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혈(賣血), 경제발전의 성장통일까?
1999년 매혈금지조항이 삽입되기 전까지 매혈은 피를 모을 수 있는 주요 수단이었다. 아니 지금도 모자라는 피를 해외에서 사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는 다르지만 여전히 매혈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혈이 소멸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경제발전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기까지는 매혈로 얻는 수익이 급전마련이나 비상금 마련수단이 될 만큼 상대적으로 컸지만, 경제발전에 따라서 그 가치가 급락하면서 무난하게 법으로 매혈금지를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딩씨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은 이념에 상관없이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종의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경제발전 과정에서 매혈의 메리트가 사라진다고 해도 <딩씨 마을의 꿈>에서와 유사한 비극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에이즈 환자가 헌혈하는 것이다. 실제로 “에이즈 바이러스 잠복기 상태에 있는 헌혈 지원자 3명 중 2명의 혈액 수혈로 인해 감염자 4명이 발생(했고, 수혈로 감염된 자의 처가) 성관계에 의한 2차 감염1)”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인간의 욕심, 인간성의 밑바닥을 보여주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할까? 욕심 때문이다.
이 책 <딩씨 마을의 꿈>에서는 국가가 주도하는 매혈 운동의 과정에서 1회용 주삿바늘과 소독용 솜을 원칙대로 사용하지 않은 결과 에이즈가 마을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도 매혈 우두머리였던 딩후이[丁輝]나 다른 마을 사람들의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은 그리스 신화에서 탄탈로스가 물을 마시지도 과일을 먹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돈에 대한 중국인의 집착을 보고 2001년 손병두 당시 전경련 부회장이 “중국이 사회주의를,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를 택한 것은 우리 시대의 불가사의2)”라고 말한 듯 하다.
이 소설의 화자(話者)인 소년은 아버지가 매혈 우두머리인 딩후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살된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매혈과 그와 관련된 사업으로 인한 이득을 딩후이가 독식한다는 부러움과 질투가 깔려 있다.
독살된 소년은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 뒤 담벼락 밑에 묻혀 마을의 몰락을 지켜본다.
어느새 마을은 어느 집에 가도 죽은 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고 해서 죽음을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인간성도 비틀어지기 시작하고,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이웃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짐승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아무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마을 안의 정적, 그 진한 정적이 모든 소리와 호흡을 끊어버렸다. 딩씨 마을(丁莊)은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 조용하기 때문에, 가을의 끝이기 때문에, 황혼이기 때문에, 마을이 위축되고 사람들도 시들었다. 위축된 상태에서 세월도 따라서 말라버렸다. 마치 땅속에 묻힌 시신 같았다.” [p. 20]
꼭 딩씨 마을과 에이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처럼 극단적인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가 올 지 모른다. 그때 우리가 조금씩 양보한다면, 인간성을 유지한다면 이들과 다른 엔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참고로 이 소설은 2011년에 곽부성과 장쯔이 주연의 <最愛: Love for Life>로 영화화 되었다.
영화 예고편 : https://youtu.be/rub_qOcD7mE
영화 MV : https://youtu.be/RN95va9oQjk
딩씨 마을의 꿈...재앙이 되어버린 황금콩
옌렌커는 자국내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작가이자 별종으로 불리운다. 흔히 말하는 사상이 불온한? 부류에 속하기도 한다. 그의 책은 판금조치를 받을만큼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유가 궁금해진다. 지식인이 국내에서 홀대받는 현실에 비추어 그 내용에 귀를 기울이는 명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에 의하면 ‘금기를 범했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P.7)이다. 하지만 작가는 ‘비상을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새의 울음소리’(P.7)로 표현한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며, 어둠을 쓴 것인 동시에 빛을 쓴 것이자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P.7)임을 밝힌다. 그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 인류생존과 발전을 둘러싼 고난 극복, 선과 미를 추구하는 영혼의 교육, 욕망의 꺼지지 않는 빛’(P.7)이다.
