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모든 것의 이야기
우리 사회에, 우리와 함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들까지도 애써서 들춰보려는, 아픈 곳을 골라서 쿡쿡 찔러보면서, 가까운 미래 우리 사회의 질서를 뒤바꿀 AI 등장. 5.18을 지나 6.10, 그리고 1991년 5월, 숨 가쁜 현대사의 흐름 속에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는 아픈 것들을 끄집어내어 우리 앞에 던진다. 바로 모든 것의 이야기로, 리얼리즘의 서사...
지은이 김형규는 지금 직업은 변호사이면서 작가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러시아 현대사와 시베리아의 역사를…. 또 한때는 출판사를 열고 책을 쓰고 펴내기도…. 이 책<모든 것의 이야기>은 그의 첫 소설집이다. 사회를 꿰뚫어보는 다양한 시선을 담아낸 나비클럽 소설선의 하나다.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파격적인 글쓰기에. 다소 혼란스럽지만, 여기에 실린 글 중에 "대림동에서, 실종"은 계간 미스터리 2021. 겨울호에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2023 같은 잡지의 봄호에 그리고 "구세군"은 역시 같은 잡지 2022. 가을호에 실린 것이다. 모든 것의 이야기와 가리봉의 선한 사람이 새롭게 실렸다.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공정하다는 착각
노동자, 소외계층, 계급 문제로의 귀환, 더 첨예해지고 복잡해진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세상을 뒤흔드는가, 인천국제공항, 롯데타워, 신문 지상을 도배했던 공정, 진짜 공정한가, 공정하다는 착각(와이즈베리, 2020)을 쓴 마이클 샌델은 현대 사회에 들어갈수록 능력주의가 만연해지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이룬 성과가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열정 같은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고 게으르다는 것으로 사람들을 실패자로 낙인을 찍는다. 지금 일어난 일, 그 바탕을 관통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
공정하다는 착각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정하다는 것은 자본이 주인인 세상의 질서가 기본이고 기준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공정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사회성격에 따라 공정이란 개념은 이미 정해져 있다. 무슨 주의 사회가 아닌 인간이 주인인 사회가 희망적이고 미래가 있는 사회다.
디지털 시대의 '계급 정치'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계급이다. 자본계급은 지금 시대의 당면과제들을 만들고 있다. 노동자 계급 내에서의 분열을 조장하고, 피해자들끼리 투쟁하게 한다. 이것이 질서다. 이것이 공정이다.
죄의식과 도덕 감정
이 소설집 끝에 있는 문학평론가 최성실의 작품 해설을 눈여겨보자. 계몽주의, 시민사회의 미래 등, 이 소설은 프리즘 같은 역할을 한다. "가리봉의 선한 사람" 속 등장인물 K, 중국에서 귀화한 외사 특채 경찰관인 그는 한국인이 됐고, 경찰관이지만 그의 말투는 여전히 중국 동포 특유의 말투다. 형식적으로는 주류질서에 편입됐지만, 처음부터 차별적인 경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 허탈하게도. 여기서 등장하는 도덕 감정, 사회적 질곡에 저항하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식물 되기(대상화, 관리받는 인간=노예) 삶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구세군"에서, 기본소득부, 직업있는 사람들, 유직자를 대표하는 납세당, 자본가를 대변하는 자유당, 무직자를 대변하는 기본소득당, 혁명이 일어나고, 국회의원들은 연예인 선발대회처럼... 블랙코메디,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를 묻는다.
극단적인 상황
극단적인 상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지구를 떠난 화성에서도 극단적인 상황에서 철저하게 국가와 자본, 계몽의 명분과 논리에 의해 관리되는 남과 여가 존재할 뿐이다. 자유의지를 박탈한 상태에서.
