다. 이러면 집중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데 이게 나의 단점인듯하다. 특히나 롤르봉 후작에 대해 궁금하긴 했다.

이제 나는 혼자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내 앞에서 기다리는 이 '상념'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고양이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서 여기에 남아 있다. 그것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다만 아니라고만 말한다. 아니 나는 모험을 한 적이 없단다. p92~93

부빌 도서관 관리자인 독학자가 다녀가고 느끼는 것이다. 많은 질문과 그와의 대화에서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담배나 냄새가 지독했다.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낸다음 느끼는 것이다. 독학자의 독서 방식이 놀라웠다. 알파벳 순으로 책을 읽다니 계속 기대된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것을 정확히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것은 구토와도 같지만, 또 그와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드디어 모험의 순간이 찾아왔고, 이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니, 지금 나는 나고, 나는 여기에 있다. P132

구토에서 표현되는 구토와 모험이 있다. 이렇게 이 책 구토 이상으로 모험은 책의 다른 제목으로 하고 싶을 정도로 비중을 차지한다. 변한것은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존재라 존재라는 의미속에 또 다른 모험의 순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알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난 자유다. 이제 살아야 할 그 어떤 이유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시도해본 이유들은 다 실패했고, 더 이상 다른 이유들을 상상할 수 없다. 난 아직 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충분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하나? 가장 극심한 두려움과 가장 끔찍한 구토가 찾아왔을 때, 안니가 날 구해줄 거라고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내 과거도 죽고, 롤르봉 씨도 죽었고, 돌아온 안니는 내 모든 희망을 앗아갔을 뿐이다. 나는 정원들에 둘러싸인 이 하얀 도시에서 혼자다. 혼자고 자유다. 하지만 이 자유는 조금은 죽음과 비슷하다. P362

다시 부빌에서 파리로 가기로 하는 로캉탱은 독학자와의 대화들이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6년전 연인 안니가 다시 만나자고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이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는 오직 혼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이 그의 내면의 존재가 죽음으로 표현되다니 어려웠다. 부빌 도서관에서 롤로봉 후작에 대해 연구해왔던 것들을 포기하면서 현재의 인물이 아닌 과거의 인물이었기에 말이다. 음악, 카페, 만남 길가에 모든 것들이 있어도 오직 혼자다. 이렇게 혼자가 되는 모든 것들이 구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삶의 방법은 내안에 있는 듯하다. 그 방법을 언제 찾느냐는 오롯이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내가 '나'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난 더 이상 나 자신을 잘 느낄 수 없다. 그 정도로 나는 잊혀버린 것이다. 내 안에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는 존재뿐이다. P391

존재에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공허하다는 것이 참 씁쓸하게 만든다. 작가의 세계가 무궁무진해서 읽을 수록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자신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지게 느껴지는 로캉탱이 잘 이겨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안니에 대한 그의 생각과 사라지는 독학자를 생각하면서 공원에 있어도 모든 것들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존재에 대한 존재라 정말 어렵지만 가만히 생각해 본다.도서관에 있던 동상의 부르주아들의 자랑거리라 여기면서 부르주아에 대해 나오지만 로강탱과는 거리가 있다. "사르트르의 모든 사유는 《구토》에서 흘러나왔고, 《구토》로 흘러든다" 고 말한다. 참 어려운 말인듯하다. 조금 다가가면 더 멀어지고 다시 다가가면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또 다시 읽으면 조금의 '장 폴 사르드르'의 구토가 다가 올까?

책의 후반부에 작품이 해설되어 있다. 구토를 읽고 어려우면 작품해결도 보면서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작가의 연보도 나온다. 1931년부터 약 7년에 걸쳐 이 작품운 구상했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구토》를 쓰면서 일기 형식, 내적 독백, 초현실주의 자동기술, 환상소설 기법, 상호텍스트성, 패스티시, 패러디, 콜라주, 대화체와 구어체의 활용, 신체와 감각에 관련된 어휘의 확대 등 수 많은 기법을 익히고 응용했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글쓰기의 모험' 이라고 할 수 있으며 18, 19, 20세기로 이어지는 문학 창작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렇다고 작품해설에 적어 있다.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 이해가 될듯한 고전소설이다. 획기적인 작가의 사물을 보는 생각과 자신의 표현이 놀라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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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구토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c****4 | 2022.09.24 리뷰제목
인간의 역사(관습적 세계관)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우연성으로 바라보는 사르트르의 시각은 작중 로캉탱의 구토를 통해 드러난다. 이때의 구토는 자신이 정합적으로 믿어왔던 사회적 가치에 우연을 깨닫는, 혹은 부조리를 경험하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다. 로캉탱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의미들이 단지 우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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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역사(관습적 세계관)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우연성으로 바라보는 사르트르의 시각은 작중 로캉탱의 구토를 통해 드러난다. 이때의 구토는 자신이 정합적으로 믿어왔던 사회적 가치에 우연을 깨닫는, 혹은 부조리를 경험하는 상황에 대한 반응이다. 로캉탱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의미들이 단지 우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깨닫는다. 즉, 나를 강제하는 시대의 정신 혹은 신화가 단지 우연에 의해 정해진 것이며 내가 이것을 벗어나 내 존재의 의미를 묻고 찾을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자유에 대한 책임으로 우리는 '정해지지 않음'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허나, 이러한 불안은 사르트르에게 결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의 삶은 연필, 책상처럼 그 용도나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또 안착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며 이러한 불안은 곧 인간 존재의 자유를 반증한다. 다시 말해 사물들과 달리 용도, 본질 등이 정해지지 않은 우리 존재는 자유에 기반하며 이는 우리가 어느 곳에도 매여 있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에 불안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사르트르는 이 글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으로 인간이 경험하는 자유와 세계에 대한 근본적 우연성을 로캉탱의 감정선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등장하는 타자들은 서로 협력 관계에 있다기 보다 서로 논쟁하거나 경계하며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그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듯이 사르트르에게 타자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제한하는 또는 침해하는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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