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봉, 서정곤, 박영준 공저 한글에 대해 알아야할 모든 것을 읽고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일은 예상한 것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짜릿한 쾌감이 있다. 김혜남은 그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서 나이 듦의 현상으로 지적 호기심이나 탐구심이 없어지는 점을 거론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이 점에서는 끊이지 않으니 젊다고 봐야 하는지?
일상에서 한글을 하루도 잊고 살 수 없으며 우리 글, 우리 말이 있다는데 고마움을 느껴왔다. 지금까지 읽어온 세종대왕의 전기나 문헌에서는 한글 창제는 집현전 학사들의 노력과 세종의 의지에서 나왔다. 는 확신이었다. 어떻게 부제학이란 최만리의 반대 상소가 있을 수 있었을까? 궁금하였다.
2008년 사극 드라마 “대왕 세종”을 봐 오며 세종에 대한 의문이 더 커졌다. 너무 주인공을 미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성군이라지만 아니 조선이란 500년 역사에 세종이 없었다면 나라도 아니었다라고 하는 자신도 미화가 심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한글에 대한…’을 읽고서 눈이 훤히 뜨임을 생각했다. 세종의 고마움이 새삼 느껴진다. 어느 한글 강좌에서 컴퓨터 관련 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수의 나라들을 제치고 IT왕국이 된 대에는 세종 대왕의 덕택입니다.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타자에서 영어, 일어는 따라오기 힘들죠. 한자는 더욱 그렇고요. 주시경선생께서 한글 발전에 공이 크지만 줄여진 네 글자를 그대로 사용 했다면 완벽한 소리글로 더 앞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성이 휴대전화기로 세계를 군림하는 데에는 천지인의 ‘․’를 활용한 것에 감탄한다. 그 직원이야 말로 한글 스물여덟 글자의 진가를 찾아준 것이 아닌지? 점 하나가 얼마나 자유자제로 혼용할 수 있게 되었는가 말이다.
대왕께서 훈민정음은 한자를 통일되게 새겨 쓰는데 착안 하셨단다. 그러나 민중의 눈을 뜨게 하셨다. 한자를 숭상하는 양반들까지도 쓰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니 그 파급이 놀랍다. 조선시대 한글의 사용 인구가 한자보다 보편적이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일이다.
이런 책을 훨씬 전에 읽었다면 내가 가르친 제자들에게 확실한 한글 사랑을 심어 주었을 터인데 아쉽다. 우리 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빛바랜 사진 속에 있던 할아버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이랄까요...지금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을 어느 순간의 깨달음으로 다른 시각으로 봤을 때의 신선함과 놀라움이랄까요...
책을 읽는 내내 한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자세하고 친절하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은 느낌입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문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배우기 어려워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만들었을거란 순진한 믿음을 바로 잡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서양의 예를 보더라도 글을 배우고 읽는 행위는 일반 백성들에게 쉽게 허락하지 않는 일부 계층의 특권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세종대왕이 당시 일반적인 양반들의 문자에 대한 특권을 부정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문자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 그 노력에는 더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한글의 풀어쓰기에 대해서 진행됐던 논의를 처음 알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풀어쓴 한글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지금의 한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겠지요.
남북한으로 분단 된 이후에 서로 조금씩 달라진 한글의 모습에서 안타까움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있었던 풀어쓰기에 대한 논의에서 남한의 글과 너무 달라진다면 나중에 같은 민족으로써 통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그들이 가진 한글에 대한 애정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에 같은 민족으로서 연결된 느낌을 갖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 한글에 대한 칭찬이 있을 때마다 뿌듯함도 느끼고 자랑스러움도 느낍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 기본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는 별로 생각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영어를 배우기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면서 정작 우리가 가진 한글은 이리저리 오염시키고 버리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직장에서 많은 이들이 일상 대화중이나 업무적인 회의에서 영어단어를 쓰고 조사나 자투리 말만 우리말을 쓰는 모습을 봅니다. 굉장히 귀에 거슬리면서도 도대체 왜 굳이 그럴까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굳이 멋있는 모습도 아닌데...고쳐야 할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소설이긴 하지만 한글을 창제하는 세종대왕의 고뇌와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