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지(炸裂志)>의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화산 폭발로 쑹이현[嵩伊縣] 퓨뉴산[伏牛山] 주변이 갈라지고 터지자 그 곳에 살던 이들이 달아나 바러우[?樓] 산맥에 정착해 ‘자례[炸裂]’ 마을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지주인 주씨와 소작농인 쿵씨가 갈등을 빚고 다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쿵밍량[孔明亮]이 등장해 아내인 주잉[朱潁]과 권력을 다투면서 자례 촌(村)을 대도시로 성장시켜가는 과정이 그리고 있는 것이 이 소설이다. 물론 이를 위해 쿵밍량 부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물질적 가치가 우선하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성공 신화를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영화 <성공시대>(1988)의 주인공 김판촉(안성기 扮)처럼.
하지만 읽는 법은 다양하다.
첫째,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몬태규(Montague) 가문과 캐퓰렛(Capulet) 가문의 대립처럼 쿵가[孔家]와 주가[朱家]의 권력투쟁이라는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쿵밍량에 의한 자례 마을 흥망기(興亡記)로 읽을 수 있다.
셋째, 중국식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 혹은 신실주의(神實主義)가 어떤 것인지 음미하는 것이다.
첫째, 자례[炸裂] 마을의 쿵가[孔家]와 주가[朱家]의 투쟁
자례[炸裂] 마을의 주요한 가문으로 쿵가[孔家]와 주가[朱家], 그리고 청가[程家]가 등장한다. 각각 보았을 때는 무심코 넘기게 되는데, 한 데 모아보니 공자(孔子), 주희(朱熹) 혹은 주자(朱子), 정호(程顥)와 정이(程 ) 형제를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쿵가는 유교(儒敎)의 창시자인 공자(孔子)의 후손을, 주가는 성리학(性理學) 혹은 정주학(程朱學)의 완성자인 주희(朱熹)의 후손임을 자청하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더욱 부추키게 된다. 작가는 왜 쿵가[孔家]와 주가[朱家], 그리고 청가[程家]를 선택한 것일까
일단, <자례지[炸裂志]>의 내용을 살펴보자. 본격적인 이야기는 새똥 때문에 사형(死刑)을 선고받은 쿵둥더[孔東德]의 귀향에서 시작한다.
과거 농기구를 망가뜨려 ‘사회주의 기물 파손죄’로 감옥에 갇혔던 쿵둥더에게 뜻하지 않는 불행이 발생했다.
“어느 날,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가 몸을 수그리고 김을 맬 때 새똥이 등에 떨어졌다. 하얀 옷에서 땀과 합쳐진 새똥은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졌고 쿵둥더는 보름 동안 옷을 빨지 않아 내내 새똥 지도를 등에 그리고 다녔다. 그러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해 촌장(村長) 주칭팡[朱慶方]에게 고발했다. 주칭팡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공사에 알린 다음 현에도 보고했다. 결국 쿵둥더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중형[정확하게는 사형(死刑)]을 선고받았다.” [p. 25]
옷에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진 새똥 때문에 사형을 선고받다니!!!
이렇게 누가 고발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쿵가의 원한이 촌장인 주칭팡에게 갈 수 밖에 없다.
운이 좋게도, 아니 운이 나쁘게도 인가? 12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귀향한 쿵둥더의 둘째 아들 쿵밍량[孔明亮]은 도둑질로 만위안호가 되어 주칭팡을 쫓아내고 새로운 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를 마을 사람들의 가래침으로 질식사 시켜서 원한을 갚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마을을 떠난 주칭팡의 딸 주잉[朱潁]은 유흥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금의환향(錦衣還鄕)한 셈이다. 그리고 그 돈으로 산 촌장 자리를 넘기는 대가로 쿵둥더의 아들 쿵밍량[孔明亮]과의 결혼을 얻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잉은 자신의 유흥업소 종업원들을 이용해 쿵밍광의 가정을 파괴하고, 쿵밍야오를 군에서 나오게 했다. 나아가 시아버지인 쿵둥더도 복상사시킴으로써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이로써 쿵밍량과 주잉의 부부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당신 아버지는 쿵씨 때문에 가래침에 숨이 막혀 돌아가셨지. 우리 아버지는 당신 주씨 때문에 돌아가신 뒤에 8대가 흘러도 씻지 못할 가래침에 뒤덮였고. 그러니 우리의 은원관계는 끝났어.” [p. 341]
둘째, 쿵밍량에 의한 자례 마을 흥망기
새똥 때문에 12년간 감옥살이를 하다가 귀향한 쿵둥더는 네 아들에게 “모두 나가거라. 지금 당장 나가서 각기 동서남북으로 걸어가. 돌아보지 말고 계속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주워라. 그 물건이 평생 너희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 [p. 28]라고 말한다. 마치 돌잡이하는 것 같은 이 말은 일종의 예언처럼 들어맞았다.
