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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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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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역사이론/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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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고고학은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1 | 2019.11.17 리뷰제목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00만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과거에 대한 정보와 존재를 찾아 헤맨다. 고고학은 바로 이러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학문으로 발전했으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고학의 역사는 250년에 불과하다. 지금은 인류의 역사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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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00만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하여 우리는 과거에 대한 정보와 존재를 찾아 헤맨다. 고고학은 바로 이러한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학문으로 발전했으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고학의 역사는 250년에 불과하다. 지금은 인류의 역사를 포괄하는 학문으로 발전되었지만 초기에는 고대문명을 발견하기 위해 혹은 보물을 찾기 위해 낯선 땅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에 나선 사람들의 발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열정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벌어진 발견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류학자이자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이 책에서 고고학이 태동하던 18세기부터 시작해 중요한 발굴이나 발견, 유적발굴의 기술, 체계 등 고고학의 역사를 40개의 챕터로 구성하여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고고학이 중요한 이유는 문헌기록 이전의 인류역사, 즉 선사시대의 인간사회 변화를 연구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편의 거대한 모험이야기, 혹은 인류의 역사를 개괄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고대 유물에 대한 관심으로 수집에 나선 호고가들은 지중해의 여러 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일강유역의 도굴작업에 열을 올렸다. 고대 이집트의 고분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아시리아 왕들의 궁전을 발굴한 그들은 조각품등 예술품을 떼어내 자기들의 나라로 가져갔다. 당시 그들에겐 오직 전리품과 그로 인한 명성과 부만이 관심사항이었다. 그러다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주먹도끼와 멸절동물의 뼈가 한군데에서 발견되고,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원전 4004년에 창조가 일어났고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6000년이라는 성경의 창세기를 믿던 시절, 지질학과 종교가 날카롭게 충돌하기 시작했지만 다윈의 선택이론과 원시인류의 두개골과 팔다리 뼈 등의 발견은 인간이 6000년 전 이전에도 살고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호고가들의 발굴은 거칠었고, 자신들이 발굴하기로 마음먹은 발굴품들을 찾기 위한 유적파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은 박물관의 유물을 목록화하여 문헌기록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의 시대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삼시대체계로 구분하였고, 과거에 대한 정보와 유물을 학문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고고학자들은 보다 섬세하고 조직화된 조사발굴로 고고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어 20세기 중반 연대측정법의 발견은 문자문명 이전의 인류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늘날 고대 유적의 발굴은 개별유적뿐만이 아니라 고대의 경관 전체를 조사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조그만 유물들을 통해 보편적인 인류사회의 변화에 주목하기도 한다. 또한 위성사진이나 지표투과레이더 등의 장비를 동원하여 유적을 찾고 제한적인 발굴 혹은 비발굴 고고학을 통해 유적과 주변을 연구한다.

 

이처럼 저자는 250년 전 지구 곳곳에서 고대유물과 유적을 찾아 나선 초기의 호고가들로부터 고고학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유물을 찾아 유럽의 봉분을 팠던 초기의 발굴가들, 1800년대 고대 이집트의 발견으로 시작된 이집트학, 19세기 초 선사시대의 편년순서가 파악되면서 19세기 중후반 시작된 정밀조사, 그리고 현대의 고고학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는 고고학자들의 모험과 발굴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하던 고고학이 단지 그 겉만 알고 있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음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최근의 고고학이 역사적으로 주목받은 유적이나 유물에서 벗어나 그곳에 살았던 보통사람들의 삶을 찾으려 한다는 데에 감명을 받았다. 유적이나 유물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 부와 권력을 지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처음 고고학이 시작되면서 유물과 유적의 발견이 곧 고고학이라는 전통에서 벗어나, 고고학은 물건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라는 저자의 말이 그래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고고학은 발견에 대한 학문이다. 유물이나 유적이든, 아니면 주위 경관이든 그것들을 추적하고 연구하여 선사시대의 역사와 우리 행성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회의 변화들을 밝혀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그러기에 고고학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인류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나침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이언 페이건이 들려주는 고고학자들의 놀라운 발견에 얽힌 이야기들은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험심과 열정에 불을 붙여주기에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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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고고학의 역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19.10.25 리뷰제목
고고학의 역사브라이언 페이건/성춘택소소의책/2019.10.18.sanbaram   우리는 고고학을 통해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연구와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고고학의 발굴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고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적 발굴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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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브라이언 페이건/성춘택

