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상의 틀에 붙들려 산다는 느낌 때문에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면 그냥 현실에 순응하게 된다. 그게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포기하고 살게한다. 무기력이 삶을 지배한다. 이게 심해지면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진다. 안주하는 삶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그러다 가끔 정신이 들때만 '이러면 안 되는데'하고 조금 불편할 뿐이다. 정신줄을 놓으면 금세 편안한 상태로 돌아간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과는 무관한 삶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만난 책 중에 이런 제목이 있었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정신이 돌아와 '떠남'에 대한 욕구가 고개를 들었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떠남은 숙명이라고, 떠나라고, 떠나야 살 수 있다고. 머무는 건 죽음이라고. 책을 쓴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살려면 떠나라는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아진다. 갑갑한 마음을 누른 채, 어떤 아픔이나 문제가 고개를 들어도 외면한 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를 스스로 깨닫기 힘들다. 문제를 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지내는 직원들은 심각한 건강 문제를 떠안고 산다. 게다가 업무 스트레스까지 더한다면 스스로 느끼지 못해 그렇지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답은 운동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마저 쉽지 않다. 일로 지친 몸에서 따로 꺼낼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복싱을 배우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면 힘들기 마련이다. 힘들면 포기할 것 같아 응원하기로 했다. 익숙해질 때까지 버텨보라고, 조금 지나면 덜 힘들거라고. 그때는 달라진 스스로를 깨달을 거라고.
운동이나 독서, 명상, 뭐가 됐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꾸준히 해서 익숙해지면 이전과 달라진 나를 경험할 수 있다. 나를 위해 해내는 일이 나다운 내가 되도록 돕는다. 습관을 깨는 일, 즉 단단하게 연결된 일상의 고리를 끊는 일은 힘든 일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습관으로 들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뭔가를 시도해야 하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다. 언젠가 죽을 운명이면서 그전부터 죽은 것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다. 잠시라도 내 시간을 갖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인셈이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을 실은 책들이 많다. 책을 보지 않으면 삶의 지혜를 접할 기회가 없고, 읽었다하더라도 내 인생에 적용하지 않으면 변화를 기대하기도,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힘들다. 책을 읽는 건, 적극적으로 배우는 활동이고, 다른 생각에 접속해 내 생각과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활동이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시간을 내는 시도야말로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겠다고 펼쳐드는 사람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노력자체가 삶의 방향을 단 1도라도 바꾸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 <법화경 마음공부>를 읽으면서 적어도 읽고 배우고 나 자신과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새기고 있다. 연꽃의 이름을 넣어 명명한 <법화경>은 석가모니가 말년에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불경이며, 석가모니의 가장 성숙한 사상이 담겨 있어 '불경 중의 왕'이라고 불린다고 책에서는 소개하고 있다. 성인의 지혜를 배워 인생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이다. 일상이 건조해지고 갈증이 생길 때 읽으면 좋은 지혜의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을 시간을 내지 못해 접하지 못한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평소 들을 수 없는 말, 지혜들이 다른 세계로 통하는 기회의 문일 수 있다. 그 기회는 일상을 '떠남'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틀에 묶여 산다면 깨달음의 순간을 갖긴 힘들다. 떠남의 방법은 꼭 독서일 필요는 없다. 평소 하지 않던 운동을 해도 되고, 명상의 시간도 도움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내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내가 매일 아침 집요하게 남산에 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날의 에너지가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이 세상이 아니라 세상 밖에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 자체가 길을 잃은 것이다. 이곳은 그저 우리가 잠시 거쳐 가는 여관이며, 우리의 처음과 끝은 이곳이 아니라 더 무한하고 더 넓은 곳에 있다. 우리의 시작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있고, 우리의 끝은 이 세상에서 죽은 후에 있다. 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에 비하면 이 세상에서 우리의 인생은 아주 짧다.(100쪽)
몸을 움직여 일상의 흐름을 약간만 바꾸어 놓아도 나중에 도달하는 지점은 달라진다. 하루 10분의 책 읽기, 평소보다 10분만 더 걷기,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해내기, 1분만 눈을 감고 내 마음을 챙겨보기, 하루 종일 앉아 지내는 몸을 잠시 일으켜 세우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 나누기, 새로운 것을 배워보기 같은. 중요한 것은 집요하게 치열하게 해내려는 결심과 노력이다. 일에 지쳐 힘들어 하기보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느라 힘들어 볼 일이다. 힘든 순간이 지나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낼 때 보람을 느낄 일에 매진해볼 일이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고, 자신의 처음과 끝은 어디에 있으며, 자기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이미 빈부의 울타리를 넘고 불타는 집의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사람의 삶이란 빈부나 선악 같은 폐쇄된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 더 넓고 무한한 무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175쪽)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불교경전 <법화경>은 석가모니가 말년에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이 <묘법연화경>으로 제목에 불교를 상징하는 꽃인 연꽃이 들어가 있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고통의 바다로 불리는 인생살이에서 힘들고 지친 우리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꽃을 피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이라고 한다.