작가는 성경의 창세기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사실 명확하진 않다. 딩씨 가족은 딩씨 마을의 핵심이다. 그 가운데 나(샤오창)는 독이든 토마토를 먹고 죽었으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할아버지 딩수이양이 주인공이다. 글깨나 읽은 사람으로 ‘딩선생님’으로 불리우며 학교에서 종치는 일을 하는 수위이자 담임 부재시 대신하는 선생이며, 학교관리인이다. 그의 아들이 장남인 딩후이와 차남인 딩량이다. 이야기는 이들과 관련된 내용이다. 위화 원작의 영화 ‘허삼관 매혈기’에서 나오는 그 ‘매혈’로 인해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 두 아들이 서 있다. 특히 딩후이에 의해 자행된 매혈, 매집은 급기야 열병의 확산과 더불어 원죄가 되어 이야기 내내 딩수이양은 ‘개두’를 외친다. 한 마디로 마을 사람들에게 무릎 꿇고 머리를 숙여 사과를 해야한다는 논지. 그러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 이 정책이 결과적으로 마을의 부를 이루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위 근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 이에 앞장선 딩후이는 승승장구, 당의 요직을 맡아 권력과 돈방석에 올라앉지만 마을 사람들은 죽어간다. 피폐된 마을은 죽음과 친구가 되다시피 한다. 초대 촌장인 리싼런이 매혈반대로 당에서 쫓겨나 딩수이양이 그 자리를 이어간다. 존경받던 딩선생이 주도한 매혈운동에 영악한 딩후이가 이익을 본 것. 특유의 교활함과 장삿속이 합쳐져 다른 누구보다 매집에 앞장서고 이문을 많이 남긴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장삿속에 놀아나 필요이상의 수혈을 하게되고 급기야 열병인 에이즈에 걸리는 비운을 맞이한다. ‘죽음은 매일 모든 집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P.31). 죽음의 병에 걸려 서서히 시체놀이를 하는 동안 딩후이는 점점 부를 축적해가고, 이어서 정부로부터 제공되는 무상 ‘관’에도 손을 대어 생생내며 팔아먹는 수완을 발휘한다. 심지어 죽은 이들을 위한 영혼결혼식을 통해서도 치부를 쌓아간다. 그러나 상식적으론 이해불능의 중국사회를 보는 느낌이다. 교육국장 가오는 매혈을 독려하는 혈장 경제의 첨병이자 당의 대변인으로 나온다. 당의 묵인하에 자행되는 딩후이의 행태는 판금조치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요인이 아닐까 한다. 당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이야기에 반길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과 결탁하여 벌리는 딩후이의 당당한 이문 챙기기는 오늘의 중국 권력에 누가 되기 마련이다. 어떻든 이로 인해 딩수이양은 ‘꿈’을 통해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는다. 도덕적인 명예에 목숨을 건 그의 인생철학은 - ‘모름지기 사람은 평판이 나빠져서는 안되는 거’(P.139) - 자식들이 걸림돌이 되어 마침내 씻지 못할 심판관이 되어버린다. 성경에서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벌어진다. 존속살인이란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집착하는 딩수이양의 행동은 올바른가 하는 문제는 별개다. 단지 자신이 해결하고픈 나머지 신의 손이 되어 심판관 행세를 한다.
한편, 8부작으로 구성된 이야기에서 리싼런의 뒤를 이은 딩수이양은 아들 딩후이의 작태로 인해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울며 겨자 먹기로 촌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어서 등장한 딩수이양의 조카인 딩유에진과 쟈껀주의 2인 체제는 마을을 더욱 황폐화시킨다.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지 못한 찻잔 속의 태풍인 이들은 막후 실세인 딩후이에 막혀 사사건건 걸림돌이 된다. 정부로부터 나오는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한 채 부스러기 정도의 생색내기용 이문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결국 학교 소유의 모든 부속물을 관인 - 유난히 관인에 목숨을 거는 중국인의 모습이 리싼런을 비롯 다양하게 등장한다 - 하나로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하지만 이 역시 딩후이에 대한 분풀이 성격일 뿐, 근본적인 에이즈 대안은 아니다. 또한 마을의 모든 나무 벌목 역시 관인으로 생색내지만 ‘내 아들 딩후이는 절대 곱게 죽어서는 안된다’(P.339)는 딩수이양의 바램을 촉구하는 압박용일 따름이다. 죽어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학교에서 집단생활하는 에피소드가 큰 줄기를 이룬다. 그리고 딩량의 사랑과 결혼은 애절함을 불러온다. 금기시되는 인척간의 결혼을 에이즈를 통해 슬그머니 넘어가는 것 역시 당의 눈엣가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장면이다. 영혼결혼식 역시 당의 적극적인 비호하에 벌어지지만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지 싶다. 이런저런 이유로 판금조치를 당한 딩씨 마을의 꿈은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부패의 실상과 함께 민낯을 드러내는 이야기여서 불편한 심기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든다. 딩후이의 매집시 저울 속이는 장면이나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각자 가져온 양식 주머지 속에 든 벽돌이나 기와는 헛웃음이 절로난다. 작은 부패와 큰부패, 만연한 사회전반의 부정부패는 어떤 식으로든 중국의 치부를 드러낸 장면이기에 껄끄럽기 그지없었을 터, 이로 인한 판금조치는 어쩌면 당으로선 당연히 꺼내들 수 밖에 없는 카드이지 않았을까. 아직은 중국인의 의식 선진화가 멀었다는 인식과 궤를 함께한다.