소소의책/2019.10.18.

sanbaram

 

우리는 고고학을 통해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연구와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고고학의 발굴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고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적 발굴법이 발달하고 시대 구분이 정학해지기까지의 흥미로운 역사적 발굴 사례를 소개하는 고고학의 역사의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고고학 조사를 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켐퍼스의 인류학과 명예교수다. <고고학개론>, <기후, 문명을 지도를 바꾸다>,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 <위대한 공존등 수십 권의 저서가 있다.

 

고고학의 역사400년 전의 우연한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21세기의 체계적인 연구조사단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고고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고고학의 역사를 말한다. 고고학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 대표적인 발견과 기법, 그리고 의욕이 넘쳤던 인물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고고학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탄생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에 기록된 창세기를 실제로 믿었던 그때, 프랑스의 외교관 폴 에밀 보타와 영국의 탐험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이라크 북부에서 성서에 기록된 니네베를 찾아나섰다.(p.18)” 이렇게 시작한 고고학지만 현대 과학으로서의 고고학은 그저 유적을 탐사하고 발굴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야외뿐 아니라 실험실에서도 수많은 사실을 찾는다. 발굴 방법이나 도구 또한 놀랄만치 많이 발달했다. 그동안 고고학자의 상징은 흙손이었다. 그러나 이제 열기구 풍선이나 드론, 위성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리모트센싱장비 역시 흙손만큼 고고학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고고학의 역사에서 저자는 고고학의 역사라는 창을 통해 엄청나게 깊고 다양한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고고학이 학문으로 발돋움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발굴이나 사건,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40개 주제를 선정, 19세기의 소박한 고고학 행위에서 시작해 오늘날 과학적 학문 분야로 발돋음하기까지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보물찾기와도 같은 땅굴 파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과학적 조사와 분석법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유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p.394)” 고고학이란 학문은 과거를 돌아보고자 하는 호기심, 미지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탐험으로 시작했지만, 층위 발굴과 유물형식 분류와 편년,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같은 여러 분야의 도움과 협력으로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깊이의 인류 역사를 밝혀냈다고 말한다. 매머드 같은 절멸 동물의 뼈와 함께 나온 주먹도끼를 두고 벌어진 논란을 딛고 선사시대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인류의 역사는 성서에 기록된 6,000년이 아니라 300만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원을 가지고 진화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기후변동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가뭄을 맞아 도거랜드에 사는 작은 사냥꾼 무리가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기후변동으로 고대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지 등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대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고고학은 늘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연구 자료로 삼는 증거의 층일 뿐이다. 고고학은 순수한 발굴자로 시작했으며 놀라운 발견물이나, 때로는 지식을 얻고자 했다. 대부분의 경우 문명을 선호했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기원부터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참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p.383)” 과거는 우리 모두의 곁에 있다. 고고학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다음에 고고학 유적을 찾게 된다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페이건이 강조하는 것은 고고학이 물건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는 점이다. 고고학은 유물에 대한 학문이라는 전통이 강조되어 왔다.(p.397)”고 말하는 역자의 말처럼 고고학은 과거 인간 행위의 물적 잔재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만, 유적과 유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과거 인간 행위와 문화, 그리고 역사의 전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이론적 정교함과 방법론적 엄격함이 필요한 것이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고고학 발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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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고고학의 역사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23.05.14 리뷰제목
고고학의 역사 브라이언 페이건/성춘택 소소의책/2019.10.18.   우리는 고고학을 통해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연구와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고고학의 발굴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고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적 발굴법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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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브라이언 페이건/성춘택

소소의책/2019.10.18.

