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이맘때쯤 찾아오는 장마가 낯설지는 않았다. 매해 그렇듯, 이 꿉꿉함을 좀 참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며칠 견디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올해의 장마는 다른 것 같다. ‘극한’을 붙인 폭우가 등장했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쉴새 없이 안전안내문자가 온다. 집에서 한 블록 내려가면 보이는 사거리는 차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겼다. 해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느 정도 발목을 적시는 정도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폭우가 쏟아지면 위험한 곳이 됐다. 맨홀 뚜껑이 날아가 사고가 난 차가 있을 정도다. 수시로 일기예보 확인이 습관이 됐다. 비단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다. 너무 더워도, 폭설이 쏟아져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살펴보게 된다. 갑자기? 아니다. 늘 그랬지만, 새삼 요즘의 날씨가 변덕이라 더 챙겨보게 되는 거였다.
날씨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날씨는 대기와 땅, 햇볕이 만들어내는 음악 같다는데, 오늘 날씨는 어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둡고, 거칠고, 심란한 음악 무엇일까 찾아보게 될 정도다. 저자는 장맛비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싶다고 말하더라. 폭풍우에 갇혀 밤새 돌아오지 못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쇼팽.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내리듯 맨홀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을 얘기한다. 이렇게 듣고 보면 참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오늘의 장맛비는 분위기만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기에, 솔직히 좀 밉다. 어쨌거나, 단순히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으로만 말하는 날씨가 아니라, 기상학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날씨의 과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절로 날씨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게 되면서, 다양한 날씨의 모습을 설명하는 문장은 또 어떻게 들려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륙의 동쪽 끝에 있다는 한반도. 북쪽의 육지와 남쪽의 바다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지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의 중위도 온대 지방에 위치하며 저기압과 고기압의 영향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고, 이 기압의 이동으로 날씨의 변주가 이루어진다.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봄 날씨는 강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단다. 시베리아 적도를 흐르던 찬 공기가 양쯔강 자락의 따뜻한 기운과 만나 요란한 비를 쏟아낸다고. 잔잔하게 내리는 봄비를 연상하면 봄날의 건조함을 사라지게 해줄 적당한 비가 생각나는데, 이미 문장에서 들려오듯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비구름을 만들 때 얼마나 무서운 분위기로 비가 내리는지 안다. 기상 현상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정도는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빠른 리듬의 음악이 저절로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둔탁하고 무겁고 세게 두드리는 악기를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내리는 비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 수시로 끼어드는 효과음에, 경쾌함이 아닌 운명이 바뀔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딱 맞는 시기인 여름 장마철.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그 가장자리의 수증기가 비구름대가 만들어진다. 이때 많은 비가 내리는데,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되어 한반도를 덮는다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를 피해가고 열대야가 온다는데. 생각해보니 장마철 폭우도 싫고 열대야도 싫은데, 여름을 견디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날씨에 관한 예측과 현상은 신기하면서도, 지구의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게 다가가게 된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다른 공기가 채우고, 태양의 높이에 따라 열의 양이 달라지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날씨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이 그러하니,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짧은 듯,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는 가을을 생각하면 괜히 울적해진다. 겨울의 추위가 오기 전, 가을 특유의 서늘함을 좋아했다. 한반도에 북풍이 불어오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높은 구름을 만들어내고 구름층이 엷어진다고 한다. 가끔 우박이나 소나기가 가을의 운치를 위협하면서 대기 불안정을 만들기도 한다. 농작물의 우박 피해 뉴스를 보다 보면, 날씨는 우리 삶에 너무 밀접하다. 농사뿐만 아니라 식량과 관련된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 적당히 물이 찬 논에 모내기하고, 뜨거운 햇살에 잘 자랄 때 풀이 나지 않게 한 번씩 관리해주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추수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게 농업인만의 일은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인의 수입이기도 하지만, 그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과 다른 업계에까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생각하면, 날씨 문제는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인다. 날씨와 음악, 서정적인 문장이 들려올 거로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조금 더 관심 두어야 할 분야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혹한을 떠올린다. 지독하게도 추웠던 날, 기차를 타려고 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겪어본다고. 대기의 방향이 바뀌어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한반도를 지나가면서 추위가 찾아온다.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삼한사온.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온대저기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반도 주변을 지나갈 때, 저기압이 접근하기까지 나흘 정도는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조금 오르다가, 저기압이 통과하면 북풍을 타고 한기가 내려오면서 사흘 정도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고 배우고 겪으면서 자랐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거의 두 계절로 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했다. 지독한 더위 아니면 추위. 그사이에 낀 봄과 가을은 월급이 통장을 찍고 지나가듯 잠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날씨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시선을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유감이다. 하나하나 다 적자니, 날씨의 변화를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저자도 인식하고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 확인된다. 계절을 클래식 음악의 악장과 같다고 느꼈던 거에 비하면, 가속하는 지구온난화는 악장의 길이가 바뀌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짧은 1악장의 봄이나 점점 길어지는 2악장의 여름처럼, 다양한 변주곡으로 날씨를 이야기한다. 날씨의 음악이 얼마나 더 다양하게 들려올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건, 지금 지구의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건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로 전하려는 음악을 듣는 건 즐거웠지만, 그 음악이 자연의 현상에서 들려오는 거로 생각하면 내가 되돌려줄 음악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의 폭우가 아름다운 음악을 망가뜨린 것처럼 여겨지는 건 나뿐인 걸까.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의 지식과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테고, 여러 가지 기후변화를 지켜본 이가 전문적인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고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진다.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 예측에서 벗어나는 기후 문제가 등장하면서 정확한 날씨 전달은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기예보가 빗나가더라도 ‘구라청’이라는 오해보다 그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삶은 날씨에 따라 일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마음의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니까. 며칠 전에도 엄마는 이 더위가 힘들다며 달력을 들추었다. 처서가 언제냐며, 이 폭염이 좀 사그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루를 견디고 계셨다. 개인의 생활과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살피는 날씨, 크게는 이 지구상에서 연주되는 날씨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날씨나 기후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흐름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금 더 깊게 집중해서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살면서 겪는 다양한 날씨와 우리 살아가는 기후 환경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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