분필을 주운 첫째 쿵밍광[孔明光]는 교육자가 되었다.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인장석(印章石)을 주운 둘째 쿵밍량[孔明亮]은 권력자가 되어 자례 마을을 지배하게 된다. 총과 대포를 싣고 지나가는 훈련 중인 군용차를 만난 셋째 쿵밍야오[孔明耀]는 군인이 되었다. 다만 애매했던 것은 막내 쿵밍후이[孔明輝]였다. 고양이를 만났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일종의 달력인 책력(冊曆)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자례 마을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착한 사람이었던 그는 책력에서 알게 된 정보로 파국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끝내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도둑질로 마을 첫 만위안호가 되어 자례 촌장 자리를 얻은 것이 쿵밍량이 자수성가(自手成家)하는 첫 걸음이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백 명이 살던 자례 마을을 발전시켜 촌장(村長), 현장(縣長), 진장(鎭長)을 거쳐 시장(市長) 그것도 중국의 대형도시인 직할시의 시장이 되었다. 수백 명이 살던 어떻게 보면 비전을 가진 리더라고 볼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허용되고, 그러한 행위가 장려되는 상황이라면 자례 마을이 자례 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쿵밍량은 직할시 승격을 위해 세계 최대의 공항과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철이 필요했다. 이를 일주일 내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셋째 동생 쿵밍야오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쿵밍야오에게 자신이 거느린 사설 군대를 동원해서 일주일 안에 이를 건설하는 대가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다리 5천 개와 손가락 만 개, 그리고 사흘간 자례 시민을 빌려주는 공문을 주었다. 그리고 별거 중인 아내 주잉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자례시의 승격을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직할시 승격에 성공했지만 그 끝은 파멸이었다.
“형수로서 하는 말인데, 대학을 졸업하면 자례로 돌아오지 마요. 나랑 둘째 형이랑 결혼한 이상 자례는 조만간 형과 내 손에 망할 거야.” [p. 176]
주잉이 막내 시숙(媤叔)인 쿵밍후이[孔明輝]에게 했던 말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셋째,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신실주의(神實主義)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면 흔히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이하 ‘마르케스’)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마르케스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문학비평용어사전>(2006)에 의하면, 마술적 사실주의 소설들의 특징은 “사실적인 것과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인 것, 시간적 흐름 기법, 꼬인 미로형의 서사와 구조, 꿈과 신화와 요정이야기들의 다양한 사용, 표현주의적이거나 심지어는 초현실주의적인 기술, 불가해한 박학다식함, 경이와 느닷없는 충격, 공포와 불가해함 등을 뒤섞고 병치한다”는 것에 있다고 한다.
라틴 문학에는 문외한이라서 이런 설명만으로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해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러한 문학 사조가 라틴아메리카와 같이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독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표현이 환상적이거나 마술적인 것의 도입으로 순화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검열과 작가의 양심 사이의 일종의 타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례진장 임명장을) 아홉 번을 읽었을 때 그는 책상 위에서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을 발견했다. 그 아스파라거스는 날이 춥고 물이 부족해, 물을 주면 화분 속에서 물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 하릴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밍량은 가늘고 자잘한 잎이 순식간에 다시 황록색을 띠는 것을 보았다. 아스파라거스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공문 두 부를 아스파라거스 위에서 흔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 잎이 후드득 떨어지고 가느다란 싹이 쑥쑥 올라왔다.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아스파라거스에게 공문을 읽어줬다. 그러자 아스파라거스가 그의 눈앞에서 뭉텅뭉텅 파래지더니 옅은 비취색을 뿜어냈다.” [pp. 190~191]
“밍량이 귀뚜라미를 보고는 돌연 정색하며 아이처럼 “전부 나오라고 해”하고 말했다. 귀뚜라미가 그를 보다가 풀잎에서 뛰어내렸다. 밍량이 소리쳤다.