딩씨 마을의 꿈인 ‘황금콩’은 재앙의 씨앗이 되어 비극적인 막을 내린다. 내용은 길지만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진정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오늘의 중국 현실과 결부되어 ‘꿈’이 단지 꿈으로 그쳐 일장춘몽 내지 인생 허무함으로 묻어난 작가의 간절한 열망이 전해져온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면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 이야기는 고통과 비극적인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는 민중들의 설움이 응축되어 나타난다. <딩씨 마을>을 배경으로 그들이 물질적인 어려움을 이겨나가기 위해 매혈을 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은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매혈이 무분별하게 비위생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질병에 걸리게 되고, 그것은 치유할 길이 없는 병이 된다. 사람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게 되고 그들도 체념을 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그들의 삶은 처참하다. 그 마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로 변해 간다.
매혈은 일시적인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이 매력이 되어 마을 사람들은 지속적인 매혈을 하게 되고, 이제는 매혈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까지 된다.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딩 선생님이 많이 관여한다. 당국이 딩씨 마을에서 학교를 지키고 있는 그를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는 상황이 된다. 매혈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고, 피라는 것은 뽑아 주는 다시 생겨난다는 것을 우물을 통해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매혈을 하게 되고 그들에겐 매혈이 노동을 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되어 간다. 그것은 그들을 일시적으로 부유한 자들로 만들어 간다.
“딩 선생, 내가 딩 선생에게 다른 일을 해달라는 게 아니잖소. 단지 딩씨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피를 파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기만 하면 된단 말이오. 정말로 피는 샘물과 같아서 팔면 팔수록 더 많아진다고 말해달란 말이오. 이 교육국장을 위해 몇 마디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 못 해주겠다는 거요?”
결국 할아버지는 내키지 않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p59)
나는 죽었다. 나이도 십여 세인 어린 아이다. 무덤에 있다. 그런 나의 눈을 통해 이야기가 그려진다. 내가 딩씨 마을의 모든 일들을 보게 되고, 사람들의 삶을 지키면서 그들의 삶을 표현해 나간다. 위 내용은 할아버지가 매혈에 관계하는 내용이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삶을 위해 지속적인 매혈을 하게 되고, 그것이 아버지(딩후이)의 비위생적인 채혈을 하는 일로 인해 더욱 범위와 빈도가 많아지게 된다. 아버지가 매혈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장본인이 된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은 많이 열병에 걸리게 된다. 그 열병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간다. 흔히 말하는 현대인의 불치병 에이즈다. 마을 사람들이 채혈하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거의 이 열병에 걸려 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쓰러진다. 누구나 생명을 저당 잡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피부가 맞닿으면 옮기는 것이기에 격리가 필요하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몇 있던 교사도 질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떠나버린다. 그 학교를 이용해 할아버지는 열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갈 것을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을 그곳에 모은다. 질병을 가진 자들의 공동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을의 환자들은 가족에게도 따돌림을 받는 상황이기에 할아버지가 만든 공동체에 합류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질서를 지키면서 할아버지의 지도아래 생활을 해나간다. 그들은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많은 것을 내려놓으면서 공존하는 삶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피를 파는 일이 밤바람을 타고 할아버지 꿈속으로 밀려왔다. 할아버지는 이내 그 열병의 모든 원인과 전후 관계를 분명히 보게 되었다. 매혈의 모든 자초지종을 전부 알게 되었다. 유복해진 사연을 다 알게 되었다. 봄에 작물을 심고 가을에 거두는 것 같은 무수한 일들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 같은 수많은 일을 알게 되었다.(p64) |
