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딸 둘을 키웠다. 자랄 때의 그 애틋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보석과 같은 존재로 마음에 다가왔다. 그렇게 그들이 내 주위에 머물렀다. 이제는 성장해 자신의 길들을 가고 있지만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더 평안하도록,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간구하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그런 딸들에게 향하는 내 언어는 어떠했을까? 그것은 육아일기를 쓸 정도였다. 물론 그 일기를 지금은 자신들이 가져가 추억거리로 사용하고 있다. 그 속에서도 나타나지만 딸들을 향한 마음은 보호, 사랑, 성장, 행복으로 귀결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언어의 배열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온통 보석으로 치장을 할 수가 있겠지? 그런 반면에 강인한 쇠로도 담금질할 수 있길 기원하겠지? 딸에 대한 사랑과 배려는 모든 아빠가 가지는 인지상정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딸 사랑이 만들어낸 책이다. 인문고전 교육학자 맷 뷔리에시가 딸 바이올렛에게 좋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엮은 책이다. 서구 사상가들의 얘기가 주류를 이룬다. 혼란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듯하다. 뷔리에시가 동양사상에 대해서도 지식이 있었다면 조금은 책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동양 사상가들의 얘기가 없는 게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자신의 지식 속에서 용해해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로 다가온다.
내용
많은 사상가들의 얘기가 제시된다. 그의 관심 분야인 고전에서 많은 내용을 가져왔다. 저자는 그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곳곳에 지식과 지혜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표현된다. 딸이 지녀 나갔으면 하는 내용들, 실천해 나갔으면 사는 지혜들이 수두룩하게 제시된다. 저자의 딸에 대한 곡진한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름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 스스로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책은 4 Part로 나누어서 전개해 나간다. 4 Part는 <네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라.> <올바른 선택에 두려워 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 보렴>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로 이루어져 있다. 각 Part마다 6-7개의 항목을 제시해 성현들의 말을 가져왔다. 그 말들이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표현되어 나간다.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보면 되겠다. 물론 자신이 공부한 내용들을 집대성해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리해 딸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편집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그 정성어린 정리는 책이 딸에게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게 와 닿는 사실로 나타난다. 가치 있게 지닐 수 있는 책이다.
소크라테스도 모르는 게 있었어. 그러나 적어도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지. 아빠는 네가 내 삶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어. 대단한 걸 안다고 생각했지. 덴버에 있는 직원이 내가 말하는 대로 했으니까. p29 |
딸에게 많은 성현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최고의 말들을 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글이다. 그만큼 딸을 사랑한다는 말일 게다. 딸이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지며 성장할 것을 원하는 아빠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가져왔다. 소크라테스가 현명함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우리가 많이 애용하는 말이다. 이 말을 통해 현명한 자는 늘 의문을 가지는 자임을 말하고자 한다. 세상에서 의문은 바로 지혜로 연결됨을 말한다. 지혜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저자는 딸에게 지혜로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도덕을 가장한 비즈니스에 속고 있었어. 우리는 빚을 갚고, 약속을 기키고,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 엘리트 부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결과에 상관없이 거짓말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무슨 규칙이든 다 어겨. 그리고 일단 원하는 걸 얻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지. 네가 똑똑하다면, 너는 그들처럼 행동하겠지. 그리고 정의가 뭔지 신경 쓰지 않고 일을 진행하겠지. p59 |
법을 잘 아는 자들이 법을 어기면서 법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탐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기득권자들은 법의 울타리를 잘도 벗어나면서 사욕을 채운다.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인데, 그 질서의 울타리를 벗어나 버리면 법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권력이라는 것은 그렇게 작용한다. 범인들이 법을 지키려고 그리 애쓰는 일을,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내가 누군데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해’라는 내로남불의 사고방식을 보인다. 이럴 때 법은 생존의 기틀마저 위협을 한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이 말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자가, 법을 다루는 자들이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때 보다 온전함을 향해 간다. 저자는 법에 대해, 규칙을 다루는 자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정의란 것을 일깨워 보고 있다. 딸에게 정의롭게 살도록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 게다.