이 소설집을 참여문학 계열로 보는 이들의 추천사. 이 소설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의 파편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맞추어낸다. 우리 사회라는 커다란 그림, 그림 속에는 명암과 원근이. 가까이 다가가 오랫동안 숨죽이고 뚫어져라 보고 있노라면, 보이는 게 있다. 우리 사회다. 어지럽게 시끄럽게 늘 일어나는 사건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그 모든 것들을 톺아보면, 그 안에는 새로운 그 무엇이 보인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빙빙도는 머리 속, 한국사회의 숨가픈 달리기가 다가온다. 새마을, 민주화, 복수노조, 비정규직, 조선족, 노동의 세계에도 귀천이 존재한다. 이것이 공정질서다. 착각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자유, 민주는 박제화 된 것인가.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고사성어 "조삼모사" 전국시대를 살았던 저공(狙公)은 형편이 좋지 않아 자신이 기르던 원숭이들에게 줄 도토리 양을 줄여야 했다. 8개에서 7개로, 원숭이들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원숭이들은 난리가 났다. 저공에게 이구동성으로 말하길, 아침에 4개,저녁에 3개를 달라고... 왜 8개를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원숭이는 없었다. 왜 일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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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의 단편집 『모든 것의 이야기』를 자꾸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쓰고 고친다. 모든 것의 이야기가 즉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걸 나는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러기엔 나는 김형규란 작가를 몰랐고 이 소설집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소설 속 모든 것의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았으니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조금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내게 모호하면서도 궁금하고 까다로운 소설이었다.
수록된 5개의 이야기 중 표제작인 「모든 것의 이야기」를 보면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이 동일 인물인가 싶으면서도 다른 인물 같고 다른 인물 같으면서도 같은 인물로 돌아오는 그런 돌고 도는 우리 삶의 이야기라고 할까. 아니다, 실은 잘 모르겠다. 현재의 술집이었다가 미래의 화성 마오 기지였다가 90년대 말 마석이었다가 이념만이 중요했던 1930년대 레닌그라드였다가 한국전쟁의 시기인 1951년 하동의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재, 미래, 과거의 삶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체제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고 심지어 AI의 기술 발전으로 놀라운 시대가 되었어도 변하지 않는 그것, 노동자, 소외계층, 극심한 계급 차이에 대한 언급이다. 「모든 것의 이야기」 속에는 철저하게 외면받는 삶, 그러나 지속해야만 하는 삶에 대한 버릴 수 없는 희망 같은 게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리고 따끔거린다.
삶은 그런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삶 자체도 썩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22쪽)
삶은 끝났다. 그리고 새 삶이 시작될 것이다. (92쪽)
「모든 것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 사회의 계급, 자본, 교묘하게 행사하는 폭력을 역사 속 하나의 사실을 소설로 복잡하게 풀어낸 반면 「대림동에서, 실종」, 「가리봉의 선한 사람」, 「코로나 시대의 사랑」, 「구세군」은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대림동을 배경으로 그곳에 발령받은 경찰의 시선에 비친 대림동 이야기. 출동할 때마다 느끼는 선배 경찰 K의 묘한 태도, 대림동에서 자신이 살았던 낙곡을 발견하는 경찰. 그곳에서의 실종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K가 말하는 것처럼 정녕 유령처럼 살아가는 대림동의 삶.
대림동은 분지예요. 아무 건물이나 옥상에 한 번 올라가서 보세요. 신도림동, 신길동, 신대방동, 구로동의 고층 아파트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요. 거인의 성벽처럼요. 대림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성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누가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거예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죠. 제대로 된 이름도 없고요. 조선족, 중국 동포, 그런 이름들도 웃기잖아요. (「대림동에서, 실종」112~113쪽)
「코로나 시대의 사랑」란 단편은 코로나 시대의 우리 모습을 짐작게 하지만 실제는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부당한 임금과 노동 현장을 고발하며 시위에 나선 노동자와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 그들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연대와 우정을 들려준다. 코로나 시국이라 농성장은 말 그대로 접근 금지. 그 안에 있는 이들이 느꼈을 고립과 단절, 그들을 응원하고 세상에 알리는 이들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면서도 코로나 시국의 특수성, 그러니까 비대면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관계와 소통. 노동자를 변호하지만 현장에는 접근할 수 없는 변호사와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 사이의 묘한 감정은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겨우 3년 전의 상황인데도 코로나 초기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고등학생 화자가 노동 현장의 실체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과 시간이 지나 변호사가 된 그 학생이 노동 시위자를 변호하는 「가리봉의 선한 사람」은 노조의 갈등과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고발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기본소득, 의원내각제, 무직자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구세군’이라는 조직을 필두로 인간 중심의 세상을 구현하고자 하는「구세군」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그런 세상이면 어떨까 질문을 던진다.