 

우리는 고고학을 통해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알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연구와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고고학의 발굴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고학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래 된 것도 아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적 발굴법이 발달하고 시대 구분이 정학해지기까지의 흥미로운 역사적 발굴 사례를 소개하는 고고학의 역사의 저자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아프리카에서 고고학 조사를 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켐퍼스의 인류학과 명예교수다. <고고학개론>, <기후, 문명을 지도를 바꾸다>, <뜨거운 지구, 역사를 뒤흔들다>, <위대한 공존등 수십 권의 저서가 있다.

 

고고학의 역사400년 전의 우연한 관찰로부터 시작하여 21세기의 체계적인 연구조사단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고고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고고학의 역사를 말한다. 고고학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된 대표적인 발견과 기법, 그리고 의욕이 넘쳤던 인물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고고학은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탄생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서에 기록된 창세기를 실제로 믿었던 그때, 프랑스의 외교관 폴 에밀 보타와 영국의 탐험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는 이라크 북부에서 성서에 기록된 니네베를 찾아나섰다.(p.18)” 이렇게 시작한 고고학지만 현대 과학으로서의 고고학은 그저 유적을 탐사하고 발굴하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야외뿐 아니라 실험실에서도 수많은 사실을 찾는다. 발굴 방법이나 도구 또한 놀랄만치 많이 발달했다. 그동안 고고학자의 상징은 흙손이었다. 그러나 이제 열기구 풍선이나 드론, 위성으로 작동하는 다양한 리모트센싱장비 역시 흙손만큼 고고학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고고학의 역사에서 저자는 고고학의 역사라는 창을 통해 엄청나게 깊고 다양한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고고학이 학문으로 발돋움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발굴이나 사건, 그리고 인물을 중심으로 40개 주제를 선정, 19세기의 소박한 고고학 행위에서 시작해 오늘날 과학적 학문 분야로 발돋음하기까지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보물찾기와도 같은 땅굴 파기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과학적 조사와 분석법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유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p.394)” 고고학이란 학문은 과거를 돌아보고자 하는 호기심, 미지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탐험으로 시작했지만, 층위 발굴과 유물형식 분류와 편년, 그리고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과 같은 여러 분야의 도움과 협력으로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깊이의 인류 역사를 밝혀냈다고 말한다. 매머드 같은 절멸 동물의 뼈와 함께 나온 주먹도끼를 두고 벌어진 논란을 딛고 선사시대가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인류의 역사는 성서에 기록된 6,000년이 아니라 300만 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원을 가지고 진화한 것임이 밝혀진 것이다.

 

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기후변동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가뭄을 맞아 도거랜드에 사는 작은 사냥꾼 무리가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기후변동으로 고대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지 등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대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고고학은 늘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연구 자료로 삼는 증거의 층일 뿐이다. 고고학은 순수한 발굴자로 시작했으며 놀라운 발견물이나, 때로는 지식을 얻고자 했다. 대부분의 경우 문명을 선호했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기원부터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 참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p.383)” 과거는 우리 모두의 곁에 있다. 고고학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만약 다음에 고고학 유적을 찾게 된다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바란다고 저자는 말한다.

 