알프스의 갈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루비콘 강으로 왔을 때, 카이사르는 상념에 젖어 들었다. 이제 위험에 한 발짝 내딛은 참이었고, 엄청난 이에 자기 자신을 내던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경로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 진군을 멈췄다. 그러면서 생각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머리를 굴렸다. 강을 건너면 얼마나 많은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다줄지. 마침내, 계산은 접어 두고, 다소 격앙된 분위기로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지 모르는 일에 자신을 내맡긴 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남기고 강을 건넜다. p156 |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방을 정복하는 상황을 통해 큰 세력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당시 최대의 군벌이었던 폼페이우스와 상대할 능력이 된다. 갈리아 지방의 정복은 유럽 역사에서 로마를 거대한 나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로인해 로마는 큰 힘을 소유한 나라가 된 것이다.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카이사르는 로마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어, 폼페이우스를 물리치고 로마를 장악한다. 그리고 원로원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자신이 통치해 나가는 나라를 만든다. 그는 서구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그는 영토도 두 배로 늘렸고, 공화정을 뒤집어 제국의 초석을 닦았다. 뒤를 이은 로마 제국은 전 세계에 유래 없는 문화 및 지적 유산을 남겼다. 즉 서구 유럽 국가들이 영원히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놓이게 한 것이다.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런 제국을 만드는 결단이었다. 결단은 신중하게 그리고 결단을 내렸으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전형을 보여준 카이사르, 결단은 삶의 행로에 있어 중요한 사항이 됨을 보여준다. 자신의 삶에 있어 결단을 내려야할 때 머뭇거리지 않는가?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행위가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할 여부도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혁신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적은 기존 환경에서 잘 살던 사람이며, 새로운 질서 아래 잘 살게 될 사람들은 미온적인 옹호자가 될 터이기 때문이다. p200 |
질서를 바로 잡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보다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들은 중림이 될 수 없다. 강력한 위치에 서서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적을 만드는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언제나 변화에 대항한다. 열심히 노력하고 성공을 몇 번 거두기만 하면 적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이라 그들을 이길 수도 있다. 네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 사랑을 받을지 둘 중의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 그러면서도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란 무릇 경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괜찮은데, 기피의 대상이 되면 곤란하다. 즉 잔혹해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반면에 성공저인 삶을 위해서 질서를 세우는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예시를 봐 왔듯이, 위대한 인물들이 기여한 독자적인 공로 덕분에 이 세상이 변화했어. 아빠는 소크라테스와 에이브러햄 링컨,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세상이 퍽 달라졌을 것 같아. 그들은 <공산당선언>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융통성이 없고 체제에 순응하는 신조 아래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거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말은 공산주의적인 감상이야. 공화국 체제 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말을 믿지 않아. 우리는 개개인의 우수성을 믿지. 차이점을 기꺼이 인정하고 불평등을 권장해. p372 |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도 않고 우리의 삶도 그렇다. 현재는 그것이 급변하고 있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들도 그렇다. 재화도 고향도 사유재산도 모두 변한다. 그런 가운데 특별한 자들이 나와 패러다임을 바꾸어 나가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간다. 바이올렛, 강인함, 인내, 활발한 기질이 네게 있다. 그것이 가장 큰 재산이다. 그런 기질이 학점, 돈, 권력, 명예 등보다 더욱 큰 자산이다. 너는 그것을 타고 났다고 믿는다. 앞으로 더욱 강해지고, 명랑함을 잃지 마라. 그것이 변화되는 삶 속에서 자신을 지켜줄 밧줄이 된다.
책에 등장하는 재료는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책들과, 영웅전을 쓴 플루타르코스, 마태복음, 누가복음 등 성경,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등이다. 마키아벨리, 몽테뉴, 셰익스피어, 존 로크, 루소, 애덤 스미스 등도 제시되는 인물이고 <로마제국 쇠망사> <미국의 독립선언문> <미국 헌법> <공산당 선언> 등도 이야기 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책이다. 다양한 고전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함께하고 있다. 물론 고전 교육학자인 저자의 안목에 잡혀든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롭게 감동적이다. 그것을 우리는 읽을 필요가 있다.
나가기
저자는 정성을 다해 고르고 있다. 딸을 향한 한없는 사랑이 이런 글들을 모을 마음을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도 딸만 둘을 두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몸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마음에 담긴다는 말일 게다. 그런 딸의 내일을 위해서 고르는 문장들이라면 어쩐 문장이 될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리라. 저자의 취향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만을 고르리라. 그래서 충고와 격려, 기쁨과 다짐이 들어가는 내용들로 채워지리라. 이 책도 그렇게 여기면 되리라 생각한다. 딸에게 주는 마음을 자신에게 주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수용한다면 독자들에게도 가득한 사랑으로 담겨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단다
『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라는 제목에서 워낙에 인문학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관심을 가지는 나에게 과연 인문학 편지는 어떤 이야기를 딸에게 전해주는 것이지 궁금함을 자아냈다. 이 책의 작가맷 뷔리에쉬가 직접 겪었던 경험과 현재 사회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인문 고전을 바탕으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삶의 지혜, 성찰 및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는 힘과 비젼을 얻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맷 뷔리에시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영어와 수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조지메이슨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비영리 기구>의 저자이며, 수많은 문학잡지에 그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작가 및 작문 프로그램협회(AWP)와 펜/포크너 재단에서 상임이사로 일했다. AWP에서 재직하는 동안 미국 최대의 문학학회 개최에 도움을 줬다.
목차
Part 1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아라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 누구에게 뭐든지 질문하렴
딸 바이올렛이 태어나기 두 달 전 아내는 계속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고 병원에도 몇 차례 가보았지만 태아는 괜찮다는 설명만 듣고 왔었다. 아내는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하혈을 하며 360여 그램의 미숙아를 출산한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위기의 순간들을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나가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처한 불안한 현실과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딸이 퇴원하기 전 서가를 정리하다 <서구의 명작들> 시리즈를 펴보게 되고 이 책들이 본인에게 매우 중요했기에 딸과 나누고 싶었고 자신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질문하고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관점을 가지라 말한다.