“모든 곤충과 새들은 나와! 봄이 왔으니 모두 내 앞으로 나와, 모두 나와!”
“나는 쿵 시장이다, 모두 내 앞으로 모여!”
“나는 쿵 시장이다, 모두 내 앞으로 나와!”
매우 빠르게, 회랑 모퉁이와 5중 사합원의 단층집에서 수십 명의 비서, 정원사, 전기공, 수도공, 경비, 직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모두 놀란 눈으로 허공에 서 있는 쿵 시장을 보았다. 아무도 무슨 일인지 몰랐다. 시장한테 뛰어가야 할지, 아니면 시장이 왜 그러는지 알아본 뒤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불안과 당혹이 가득한 얼굴로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중략 ~
정원의 참새들도 어디선가 날아와 풀밭과 나뭇가지에 앉아 짹짹 울었다. 다람쥐들도 숲속 깊은 곳에서 다시 시장 앞으로 달려와 오르락내리락 나무를 탔다. 텁수록한 꼬리가 제 몸통보다도 두꺼웠다. 귀뚜라미도 시장의 불호령과 봄날의 따스한 부름에 수천수만 마리가 몰려왔다. 풀에 올라서거나 누워 있다가 몇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귀뚤귀뚤 울기 시작하자 수백수천 마리의 귀뚜라미가 따라서 울었다.
~ 중략 ~
시장 밍량은 정원의 조경석에 올라가 눈앞의 상황을 보고 자못 감격했다. 웃음을 띠었지만 눈물이 사방으로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자례가 그의 것이었다. 세상이 그의 것이었다. 곤충과 새조차 시장의 말을 들었다.” [pp. 567~569]
<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상의 땅을 무대로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렸는데, <작렬지>도 자례라는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쿵둥더 일족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구조에 앞에서 인용한 글처럼 사실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이 뒤섞인 <작렬지>는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작렬지>의 저자인 옌롄커(閻連科, 1958~ )는 자신의 글이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니라면서 반발한다. 오히려 그는 신실주의(神實主義)라는 다른 용어를 내세운다.
그렇다면 신실주의는 무엇일까
“신실주의는 독특한 문학 기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려낸다. 또한 문학이 영혼과 정신(생활이 아니라)의 길을 걷도록 함으로써 깊은 곳에서 현실과 삶을 폭발시키는 핵에너지를 찾도록 한다.” [p. 656]
아무리 봐도 비슷한 얘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 같은데……. 책장을 덮으면서도 마술적 사실주의와 신실주의의 차이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면 알 수 있을까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자음과 모음으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이책은>
리뷰어클럽 서평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옌롄커 (Yan Lianke,閻連科) ---발췌하다 1958년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 때부터 28년을 군인으로 살았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다수의 장편소설과 중단편소설, 산문 등을 발표했다. 1979년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중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天麻的故事)」를 실으며 데뷔했다. 그후 1985년 허난대학 정치교육학과를 거쳐 1989년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에 입학하면서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지금까지 11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비롯한 다수의 수필과 산문을 발표했다.
작가의 주요 작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출간 즉시 당국으로부터 판금조치와 함께 전량 회수된 일화로 유명하다. 2005년 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 花城]에 게재된 이 작품은 마오쩌둥의 사상과 위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출간 되자마자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압적인 탄압이 국내외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오히려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켜 자국 내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몰래 돌려보는 금서로, 국외로는 미국과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소개되었다.
제 1, 2회 루쉰문학상과 2014년 프란츠카프카문학상, 홍루몽상 최고상을 비롯해 20여 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현재 옌롄커는 중국작가협회 위원, 북경시 작가협회 전업 작가로 활동하면서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책읽고 느낀 바>
앞전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읽었기에 기대감으로 펼쳤다. 술술 잘 읽힐걸 안다해도 664쪽의 위용은 긴장되었다. 방대한 부피지만 책은 잘 펼쳐지고 북끈까지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저자의 특징은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시적으로 느껴지는 서정적인 문구를 잘 구사한다는 것. 읽다보면 섬세하다는 느낌을 자주 갖게 된다.
중국 소설을 읽다보면 특징이 있다.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럽다. 허장성세며 배포랄 수도 있다. 워낙이 방대한 대륙의 기질을 타고나선지 글에서도 뚝딱 해치우는 말 같지 않은 뻥이 수두룩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고 1000개 병상을 갖춘 대형 병원 2곳을 일주일만에 뚝딱 건설한 중국이 아니던가. 병원의 수준이 어떻고 저떻고는 다음 문제고, 단시일에 해낸 게 저력이다.