이야기는 할아버지의 꿈을 통해 정리해 주고 있다. 할아버지의 꿈은 사실을 정리, 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진실을 드러내는 기능도 한다. 현실의 이야기가 꿈을 통해 현몽하면서 사건의 실체가 잘 다가오도록 이루어진다. 위의 꿈 이야기는 매혈에 대한 상황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내용이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매혈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면서 자식과 공동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자식에게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회개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전혀 반응이 없다. 부를 위해 산 자신의 사람을 타당하다고 여긴다. 타인들이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 부흥을 이끌던 중국 위정자들의 면면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마을 어귀에서도, 사거리에서도, 어느 집 비어 있는 방에서도 피를 하고 팔기 시작했다. 심지어 버려진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고 문짝을 떼어다 구유 위에 깐 다음, 그 위에 바늘과 주사기, 알코올 병 등을 펼쳐놓고 외양간 대들보에는 뽑은 피를 담을 유리병을 걸어놓은 다음 피를 사고팔기 시작했다.(p74)
피를 사고파는 현장을 실감나게 표현해 두었다. 이 글의 가장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기에 옮겨 보았다. 피를 파는 일이 우선은 잘 모르지만 샘이 물을 자꾸만 퍼내다 보면 고갈하는 것처럼, 피도 사람들의 신체를 부실하게 만들어갈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피를 잘 갈무리하지 못해 병까지 걸리게 된다. 중국 어느 마을의 현실을 옮겨 놓았지 않나 생각되는 장면의 표현은 가슴을 떨리게 한다.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되어서야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윤리적인 일로 부를 만들어 가겠다는 발상도 금기시 되어야 할 일이 아닐까 여겨진다.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치유할 수 있는 신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거짓 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들이 그것을 정면으로 부인하면서 사람들의 희망을 꺾어버리기도 한다. 참람한 삶들이 지속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딩씨 마을은 피를 팔면서 점차 피에 미쳐갔다. 평원에서 피를 팔면서 피에 미쳐갔다. 십 년 후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는 궂은비처럼 열병이 쏟아져 내렸고. 피를 팔았던 사람들은 모두 열병에 걸렸다.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개가 죽은 것처럼, 개미가 죽은 것처럼 그렇게 죽어 나갔다. 나뭇잎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등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따났다.(p80)
매혈로 인해서 변해간 딩씨 마을의 실상을 잘 그려주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죽은 듯이 된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고, 사람들이 만나도 서로 불신하는 상황이 된다. 집에 있는 사람들은 되도록 밖에 나오지 않으려 하고, 학교에 모인 환자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학교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죽음을 바라보고 있기에 삶의 패턴이 깨어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자기 욕심에 의해 물건을 훔치는 일도 일어나고 다시 치유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미 있던 가정과는 격리되어 그들끼리 공존하는 삶을 꿈꾸기도 한다. 삼촌과 숙모의 비윤리적인 만남 등이 그것이다. 이 일은 학교 안과 밖의 일들이 공유되면서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잃어버린 돈은 못 찾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중에 촌위원회 관인을 가져간 사람이 있으면 꼭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관인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제 몸에서 떨어져존 적이 없어요. 집에서도 항상 상자 안에 넣고 가두어두었고, 나갈 때는 품 안에 지니고 다녔었지요. 그런데 어젯밤에 그 관인과 돈이 모두 제 베게 밑에 있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둘 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단 말입니다.” 리싼런은 큰 소리로 울부짖듯 말했다. “돈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제발 그 관인만은 제게 돌려주기 바랍니다.” (p194) |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한 가지 경우다. 마을 촌장으로 오랜 시간 근무하다가 미혈을 하게 되고 죽을 상황에 이른 리싼런이 부적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관인>이 사라져 버리는 일이다. 이 일은 나중에 그가 죽었을 때 시신이 이상하게 되는 결과까지 초래한다. 황진이를 사모했던 남정네가 죽은 후 상여가 그녀의 집 앞에 머물고, 그녀의 속옷을 관에 얹혀 주자 관이 움직였다는 것과 같이 그의 관인을 새로 만들어 시체에 놓아주자 시신이 바른 자세가 되었다는 얘기도 한다. 이렇게 학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죽어가는 데도 속수무책이다. 그것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파렴치한 사람들도 생겨나고 그것은 관 장사로 나타난다. 이것이 못마땅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질책하게 되고 결국 죽이는 결과를 만든다.
