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치레도 역사가 되나요?
그럼요, 됩니다!
인문학 하는 약사 송은호 작가. [ 펭귄약사 ] 채널을 운영하며, <일상을 바꾼 14가지 약 이야기>, <내가 만든 약이 세상을 구한다면> 등의 책을 냈다. '환장하게 아파도 버티는 한국사'라는 신박한 주제로 지금과 전혀 다른 의료 수준으로 살아야 했던 선조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역대 조선 왕들과 왕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인 종묘. 조선의 왕 스물일곱 명 중 문종을 비롯한 열두 명이 종기로 고생했다고 한다. 종기는 조선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병인 셈이다. (p138)
조선 시대의 각종 짠내 나는 병치레와 고충을 살펴보는 이 책은 한번쯤 아파본 사람이라면 역사와 더불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도서였다. 압박과 고통을 이 악물고 버틴 조상님들의 삶이라니. 왕실 초고의 엄친아 문종이 세상을 일찍 떠난 건 너무도 큰 비극이었는데, 망약 그가 소독약을 처방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세자 수업만 28년한 문종이 더 오래 왕을 했어야 했는데..라면 새로운 상상을 해보는 흥미까지 더해져서 이 책을 보는 독자 중에는 소설가도 많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바깥으로는 일본군의 조총이 그들을 향하고 있었고 안으로는 이질과 각종 질병이 들끓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군사적 열세에도 조선 수군은 바다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불태웠다. (p170)
아파도 포기를 모르는 남자이자 다이어리 좋아하는 조선 최고의 명장군! 배가 아프면 일기를 쓰던 그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이순신'이다.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보던 웅장함 넘어엔 각종 위생 문제와 질병이 난무하는 지옥 같은 나날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꿋꿋이 사랑하고 지킨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수군들에게 감사를 표해본다.
주로 순종, 정도, 박지원, 세종, 태조 등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케네디 대통령, 엘리자베스 1세, 조지 오웰, 해적왕 드레이크 등 서양사 쪽 인물들도 핵심적으로 짧게 다루고 있다. 얇은 책이지만, 병치레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들여야 볼 수 있는 점에서 '건강은 있을 때 지키는 것'과 '신박한 역사 공부는 역시 재밌다'라는 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책속문장]
p41
한 치의 빈큼도 용납하지 않는 생활은 정도의 몸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밤늦게까지 책을 보느라 만성적인 불면성에 시달렸고, 눈병을 심하게 앓아 조선 왕으로는 최초로 안경을 쓰기도 했다.
p81
모든 학문에서 만능이고 뛰어난 성과를 이룬 세종이었지만 정 작 본인의 몸을 건사하는 데는 지혜롭지 못했다. 세종은 왕위에 등극한 21세 무렵에는 건강했지만, 그 이후로는 임금이 걸릴 수 있는 거의 모든 병에 걸렸을 만큼 잔병치레가 많았다.
p119
지금도 뇌졸중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질병인데, 하물며 조선 시대에는 어땠겠는가 당시 사람들의 눈에 뇌졸중은 '바람이 가져오는 무시무시한 병'처럼 보였다. 멀쩡히 지내던 노인이 갑자기 털썩 쓰려져서 몸을 부르르 떨다가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마땅한 이유를 모르니 원인이 그저 바람에 있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뇌졸중을 중풍이라고 불렀다.
p197
결핵의 멸명은 '예술가들의 병'이다. 실제로 결핵은 전 세계의 수많은 시인, 음악가, 작가의 목숨을 앗아갔다. < 오만과편관 >으로 유명한 소설가 제인 오스틴, 피아 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 < 동물농장 >과 <1984>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 역시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다.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