페이건이 강조하는 것은 고고학이 물건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에 대한 학문이라는 점이다. 고고학은 유물에 대한 학문이라는 전통이 강조되어 왔다.(p.397)”고 말하는 역자의 말처럼 고고학은 과거 인간 행위의 물적 잔재를 연구 대상으로 삼지만, 유적과 유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과거 인간 행위와 문화, 그리고 역사의 전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이론적 정교함과 방법론적 엄격함이 필요한 것이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고고학 발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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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고고학의 역사 - 브라이언 페이건 평점9점 | g*******7 | 2019.10.30 리뷰제목
딱딱한 이미지의 학문 중에서 누구나 한번쯤 동경 또는 흥미를 갖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고고학'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통하여 밀림과 사막에서의 보물을 발굴하는 장면이라든지 실제 요르단의 도시유적인 페트라를 배경으로 한 모험은 막연하게나마 고고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한 영화는 물론 어렸을 적에 연꽃 문양의 벽돌들로 빼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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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이미지의 학문 중에서 누구나 한번쯤 동경 또는 흥미를 갖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고고학'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통하여 밀림과 사막에서의 보물을 발굴하는 장면이라든지 실제 요르단의 도시유적인 페트라를 배경으로 한 모험은 막연하게나마 고고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한 영화는 물론 어렸을 적에 연꽃 문양의 벽돌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무령왕릉'의 내부를 직접 보면서 실제 고고학자를 꿈꾸기도 하였다.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 꿈을 가슴 속에서나마 간직하고 있다. 유적 또는 유물의 발굴로 역사를 다시 확인하거나 미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역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학은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 또는 중국의 오랜 역사서가 언급되면서 학문으로 자리한지 꽤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정작 고고학의 역사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저명한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의 [고고학의 역사]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고고학은 언제부터 어떻게 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일까?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고고학이 학문으로 태동하던 18세기에서 시작해 오늘날 고고학의 기술적인 발전에 이르는 그 역사를 간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아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유럽과 지중해 세계에서 시작해 이제 전 세계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고 주장한다. 역사학과 고고학의 관계를 비추어 본다면 우리는 시간적으로 고고학이 그토록 더디게 학문으로 자리잡은 이유와 왜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총 40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다양한 고고학적인 발견 사례를 통하여 이러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자연스레 고고학이 어떻게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책이기에 그 방대한 분량 중 개인적으로 의미있었던 부분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고고학의 시작

 영국의 스톤헨지에 관심을 가졌던 존 오브리와 베수비오 산의 화산 폭발로 잊혀진 로마의 헤르쿨라네움에 대한 발굴과 연구를 시작한 알쿠비에레와 요한 요하임 빙켈만의 활동은 분명 고고학의 초기 모습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굴과 연구는 학문이 아닌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통하여 로제타석이 발견되고, 이 유물이 훗날 샹폴리옹에 의하여 해석됨으로써 이집트 상형문자에 대한 해독의 기초가 마련되고, 윌킨슨은 이를 통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집트의 수많은 기록들을 해독하게 된다. 이들의 활약은 유물이 단순히 수집의 대상이 아니라 점점 연구 주제로 변화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집트의 많은 유물을 발굴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한 벨조니라든지 니네베를 발굴한 레이어드의 경우처럼 여전히 고고학의 태동은 도굴과 호기심이 주된 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고고학이 이제는 완전한 학문으로 자리하고 있는 현재에도 도굴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오히려 고고학보다 도굴의 존재감이 남다르게 느겨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에도 이어진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굴 과정에서 '아슈르바니팔 기록관'을 발견한 성과는 분명 고고학적인 대단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발굴을 지휘한 레이어드와 라삼, 롤란슨은 주의 깊은 계획 없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보물 찾기의 고고학의 전형을 보여주었으며, 그 거친 발굴 과정에서 훼손된 유적과 유물도 만만치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고고학이 학문으로 자리하기에는 갈 길이 멀어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성서가 학교에서 주된 가르침이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들의 성과는 고고학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그 결과 구약성서의 기록 중 상당 부분이 검증되었고, 고대 도시들을 역사 기록 안에 확고히 집어넣기도 했다. 당시 고고학은 걸음마 단계였고, 여러 고고학자가 발굴자였던 만큼 또한 기회주의자였다. 그럼에도 몇몇은 해당 분야에서 큰 자취를 남겼다. 이후 세대의 전문 고고학자들은 이 사람들의 드넓은 어깨 위에 올라서 있다고 할 수 있다.