이제 딩씨 마을에는 사람이 없었다. 거리는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사람도 없었고, 가축도 없었다. 닭이나 돼지, 개, 고양이, 오리 할 것 없이 가축이라고는 한 마리도 없었다. 가끔씩 참새 소리가 땅과 깨진 유리창 위로 떨어졌다.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어느 집 개인지 너무 말라 배의 근육이 다 드러나 있었다. 개는 자오씨우친네 집 건물 밑에서 걸어 나와 길 한가운데 서서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짖지도 않고 귀와 꼬리만 쫑긋 새운 채 어디론가 가버렸다. p614
할아버지가 자식을 죽이고 끌려갔다가 다시 놓여나 마을에 돌아왔을 때의 현장이다. 끔찍한 마을이 되어 있다. 유령 마을이 따로 없다. 사람들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생명이 일렁이는 느낌이 적다.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 경제적 성취의 어두운 그림자라 생각된다. 이렇게 어떤 지역은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고통의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고, 암울한 시대적 흔적을 보여 준다. 중국, 근대화의 이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내용이라 여겨진다. 이런 일들이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왔겠지만, 그 과정의 지난한 어려움을 인지해 볼 수 있는 작품, 우리들의 마음을 떨리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아버지는 관을 팔아 돈을 많이 번다. 그 관은 병에 걸려 죽은 환자들을 위해서 나라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중간에 가로채어 돈을 착복한다. 그것을 할아버지가 알고 노한다. 그런 일들이 아버지가 죽는 이유도 된다. 아버지는 나에게 음혼을 시킨다. 죽은 사람끼리 혼인을 하는 것이다. 조금은 놀라운 풍습이다. 글의 내용들이 어찌 보면 살벌하다. 죽음의 마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이 가득하다. 그것이 시대를 증거 하는 내용이 되기도 하겠지만 인생들의 기막힌 장면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중국이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글의 부분에 황폐화가 된 마을이 실제로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내용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에 할아버지의 꿈을 통해 빛을 조금 비추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고통과 어두움이 가득한 마을이다. 읽을 만한, 부드럽게 써진 내용이 명료한 글이다. 무척 잘 읽혀졌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옌롄커와 위화, 모옌의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지만, 중국의 방대한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중국문학을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서평단의 모집을 보고 옌롄커와 이 책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는데, 작가가 다루는 내용이 물질의 유토피아를 향한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터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옌롄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출간 당시 중국 정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금서 조치를 취한 점 역시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실제로 출간 당시 상황을 심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국가 명예 손상과 더불어 출판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옌롄커를 상대로 고소하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난 후 옌롄커와 <딩씨 마을의 꿈>이 이토록 가혹한 운명에 처한 연유를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중국문학의 반항아인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는 이유와 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올해 읽었던 소설 중에서 베스트 10 안에 무조건 들어갈 책이 아닌가 한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p.7
이 책의 화자인 딩샤오창은 열 두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에 성행하던 열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놓아둔 독이든 토마토를 집어먹고 죽고 말았다. 딩샤오창의 아버지 딩후이는 딩씨 마을에서 피를 사고 팔았다. 딩씨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도 대대적으로 피를 사고 팔아서 커다란 부를 이룬것에 사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딩후이는 주사바늘과 솜을 재사용하며 이 땅의 모든 피를 매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열병이라는 에이즈에 걸렸다. 마을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하다. 할아버지 딩수이양은 아들의 잘못을 눈치채고 마을 사람들에게 개두할 것을 권하지만 딩후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 열병에 걸린 사람들을 학교로 불러 모으고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가족에게 병을 옮기기 두려워 하던 환자들이 학교로 모였다. 처음에는 다같이 사이좋게 밥을 먹고, 여가를 보내고, 잠을 자며 질서를 지켜오다가 하나 둘씩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 분실되기도 하고, 모아놓은 곡식에 손을 대는가 하면, 치정 사건이 일어나고, 할아버지의 지위를 노리고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도 행해진다. 처음에 돈에 욕심내어 피를 팔던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지자 자신이 누울 관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로 된 모든 것들을 집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문이든, 학교의 책걸상, 마을에 심은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진다. 마을은 모든 것이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죽고 난 후 이번에는 죽은 영혼을 위한 음혼이 성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거래의 중심에는 딩후이가 완장을 차고 그 중심에 있다.