헌법이 개정되어 기본소득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되었다. 새로 개정된 기본소득법은 직업이 없는 모든 성인에게 중위소득의 20퍼센트에 해당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도록 했다. 주택과 교육과 의료 서비스도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구세군」, 226쪽)
현재의 삶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그 삶의 미래를 예측하는 소설. 그 안에는 여전히 계급이 보이고 소수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이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갈 길을 찾으려는 노력, 김형규의 소설은 그런 소설이 아닐까 싶다.
현재인가 싶으면 미래이고 미래인가 싶으면 과거인 시점을 통해 진짜 모든 것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선족, 전쟁, 신분 사회, 계급갈등, 군대문제, 노조 등등...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고 책을 잡고 놓지를 못했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갈등과 그 갈등을 유발하는 차별을 그만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참여문학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고 소개되어 궁금했는데 사회적 비판과 이야기를 잘 아주 잘 버무린 모든 것의 이야기이다.
자본의 논리 속에서 철저히 분리된 계급으로 살아가면서도 또 다른 계급을 차별하는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보게 함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다. 그중 <구세군>은 특히나 인상 깊었다. 다가올 미래의 기본소득이 이루어지고 무직자들이 많아지는 세계. AI가 모든 일을 하며 인간이 하는 일은 아주 적은 시대. 여기까지는 우리가 꿈꾸던 사회이다. 그러나 AI가 통제하고 우리는 보여 지는 것만을 보고, 인간이 더 로봇처럼 생각하지 않는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가져야 할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강조한다. 각자의 단편 속에 사회성 있는 메시지들이 담겨 깊이 고민한 작가님의 생각이 녹여나오는, 정말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가 주는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 내가 알고 있지만 몰랐 던 세계에 한 발 들여놓게 된 책 <모든 거의 이야기>이다.
이번 생은 내 책임이 아니다.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p.17)
삶은 그런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삶 자체도 썩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p.22)
삶은 끝났다. 그리고 새 삶이 시작될 것이다. (p.92)
-말만 동포라면서 차별하지 마시오. (P.97)
대림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성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누가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거예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죠. 제대로 된 이름도 없고요. 조선족, 중국 동포, 그런 이름들도 웃기잖아요. (P.113)
나는 절망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현실이 절망적일수록 더 간절히 희망을 꿈꾸는 법이잖아요. 더 나은 세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희망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거고요. (P.164)
-비정규직 혐오, 노조 혐오가 심해진 건 맞는 거 같아요. 다들 비정규직한테 무슨 해코지라도 당했나요? 비정규직 근로조건이 개선되고 고용안정이 보장되면 자기들한테 털끝만큼이라도 피해가 오나요? 인터넷만이 아니에요. 회사에서도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학 때 친구들도 언젠가부터 확 달라졌고요. 사방이 벽으로 꽉 막힌 거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많이 외롭단 생각도 들고요. (P.204)
게임에서의 자살은 불가능한 일도 드문 일도 아니다. 미르 같은 게임은 하나의 캐릭터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유저들은 캐릭터가 싫증이 나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캐릭터를 자살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이 시선을 붙들었다.
“ 자살하는 캐릭터의 유저는 모두 무직자들이고 그들은 현실에서도 자살합니다.” (P.223)
-모든 것의 가치나 의미는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여하는 겁니다.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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