불교철학은 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의 길에 이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이 고통의 바다라는 사실을 <법화경>에서는 활활 불타는 집의 비유를 통해 들려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오탁악세(五濁惡世)’, 즉, 다섯 가지 흐리고 탁한 세상이라고 설명한다. 전쟁, 기아, 전염병 등 재난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때문에 번뇌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불타는 집에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빨리 문을 찾아 밖으로 빠져 나가라고 하듯이, 부처는 우리에게 이 불타는 세상에서 어서 빨리 빠져 나가라고 소리친다.
부처님은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불타는 짐에서 빠져나갈 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하나하나 설명한다. 왜 인생이 고통인지? 어떻게 인생의 고통을 멈출 것인지? 어떻게 나만의 삶을 살 것인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비유를 동원해 설명한다. 어려운 불교 경전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저자의 최대 공헌이다.
어려운 불교용어들을 동원해 마음 다스림을 통한 해탈의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남들이 그렇게 살도록 계도하는 대승불교적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길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방법으로 중생들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다보면 부처님 말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자신의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손에 쥔 것을 하나라도 더 늘리려고 아등바등하고, 또 그날 그날을 그냥 그렇게 지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치고 스트레스로 건강도 잃어버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것 이상을 들여다 보지도 못하는 형국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찾아 떠나는 모습은 단지 희망사항일뿐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며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가끔씩 많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길 떠나기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을 읽고 페이융의 팬이 되었네요. 이 분 책은 다 괜찮은 듯해요. 이번에는 불교 경전 중에 가장 중요한 경전이자, 제가 예전에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했던 법화경을 쉽게 실생활과 연관해 풀어주시는 이 책이 서평도서로 나와서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읽어 내려갔어요.
법화경은 다른 경전과 다른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불경이에요. 먼저 법화경은 석가모니가 말년에 설법한 내용을 정리한 경전이라고 해요. 또 법화경의 정식 명칭은 <묘법연화경>으로 제목에 연꽃의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불경으로 알려져 있어요. 나아가 역사적으로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여러 불교 종파를 조화롭게 아우른 불경이라고 전해져요.
구체적으로 법화경은 불교 내부의 방법상의 의견 차이를 해결한 불경이라고 해요. 기본 교리가 아니라 세부적인 방법상의 차이 때문에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불교의 각 종파들의 이견들을 하나로 모으고 조화시키기 위해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기본 교리의 체계를 명확히 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경전이라는 것이죠.
법화경은 부처가 제자들에게 유명한 ‘불타는 집[화택(火宅)]’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 내용은 대가족이 살고 있는 아주 큰 집에 집에 불이 났는데, 아이들은 불난 줄도 모르고 뛰어놀고 나이 든 아버지만이 이 집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어서 불타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아이들은 불났다는 말도 믿지 않고 밖에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아서, 아버지는 한 가지 꾀를 내어, 바깥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보물이 있다고 알려 줘요. 그러자 아이들이 줄지어 집 밖으로 나와 탁 트인 길에서 마음껏 뛰어다녔다는 이야기예요.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이 화택과 같다는 것이에요. 부처는 법화경에서 이 세상을 “굶주려 겁을 먹고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다니는구나.”, “서로 싸우는 소리 참으로 두렵구나.”라는 게송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부처는 이런 세상을 ‘오탁악세(五濁惡世)’, 즉, 다섯 가지 흐리고 탁한 세상이라고도 했는데요.
