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4
물체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만질 수 없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사용한 수에는 제자리에 두고, 그것들 가운데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유용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다르다.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데, 이게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 난 마치 살아 있는 짐승들과 접촉하듯 그것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제 알겠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p.21
나는 내가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간단한 해답이다. 가장 불쾌한 해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를 종종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중략)
내가 주의하지 않는 사이에 무수한 작은 변화들이 내 안에 축적되다가 어느 날 말 그대로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 내 삶은 이런 급작스럽고도 일관성 없는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p.406
"마들렌, 그 음반을 다시 한번 틀어줄래요? 떠나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p.409
나도 한 번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물론 어떤 음악은 아닐 테고... 다른 장르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어떤 책이어야 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 하지만 어떤 역사책은 아니다. 역사는 존재했던 것에 대해 말하는바, 존재자는 결코 다른 존재자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없다. 내가 범한 실수는 롤르봉 씨를 부활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다른 종류의 책이 필요하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으며 인쇄된 단어들 뒤에서, 페이지들 뒤에서 존재하지 않을 어떤 것, 존재 위에 있는 어떤 것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야기,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어떤 것, 어떤 모험 같은 것이리라. 그것은 아름답고 강철처럼 단단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를 부끄럽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중략)
한 권의 책. 물론 그것은 우선은 지루하고도 피곤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p.230
롤르봉씨는 나의 동업자였다. 그는 존재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고, 나는 내 존재를 느끼지 않기 위해 그가 필요했다. 나는 원료를 제공했다. 내가 되팔아야만 하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원료, 바로 존재. 나의 존재를 제공했다. 그의 역할은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 앞에 있었고, 그의 멋진 삶을 연기하여 내게 보여주기 위해 내 삶을 빼앗았다. 내가 먹고, 숨 쉬는 것은 그를 위해서였고, 나의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는 바깥에, 저기에, 내 앞에, 그에게 있었다.
p.96-97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은 끝나기 위해서다. 모험은 한정 없이 늘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죽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중략)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가 딱 하고 부러져버린다. 모험이 끝나고, 시간은 그 일상적인 느슨함을 되찾는다. 고개를 돌려보면, 내 뒤에서 선율 같은 저 아름다운 형태가 온통 과거에 잠겨 들고 있다. 그것은 줄어들고, 힘을 잃으며 쪼그라들고, 이제 끝은 시작과 하나가 된다.
p.349
"그거 알아? 우리가 모험가 놀이를 하고 있을 때, 자기는 일어나는 모험을 겪는 사람이었고 나는 모험을 일어나게 하는 사람이었어. 나는 '난 행동하는 인간이야'라고 말하곤 했지. 기억이 나? 자, 이제 난 그냥 이렇게 말하고 싶어. 우리는 행동하는 인간이 될 수 없어."
이 책 구토는 저자 사르트르 철학, 문학의 결정판이라 할수 있겠다.
그러나 독자들이 그저 소설로서 대면해 읽는다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며 재미없는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그랬었다. 나에게 구토는 그 언제적 교양 필독서 목록을 섭렵해 나가다 스쳐간 따분한 내용으로 가득한 기억만 남아있는 희미한 추억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최신판 책을 펼쳐보아도 난해함은 변함이 없다.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 반전없는 이야기 전개와 지루함.
그렇다. 구토의 진가를 조금이나마 음미하고자 한다면, 사르트르의 철학 사상과 그의 삶을 먼저 이해한 후에 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해석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神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떠한 목적없이 그저 우연히 이 세상에 던져져, 연약한 목숨을 부지해 가다 우연히 죽는 그런 보잘것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 이외의 사물이나 생물과 달리 어떤 본질도 목적도 의무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그저 우연히 왔다가는 존재이다.
사르트르의 인간관과 세계관, 그의 철학 기반이 무엇인지, 이 작품 구토에 아주 잘 녹아들어 있다.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인간과 주변 사물간의 규정된 관계들, 자본주의가 초래한 물신주의와 과도한 인간의 욕망 등,,,
세상에 던져진 나를 둘러싼 모든 과잉된 것들이 '구토' 증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6년간 해외를 돌아다니다 작품 속 배경인 '부빌' 시에 자리잡고, 18세기 인물인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연금을 받으며 혼자 살며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는다.