죽음은 마치 캄캄한 밤처럼 딩씨 마을을 철저하게 뒤덮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마을들도 뒤엎고 있었다. 매일 마을의 거리를 오가는 이야기는 전부가 검은 소식들뿐이었다. 어느 집 누구의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는 소식, 아니면 어느 집 누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견디기 힘든 세월이었다. 죽음은 매일 모든 집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 p.31
"저게 무슨 기와집이야. 저건 온 마을의 피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야."
"저게 어떻게 도자기로 쌓은 담이겠어. 저건 순전히 사람들의 뼈로 지은 거야." p.258
실화바탕이라는 말에 찾아보니 실제로 중국의 허난성에서 일어난 매혈로 인한 에이즈 환자가 4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들 중 70%인 3만명이 비위생적인 의료기기로 에이즈에 걸린 것이다. 옌롄커는 이야기를 통해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딩후이와 같은 교활한 사람들의 이기심이 얼마나 커다란 재앙을 불러 왔는지 보여준다. 그가 묘사한 딩후이는 일말의 양심보다는 돈과 권세를 쫓는 사람이다. 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사간 그의 집을 통해 중국 도시의 일부 고위 관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부를 쌓아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를 쌓아올린 업적은 고위관리가 아닌 인민들의 피와 땀인 것이다. 관료들의 안일한 대처와 이기심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더욱 소름끼친다. 처음에는 매혈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매혹 당할 수 밖에 없는지, 물질에 대한 사람들이 욕심이 멈추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예전에 경제학을 배울 때 피와 같은 신체 일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교수님께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매도에 나서는 사람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났다. 옳았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열리자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이들은 결국 죽음에 내몰리면서도 몇 줌 안되는 곡식, 관에 쓰일 나무, 자신의 지위를 인정해줄 관인, 남들에게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결혼증명서와 같은 종이 한 장에 목을 맨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여린 것인지, 삶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여러 복합적인 생각이 교차했다. 이 책이 중국에서 판금조치된 것이 정말 안타까우면서,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에게 문학을 읽어야되는 이유를 100여 통의 편지로 보냈다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떠오른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전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며, 이 작품이 커다란 폭풍우를 불러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창작에 대한 도전을 해낸 옌롄커가 존경스럽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옌롄커와 위화, 모옌의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지만, 중국의 방대한 역사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 중국문학을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서평단의 모집을 보고 옌롄커와 이 책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는데, 작가가 다루는 내용이 물질의 유토피아를 향한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터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옌롄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출간 당시 중국 정부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금서 조치를 취한 점 역시 구미를 당기게 만들었다. 실제로 출간 당시 상황을 심각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출판한 출판사에서 국가 명예 손상과 더불어 출판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옌롄커를 상대로 고소하는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고 한다. 책을 읽고난 후 옌롄커와 <딩씨 마을의 꿈>이 이토록 가혹한 운명에 처한 연유를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중국문학의 반항아인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는 이유와 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올해 읽었던 소설 중에서 베스트 10 안에 무조건 들어갈 책이 아닌가 한다.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을 쓴 것인 동시에 꿈을 쓴 것이고, 어둠을 쓴 동시에 빛을 쓴 것이며, 환멸을 쓴 것인 동시에 여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제가 쓰고자 한 것은 사랑과 위대한 인성이었고,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둘러싸고 있는 고난을 극복하고 선과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영혼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의 그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p.7