 - p. 59 中에서 -

 

 2. 고고학을 통한 고대 문명의 발견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은 신화로만 알려졌던 트로이를 실제의 역사의 현장으로 끄집어낸 인물로 유명하다. 슐리만이 트로이에 집착한 것은 어떤 학문적 배경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호메로스의 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점점 고고학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상인으로 활동하던 슐리만 역시 호메로스의 작품에 대한 굳은 믿음을 확인하기 위하여 발굴 사업에 뛰어든 것이었다. 1871년부터 터키의 히살리크 지역에서 발굴을 시작하여 1875년에 불에 탄 흔적이 있는 도시를 바로 트로이라고 생각하여 집중적으로 발굴을 함으로써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 명명되던 황금 펜던트와 귀걸이, 목걸이와 브로치 등을 발견하여 세상에 트로이의 존재를 증명하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 비록 그가 유물을 밀반출하여 터키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그의 발굴이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신화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점은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트로이에 머무르지 않고, 트로이 원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아가멤논의 본거지인 미케네 지역에 대한 발굴로 이어져서 1900년 아서 에번스와 같은 고고학자는 슐리만이 미케네 문명을 발견했다고 인정하기도 하였다.

 

 아서 에번스 역시 물려받은 엄청난 유산을 활용하여 크노소스를 통째로 매입하여 발굴을 시작하였고, 1900년 3월에 신화로 알고 있던 미노스 문명을 발견하였다. 그 역시 슐리만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바탕으로 잠들어 있던 고대 문명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문헌 기록도 없고, 거의 혼자서, 그리고 상당히 높은 학문적 기준으로 처음부터 한 문명을 찾고 묘사한 고고학자는 거의 없다. 아서 에번스는 바로 그 일을 해냈다.

 - p. 183 中에서 -

 이들의 발굴은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이라고는 볼 수 없다. 여전히 개인의 호기심에 의한 집념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잊혀진 고대 문명의 발굴은 이제 대중들에게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며, 동시에 고고학이 점점 학문적인 체계로 자리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자극하게 된다.

 

 3. 삼시대체계 및 선사시대의 편년 순서 파악

 고고학의 발굴과 유물만으로 과거를 복원할 수는 없다. 고고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같은 다른 학문과 함께 발달했다. 인간의 기원 같은 어려운 주제를 마주할 때는 여러 학문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동물 화석과 지질학을 모른 채 인류의 기원을 이해할 방도는 없었다.

 - p. 72 中에서 -

 유적과 유물의 발견은 분명 역사에 대한 기여는 물론 인간의 기원에 대한 시선을 보다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위의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발굴만으로 과거를 복원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다른 학문과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고고학은 그 나름의 지적인 틀 또는 체계 마련이 필요했다. 즉, 그동안 발굴에만 주력을 하였지만, 정작 그러한 결과물에 대한 분석과 연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은 덴마크 박물관의 수집품을 질서있게 정리하고 또한 그것들을 통하여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삼시대체계를 마련하였고, 그의 후임인 보르소에는 많은 발굴을 통하여 그러한 체계를 검증하였다. 유적과 유물이 발견될 때마다 역사에 그것들을 끼워 맞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하여 향후 발굴되는 것들의 시기를 연결시킬 수 있는 고고학의 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틀(삼시대체계)은 아주 이른 시기의 유적과 더 늦은 시기의 자료를 순서대로 연결시키는 다리가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공백은 존재하였고, 이후 석기시대를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구분하는 것처럼 보다 세밀하게 가다듬을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고고학 내부에서 그러한 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은 획기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4. 독일 고고학자의 등장에 따른 모험과 유물만 수집하던 시대의 종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시작된 나일강 조사단은 문자 해독이라는 성과도 있었지만, 이후 지오반니 벨조니와 베르나르디노 드로베티의 도굴에 가까운 발굴이 여전히 성행하였다. 그러나, 1842년 이 지역에 대한 칼 리하르트 렙시우스의 조사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집트 파라오들에 대해 최초로 연대기적 역사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그는 1849년부터 1859년에 열두 권에 이르는 방대한 조사 보고서를 발견했는데, 그 책들은 이미 사라지고만 많은 유적에 대한 표준 정보원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체계적인 사고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는데, 개인적인 호기심 또는 상업적인 이익에 집착한 유물 수집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수집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보여준 것이다. 칼 렙시우스의 보고서는 섬세한 조직화와 책임 있고 차분한 발굴, 빠르고 세심한 발간으로 지중해 고고학에 심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또한 알렉산더 콘체는 발굴뿐 아니라 복원과 보존에 관심을 보였으며, 에른스트 쿠르티우스와 같은 독일 고고학자들은 유적을 존중하는 중요한 자세로서 발견된 모든 유물에 대한 권한을 포기했으며, 유적 주위에 특수한 박물관을 건립하는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고고학은 점점 학문으로서 그 모습을 확립하게 된다.

