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산다는 형량에 대하여
'낙태되 위헌'을 이끈 김수정 변호사가 20년간 법정에서 기록한 여성인권 투쟁기는 여자, 가족, 사회와 정치의 도구로 쓰인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젠 디지털 범죄까지 더해져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은 상상을 초월하고 믿고 의지해야 할 가족도 위협이 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내 몸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으며, 폭력을 당했음에도 확인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다. 기억도 가물가물했던 어린 시절 옆집의 옆집, 숟가락 젓가락 숫자도 다 아는 동네에 살던 시절, 5살? 6살 즈음이었던 그때 동네 할아버지가 가끔 불러 병원놀이를 하자며 이불을 덮어주며 몸 여기저기를 만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아동 성추행이었다. 몇 번을 그리 불려 다니다가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후 그 할아버지를 피해 다니곤 했는데, 불러도 자신에게 오지 않는 날 쳐다보는 그 눈빛이 아직도 가끔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일을 부모님께 이야기할 생각을 안 했는지 혼자 잘 피해 다니면 된다고만 생각했던 던 것 같다. 여자라서, 여자니까...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었어... '나도 겪었다...'라는 슬픈 연대는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1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2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들리는 비명
3부 '도구'로만 존재하는 여성의 자궁
4부 용서받은 자들 뒤에 용서한 적 없는 이들
기록되면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는 디지털 성범죄, 직장 내 성희롱, 아동. 청소년 대상 성착취, 가정 내 여성폭력, 이주 여성의 잔혹사, 낙태죄 존치 논란, 일본군 위안부, 미군 기지촌 위안부, 군대 내 성차별과 성폭력 등 페이지를 쉬이 넘길 수 없었으며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다. 범죄자가 가장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지 않기를, 죄를 죄로서만 보기를, 야동과 함께 성장한 그대들의 말도 안 되는 잣대를 드리워 여성의 고통을 가벼이 보지 않기를 여성의 지위와 권리도 남자들과 동등하게 여기기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 페미니즘이 입문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책의 후기로 이 말 외에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여성을 위한 변론은 끝나지 않았다."
책에 소개한 사건들은 나와 동료들이 직접 변론하였거나 혹은 현재도 변론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로, 픽션이 아니며 살아 움직이는 여성의 고통스러운 현실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한다. 법정 싸움은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의 최후의 싸움이고, 승리의 기약도 없이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싸움이다. _프롤로그
여자라는 이유로 화장실에서 바지조차 내리기 꺼려지고, 내 집에서조차 옷을 여며야 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나(너)의 어머니, 누이, 아내, 애인이 살아가고 있다. 그녀들은 남의 상갓집에 와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집 초상에서, 바로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다. ... (중략)... 여자의 도움 없이 살지도 못하면서, 남자만의 이어도에서 살 수도 없으면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자를 몰래 지켜보고, 돌려 보고, 소비한다. _22~25p.
성폭력 피해자는 똑똑해서도 안 되며('똑똑한데 당할 리가 있나'), 성폭행을 당한 후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해서도 안 되고, 밝고 쾌활하게 살고 있어도 안 되며, 결혼(또는 이혼) 한 경험이 있어서도 안 된다(여전히 '행실'이 중요하다).
이 땅의 여성들이여, 이러한 점을 잘 숙지하자.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될 만큼 젊지 않거나, 예쁘지 않거나, '정숙'하게 생활해오지 않았다면 더더욱 잘 숙제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판결문에 기록되는 세상이 왔어도, 피해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잘 숙지하지 않고 있으면, 언제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_40~41p.
대체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매매를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_60p.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은 어느새 성적 자기 결정권, 즉 '자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공격한다. 성인 남성의 성착취에 대해 법과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_64p.
낙태를 하는 여성도, 낙태에 찬성하는 여성도, 그 누구도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속의 태아일 때든 태어난 뒤든, 아이를 감당해야 할 '이미 태어난 사람'인 여성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온갖 어려움은 오롯이 여성에게 짊어지게 하면서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고귀함만을 내세우는 것은 위선이다. _139p.
도대체 여성의 몸은 왜 또 이리 쓰임이 많단 말인가. 왜 하필 여성만이 난자를 배출하고 자궁이 있단 말인가. 여성의 몸, 여성의 자궁, 여성의 출산 능력은 경외의 대상이면서도 왜 이리 하찮게 취급되는가. _182p.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들은 전쟁이 있는 곳, 군대가 있는 곳에서 전쟁 승리와 군대 유지를 위해 동원되었고, 이용되었으며, 버려졌다. _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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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