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하늘색을 배경으로 옛스러운 느낌의
주전자, 찾잔, 수저와 포크, 장식품, 의자 등이
떠다니는 것처럼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중절모를 쓰고 고급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는듯한 여자의 모습의 그려져 있는
표지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책 제목인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과
잘 어울리고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 겉면에 '미스 일라이저 요리에서 인생을
배우다' , "요리책을 가져와요, 시는 아무도
읽지 않으니."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을 가지고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위에서 말한 것들이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라는점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실제 인물을 다루는 소설의 경우
3인칭 관점에서 인물과 주어진 환경,
주변인물들과 관계, 감정의 변화,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은 30대
중반의 숙녀 일라이저와 사춘기의
하녀 앤이 번갈아가며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라는점에서 새로운
형식과 '요리' 라는 소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쓴 시를 퇴짜 맞은 일라이저
액턴은 출판업자 미스터 롱맨으로부터
시처럼 깔끔하고 기품 넘치는 요리책을
가져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일라이저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는 소식을 듣게되고
가족들을 모두 흩어지게 되는데 어머니와
함께 옮겨 온 곳에서 ‘보다이크 하우스’ 라는
하숙집을 열게 된 후 일라이저는 어리고 가난한
앤 커비를 하녀로 고용하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여러 식재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요리
레시피들을 하나 씩 만들어 가게 되고
마침내 영국 주방과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되는 '현대 요리' 를 출판하게
되는 전반적인 스토리를 담고있다.
이야기의 배경과 상황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모습과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는지,
시간의 흐름과 주어진 환경에 변화에
따라서 인물들의 행동과 마음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가 잘 담겨있다.
그리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전개들이
이어지면서 다음 장에서는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
-애너벨 앱스/공경희 옯김-
<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주방 >은 시인이자 희곡작가이고 요리책의 저자였던
일라이자 액턴의 생애와 그녀의 조수 앤 커비에 대한
몇가지 사실에 기초한 허구의 소설이다.
'역대 최고의 영국 요리책', '영어로 쓰여진 최고의 요리책'은
당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30년간 12만 5,000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일라이저 액턴의 576쪽짜리 요리책은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현대요리 Mordern Cookery>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일반인을 위해 쓴 최초의 요리책으로
일라이저 액턴은 최초의 현대요리책 저자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앤 커비의 아침, 하녀인 그녀에게 주인 미스터 휘트마스씨가 준 선물꾸러미를 푸는 장면으로
소설의 프로로그가 시작된다.
시집일까? 아니면 소설? 지도책?
엄마가 가르쳐 준 글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그녀의 기대와 달리
책 제목은 '미시즈 비턴의 가정관리서'다.
실망감에 책장을 넘기니 그 안엔 레시피가 적힌 요리책,,,
화이트소스를 뿌린 순무, 구스베리 푸딩, 케이터 소스를 곁들인 연어의 조리법...
그녀가 미스 일라이저 액턴과 했던 요리 레시피들이
다른 저자의 이름으로 나온 책에 그대로 담겨 있다.
모든 단어와 익숙한 메뉴를 보며 석판에 레시피 관찰일지를 기록했던
미스 일라이저 액턴과의 보다이크 하우스의 주방 장면으로 생각이 연결된다.
비둘기 구이, 양파 튀김, 물컹한 자두조림을 하느라
연기가 자욱하고, 스토브의 장작 타는 소리,
포크와 나이프 덜컥대는 소리,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
책은 앤과 일라이저를 번갈아 시점이 바뀌며
심리와 행동들을 묘사하고 있다.
비단 드레스를 입고 런던 풍경들을 보며 시인의 시선으로
단어들을 조합해 시의 운율을 떠올리며,
서른여섯 살 미혼녀 일라이저 액턴은
미스터 롱맨 출판사를 찾아간다.
나한테 시를 가져와봤자 소용 없습니다!
요즘은 아무도 시를 원하지 않으니까요.
시는 숙녀의 영역이 아닙니다.
집에 가서 요리책을 써와요. 그러면 계약할 수도 있으니.
잘가요, 미스 액턴. -p22-
저는 요리를 하지 않습니다. 할 줄도 모르고.
시를 쓸 수 있다면 레시피도 쓸 수 있을 겁니다.
깔끔하고 기품 넘치게 써요. 당신의 시처럼 기품 넘치는 요리책을 가져와요.
내가 남자였다면 요리책을 써오라는 경박한 요구를 하고 돌려보내지 않았으리라. -p36-
대화의 내용처럼 여성이 본명으로 책을 내기 힘들었던 시대다.
남자의 이름으로 가명을 써서 책을 쓰고,
여성은 그저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 시대.
일라이저 액턴의 부친은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법학사를 취득한 신사이지만
채무액으로 파산선고를 받고 도피자가 되어서,
일라이저 액턴은 모친과 함께 하숙 손님을 받아 생활을 시작며집안 경제를 책임진다.