 

 5. 여성 고고학자의 등장

 사막과 밀림을 포함한 생소한 환경에서의 발굴 작업은 필경 고고학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20세기를 전후로 활약한 거트루드 벨(1868~1926)해리엇 보이드 호스(1871~1945)라는 여성들의 활약을 통하여 그러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고 있다. 거트루드 벨은 직접 발굴에 참여한 인물은 아니지만, 여행자이자 언어학자로서 사막과 같은 외딴 곳에서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하였으며, 많은 사진과 글을 남긴 사막의 고고학자였다. 실제로 당시 중동에서 활약하던 로렌스를 만나기도 하였지만, 사막에서의 그녀의 활약을 감안한다면 그녀야말로 '아라비아의 거트루드'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해리엇 보이드 호스는 발굴 현장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크레타에서 발굴을 한 최초의 여성이라 불리울 정도로 결코 발굴에 있어서 남성에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활약은 고고학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6. 편견과 차별에 도전받는 고고학

 고고학이 마냥 순조롭게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백인들은 그 미지의 공간에서 발견된 수많은 거대한 '마운드(일종의 흙무덤)'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북아메리카 대륙에도 또 다른 문명을 지닌 세력('마운드빌더')이 존재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인디언과는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이러스 토마스에 의한 추가적인 조사 현존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의 유물과 '마운드빌더'의 유물을 비교한 결과 과거와 현대 사회의 도구와 무기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함을 확인함으로써 '마운드빌더족'이라는 별개의 종족이 존재한 것이 아닌 원래 인디언 부족이 남긴 것임을 밝혀내게 된다. 이는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백인들이 철저히 무시했던 인디언에 대한 편견으로 '마운드빌더'라는 새로운 공상의 존재를 창조해 낸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케이트 톰슨에 의한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발굴은 1497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동쪽 해안에 도착하기 전 몇백 년 동안 이미 독자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증거였지만, 정작 백인들은 인종학적인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러한 발견에 비난을 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두 가지의 사례는 고고학이 당시 기득권을 형성한 세력들에 의하여 그 성과가 축소 또는 확대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학문으로 보아야 할 고고학이 이념과 권력 장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역사를 달리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고학 이외의 것(이를테면 편견 및 인종차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7. 기술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고고학적인 방법의 등장

 1949년 윌러드 리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고고학에서 가장 곤란한 부분 중 하나인 정확한 연대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고고학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다. 14C라는 방사성 탄소가 일정하게 생기면서 지구상의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정한 비율로 붕괴하여 그 함량이 줄어드는 성질을 활용하여 그 방사성 탄소의 함략 측정으로 그 시기를 관측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은 대략 5만년 까지만 측정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후 '포타슘-아르곤 측정법'이라는 지질학적인 연대측정법으로 인하여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은 더욱 정밀한 연대 측정의 발전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크리스토퍼 틸리의 '현상학'을 토대로 현재의 길과 들, 울타리와 오솔길을 무시하고 과거 사람들의 방식대로 지리경관을 둘러보는 '경관 고고학'은 물론 기술의 발달에 따라 가능해진 '수중 고고학', 연구하는 대상의 삶에 녹아들어 '참여관찰'을 통한 연구, 유적과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여 단기간에 살펴보는 '실험 고고학'과 같은 다양한 방법론이 등장하였음을 통하여 고고학의 학문적인 발달을 서술하고 있다.