콜롬부스가 달걀 쌓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어는 차후 문제다. 누구나 깨지지 않는 상태로 세우자니 시도를 못하는 것일 때 깨짐을 감수하고라도 해내니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 많은 인력이 삽시간에 달라들어 이뤄낼 수 있는 민첩함과 신속함이 이 책 안에 고스란히 있다. 저자의 필력에 의해서 순식간에 탄생한 자례직할시의 흥망성쇠기는 흥미롭고 대단하다.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화산 주변에 살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가 화산 입구에서 100여 리 떨어진 바러우산맥으로 달아나 논밭을 일구며 정착했다. 이후 촌락을 이루게 된 사람들은 땅이 갈라지고 터져 달아났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을 작렬하는 마을(炸裂誌)이라고 지었다. 19~20 페이지
자례촌의 양대 파벌인 쿵씨와 주씨. 촌장인 주칭팡에겐 딸 하나가 있었는데 주잉이라 불렸다. 쿵둥더에게는 4명의 아들 쿵밍광, 쿵밍량, 쿵밍야오, 쿵밍후이가 있었다.
...... 어느 날, 쿵밍량의 아버지 쿵둥더가 몸을 수그린 채 김을 맬 때 새똥이 등에 떨어졌다. 하얀 옷에서 땀과 섞인 새똥은 중국 지도 모양으로 번졌고 쿵둥더는 보름 동안 옷을 빨지 않아 내내 새똥 지도를 등에 달고 다녔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고 촌장(村長) 주칭팡에게 고발했다. 주칭팡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공사에 알린 다음 현에도 보고했다. 결국 쿵둥더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중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끊임없는 노동 교육에 시달리던 그가 마침내 출소해 조용히 마을로 돌아온 뒤, 자례촌은 비로소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 25 페이지
새똥 지도가 중국 모양이면 무슨 상관이람 싶지만 불경죄 정도가 되나 보다. 보름 동안 옷을 빨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걸 고발한 것도 우스운데 현에 보고한 촌장이라니. 우리네 상식으로는 좀 이해불가지만 그렇다치고. 그리하여 감옥에 갇히는 불상사가 생겼는데, 출소를 했다. 쿵둥더는 아들 넷을 불러놓고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거라며 지금 당장 나가라 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동서남북으로 가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주우라고. 평생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출소한 아버지가 보름 만에 처음으로 웃으며 말하자 다들 미쳤다고 생각하며 움직이지 않자 세 번 연속으로 마지막에는 애원하듯 말했다.
첫째는 동쪽으로 갔는데 분필을 주웠다. 둘째는 서쪽으로 가자니 어떤 대문 앞을 지날 무렵 문을 열고 나오는 주잉과 마주친다. 하필 둘이 만났다. 밍량은 주잉에게 네 아버지를 목졸라 죽이고 싶었으나 그만두겠다고 하자, 주잉은 재수 옴 붙었지만 첫 번으로 만났으니 하는 수 없이 시집가겠다고 했다. 귓전으로 들으며 걷는 밍량에게 청씨 집안 딸 청징이 나왔고...한참을 걷던 밍량은 발바닥을 찌르는 물건을 집어드는데 인장석(印章石)으로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채였다. 셋째는 남쪽으로 가다 군용차와 대포를 만났으며 넷째는 북쪽으로 가다 온순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고 했는데 나중에 기억을 더듬으니 책 한 권을 집어서 나무둥치에 던졌음이라.
분필을 잡았던 첫째는 초등 교사의 길로, 셋째는 요즘식으로 직업군인이 되었다. 넷째는 온순한 성품이나 줏대가 없었다. 둘째는 추진력 대단한 강한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야심이 있었다. 왠만한 일은 양에 차지 않았고 좀더 높은 곳을 향해 늘 시선을 뒀다. 자례촌에 만위안호 육성 공문이 내려졌다. 연수입 1만 위안 이상인 가정이 되기 위해 다들 고군분투하는데 밍량만 태평천하였다. 그럼에도 맨 먼저 위업을 달성하며 앞서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공을 치하하며 향장이 촌장에게 만 위안호 열 명을 만들라는 특명을 내리지만 이수하지 못한 주 촌장은 곤경에 처한다. 밍량이 촌장에게 가래침을 뱉을 때마다 돈을 지불한다고 부추기자 너도 나도 가래침 공격에 가담했고 촌장은 앉은 채로 가래침에 숨이 막혀 죽었다.