아테네인 여러분, 진실은 오직 신만이 지혜롭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께서는 인간의 지혜야 말로 쓸모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그가 소크라테스를 예로 든 건, 내 이름을 빌어 이렇게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이여 가장 현명한 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지혜가 진실로 쓸모가 없다는 걸 아는 자이니라." (p.26~27) |
우리는 간판이나 재산, 작은 성취감 따위가 지혜를 준다고 스스로를 속여.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벌수록 더 강한 권력을 가질수록, 이 간단한 세 마디를 하기 더 어려워져. '나는 잘 모르겠어'
바이올렛, 그 세 마디가 네 인생에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아빠처럼 되지 마라. 모른다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전부 다 아는 척하지도 않길 바란다. 네가 뭔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두려워하지 말거라. (p.29)
특히, 권위있는 인물에서 나온 내용일 때, 그가 틀림없이 맞다고 주장할 때,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돼. 권력과 권위를 지녔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일은 사실, 퍽 흔해. 그러니 소크라테스처럼 모든 것에 의문을 가져라. (p.30)
경제상황도 직장도 집도 불안한 가운데 있던 자신을 돌아보니 이런 불안한 경제 상황을 몰고 온과정들을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고 지켜본 것에 대한 후회가 담겨져 있다. 뭐든 다 안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모른다 생각하며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을 하라고 딸에게 당부한다. 이 세상은 뭐든지 확실한 것이 없으니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권위자가 한 말이라도 그냥 믿지 말고 의문을 가지라는 것이다.
≪크리톤≫ 플라톤- 너는 온전히 너로 살기 바란다
왜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하지? 다른 이들이 극악무도하게 살 때,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생길까? 소크라테스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감옥에서 탈옥해 테살리아로 가자고 설득을 하는 상황에서 소크라테스는 재판은 공정하지 않았으나 감옥에서 탈옥하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며 크리톤과 나누는 대화의 일부이다.
죽음이란 기본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네. 첫 번째는 죽음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야. (중략) 모든 게 멈추고 평화와 고요만 찾아올 걸세. 다른 한편으로는, 사후 세계가 있을 수도 있지.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내 영혼은 천국으로 갈 거야. 아니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누가 알겠어? 나도 몰라. 하지만 찾고 싶네! (중략) 나는 결백해. 하지만 내가 자네와 함께 간다면 그리고 내게 내려진 법적 처분을 무시한다면, 그것이 내 스스로를 유죄로 만드는 건 아닐까? 내가 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이 결국 맞았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중략) 여기에 남아 죽는 걸 택하겠네. 그러면 온전히 나답게 살 수 있을 거야. (p.37) |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도덕성'에 관심이 없어. 그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결과가 어떻든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했어. (p.39)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네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야. 인생을 걸고 진실을 지키렴, 재수 없는 놈이 되지 말고. (p.40)
Part 2. 올바른 선택에 두려워 마라
《영웅전》<알렉산드로스> 플루타르코스 - 자애로운 승자가 되어라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점령국가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그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었다. 명문가의 포로들을 미덕과 성격에 따라 대우했으며 고통을 주지 않았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다리우스 3세의 아내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루며 비용을 아낌없이 지원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 후로 다리우스마저도 알렉산드로스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인심이 후한 사람이었지만, 재산이 늘어날수록 더욱더 많이 베풀었다. 남들에게 베풀 때는 예우를 갖춰 후하게 했는데, 진심이 우러나야 그만큼 자신에게도 돌아오게 된다. (p.143) |
알렉산드로스가 네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은 바로 이거야. 용기를 가지고, 자애로운 승자가 되어라.