 

 8. 전 세계적인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의 확장

 고고학을 지중해 세계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어쩌면 지극히 서구적인 관점으로도 보여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역사적인 부분과 연관지어 생각해 본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까지 중국 특유의 문자 체계로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 기록이 신화적인 요소를 언급한다고 생각되었지만, 은허 지역의 유적 발굴로 인하여 상(은)나라의 실체가 이미 역사에 포함이 되었고, 그 직전의 하나라 역시 현재 발굴이 진행중이다. 이런 점은 동양의 문명과 역사가 문헌으로 꽤 오래전부터 남아 있기에 동양에서의 고고학은 그다지 필요한 학문은 아니라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유럽은 기원전 54년에 카이사르가 골족을 정복하는 그 시점부터 문자를 통한 문헌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 또는 문명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이 없기에 고고학이 동양에 비하여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그 이전의 역사와 문명은 지중해에 위치한 그리스 문명과 이집트 문명, 에게 및 크레트 문명이라는 점에서 서양의 고고학의 시작은 이들 지역에서부터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점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고고학에 대한 저자의 공간적 정의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그러한 고고학은 전 세계적으로 서로 협력과 분석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학문으로 보는 것 역시 타당해 보인다.

 

 [고고학의 역사]는 그 제목만큼이나 고고학과 관련된 방대한 분량을 통하여 생소한 학문으로서의 고고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발굴 사례 중에서는 익히 잘 알려진 것들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도 많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렇지만, 그러한 발굴 사례는 고고학이 어떻게 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를 통한 꽤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영화 [인디애나 존스]처럼 흥미롭다고는 볼 수 없다. 고고학에 대한 관심으로 여름 방학에 고고학 발굴 현장 아르바이트를 갔던 친구가 그 땡볕 아래에서 하루종일 조그마한 붓으로 먼지만 쓸어내렸다는 이야기처럼 이 책도 수많은 발굴 사례에서 고고학의 역사가 될만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 책은 그토록 많은 발굴 사례를 다루면서도 그와 관련된 사진이나 그림 자료는 전혀 없다. 간단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을텐데, 우리는 온전히 글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발굴 현장은 물론 유적과 유물을 떠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은 어쩌면 고고학이라면 무조건 보물 찾기와 같은 흥미로운 것으로 생각하며 마냥 동경한 우리에게 그러한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고고학의 역사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한 조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우리는 저자가 말하는 고고학의 의미를 이해하고, 또 그를 통하여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고고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발굴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리모트센싱 기술은 땅을 파지 않고 땅속을 들여다본다는 고고학자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고고학은 여전히 흥미롭다. (중략) 고고학은 우리가 왜 비슷한 생김새인지, 서로 다른지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고학은 우리가 적응하는 방식도 설명해준다. 고고학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을 준다.

 - p. 390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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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고고학과 기후변동 평점8점 | 이달의 사락 k******4 | 2019.11.27 리뷰제목
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기후변동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가뭄을 맞아 도거랜드에 사는 작은 사냥꾼 무리가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기후변동으로 고대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지 등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대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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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기후변동에 어떻게 적응했는지, 그리고 가뭄을 맞아 도거랜드에 사는 작은 사냥꾼 무리가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아니면 어떻게 기후변동으로 고대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지 등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지구온난화의 시기에 살고 있다. 다만 이 변화는 주로 1860년대 이후 인간의 활동으로 생긴 변화다. 고고학자들은 장기간의 역사적 시각에서 기후 변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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