전쟁, 기아, 전염병 등 재난이 끊이지 않고 겁탁(劫濁), 사람들은 욕심, 성냄, 어리석음 때문에 번뇌에 휩싸이는 번뇌탁(煩惱濁), 서로 믿지 못하고 그 인과응보로 인해 끊임없이 윤회하는 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잘못된 사상을 믿고 옳은 법을 듣지 못하는 견탁(見濁)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생이 악업을 지어 수명이 점점 줄어드는 명탁(命濁)이 그것이에요.
또 부처는 법화경에서 화택의 특징이라고 할 ‘삼계(三界)’라는 개념으로 화택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욕계란 음욕과 식욕이 있는 세계이고, 색계란 음욕과 식욕은 없지만 물욕이 있는 세계이며, 무색계란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의 세계를 의미해요. 부처는 삼계는 편안함이 없어서 불타는 집과 같아서 숱한 괴로움이 가득차서 심히 두려운 곳이라고 하며, 사람은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삼계라는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해요.
여기서 불교의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등장하는데, 사람이 철저히 해탈하지 못해 도를 이루지 못하면 육도 세계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며 돌아다니게 된다는 ‘육도윤회(六道輪廻)’에요. 육도란 무엇일까?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간도, 천상도로, 사람이 도를 이루지 못하면 이 여섯 가지 형태를 바꾸어 가며 계속 돌아다니며 설령 신선(천상)의 경지까지 수행한다고 해도 성내거나 탐욕스러운 마음을 먹으면 단숨에 지옥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인생은 육도 안에서 윤회하는 것이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삼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산다는 것은 육도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묶여 고통 받는 것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 진짜 나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을까요? 부처는 법화경에서 우리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인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깨끗하게 하면 된다고 알려줘요. 이 여섯 가지 통로가 깨끗해지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어댈 수 없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눈이 깨끗하면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고, 귀가 깨끗하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코가 깨끗하면 모든 향기를 맡을 수 있고, 혀가 깨끗하면 감동적인 말을 할 수 있고, 몸이 깨끗하면 세계를 환히 비출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하면 행복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해요.
부처는 법화경에서 부처가 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깨끗해지는 것으로 마음이 깨끗해져서 그 어떤 걸림도 없이 평안하다면, 그 상태가 바로 부처라고 지적해요. 사실 우리는 모두 원래 부처였지만,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해서 부처가 되지 못할 뿐이니, 깨닫기만 하면 그 순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해요. 그러려면 본연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모습으로 들어가는 수단이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요.
솔직히 불교에 관심이 있지만 그리 공부를 해보지는 못했고 예전에 법화경 이름을 들어보고 읽어보다 말았는데요. 이번에 이 책을 통해서 법화경이 어떤 책인지 알게 되었네요. 이 책을 읽어보니 법화경이 단지 불교 신자들만이 읽을 책이 아니라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좋을 듯해요. 특히 이 책의 제목처럼 마음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 현재 좌절하거나 마음이 너무 아프신 분들이 읽어보시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타 종교 특히 오랜 세월 한국인의 심상에 깊은 영향을 준 불교의 가르침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중국의 대표적인 불경 연구가인 페이융을 통해 몇몇 불교의 경전들을 맛볼 수 있었다. <금강경>의 지혜를 알려주는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육조단경>의 지혜를 알려주는 <불안하지 않게 사는 법>이 그것이다. <금강경>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면서 집착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지혜를 알려준다. <육조단경>은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삶을 사는 것,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는 지혜를 가르친다.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페이융을 통해 또 다른 불교 경전에 도전해 본다. <법화경>! 이 경전은 석가 말년의 가르침으로, 모든 불경의 왕이라고 일컬어진단다. 이 표현 하나만으로도 나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법화경>은 한마디로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불교의 기본 교리를 사제(四諦)라고 하는데, 기본이 되는 진리가 고통에 관한 것이다. <법화경>에 따르면, 인간은 삼계(三界)라는 화택(火宅)에 살고 있다. 