땅을 딛고 일어서서 너를 괴롭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방에 먹여 줘. 그러고 나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했던 것처럼 하렴. 손을 내밀어 진정한 화해를 하거라.(p.149)
두려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가지고 부딪혀 승자가 되었다면 그 승리를 더욱 값지게 누리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애로움을 가지는 것은 승자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이기는 것은 스스로의 자화자찬이 아닌 상대방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누가복음》성 누가- 대접받고자 하면 먼저 대접해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p.16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p.163) |
Part 3.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보렴
《수상록》<어린이의 교육에 대하여> 미셀 에컴 드 몽테뉴 - 공부의 목적은 미덕에 둘 것
몽테뉴는 교육이야말로 문명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지혜와 자기 이해를 추구하는 힘을 믿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가 하는 첫 번째 실수는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일을 시킨다는 거야. 우리는 아이들에게 권위에 복종하고 믿으라고 지나치게 가르치지. 그중 최악은 자신들이 배운 걸 활용해 응용하고 생각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배운 그대로 써먹으라고 가르친다는 거야. (p.205)
외워서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닙니다. 그저 누군가 우리의 기억 속에 맡겨 놓은 걸 보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p.206) 아는 게 무엇이고 모르는 게 무엇인가. 배움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떻게 공부하는가. 용맹, 절제, 정의란 무엇인가. 야망과 탐욕, 노예와 신하, 허가와 자유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수단으로 사람은 진실하고 공고한 만족감을 알 수 있는가. 죽음과 고통, 수치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p.208) |
몽테뉴는 아이들이 많은 것을 배움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걸 배웠으면 하고 바랐단다. 자신들이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그리고 어떤 직업이 적성에 맞는지 등 말이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직업에 내몰리면 안 돼. 스스로 원하는 삶을 개척할 줄 알아야지.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필요조건이 충족된 다음이란다. (p.208)
실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경우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그리 높은 수치가 나오지 않을거라 예상이 된다.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걸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교육의 경쟁에 내몰리고 남들이 다 하는 공부이기에 같이 해야하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목적인 대부분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의 교육이 몽테뉴가 바라는 진정한 교육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덕목을 쌓기보다는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교육 아래 개개인이 가진 의지와 자율은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현재 처한 이런 교육이 문제점에 대해 몽테뉴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해 보고 진정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상록》<선악은 우리의 의견에 좌우된다> 미셀 에컴 드 몽테뉴 - 불안, 걱정,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
작가는 직업이나 경제적인 안정을 유지했을 때도 그리고 불안정했을 때도 돈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돈이 있으면 잃을까 두려워했고 없으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또 경제적으로 나아지지 않아 불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가 느끼는 불안,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몽테뉴 또한 젊을 때는 돈이 없어도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돈을 벌고 나니 돈이 없어져 버릴까 봐 근심하며 돈에 집착하는 구두쇠가 되었고 결국은 돈을 잃을지 모르는 공포가 자신을 괴롭혔다고 한다.
내 마음은 그런 일에만 쏠렸다. 생각해 보니, 돈을 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힘들었다. (…) 내가 가진 걸로 이득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었는데도 내 걱정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정말로 필요하다면 목구멍이 포도청이 된 후에야 건드릴 수 있다. (…) 사람들은 아직도 돈을 싸하 놓으려만 하고, 점점 그 양을 불려서 결국엔 자기 재산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며 즐기지도 못하게 된다. 전부 저장만 해놓고 한 푼도 쓰지 않으려고 한다. (p.223) |
Part 4.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사회계약론》장 자크 루소 -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든 그 조직의 구성원이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의사결정이나 정책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통솔하는 것 또한 올바른 결과를 낳을 수 없다. 통치권이든 기업의 수장이든 횡포와 독재를 저지르고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강요한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효력이 있지만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 통치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일을 불가능한데 이는 우리는 개인적인 도덕성을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연대해야 할지 찾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동의 힘으로 각 연대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고, 개인이 다른 이들과 연합하면서도 스스로에게만 복종하고, 이전과 같이 자유롭게 남아 있는 것. 이것이《사회계약론》이 해결책을 제공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 우리 각자는 일반 의지의 최고 지휘 아래 자기 자신과 그의 모든 권한을 공동체에 위임한다. 그리고 우리는 각 구성원을 전체에서 불가분의 일환으로 인정한다. (p.283) |
일반 의지는 우리가 그에 따라 움직이겠다고 결정하는 거야. 우리가 얻는 이익이 없다고 해도 말이지. 그리고 단기적으로 그 때문에 고통받는 것도 감안해야 해. 우리는 우리의 자주권을 공동체가 결정하도록 양보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p.285)
각자의 사회구성원들은 서로를 도우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공익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구하지만 정치적 단체의 규모가 점점 커질수록, 일반 의지에 도달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공익이 무엇인지 결정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자유주의 국가이지만 개개인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있을 수 없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공익을 위한 나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음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서로 조화롭게 의견 충돌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대다수의 이익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져봐야 할 점이다.
《공산당 선언》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우리는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현재는 심각한 불평등의 시대이다. 전 세계의 가장 부유한 85인이 쥐락펴락하는 부의 가치가 전 세계의 가장 가난한 35억 명의 재산을 합한 값과 맞먹는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부의 편향성은 더 강해질 것이다. 대기업이 장악해 버린 경제 시장은 중간 유통을 제거하며 관리 인력의 수를 줄이고 모든 상품 생산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노동력이 낮은 신흥시장으로 넘어가고 취직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해고되지 않으려고 혹독한 환경에서도 강도 높은 노동을 하게 된다.