이 책의 화자인 딩샤오창은 열 두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을에 성행하던 열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놓아둔 독이든 토마토를 집어먹고 죽고 말았다. 딩샤오창의 아버지 딩후이는 딩씨 마을에서 피를 사고 팔았다. 딩씨 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까지도 대대적으로 피를 사고 팔아서 커다란 부를 이룬것에 사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딩후이는 주사바늘과 솜을 재사용하며 이 땅의 모든 피를 매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열병이라는 에이즈에 걸렸다. 마을은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하다. 할아버지 딩수이양은 아들의 잘못을 눈치채고 마을 사람들에게 개두할 것을 권하지만 딩후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 열병에 걸린 사람들을 학교로 불러 모으고 그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가족에게 병을 옮기기 두려워 하던 환자들이 학교로 모였다. 처음에는 다같이 사이좋게 밥을 먹고, 여가를 보내고, 잠을 자며 질서를 지켜오다가 하나 둘씩 사건이 터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 분실되기도 하고, 모아놓은 곡식에 손을 대는가 하면, 치정 사건이 일어나고, 할아버지의 지위를 노리고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도 행해진다. 처음에 돈에 욕심내어 피를 팔던 사람들은 죽음에 가까워지자 자신이 누울 관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로 된 모든 것들을 집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문이든, 학교의 책걸상, 마을에 심은 나무들은 모조리 베어진다. 마을은 모든 것이 텅텅 비었다. 사람들이 죽고 난 후 이번에는 죽은 영혼을 위한 음혼이 성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거래의 중심에는 딩후이가 완장을 차고 그 중심에 있다.
죽음은 마치 캄캄한 밤처럼 딩씨 마을을 철저하게 뒤덮고 있었고, 주위의 다른 마을들도 뒤엎고 있었다. 매일 마을의 거리를 오가는 이야기는 전부가 검은 소식들뿐이었다. 어느 집 누구의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는 소식, 아니면 어느 집 누가 어젯밤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견디기 힘든 세월이었다. 죽음은 매일 모든 집의 문 앞을 서성거렸다. p.31
"저게 무슨 기와집이야. 저건 온 마을의 피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야."
"저게 어떻게 도자기로 쌓은 담이겠어. 저건 순전히 사람들의 뼈로 지은 거야." p.258
실화바탕이라는 말에 찾아보니 실제로 중국의 허난성에서 일어난 매혈로 인한 에이즈 환자가 4만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들 중 70%인 3만명이 비위생적인 의료기기로 에이즈에 걸린 것이다. 옌롄커는 이야기를 통해 정부의 허술한 관리와 딩후이와 같은 교활한 사람들의 이기심이 얼마나 커다란 재앙을 불러 왔는지 보여준다. 그가 묘사한 딩후이는 일말의 양심보다는 돈과 권세를 쫓는 사람이다. 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사간 그의 집을 통해 중국 도시의 일부 고위 관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부를 쌓아올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를 쌓아올린 업적은 고위관리가 아닌 인민들의 피와 땀인 것이다. 관료들의 안일한 대처와 이기심뿐만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더욱 소름끼친다. 처음에는 매혈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매혹 당할 수 밖에 없는지, 물질에 대한 사람들이 욕심이 멈추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예전에 경제학을 배울 때 피와 같은 신체 일부가 시장에서 거래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교수님께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매도에 나서는 사람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났다. 옳았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열리자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이들은 결국 죽음에 내몰리면서도 몇 줌 안되는 곡식, 관에 쓰일 나무, 자신의 지위를 인정해줄 관인, 남들에게 떳떳하게 보일 수 있는 결혼증명서와 같은 종이 한 장에 목을 맨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은 얼마나 여린 것인지, 삶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여러 복합적인 생각이 교차했다. 이 책이 중국에서 판금조치된 것이 정말 안타까우면서,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이 캐나다 수상에게 문학을 읽어야되는 이유를 100여 통의 편지로 보냈다는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가 떠오른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전면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며, 이 작품이 커다란 폭풍우를 불러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와 창작에 대한 도전을 해낸 옌롄커가 존경스럽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