그가 인간적 교류를 나누는 사람이라곤 몇년에 한번씩 만나는 옛 연인 '안니'와, 가끔 사랑을 나누는 단골카페 여사장 '프랑수아르', 그리고 주 생활공간인 시립도서관에서 알게되며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이름모를 '독학자' 뿐이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뜨려 집어든 돌맹이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구토' 증상은 생활 곳곳에서 찾아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람 많은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구토는 시간이 지나며 북적이는 카페에서도 찾아오게 되고 아예 몸에 들러붙어 있게 된다.
이야기 곳곳에는 실존 속에서의 고뇌들이 배치되어 있다.
세상에 의미없이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고독과 불안감.
그것은 뿌연 안개로 다가온다. 거리에, 집에, 가게에, 도서관에서...
무겁게 스며드는 안개는 현실의 본모습을 가리고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안개 짙은 어느날 카페에는 늘 자리를 지키던 사장과 카운터 직원이 등장하지 않고, 로캉탱은 죽음의 상상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완전한 어둠이 아닌 흐릿함, 진짜 위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모호함에 로캉탱도 그렇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고 말한다.
도서관의 정적속에서 다가오는 안개, 부둣가를 평화롭게 떠돌다 갑자기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공포, 눈만 감으면 바로 사라질 것만 같은 실존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응시하도록 만든다.
무의미한 삶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삶의 흔적들에 '경험'이라는 잣대로 미래를 재단하고, 죽음을 향해 해체되어가는 정신과 육체를 숨기고 싶은 본능으로 현실을 사는 존재들에게,
현실은 짙은 안개이고 두려움뿐인 것이다.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삶에서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자유에 대한 결단과 의지가 투영된 대목도 있다.
인적없는 어두운 길에서 만난 호텔직원 '뤼시'의 불행과 마주하며, 단조로운 삶의 고통을 반복하는 것보다 화끈하게 고통받고 절망 깊숙이 빠져보고 싶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해보지만, 현실에 꼼짝없이 묶여있는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불가능할 것이라 자문한다...
우연히 던져진 세상에서 우리 인간은 화끈하게 고통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가 분명히 있지만, 실천과 실행을 위한 결단과 의지는 자신의 의지로만 가능하기에 실존에 사로잡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선택이 싶지 않다.
결국 실존에 연약한 생명을 근근히 이어가다 세상에 왔던 것처럼 우연히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로캉탱은 파리로 돌아가 예전과 다르게 변한 옛 연인 안니를 만나고, 그녀가 새로운 연인과 기차를 타고 파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로캉탱은 과거 인물인 롤르봉 후작을 부활시키는 작업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존재하지 않는 의미 부여, 무가치한 목적의식을 걷어버리고, 그저 현실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느낀 그는 이제 이 추한 세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건조하고 지루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덮고 눈을 감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잔잔한 안도의 파문이 전해져 온다.
'어둠이 내린다, 프랭타니아 호텔 2층의 창문 두 개에 불이 들어왔다. 신축역사 공사장은 축축한 냄새를 짙게 풍긴다. 내일 부빌에 비가 내리리라'
내용을 완벽히 흡수하여 공감하기엔 아직 어렵다.
이 책 속에 보물찾기 처럼 숨겨놓은 가득한 실존 의미의 메세지를 이번엔 몇개나 찾았을까?
보물찾기는 더 계속 되어야 할 것 같다.
국내에 사르트르의 저작들이 여러 권, 여러 판본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일반 대중들이 쓴 후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초반부를 읽어보면서 왜 그런지 알았다. 일단 로캉탱의 의식을 따라가는 일이 내겐 너무 버거웠다. 생각보다 두껍지 않길래 이번 연휴에 마음을 다잡고 철학과 관련한 문학을 읽어보자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우선 실존주의에 관한 내 기본 지식 배경이 너무나도 얕아서 글이 생경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만만하게 봤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책이라 문학책처럼 술술 넘겨 읽기보다는 공부하는 전투자세로 읽어야 그나마 진도가 나갈 것 같다. 그래도 집 책장에 사르트르 책 한권이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면서 표지가 주는 만족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