원재료를 만들 수 있다고 쳐도, 대기업과 맞먹는 양의 사무용품은 절대 만들 수 없어. 남은 공급업체들도 당연히 개인에게는 팔지 않을 거야. 메가맥스슈퍼 사무용품점은 이 모든 걸 소유하거나, 다른 잠재 고객을 거부할 만큼 압력을 넣을 테니까. 마르크스가 기술했듯이, 이렇게 긴 과정의 각 단계마다 생산 과정이 통합되면서 부는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돼. (p.355)
부르주아는 지배하는 데 적합하지 못하다. 자신의 노예에게 노예로서 생존할 수 있는 확신을 줄 수 없고, 노예에게서 필요한 걸 충족하는 대신 노예를 먹여 살리지 않으면 안 될 상태까지 추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는 더 이상 부르주아지 아래에서 살 수 없다. 다시 말해,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더 이상 화합할 수 없다. (…) 따라서 부르주아주아지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묫자리를 파는 사람을 생산한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동시에 필연적이다. (p.363) |
우리는 지금 과도기에 와 있고 행여 공산당 선언에서 묘사된 풍요와 불평등의 미래가 올지 아니면 또 다른 체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과정의 도입은 폭력을 불러올 수도 있고 아무도 정확한 예측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실험해 봤어. 왕정과 경제 제도 그리고 자유와 독재도, 어떤 실험은 다른 것보다 더 성공적으로 판명 났지.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언제나 존재해. 그리고 언젠가 너는 우리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p.373)
위에 언급한 것 이외에 이 책에 나온 고전 인문은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제1권 》,《정치학-제1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존 로크의 《통치론》,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토머스 제퍼슨·벤저민 프랭클린 등의 《독립 선언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그리고 《미국 헌법》으로 이 고전들과 관련되어 우리 삶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가치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니체는 어린아이처럼 솔직함과 당당함을 지닌 상태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다해 전진하는 어린아이처럼 두려움 앞에서 온몸으로 맞서라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나약함, 불안감, 걱정, 고통에 제대로 대적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딸의 순수함과 열정을 본받고 딸이 그런 삶의 자세를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여기서 소개되는 서양 인문고전들이 사실 쉬운 이야기가 아니기에 아빠가 전해주는 이야기들 또한 어렵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상황이기 보다는 미국의 상황이 배경이다 보니 이해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전들 속에는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런 가르침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닌 반론을 제기하고 의문을 가지라는 아버지의 당부에서 같은 고전을 보더라도 정답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함을 생각해보았다. 세월은 변하고 어떤 미래가 닥칠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에서 항상 유념해야 할 가치들과 잊지 말아야 할 덕목들을 담고 있기에 우리가 고전을 반드시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산 장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식에게 삶의 큰 가치를 가르치려한 부모로서의 이들의 바른 마음가짐과 자세를 본받아야겠다.
나는 엄마의 딸로도 살아가고 있으며 자식들을 돌보는 엄마이기도 하다. 딸 아이는 없지만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 또한 이 작가가 가지는 딸에 대한 애뜻한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한 명의 인격체로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이 바른 마음가짐과 생각을 가진다면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더 큰 용기와 지혜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덕목과 미덕들을 아이들이 다 가지면 좋겠지만 그 또한 나의 욕심일 것이다. 나는 수시로 아이들에게 당부한다. 결코 혼자서는 잘 살 수 없다고 주위를 둘러보라고. 이기적이기보다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고.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 책을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해줄 것이다. 엄마의 가르침은 짧을 수 있지만 이 책이 전해주는 고전과 함께 생각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책은 자녀가 자란 후에 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담고 이 있지만 부모인 우리가 보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전과 우리 현재의 삶을 동시에 비교하며 살펴볼 수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강해져라 바이올렛. 끝까지 밀고 나가.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언제나 명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네가 태어난 그날부터 아빠는 하루하루를 너와 비슷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했어, 바이올렛.
그리고 네 영혼을 본보기로 따르려고 노력했단다.
#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나의 부모님은 모두 블루 칼라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고단한 노동자였다.
유년시절 이웃 집 친구의 방에는 벽 전면을 가득 채우는 책장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는데, 나는 그 집에서 책을 빌려다 보았다. 많은 책도 부러웠지만, 그를 나타내는 그녀 부모님의 책에 대한 식견이 더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딸, 엄마를 위하여' 시리즈로 기획된 이벤트 책 4권은 모두 흥미로운 주제였지만, 어쩐지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편지를 맷 뷔리에시 작가로 부터 대신 받는 기분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실제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고 그 중에서도 인문고전분야는 혼자서 탐독해나가기에는 어려운 분야이다.
# 이 책의 장점은,
1. 철학큐레이터 - 역사 속 수많은 철학자 들 중에서 꼭 알아야 하는 철학자와 그 대표작을 소개한다. -> 철학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국가' /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아리스토 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 마키아 벨리 '군주론'
몽테뉴 '수상록', '어린이의 교육에 대하여', / 존 로크 '통치론'
장 자크 루소 '사회 계약론' / 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2. 세계화의 두개의 축, 그 중 하나인 미국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돕는다 -> 식민지의 독립,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혼재된 미국정치체제의 이해와 2008년 전세계를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독립선언문' / 공저 '미국헌법'
애덤스미스 '국부론'
3. 우리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 인문고전을 읽어나가는 것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리쿠르고스', '누마 폼필리우스'
성 마태 '마태복음' / 성 누가 '누가복음'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4. 인용된 인문고전이 한페이지로 요약되어 있다 -> 저자는 4개의 챕터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챕터가 끝날때마다 본문에서 인용한 위대한 고전을 한줄로 요약해 정리해 놓았다. 이 페이지는 독후활동에 매우 유용했다.