만 위안호 열 명이 아니라 온 마을을 부흥시키면서 촌장이 된 둘째 밍량. 밍량이 돈을 번 기술은 훔치기. 열차가 어느 구간에서 느릿해지면 짐을 끌어내려 장사를 했던 것. 그 노하우를 마을 주민들에게 전수하면서 마을주민 모두가 합심해 떼도둑질을 했다. '훔치다' 라는 말을 절대 쓰지 못하게 하며 '내리다' 로 통일시켰다. 도둑질 하러 가는 이에게 "출근하나?" 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도둑질', '훔치다', '털다' 라는 말을 사용한 이는 월급에서 감액하니 누구나 금기어가 되었다. 한 마을이 똘똘 뭉쳐서 도둑질을 떼로 벌이지만 어떤 누구도 알 턱이 없으면서 자례촌은 자례현으로 승격된다. 촌장 밍량의 막강한 지도력 덕분이었다.
자례촌장에서 자례현장이 되고, 자례직할시장이 되는 과정은 포복절도할 웃음이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책을 읽다보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노인이 행동하는 게 정당성이 있어뵈고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그게 맞는 길 같은 착각이 든다. 말도 안되는 줄 알면서도 믿어주고 싶은 위트에 타협하게 된다. 그러자면 방대한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기 마련이고.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서양의 능청과 천연덕스러움이 있다면 작렬지는 그와 비슷하지만 좀더 천연덕스럽고 능청맞다. 밍량이 마음먹은대로, 생각키우는대로 다 된다. 뚝딱 순식간에.
저자의 글력에 탄복하게 되는 건 상황 설명에서 어김없이 나타난다. 가령 밍량이든 주잉이든 심기가 언짢다면 나무와 풀, 심지어는 조류까지도 금새 변화한다.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좌지우지함을 암시하며 쥐락펴락함을 그렇게 표현해낸다. 쿵시장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만물이 다한다. 그만큼의 막강한 권력자임을 부각시키는게 대단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하루밤새 혹은 일주일새 뚝딱 지어지고, 사라지고. 어떻게든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밍량에게 거칠 건 없다. 이름 없는 인장석을 주운 자의 앞날은 창창하기만 하다. 재수 옴 붙었으되 결혼하면서 그녀의 능력까지도 흡수하게 되는 밍량.
서술 방식부터 예사롭지 않게 기술된 작렬지는 대단한 책이다. 자례촌에서 자례현, 자례직할시로 승격되는 과정, 과정에서 모든 공업, 산업, 유흥업, 건설업 등 총망라되어 나온다. 대단한 기획력이요 탄탄한 스토리다. 허구일지라도 사실인 것 같은 그런 도시가 실제할 것 같은 현장감이 있고 사실인 것만 같다. 술술 읽히는 자례시의 흥망성쇠기는 한바탕 잘 꾼 꿈 같다. 생로병사가 있는 인간사 같다. 궤도에 올라서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브레이크가 파열된 전차처럼 기계적이 되어가는 쿵 시장. 더 나아갈 마음은 여전하나 몸은 어느새 중년이고 저기가 고지이거늘. 조금만 더, 이게 마지막 고비인데. 죽어야만 끝나는 권력욕이었나니.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야심과 욕심 앞에 살아남을 수 있는 도덕과 정의가 있을까요? 쿵씨 가문의 둘째 쿵밍량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운명처럼 만난 인장은 그를 위로 갈 생각에만 사로잡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도둑질로 순식간에 만위안을 가진 만위안호가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종의 물질만능주의 정책과 맞아 떨어진 그의 행보는 아버지의 원수인 주칭팡을 몰아내고 자신이 촌장이 되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냈고 마을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여 주칭팡을 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주칭팡의 딸 주잉은 복수를 다짐하며 마을을 떠납니다. 몸을 파는 일을 통해 엄청난 부와 인맥을 손에 쥐고는 다시 돌아와 그의 야망을 방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그녀의 복수심과 그의 야망, 그리고 둘의 욕심은 자례촌을 자례진으로 만들고 자례현이 되고 자례시가 되어 마지막에는 시 중에서도 가장 큰 중국의 직할시까지 올라가게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합니다.
