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 중 한 권이었다. 마침내 책을 읽으며 말 그대로 ‘선입견’이었음을 깨달아, 조금 더 일찍 읽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어쩌면 지금이 내게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명상록’이라 이름 붙은 이 책은 원래는 별다른 제목이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적었다기 보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스스로를 살피고 충고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적어둔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저작은 마르쿠스가 출판할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한두 구절을 적어두는 식으로 순전히 자신의 개인적인 비망록으로 쓴 것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처음부터 제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p.13
‘명상록’이라는 명칭은 17세기에 와서 붙여진 것이었고, 그 이전에는 ‘그 자신에게’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후자의 명칭의 기원은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p.12
책날개에 적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연보를 보면 121-180 이라는 가늠이 잘 가지 않는 년도가 쓰여있다. 말 그대로 상상도 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에 쓰여진, 아니 옛날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글들이다. 신기한 것은 그 글들이 2020년을 살고 있는, 국적도 성별도 지위도 다른 내게 이렇게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가 이다.
책 가득히 적힌 스스로에 대한 명상과 다짐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가르침들은 크게 두 가지 큰 축을 관통한다. 모든 일들에 ‘선을 추구’ 하라는 것 그리고 주변에 휘둘리지 말고 묵묵히 ‘내가 할 일’을 하라는 것들이 그것이다.
# 선을 추구하라
‘선’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충실함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지 말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되라. p.73 |
오직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라. 상황과 행동 중에서 행동이 중요하고 상황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에, 상황을 활용해서 너의 행동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pp.144-145 |
그리고 그렇게 선을 행했다면 그것으로 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선함으로 인정을 받거나 타인으로부터 보답을 받기 바라지 말고 선을 행한 것으로 만족하고 충분하다 여기라고 말한다.
네가 선을 행했고, 다른 사람이 너의 그 선행으로 유익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왜 너는 어리석은 자들처럼 사람들이 너의 선행을 인정해 주거나 어떤 보답을 해주는 것 같은 다른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 pp.149-150 |
지금 네게 주어진 일에 집중해서 그 일의 진실을 보고, 네가 해야 할 것은 선한 자가 되는 것임을 명심하고서,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즉시 흔들림 없이 행하고, 가장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말하되, 언제나 선의를 가지고서 겸손하고 거짓 없이 행하고 말하라. p.153 |
# 내가 할 일을 해라
앞서 언급한 ‘선을 추구하라’는 충고보다 더욱 내게 와닿았던 대목들은 타인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내가 할 일에 전념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하고 남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p.28 |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언행심사를 바르게 하고 의롭게 하는데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여유가 넘치게 된다. p.74 |
다른 사람이 네게 잘못을 했다고 하자. 그것은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직 그 사람의 몫일 뿐이다. 그 사람에게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것이 있고, 그는 거기에 따라 그 일을 한 것이다. p.101 |
자칫 주변은 염두에 두지 말라는 글로도 읽힐 수 있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건 한결같음으로 그들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미워한다 해도 나는 선의로 대하라는,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은 녹록치 않은 조언이다.
누군가가 나를 경멸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경멸받을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모든 사람을 선의로써 인자하게 대하고, 내게 잘못한 사람에게는 꾸짖거나 내가 많이 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저 유명한 포키온처럼 ? 그가 반어법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면 ? 예의를 갖추어서 진심으로 그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p.216 |
주변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 소심한 내게는, 게다가 이 글을 읽을 때 조금 마음 상한 일이 있었기에 더욱 많은 생각을 주던 대목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 해서 그가 나를 좋게 봐주기를 마냥 바랄 수는 없다. 반대로 나 역시 나랑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솔직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 타인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쉽지는 않을테지만 종종 꺼내어 보며, 마음을 굳게 먹어야 겠다.