이 책을 읽기 전 연초에 읽었던 <지적대화를 위한 얇고 넓은 지식>은 분량이 상당한데, 그 속에는 역사, 철학, 계급, 종교에 관한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시간을 꽤 투자해야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었는데, 나는 맷 뷔리에시의 '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에서 이 내용들을 다시금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독자라면 이 책 한권만 읽어도 충분한 지식과 교양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나에게서 사회로의 시선 확장
저자는 4개의 단락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1부는 네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라
2부는 올바른 선택에 두려워 마라
3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보렴
4부는 모두를 위해 더 좋은 길을 찾을 거야
'나'에서 시작한 치열한 고민이 '타인'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속한 '사회'로 확장되어갔다.
# 인간미 넘치는 인문학 책,
인문고전 교육학자인 저자 역시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첫째 바이올렛은 예정일 보다 이르게 태어난 조산과 난산을 겪은 신생아였다. 난생처음 아버지 역할을 맡게 된 저자는 혼돈과 두려움 속에서 아이를 만나고 키우게 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고민이 솔직하게 적혀져 있다.
오히려 본인이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저자는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여 누구에게든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메세지를 딸에게 전한다.
<아빠는 바이올렛 네가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을 읽으면 좋겠다. 조언이 필요하다면 최고의 조언을 해 줄 수 있지만, 이 책이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거야. 나는 이 책으로 네 삶에 위인의 고전들을 들여놓고자 했다. 내 지난날과 함께, 네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가 전해지면 좋겠구나. 내 가장 좋은 생각을 네게 주고 싶은 생각뿐이야, 바이올렛.> (p8, 들어가며)
26개의 챕터로 나뉘어진 이야기를 읽는 건, 마치 바빠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없는 다정한 아버지로부터 받는 26통의 편지처럼 읽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편지는 너무도 알고 싶었던 삶의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 책을 펼치고 책 속으로 들어가다,
* 살면서 한번은 던질 수 밖에 없는 4개의 질문을 중심으로 리뷰를 정리해보았다
Q. 나답게 사는 방법,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은?
A. Chapter2. 너는 온전히 너로 살길 바란다. <플라톤, <크리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받기 전 친구 크리톤이 찾아와 탈옥하여 테살리아로 가서 살자고 설득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신념과 철학을 만나게 된다.
<소크라테스: 다수가 도덕이라 여기는 악에 대한 복수로 악을 저지른 다면, 그건 정의로운가 정의롭지 않은가?
크리톤: 정의롭지 않아.
소크라테스: 다른 이에게 악을 저지른다는 건 그를 상처 입히는 것과 같지?
크리톤: 그렇지.
소크라테스: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악으로 앙갚음해서 안 되네. 우리가 그에게 어떤 악으로 고통을 당했건 말일세.> (p36)
소크라테스는 '다수의 도덕성'에 관심이 없어. 그는 자신에게 솔직하고, 결과가 어떻든 나름대로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했어. (p39)
나는 매순간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어느 순간이 되었을 땐 진정한 나는 어떤 모습인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플라톤, <크리톤>>에선 내가 선택해야할 선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온전히 나의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Q.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A. Chapter5. 행복은 지금, 여기, 네게 있어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
오늘은 행복한 감정이 충만했는데, 어제를 생각하면 또 우울했다. 지금은 행복한 기분이지만, 저녁은 장담할 수가 없다. 왜 행복한 감정은 지속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궁극적인 선이 '행복'이라고 믿었어. 우리는 모두 행복을 추구하지. 행복이란 무엇일까? 기쁨일까, 부일까, 권력, 명예, 지혜? 사람들마다 다르게 대답할 거야.(중략)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하고자 했던 행복은 잠깐 동안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상태를 의미해.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인생에서 어떤 지점에는 행복하고 다른 때에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겠지. 영원한 상태의 행복을 만드는 건 뭘까?> (p81-82)
<너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건 네가 가진 게 아니라, 남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네가 삶의 부침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성공과 실패에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단다.(중략) 행복은 너의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오롯이 너의 책임이야. 행복은 선택이고, 그 다음 실천하는 거야> (p85)
<행복은 완벽한 덕에 따라 움직이는 영혼의 활동이다.> (p83) 라는 조금은 어렵게 다가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바로 윗 문장이 쉽게 풀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내가 선택한 방향이고, 그 다음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걸.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Q. 성공하면서, 타인에게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A. Chapter9. 자애로운 승자가 되어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
& Chapter10. 겸손한 자세를 잊지 말길 <플로타르코스, <<영웅전>> <카이사르>>
이 두 챕터는 함께 엮어서 이야기해야 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했던 두 명의 영웅과 그 대조적인 모습에서 인생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보통 우리가 취하게 되는 태도는 카이사르의 그것과 비슷해 보였다(자만심에 빠지게 되는 영웅). 카이사르는 로마 원로원에 의해 처형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일화를 읽으며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페르시아의 왕비를 사로잡았을 때, 그녀는 알렉산드로스보다 몸집이 컸던 친구 헤파이스티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해.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왕비는 무서워서 덜덜 떨었어. 알렉산드로스가 왕비를 안심시켰어.