촌장이 된 쿵밍량의 지휘 아래 지나가는 기차의 물건을 훔쳐 돈을 벌기 시작한 마을 사람들, 그 와중에 기차에서 떨어져 죽은 자식을 붙잡고 촌장을 향해 분노를 표하던 마을 사람들은 촌장이 분배해주는 큰 돈 앞에 결국 수긍하게 됩니다. 심지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주잉을 통해 딸들이 몸을 파는 것이 부끄럽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그 딸들이 가져다주는 큰 돈 앞에서는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쿠밍량의 생각인 "돈이면 다 된다. ... 고난 속에서 똑똑히 배운 게 있어. 젠장, 지금 같은 시절에는 무슨 짓을 해서든 돈을 벌어야 한다고. 돈이 있으면 어르신, 사모님이 되지만 돈이 없으면 어린놈, 쥐새끼밖에 되지 않아. 돈이 있으면 진장이나 현장도 말을 듣지만 돈이 없으면 진장과 현장은 우리를 하바리, 어린놈으로 여길 뿐이야." 와 주잉의 생각인 "나를 뽑는 게 아니라 돈을 뽑는 거지. 나는 돈이 아주 많거든." 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도 결국 자례촌을 자례직할시로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무덤 앞에서 울며 사실은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하던 마을 사람들의 시간도 그렇게 잊혀져 갑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잉은 이미 그 끝을 알고 있었지만 복수심에 그녀도 결국 멈추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운명대로 군에 갔던 셋째 쿵밍야오가 군에서만 살다가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경험하고는 "돈을 이렇게 조금 쓰고도 큰일을 처리하다니. 그렇다면 100만, 천만 위안이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와 같은 자각을 하며 전에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돈과는 다른 환상에 사로잡혀 마지막에 중국의 직할시를 이루어낸 둘째 형 쿵밍량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나마 쿵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올바름을 잃지 않고 있던 넷째 쿵밍후이는 그동안 무엇을 해야 될 지 모르고 살다가 자신의 운명이 길에서 만났던 그 고양이가 아니라 사실은 오래된 책력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두 눈을 반짝이며 그 답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알아낸 것은 그동안 물질만능주의에 가려져 잊고 있던 일종의 정의라던가, 도덕이라던가, 효와 같은 올바름에 대한 회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운명과 해야 할 일이 확고해지자 그는 첫째 형 쿵밍광의 회복에는 성공했지만 쿵밍량과 쿵밍야오에서는 다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책 표지에 이미 결과가 써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닌 범위에서 조금 적어보자면, 네, 폐허가 됩니다. "한 도시의 번영이 그렇게 끝이 났다. 휘황찬란한 역사가 일단락을 고했다."
저자는 작렬지라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게 된 역사지리서를 통해 중국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툭하면 등장하는, 환상같기도 하고 마법같기도 한 특유의 표현들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그 유명한 소설 '백년의 고독'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맛도 좋습니다. 분량은 길지만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읽어나가게 하는 글재주 덕분에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어디론가 여행을 갔다온 기분도 듭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해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663페이지의 책 한권을 읽었다.
옌롄커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라 명시되어 있고, 1958년에 태어나신 작가님은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며, 작품은 세계 20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고 한다.
1장 프롤로그 : 자례시 출신인 저자는 자례시에서 시지市誌 를 수정.편찬하며 자례시지방지 명칭을 작렬지炸裂誌 라 확정하여, 본인에게 새 집필이 의뢰되었다고 한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현지 출신의 저명한 작가인 옌롄커 에게 고액의 원고료가 지불되고, 그는 고향에서 방대한 자료를 열독하고 조사 탐방한후 초고를 완성하지만, 시정부와 각계각층 인사들이 작렬지를 심의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고, 성토와 욕설이 난무하면서 비공식 시지이자 기서로 남는다. 그러나, 책은 중국어로 출판되었고, 독자들이 거부하면서 고향 땅 자례시에서 저자는 영구 퇴출을 명받았다고 한다.
한 도시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어떠하길래, 그는 영구퇴출이 되었을까?
원.명.청.중화민국의 정치사를 겪은 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뒤, 자례촌의 역사는 새로운 중국의 발전과 진통을 고스란히 반영한 축소판이 되었다. -p23
주씨 지주가 처첩 셋을 소작인 세명에게 주었는데, 그중 셋째부인이 소작인 쿵씨의 부인이 되었고,
그래서 쿵둥더가 태어나고, 그 대단한 쿵씨 가문과 작렬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p24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자례촌은 쿵씨와 주씨의 양대파벌이 시작되었다.
