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에는 휴식법 10가지가 소개되어있다.
이 휴식법들은 저자 개인의 생각이 아닌 135개국 1만 8천여명이 참여한 ‘휴식테스트’ Reset Test 연구로 밝혀진 방법이다. 휴식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말하는 책은 봤어도 객관적인 지표로 휴식을 정의하고 계량화하는 책은 처음이라 생소하지만 흥미로웠다.
이 책은 사람들이 꼽는 휴식법 10가지를 역순으로 소개한다.
명상, 텔레비전 시청(모든 동영상 시청을 포함함), 잡념, 목욕, 산책, 아무것도 안 하기, 음악감상, 혼자 있기, 자연과 함께 하기, 독서.
공통점이 있다. 모두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이라는 것.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함께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지만 확실히 다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텔레비전은 내가 가장 즐기는 문화 형태의 하나일 뿐 아니라,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주된 방편이기도 하다. 나는 피곤할수록 더 텔레비전을 켠다. 두 발을 높이 올린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신체적인 노력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는다. 머리를 쓸 필요도 없다. 프로그램이 좋을 때는 완전히 몰입할 수 있다. 타인의 삶에 깊이 빠져 나 자신의 삶을 잊어버린다. 거실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다. 게다가 이 체험은 파트너와 공유가 가능하다. 파트너와 함께 앉아 흡족하게 텔레비전을 본다. 원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나눌 필요도 없다. 많은 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휴식 형태다. (p.54)
휴식법 랭킹 9위 텔레비전 시청.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대중화로 진짜 텔레비전 앞에 앉는 인구는 줄었지만 텔레비전이건 넷플릭스건 유튜브건 본질은 같다. 그렇게 보자면 텔레비전 시청이 1위, 최소한 3위 안에는 들어야 맞지 않나 싶다. 주변을 살펴보라. 모두들 스마트폰과 분리불안을 겪을 정도로 가까이 하고 있지 않은가. 카톡문자를 보내거나 다른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동영상 시청으로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따로 배울 필요도 없고 돈도 들지 않고, 그냥 보면 되는 텔레비전. 딱 좋은 휴식법인데 여유시간에 텔레비전을 보라고 추천하는 전문가는 없다. 그 반대는 많지만.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아동의 폭력성을 유발한다, 성인병을 유발한다 등등, 그들이 말하는 당장 텔레비전을 꺼야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억울하다. 지나치면 해롭겠지만 굳이 텔레비전이 아니라도 목욕이든 산책이든 뭐든 지나쳐서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텔레비전만은 유독 유해성이 강조되는 걸까? 저자는 텔레비전에 들러붙어있는 문화적 속물근성을 지적하며 기술 혁신이 이루어질 때마다 찾아왔던 불안에 대해 설명한다. 초창기의 소설이 긍정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고, 그 다음은 영화가 그랬고, 지금은 텔레비전이 홀대받는 중이라는 것이다. 공감한다. 스마트폰이 중요해진 요즘은 벌써 텔레비전의 해악보다 게임이나 소셜미디어의 단점을 부각시키고 있으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애증 관계를 맺고 있다. 바쁠 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애타는 동경의 대상이지만 정작 게을러도 될 때는 게을러지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게을러도 되는 자유 시간을 다른 활동으로 꽉꽉 채워버린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뭔가를 하는 것이다. (p.173)
휴식을 향한 도덕적 잣대질은 휴식이 아무것도 안 하는 형태를 띨 때 가장 가혹하다. 우리의 언어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태평하고 무심하고 속 편한 것으로 들리게 만들 만한 표현들을 고안해냈다. 늘어져 있기chilling, 빈둥거리기loafing around, 느긋하게 쉬기vegging out 같은 표현이다. 그러나 게으름을 다른 어떤 표현으로 칭하건 우리 현대인은 게으름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할까 봐 여전히 두려워한다. (p.177)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밈이된 현대판 바틀비들의 소망, 아무것도 안하기. 휴식법 랭킹 5위다.
내게 물어봤다면 당당히 1등 줬겠지만. 찜찜한 구석도 있다. 몸은 이불 속에서 늘어져 있어도 마음은 딴딴할 때가 많으니까. 좀 이따 출근해야 되는데, 청소해야 하는데, 읽은 책 리뷰도 써야해야하는데 하며 쓸데없는 걱정을 하느라고 마음이 편치 않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딱 일어나 부지런떨 의지도 없으면서 조급해지는 마음. 미라클 모닝이니 자기 계발이니 하며 바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통념들이 가만히 있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마음 편히 아무것도 안하기. 어렵다.
책을 읽는 시간이 큰 휴식이 되는 이유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독서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책은 다른 형태의 매체보다 통제가 더 용이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책을 읽는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경험하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p.331~332)
독서가 노력을 들여야 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휴식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독서 덕에 독자가 자신이 사는 세계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은 내 문제를 뒤로 제쳐둘 수 있고 몰입하던 생각 또한 어느 정도는 벗어버릴 수 있다. (p.336)
랭킹 1위는 독서다.
독서가 휴식이 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시간과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전능감, 타인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해방감, 그리고 책에 몰입해 마음껏 딴생각을 하는 기쁨. 책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까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아무리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라도 책만 있다면 나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곤 하니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보태자면 오래 몰입해도 상대적으로 죄책감이 적게 든다는 것과 게임이나 동영상에 비해 자극이 덜하다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일 하느라 바쁠 때는 여유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막상 휴일이라고 해서 온전히 쉰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일을 하지 않는 상태는 모두 ‘쉼’이라 불러야겠지만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휴식의 효과는 달라지는 것 같다.
그런데 한 주가 거의 지난 지금, 나의 휴식은 충분했을까. 이 책과 함께 했으니 랭킹 1위 휴식법은 제대로 지킨 셈이다. 효과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