인간이여,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자연과 본성이 지금 이 순간에 네게 요구하는 일을 하라.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되, 다른 사람들이 그런 너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서 주위를 둘러보지 말라..(중략)..지금 네게 주어진 일에서 아주 작은 진전을 이룬 것에 만족하고, 그런 결과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말라. p.182 |
# 그리고 실천하라
모든 것이 그러하듯,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지식에 머물 뿐이다. 누군가에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이런 좋은 글이 있는데 말이야...” 백날을 이야기 해도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오히려 말 뿐인 사람이 될 것이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처세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니 힘들기에 더욱 열심을 다하고 반복해서 행동에 옮겨야 한다.
네가 바른 원리들을 따라 행하는 데 늘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데 염증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 실패했을 때에는 계속 반복해서 시도하고, 네가 인간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네가 무수히 실패하는데도 끝까지 추구하고 있는 그 길을 사랑하라. p.94 |
그렇게 할 때 나는 내가 머무는 장소와 시간 속에서 두 발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예기치 않은 온갖 공격에도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살아가는 일은 춤추는 것보다는 씨름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p.145 |
*나에게 적용하기
타인의 기준으로 허둥거리지 말고, 내 안의 순서를 따라 잊지말기(적용기한 : 지속)
*조급해질때면 잠시 멈추고 중요한 기준을 먼저 생각할 것.
남들이 네게 화를 내든 말든 상관하지 말고, 그 하나하나를 순서를 밟아 체계적으로 침착하게 완성해 나가야 한다. p.116
*기억에 남는 문장
누가 너에게 강요하는 대로, 또는 누가 네게 원하는 대로 어떤 것을 보지 말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라. p.72
너라는 존재는 우주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고, 네게 할당된 시간은 무한한 영겁의 시간 중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 아주 적은 것이며, 너의 운명은 한없이 거대한 운명의 아주 작은 한 분깃일 뿐임을 늘 기억하라. p.101
최고의 복수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p.109
자만심은 너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가장 무서운 거짓 스승이다. 네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져 있을 때가 가장 속기 쉬운 때다. p.111
황제 행세를 하려 들지 말고, 황제 노릇에 물들지 앟도록 조심하라. 그렇게 되기가 쉽다. 늘 소박하고, 선하며, 순수하고, 진지하며, 가식이 없고, 정의의 친구가 되며, 신을 경외하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많고,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행할 때에는 과감한 사람이 되라..(중략)..인생은 짧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평생 살아가고 난 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하고 정의로운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위들뿐이다. p.117
우주 안에 존재하는 만물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것을 자주 생각하라. 만물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얽혀 있고, 그래서 서로에 데해 친밀감을 느낀다. 만물은 서로 간에 밀고 당기는 운동, 하나의 동일한 정신을 통한 서로 간의 공감, 모든 존재의 하나됨으로 인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p.121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가능한 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너의 몸에 배게 만들어라. p.127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에피쿠로스가 한 말을 기억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고통은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네가 너의 상상력으로 네가 겪는 고통을 부풀리지만 않는다면, 참아낼 수 없거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이라는 것은 없다.” p.146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p.149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을 받는다면, 네게 고통을 주는 것은 외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네 자신의 판단 때문이기 때문에, 너는 즉시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고통을 없앨 수 있다. p.166
행동에서는 꾸물거리지 말고, 대화에서는 횡설수설하지 말며, 생각에서는 모호하게 하지 말라. p.168
죄를 짓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고, 불의를 행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악하게 되고 해를 입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p.175
어떤 일을 행하는 것만이 불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불의가 되기도 한다. p.175
어떤 사람이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러서 화가 날 때마다, 그 즉시 “이 세상에 뻔뻔스러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네 자신에게 자문해 보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p.188
선한 사람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말했으니, 이제는 그런 말은 그만두고, 네 자신이 선한 사람이 되라. p.199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은 이전에도 일어났고, 틀림없이 이후에도 일어나게 될 것임을 늘 명심하라.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