"걱정할 것 없소, 왕비. 그도 역시 알렉산드로스이니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을 보좌하던 사람에 대해서라면 누구든 그렇게 말하곤 했어.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헌신적으로 대해 주면 그만큼 보답이 돌아왔거든. 알렉산드로스 밑에 있던 사람들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지.> (p134)
<알렉산드로스의 용기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성격에서 나왔어. 그는 페르시아를 침략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는 동안, 땅과 자산을 부하들에게 남김없이 넘겨 줬지. 병사 중 한 명이 그럼 알렉산드로스에게 뭐가 남느냐고 묻지, 그가 대답했어.
"희망."
이 말을 들은 병사는 깊은 감명을 받아 알렉산드로스의 선물을 거절하며 자신도 그 희망을 나누게 해 달라고 간청했어.>
네 친구들에게 관대해지는 건 쉬워, 바이올렛. 아지만 적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일은 어렵지. 이거야말로 알렉산드로스가 왜 군사적 천재인지 보여주는 결정적 요인이야. (p143)
나역시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상대방에게 요구했던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떠올리면 부끄러워진다.
이런 반성을 더욱 강하게 한 것은 다음 장의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다.
<'Hubris' 는 그리스어로 자부심이 지나치거나 너무 거만해서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는 뜻이야. 그리스 문학은 'Hubris'를 본보기로 삼은 작품들이 무수히 많지.> (p150)
<로마 제국 치하에서 기독교가 부상해 유럽 각지로 퍼졌고, 그리스 사상은 대대로 보존되어 수백 년이 지나도 후손들에게 전해지겠지. 국가관과 법, 문화, 종교 등 우리의 독자적 개념- 심지어 우리가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까지- 모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뿌리를 두고 있어.
역사적 인물로서 카이사르는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났지. 결국 그 야망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탐하고, 오만한 태도로 인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 (p159)
마지막까지 행복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솔론의 말을 빌리면, 카이사르의 업적은 대단했지만, 그 삶이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두 영웅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인생에서 좀 더 자애로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Q. 무의미해 보이는 삶, 왜 살아야 할까?
A. Chapter19. 의미없는 삶도 소중히 여기길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저자의 아버지가 죽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삶의 끝 지점에서 마치 스위치 꺼지듯 의식의 단절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며 두려워했던 나의 마음 저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가 볼땐 스위치의 전원을 끄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끝.">
(중략) 할아버지(저자의 아버지)가 내게 하셨던 말이 계속 신경 쓰였어. 삶은 의미 없지 않다고 믿도록 반박하고 싶었지.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할아버지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죽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지. (p233, 240)
열심히 살아가는 일상속에서도 갑자기 찾아오는 허무함은 마치 해리포터의 디멘터와 같이 생의 의지를 꺾어 놓곤 한다. 무의미해 보이는 인생에 대한 유명한 고전 <햄릿>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햄릿: 우리도 천한 쓰임새로 돌아갈 것을, 호레이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귀한 흙먼지가 되어 결국 술통 마개가 되어 버리는 걸 상상할 수도 있지 않겠나... 먼지는 흙이지, 우리는 흙을 반죽해. 그렇다면 그가 묻혔던 흙의 반죽으로 술통 구멍을 막는 용도로 쓸 수 있지 않겠나? 카이사르, 죽어서 점토가 되고 바람을 막는 구멍에 쓰일지도 모르지. 오, 이런, 온 천하를 벌벌 떨게 했던 그가 이제는 흙이 되어 벽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한겨울 찬바람을 막는 용도로 쓰이는구나.>
그렇게 무심한 우주 속에서 해야 하는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아니야. 왜 살아야 하는가이지. (p246-247)
하지만 햄릿에게 이런 역경이 찾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문은 여전히 남아,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백만 달러를 번다고, 왕이 된다고, 연인을 만난다고 해서 어떻게 된다는 거지?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게 아니야. '의미의 부재'가 두려운 거지. (p248)
오늘은 의미가 있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속한 조직에, 가족에게 꼭 필요한 존재임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나 이 감정이나 느낌이나 인정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의미는 결국 내가 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부여하고 찾아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릿이 외치듯, 위대한 알렉산드라스도, 카이사르도 한줌의 흙이 되어 사라졌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지금 여기 나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햄릿의 저자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외아들이 끔찍하게 죽고 나서 무서운 악마와 씨름을 한 것 같다. 어느 시점에 그가 이렇게 물었을 것 같아.
