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엄마는 손수 뜨게실로 만들어진 스웨터를 입혀주시곤 했다. 그 시절 넉넉하지 않았던 그 때, 몸이 좀 더 자라면 엄마는 만들어진 스웨터를 다시 풀어 몸에 맞게 키워주시곤 했는데.. 나는 요술쟁이같은 엄마의 손재주가 신기해서.. 뜨게실이나 바늘을 가지고 놀고 싶어했었다. 하지만, 내가 뜨게질을 하고 싶다고 할 때면.. 엄마는 '이런 거 배우면 팔자가 드세진다'고 하시면서 하지 못하게 하셨었다. 어려서 팔자가 드세진다는 게 뭔지도 몰랐지만.. 어감이 나쁜 말 때문에 몇 번 엄마 몰래 뜨게질을 흉내내려다가도 혹시 팔자가 드세지면 어쩌나 걱정에.. 결국 뜨게실을 손에서 내려두었었다.
그런데, 그런 유난스러운 엄마를 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일을 배우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엄마가 집안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친구도 있었고, 야영갔을 때 밥하는 내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겠다고 난감해 했던 친구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친구는 중학교때 야영장에서 설거지를 처음으로 해보고 갔다는 사실.. 나중에 내 절친이 된 후에.. 아무것도 못해본 신기한 아이네 집에 몇 번 놀러 가서야.. 친구 어머니가.. 내 딸만은 나처럼 살림만 하고 살지 않기를..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그리하셨다는 것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엄마들 바램처럼..나도 내 친구도 살림이 뭔지도 모르고 취미도 없는 사회생활하며 겨우겨우 연명하는 불량주부로 컸다. 그런데, 우리처럼 살림이 재미도 취미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나 똑소리나게 야무지게 살림하는 전업주부들이나.. 주변 누구도 살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은 없다. 가끔 블로그에 이런저런 소품을 만들고, 집을 꾸미기고 음식을 하고..자신의 살림의 일부를 공유하는 블로거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살림이라기보다 취미라고 생각되었으니.. 나에게 살림이란 잘하면 좋겠지만..딱히 욕심나지 않는 그런 일상.. 조금은 성가신 일.. 그정도의 의미였다.
그런 내가 믿을 수 없는 제목의 책을 만났다. 네이버 블로거로 유명한 띵굴마님이라는 분이 낸 <살림이 좋아>.. 세상에 살림이 좋다니.. 그 내용이 궁금해서 뒤적거려보았다. 책에는 소소한 소품이나 수납에 대한 노하우.. 꽃들과 예쁜 집, 식기들.. 눈요기 거리가 가득했다. 나중에 우리집이 생기면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을까.. 반짝이며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니.. 반들반들.. 책에서도 느껴지는 반들거림은.. 보통의 인테리어 사진에서 보여지는 그림과는 사뭇 다른 살림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살림이 좋다고 외치면서 지내는 그녀라서 그런지.. 별것 아닌 유리 글라스에 담겨진 돌로 책을 지지하는 지지대도 만들고.. 때로는 이렇게 담아두고 집을 꾸민다는 그녀.. 퐁퐁솟는 그녀의 아이디어 하나늘 훔쳐보곤.. 언제 나도 길에 돌이라도 주우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테리어는 결국 돈으로 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이 계셨었다. 이 책에도 꽤 값나가서 헉~ 했던 가구 소품들이 나온다. 그런데 무엇보다 빛나보인것은.. 그녀가 한 켠에 잘 모셔둔 오래된 찬장이다. 시어머니의 손때 묻은 찬장을 애지중지하는 그녀를 보면서.. 반들반들 아끼면 뭐든 보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밀조밀.. 수납 선반을 세우고 넓직한 책상을 놓은 공간.. 창가를 마주보고 있는 의자 두개를 보면서.. 저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퐁퐁 솟는다. 너무 깨끗하지 않아 인위적이지 않은 공간.. 저 창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달콤할까? 단꿈을 꿔본다.
사실 나는 손재주가 참 없는 사람이다. 뭘 만들어도 참 이쁘지가 않고 표가 안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무얼 만들기보다 대충 사다 쓰곤하는데.. 오밀조밀 전문가의 솜씨도 아니면서 쪼물쪼물 만드는게 너무 좋다는 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그 에너지가 전해졌는지 손끝이 찌릿찌릿.. 나도 살림 소품을 만들어보고 싶긴한데.. 사실 만들 자신은 없다. 그런데 천 쪼가리 가져다가 작가가 만들어보았다는 차 받침대를 보니.. 어쩐지 만만해보인다. 저런것을 하나 사두려고 했었는데.. 도전!! 만들어봐야지..
나는 사실 살림살이 욕심은 별로 없는 주부지만.. 그런 내가 좀 지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이 가지런히 놓인 수납함이다. 지금 우리집 주방 서랍에 요런 녀석을 하나 두고 싶다고 생각만 한지 오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불편하게 대충 살고 있는데.. 보니 참 맘에 든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의 최종 목표는
마당이 딸린 예쁘고 소담한 집을 짓는 일.
그렇게 꿈만 꾸던 내가 언젠가부터 전세집을 단장하기 시작했다.
맥없이 앉아서 '이다음'만 꿈꾸고 싶지 않아서다.
나에게는 지금이 중요하니까.
지금 내가 몸담고, 정주고, 부대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전셋집이지만 저절로 애착이 생긴다.(64쪽)
살림에 미쳤다고 스스로 말하는 작가.. 자기집도 아닌 전세집을 이리 공들여 꾸며가는 걸 보면서 미친거 맞구나.. 미치면 행복하다는게 맞구나 싶다. 그리고 지금을 사는 그녀를 보면서.. 그리고 나중에 나도 집이 생기면.. 하고 미래형으로 미뤄두고 있는 내 태도를 돌아본다. '이다음'을 꿈꾸는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4월의 마지막 날.. 예쁜 살림을 하는 작가를 보면서.. 살림에 대해 좀 배우고.. 감탄하고.. 눈호강하는 책을 읽어 즐거웠다. 정말 살림이 재미있는 사람도 있구나.. 신기하고.. 문득, 나도 이런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