쿵둥더의 옷에 새똥이 떨어지고, 중국지도모양의 새똥지도를 달고 다녔다는 이유로, 촌장 주칭팡에게 고발당해
감옥살이 12년만에 조용히 귀환한 쿵둥더. 사형선고를 받은 그가 돌아오자 가족은 모두 놀랐다.
혈색을 되찾은 쿵둥더는 4명의 아들을 불러, 세상은 변했고, 토지분배를 말하며, 자례는 주씨와 청씨가 끝나고 쿵씨세상이 된다고 한다. 쿵밍광, 쿵밍량, 쿵밍야오, 쿵밍후이에게 당장 밖으로 나가 각기 동서남북으로 걷다가
무엇을 만나거든 허리를 굽혀 줍고, 그 물건이 평생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이른다.
이후 쿵밍량의 야망이 촌장 주칭팡을 죽이고, 그의 외동딸 주잉은 아버지를 묻고 마을을 떠난다.
쿵밍량은 촌을 현으로, 진으로, 거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의 중심에 서고, 촌을 떠난 주잉은 화류계 사업으로
부를 쌓아 쿵밍량에 맞선다.
이렇게 건조하게 줄거리를 이야기 하면 이 책은 앙꼬없는 진빵이다.
이 책을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장면마다 펼쳐지는 황당함 때문이다.
중국 무협영화를 볼때의 황당하면서도 매혹되는 장면, 주성치 영화의 황당하면서 설득되는 그런 느낌의
묘사들이 가득하다.
쿵밍량이 자례진의 1대 진장에 임명된 임명장을 아홉 번을 읽자
그는 책상 위에서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을 발견했다. 그 아스파라거스는 날이 춥고
물이 부족해, 물을 주면 화분 속에서 물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 하릴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밍량은
가늘고 자잘한 잎이 순식간에 다시 황록색을 띠는 것을 보았다. 아스파라거스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공문 두 부를 아스파라거스 위에서 흔들어 보았다. 그랬더니 말라버린 아스파라거스 잎이
후드륵 떨어지고 가느다란 싹이 쑥쑥 올라왔다.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아스파라거스에게 공문을 읽어줬다. 그러자 아스파라거스가 그의 눈앞에서 뭉텅뭉텅 파래지더니 옅은 비취색을 뿜어냈다. -p191
신화도 아니고, 설화도 아니고..
"큰일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카펫 위에서 양반다리로 앉아 신문을 보던 현장이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
"자네가 어떻게 알아?"
"괘종시계가 벽에서 떨어졌습니다. 망가진 것도 아닌데 시침과 분침이 전부 가지 않았습니다."
-p311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하는게 아니라, 방백을 한다.
질문에 답을 주지 않고, 서로 자기 얘기만 한다.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뭔지, 무엇에 홀린듯,
읽기를 멈추지 못하고 다 읽었다.
19장 편집장후기-에필로그: 저자는 원고를 인쇄해 비행기를 나서며 전용차를 타고, 영빈관에서 스위트룸에, 연회까지, 온갖 대우를 다 받는다. 그리고, 다음날 쿵시장은 그를 불러, 라이터를 켜 작렬지의 초고를 태워버린다..?!
사실, 1장 프롤로그를 분명히 기억한다면, 작가의 노련함에 더 매력적인 독서가 되었을 텐데, 읽으면서 프롤로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작가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신거에요? 라고 내내 질문하게 되는, 묘한 소설이었다. 나의 독서력은 어디가고,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못하는 나의 한계로 잠시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신실주의 라는 문학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현실은 새로운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역사와 실재가 이른바 신실주의라는 문학의 탄생을 촉박하고 있다. 신실주의는 독특한 문학 기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실을 드러내고 가려진 진실을 들추며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그려낸다. -p656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래서, 그런 느낌이 나는 거였다.
읽는내내 피식 웃음도 나고, 롤러코스터같은 전개와 내가 왜 끝까지 읽고 만거지? 등등
별별 생각들을 하며 독특한 독서를 하게 만든 작렬지 였다.
문득, 중국어로 된 원작을 읽으면 한자의 뜻에 따라 번역판으로 읽을때와 무척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원서가 대한 갈증을 나게 하는 책들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