즉, 욕계(欲界, 음욕과 식욕의 세계), 색계(色界, 물욕의 세계), 무색계(無色界, 물질을 초월한 정신의 세계)는 편안함이 없어 불타는 집과 같다. 사람은 이러한 세상에서 태어나 죽기를 반복할 뿐 삼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는 중생에게 ‘삼계화택의 악사가 되지 말고, 어서 빨리 삼계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삼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수행을 통해서다. 신체적 수행(身安樂行), 말의 수행(口安樂行), 마음의 수행(意安樂行), 부처의 진리 가운데 머물도록 기도(誓願安樂行)해야 한다. 해탈의 방법에 따라 불교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뉘는데, <법화경>은 이러한 양분화된 해탈의 방법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경전이다.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올 때, 양이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고(聲聞乘, 사제를 깨달아 삼계화택에서 빠져 나감),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으며(緣覺乘,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아 삼계화택에서 빠져나감), 소가 끄는 수레를 탈 수도 있다(菩薩乘, 지혜를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함으로써 삼계화택에서 빠져나감)를 탈 수도 있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 궁극적으로는 해탈에 이르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 한다. 부처는 참된 자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강론으로 <법화경>의 주요 가르침을 정리하였다. 각 강론은 ‘왜 인생이 고통인가?’ ‘어떻게 인생의 고통을 멈출 것인가?’ ‘어떻게 나만의 삶을 살 것인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까?’라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많은 예를 들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전개해 나간다. 따라서 이런 질문에 먼저 스스로 답해보고 각 강론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나는 마음으로 먼저 답을 달아보았는데, <법화경>의 가르침과는 사뭇 다른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성경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일 게다. 덕분에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과연 이런 수행으로 스스로 구원(해탈)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법화경의 가르침을 현대인들에게 쉽게 설명한 훌륭한 오리엔테이션이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불교의 경전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강추!
불경 연구에 30여년을 보내 온 저자, 금강경을 해설한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반야심경을 해설한 <평생 걱정없이 사는 법>과 같은 책들도 상당히 눈길을 끈다. 그만큼 초조하고 불안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허우적대며 해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법화경도 경전 중에서 최고의 경전이라 하는데 해설한 내용들이 모조리 읽어 볼 만하고 느낄 바도 많게 해 준다. 그야말로 마음을 다스리며, 마음을 위한, 마음에 관한 책이다.
이 세계는 불 타고 있는 집과 같아서 어서 빨리 빠져 나와 자신 만의 세상을 구축할 것을 요구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니 태어 나고 싶다 했어도 마음대로 왔다가 가는 곳이 아니어서 고통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다. 단계 별로 만들어져 있는 세상, 육도 윤회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과 천생의 단계를 거쳐 가면서 두루 고통을 경험한다. 얼른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 윤회의 바퀴를 빠져 나올 수 있게 하는 말씀들이다.
이런 말씀들을 읽으면서 모든 종교는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앞서 간 사람들의 행적과 말 처럼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마음을 편하게 살아가는 그 자체는 한편으로는 철학적이고 한편으로는 종교의 말씀 이다. 올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이 책을 읽었고, 이 글을 쓴다는 것에 의미가 더 있는 것 같다. 부처님도 부유하고 고귀했던 삶에서 벗어나면서 깨달음을 얻기 까지, 병들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게 하려는 그 자체에서 어찌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즉, 이것이야 말로 다시 태어나지 않는, 윤회의 바퀴를 끊어 버리는 방법 아닐까 싶다만 끝내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이르셨다. 그 열반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궁금한데, 그 기초적인 순서가 바로 마음 다스리기, 생각의 전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나 만의 삶을 살 것인가", 로 이어지는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홀가분해 질까?" 이런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차츰 독자 자신만의 생각으로 침잠하게 한다.
모든 사람은 부처와도 같고, 단지 본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각들, 깨달아야 할 바 들, 차분하게 새겨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