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세계대전의 상흔,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나이나 경험이 사람을 반드시 성숙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지만 도리스 레싱(1919~2013)의 작품엔 그가 겪은 고난이 다양한 결로 드러난다.
레싱의 단편집《19호실로 가다》를 읽.었.다.
11편의 단편을 모두 읽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건 더 어려웠다.
눈이 줄거리를 따라가는 동안 마음을 차지하는 감정,
불편함.
레싱의 작품에는 보일 듯 말듯 보호색을 띠고 자리 잡은, 애매한 폭력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화내면 속 좁은 사람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만만해 보일까봐 피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짚어준다. 그래서 고마웠다. 이런 이름도 없는 애매한 불편함을 얘기해줘서.
부족한 문해력과 일천한 지식 탓에 11편이 모두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4편을 골라 소개하려 한다.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방송국에서 인터뷰 작가로 일하는 중년 남자 그레이엄. 그는 작가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그 공허함을 새로운 여자를 만나 ‘손에 넣는’ 일로 해소한다.
이번 타깃은 바버라 콜스. 잘 나가는 무대 미술가다. 인터뷰를 핑계로 바버라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이 여자, 그레이엄에게 관심이 없고 그저 일만 한다. 식사를 같이 하자고 추근대고 결국 그녀의 집까지 따라간다. 그래도 반응이 없는 바버라. 그를 남자로 봐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저 귀찮아한다. 열심히 시도하지만 나중엔 성욕도 사라지고 자존심만 남았다. 결국 그녀를 ‘손에 넣는’데 실패하는 건가
그럴 수는 없다.
‘아, 하느님, 이 촌뜨기를 이제 떼어버릴 수 있어!’ 정말 헤픈 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59)
<옥상 위의 여자>
어느 여름, 옥상 위에서 젊은 여자가 누워 일광욕을 한다. 마침 근처 건물 옥상에서 세 남자가 홈통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중년의 해리, 새신랑 스탠리, 열일곱 살 톰. 그들의 눈은 모두 여자에게 향한다. 다음날도 여자는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하고 남자들은 여전히 그녀를 훔쳐보며 비난한다. “나쁜 년.” 이해되지 않는 말이지만 작가는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자기를 지켜보는 세 남자에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 때문에 세 사람 모두 화가 났다.’(p.68)고.
일광욕만 할 뿐 그들을 신경 쓰지 않던 여자가 어느 비 오는 날 옥상에 나타나지 않자 톰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 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p.80)
<한 남자와 두 여자>
디자이너인 스텔라와 그녀와 친한 화가인 브래드퍼드 부부가 등장한다.
스텔라와 잭 브래드퍼드는 상업적으로 성공했고 잭의 아내 도로시는 아직 무명이다. 안목 없는 대중이 주는 상업적인 성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서로의 예술세계를 존중한다.
방송기자라는 남편의 직업 덕분에 몇 달씩 떨어져 지내야 하는 스텔라 부부와 달리 잭과 도로시는 가난하지만 모든 걸 함께하며 자주 여행을 다니는 행복한 부부다. 그러던 중 도로시가 임신을 하고 그들은 시골에 정착한다.
어느덧 아기가 태어나고 스텔라가 그들을 찾아간다.
아기가 생긴 부부. 더 행복해졌을까
“아기를 낳고 나니 내 안의 창의성이 전부 죽어버렸어. 임신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 도로시가 말했다. (p.119)
태어난 지 6주밖에 안된 아기를 키우면서 창의성 운운하는 엄마라니. 갓난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24시간을 저당 잡힌 삶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스텔라에게 도로시는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잭이 가끔 어디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 밤이고 낮이고 허구한 날 잭이랑 같이 갇혀 있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혀.”(p.123)
10년 넘는 결혼기간 동안 부부가 계속 함께 지내야했던 끔찍함, 남편의 외도를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상황.
무엇이 문제일까
<19호실로 가다>
<한 남자와 두 여자>보다 더 완벽한 부부가 등장한다.
유능한 남편 매슈, 역시 유능하지만 가정을 위해 전업주부가 된 수전.
정원이 딸린 큰 집, 착하고 건강한 네 아이, 파출부,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책을 읽은 지적인 부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그런데 가끔 수전은 자신이 가진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어서인가. 그녀는 작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린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도 모두 등교하고 마침내 수전은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정말 자유로워졌을까? 이상하다. 수전은 집안 어디에 있어도 혼자일 수 없었다. 욕실, 빈 방, 매슈가 정해준 지붕 밑 ‘엄마의 방’에서조차도.
“저는 몇 시간 동안 혼자 있고 싶어서 이 호텔을 찾아왔어요.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p.305)
혼자만의 방이 필요한 수전이 찾아낸 곳은 어느 허름한 호텔의 19호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그랬듯 그곳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찾아온다. 수전의 19호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와 <한 남자와 두 여자>는 여자를 같은 인간으로 대할 줄 모르고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행동은 분명 폭력이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남자들의 심리를 잘 아는 여자가 등장함으로써 그나마 위협도 못되는 찌질함으로 그려진다. 자신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찌질남들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여자들이라고 해서 존중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의 여자는 오직 두 종류가 있을 따름이다.
나쁜 년과 헤픈 년.
<한 남자와 두 여자>와 표제작 <19호실로 가다> 역시 비슷한 결로 묶인다.
완벽한 가정의 그녀들은 왜 불행할까
내가 생각하는 첫째 이유는 경제력이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등장인물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무시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돈이 숨어있다. 도로시는 남편과 늘 함께하는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가 싫어하는 건 ‘남편과 함께 한다.’는 그 자체보다 ‘남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남편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삶의 형태 또한 남편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는 그녀의 독립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도 마찬가지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남편은 일에, 아내는 가정에 집중한다. 남편의 수입이 넉넉하고 부부의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전은 허름한 호텔의 숙박료 몇 푼마저도 남편에게 일일이 받아야하는 처지다. 물론 지적이고 성실한 남편이 아내에게 돈의 용도 따위는 묻지 않지만 이것은 배우자의 지성이나 인성 문제가 아닌 헤게모니의 문제다.
둘째 이유를 들자면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아이가 딸린 도로시에게도, 모든 물리적 노동에서 벗어난 부유한 주부 수전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은 필요하다.
흔히들 남자에겐 동굴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동굴은 남자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은퇴한 부부가 갈등을 빚고 황혼이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남자들이 집안일을 할 줄 모르고 아내의 보살핌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더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1년에 500파운드라는 고정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난다. 글을 쓰는 데만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덧
작가도 <19호실로 가다>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수전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 그녀가 남편에게 19호실로 가는 이유를 말할 수 없어서 외도를 핑계대는 부분이 너무 안타까웠다. 19호실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대신 19호실로 가는 수전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었을까. 남편으로 대표되는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상관없이 (심지어 작가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수전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그것 또한 수전에게는 참을 수 없는 폭력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