"이 고통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나? 왜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걸까? 뭐가 중요해서?"
내 생각엔 그 시점부터 셰익스피어는 삶을 아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아. <<햄릿>>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모든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던 질문을 하고 대답했어. 의미가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지금 놓인 삶이 전부라면? 음, 그게 사실이라 해도, 삶은 아주 소중해. (p251)
# 이 책을 마치며,
어린 시절에도 밤 늦게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달빛을 느끼며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숨쉬고 있는 나는 왜 존재하는걸까.' 하는 물음에 빠지곤 했다.
그 물음에 명쾌한 답은 날 찾아오지 않았고, 그저 하얀 세면대 앞에 서 있는 작은 내가 보일 뿐이었다. 오랜 시절부터 이러한 물음에 끈질기게 답을 찾고자 한 위인들이 존재한 것 같다. 태초에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그의 철학을 정리한 플라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현대의 마르크스까지. 그뿐만이 아니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작가 역시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녹아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100년, 1000년이 지나서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인문고전의 전문가 이기도 하지만, 그 역시 방황이 가득했던 20대 초반시절을 지나 30대에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생존의 위기를 느낀 모든 지점에서 가졌던 고민들을 헤쳐나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 머나먼 이국땅의 미국인 작가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옆집의 딸 둘을 키우는 가장처럼 가깝게 여겨지기도 하고, 딸아, 하면서 부를때는 마치 내 아버지가 내게 전하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둔 부모가 되면서, 애석하게도 저자같이 딸에게 인문학 편지를 띄울 일은 없게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내가 겪은 고민들을 할 때즈음 그 고민의 깊이를 덜어줄 책 한권을 남기고픈 마음이 든다.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이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을만큼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자가 2015년 이 책을 쓰며 2028년에 읽기를 기록해둔 것 처럼, 나또한 10년 뒤 아이가 읽을 책 한 권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게 된다. 이만한 선물이, 유산(遺産)이 또 있을까?
이 책을 받아들고 책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친정아버지께서 나에게 고전을 읽으라 노래를 부르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의 저자 맷 뷔리에시처럼 우리 아버지도 나에게 인문학 편지를 써주셨더라면, 나는 고전을 흥미롭게 대할 수 있었을까?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전의 중요성은 알지만 이내 머리가 아파옴을 느낀다. 어린 시절, 수능 시험, 논술 준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권 골라 읽긴 했지만 완전히 이해했을리 만무하며,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다시 읽어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저자는 딸 바이올렛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큰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어 줄 이야기를 건내고자 편지 형식을 빌어 고전을 소개한다. 크게 네 파트로 나눠 그 안에 26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매 파트 마지막 장엔 위대한 고전 한 줄 정리를 해 놓았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루타르코스 등 우리가 익히 들어본 철학자들의 사상이 소개되어 있고, 독자들이 그 것을 어떻게 소화하여 현재와 미래를 살아내야 할지 상세히 안내한다. 읽다 보면 다소 억지스럽지 않나 싶은 대목도 있긴 했으나, 그 점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으며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는 이야기인 만큼 보수적인 시각에서 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혜보다는 지식이 먼저였고, 인생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기보단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업을 찾는 방법만을 가르쳐 주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고전과 인문학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한다.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 언제 어디서든 통하는 진리와도 같다 할까.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또 자신의 아이에게 되물림하여 읽고 읽어야 할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 책을 통해 깨우치게 된 점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고, 나와 내 아이의 삶의 나침반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딸에게 보내는 인문학 편지는 사실 내가 '딸'이기에, 그리고 '딸'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기에 선택한 책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나와 그리고 딸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고 읽은 책이었지만, 그것은 제목만 보고 생각의 틀을 좁힌 나의 실수였다. 이 책은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인문학' 책이다. 많은 위인들을 통해 나의 삶을 개척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그러한 마음으로 저자도 자신의 소중한 딸에게 써내려갔으니 말이다. 내가 그의 딸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읽는 다면 지성을 쌓는 것은 물론 인성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녀를 키울 때 인성공부는 항상 뒷전으로 미루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이기적인 부모가 되고 싶지 않기에 이 책을 더 열심히 읽었다.
저자는 이르게 태어난 아이들을 힘든 시기에 키우면서 갖은 역경을 겪었다. 역경을 맞이할 때 그는 고전에게서 위안을 얻고, 고전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그렇기에 그는 고전이 인간에게 주는 유익한 점들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딸이 고전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기 위해 각별히 신경썼다.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책을 읽는 내내 한번도 지루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딸이 아닌데도 말이다. 아버지로써 자신이 겪은 일화들과 고전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읽혀지도록 쓰는데 애를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또한 고전을 좋아하기에 언젠가 나의 자녀들에게 이 책을 소개시켜주고싶다. 고전입문작으로 그만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