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시선으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본 책 <세상을 바꾼 동물>이 tvN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왜에 중점을 둔 역사 읽기를 지향하는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가로지르기 시리즈의 한 권인 이 책은 동물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보며 인간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 동물을 이야기합니다.
의사소통을 하고, 도구를 이용하고, 잡식성인 인간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구는 인간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신체적 조건과 상관없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동물이라는 말속에 인간 자신을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심리적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을 바꾼 동물>은 인간이 동물과 공존하며 가축화를 시도한 선사시대부터 전염병의 원인이 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짚어보며 인간의 역사에 편입된 동물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환 순간은 가축혁명에 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고기 보관소이자 사냥 도우미, 보초, 반려동물로 말이죠. 그런데 모든 동물이 가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4,000여 종의 포유동물 중 가축화된 동물은 단 10여 종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거였습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도 관련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수많은 야생동물 중 왜 어떤 것은 가축이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 여기에도 해당되는 겁니다. 식성, 성장 속도, 번식, 성격, 공포심, 사회적 구조 같은 조건에 모두 합당해야만 가축화가 되고,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면 가축이 되지 못합니다.
일단 가축화가 되면 인간은 가축화된 동물의 진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예외 없이 소형화가 진행됩니다. 말은 빨리 달리는 것으로 진화되었고 결국 인류사의 여러 전쟁에 얽혀들어갑니다. 인위적 교배로 개는 수많은 외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돌연변이가 늘어납니다. 유전병이 가장 많은 동물이 개라고 합니다.
인간은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가 약 0.5%이지만, 개의 조상으로 알려진 늑대는 개와 야생늑대 간의 유전적 차이가 겨우 0.04%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려동물이 된 개는 인간에 대한 사교성이 무척 좋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지능이 저하된 윌리엄스 증후군처럼 말이죠. 사이코패스와 반대인 장애인데, 인간 염색체 7번의 결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개 염색체 6번 결함이 가져온 결과인 사교적 성질이 결국 유전적 결함이었던 겁니다. 그 결함이 인간에게는 축복이 된 셈입니다.
tvN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 방송에서는 수의사 장구 교수님의 목소리로 이 책의 핵심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인류 최초 복제견 스너피를 출산한 심바의 집사였더군요. 복제 배아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심바처럼 동물이 인간의 질병 치료에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려동물의 유전병을 통해 치료제를 발견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도 반려동물의 사망이 있었다는 점 등을 짚어주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례를 들려주셨습니다.
쥐와 벼룩,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미생물 때문에 문명이 바뀐 인류사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해로운 동물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쥐가 있습니다. 곡식을 쌓아두면서 인간 생활 근거지로 들어온 쥐는 생쥐, 시궁쥐, 곰쥐가 있는데 그중 곰쥐가 벼룩과 함께 흑사병의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야생설치류에서 전염된 페스트균이 벼룩을 통해 곰쥐에게 전염되는 과정은 무시무시하더군요.
6세기에 퍼진 흑사병은 6시간 만에도 사망에 이르는 높은 치사율을 보였습니다. 14세기의 흑사병은 유럽 인구 1/3을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당시 종교적 이유로 고양이를 잡아 죽인 것이 흑사병 유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하지만, 2009년 중국에서 발생한 흑사병의 원인으로 설치류를 사냥한 고양이가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 수가 급격히 감소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설치류를 사냥한 고양이 때문에 더 확산되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인과관계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축에 서식하는 돌연변이종 병원균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 인간과 접촉이 늘어나며 인수공통전염병이 늘어나게 됩니다. 페스트,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모두 동물에 의해 유발된 전염병입니다. 여러 종이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 특히 비위생적인 동물시장 같은 공간에서는 전염병의 진화, 전이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육 방식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질병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광우병입니다. 소 이전에 이미 양들에게 질병이 나타났고, 밍크 농가에도 발병되었다고 합니다. 원인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육골분 사료입니다. 확률은 무척 낮지만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 역시 인간 광우병에 걸립니다. 식인 풍습을 가진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쿠루병이라는 질병이 광우병과 같습니다. 한때는 신화적인 차원에서 동물과 인간이 평등한 관계였지만 하나의 산업이 되면서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된 동물. 동물실험, 동물원 등에 대한 고민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세상을 바꾼 동물>은 동물과 인간이 함께 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길을 제시합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고 동물의 존재 이유가 오롯이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인간이 다른 동물을 생명의 동반자로 인식할 때 비로소 인간 스스로도 더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