요리사가 꿈이지만 신체장애의 아버지와 정신장애 어머니 속에서
빈곤과 불행한 현실을 살고 있는 앤 커비는 가족 상황을 감춘 채 힘들게 소프 목사의 소개로
주방 하녀로 일을 하게 되며 일라이저의 보다이크 하우스에서
일라이저와 앤커비가 만나게 된다.
한 모금 홀짝이니,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 난다.
새콤달콤, 얼얼,
꽃내음이 한꺼번에 퍼진다.
레모네이드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 난다는 말도 안한다.
라벤더꽃을 찢어서 짓이긴 버베나와 레몬밤 잎과 섞었다는 말도... -p72-
소프목사의 당부로 하인과 주인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행동을 조심하려고 하는 앤은
따뜻한 시선과 미소, 용기를 주는 일라이저의 행동으로 조금씩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팔에 닿는 손의 감촉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너무 오랜만에 받는 다정한 손길이다.
미스 액턴은 정말 정갈하고, 따뜻하고 순수하며 단정하다. -p76-
신분과 배경이 다른 일라이저와 앤은
주방에서 함께 요리를 하며 레시피를 만들고 우정을 나눈다.
계급의식이 존재하는 시대에 고용주와 하인이지만
대등한 관계를 이루며 서로 고단한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한다.
미시즈 액턴은 '마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지만,
난 편하게 '미스 일라이저'라고 불러 줄래? -p77-
p95
아프리카의 천국, 검은 흙과 더위가 가득한 숲의 맛이 느껴져요.
아주 강하게 배어서 혀에서 고음으로 노래한 것은 무슨 맛인가요?
생강을 더 넣어도 좋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건방지고 주체넘은 짓일 듯 하다. -p95-
주방에서의 풍미 가득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일라이저와 앤의 대화를 들으며 머릿속에 그려졌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도전해보고
정확한 계량으로 자르고 다지고, 레시피들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일라이저의 노트...
난 계량에 특히 신경쓰거든.
매사 정리되고 정확해야 해.
그래야 생활이 혼란스럽지 않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앤? - p94-
생뚱맞은 사물들에서 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과연 진실하고 아름다운 시를 담은 요리책을 쓸 수 있을까?
요리책이 아름다운 작품이 되면 왜 안되지? -p79-
책의 저자 애너벨 앱스는
일라이저에 대한 실마리를 탐색한 자료를 근거로
조합하고 살을 입혔음을 밝혔고, 소설을 쓴 과정을
책의 부록에 '역사 속 이야기'를 통해 제시해 주고 있다.
일라이저의 글을 도용하고 레시피의 3분의 1을 표절한 미시즈 비턴에 관한 이야기,
일라이저의 직업란엔 작가도 아닌 존 액턴의 딸로만 기재된 사실,
프랑스에서의 힘든 연애의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등
역사속 일라이저의 삶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복숭아 피클, 초콜릿 커스터드, 세이지에 싼 장어, 속성수프등
일라이저 액턴의 레시피도 책의 부록을 통해 몇가지 알 수 있었다.
메모와 레시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려니 책에 생명을 주는 것 같다.
그 핵심에 맥박이나 영혼 같은 게 깃든 느낌이 꽤 독특하다 -p322-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소설을
요리에 관심이 부족한 나임에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한 장면 한 장면 눈에 그려지며
신분의 차이가 있음에도 주방 하인인 앤 카비를 대하는 일라이저의 마음과 자세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배려하는 모습이
참 다정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졌다.
마음이 스스로 앤 커비에게 향한다.
아주 특이한 가녀린 소녀, 수수한 얼굴, 주근깨, 깡마른 몸매,
부대자루같은 겨울 드레스 밖으로 드러난 쇄골,
나이도 어린데 평생 석탄 자루를 옮긴 듯한 굽은 둥근 어깨. 하지만 읽을 줄 알고...
내 라벤더 레모네이드에 보인 예리한 반응, 마치 시구절이 몸속으로 흐르는 듯이,
아이마냥 망설이는 얼굴에 내가 좋아하는 특징이 다 있었다.
정직성, 호기심, 영민함. 설명할 수 없는 짠함. 둘이 묘하고 형언할 수 없게 이어진 느낌.- p81-
앤 커비 또한, 일라이저를 향한 순수한 마음과
일라이저의 단호하고 강단있고 분명한 일라이저를
닮아가고픈 마음으로
일라이저와 같은 자세를 배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미스 일라이저처럼 말하는 걸 깨닫는다.
그녀의 확고한 힘, 단아한 예절, 전부 그녀에게 배웠다고 생각하자
푸근한 느낌이 차오른다. -p373-
소설의 시작이 앤의 프로로그로 시작되었고,
끝의 에필로그도 붉은 포도주색 가죽 장정에
양각으로 새겨진 책 <현대요리 Mrdern Cooking>에
금색으로 박은 그녀의 이름이 반짝반짝 빛나는 책을
프로로그의 미스터 휘트마시가 준 <가정관리서> 책과 나란히 두는 장면으로 마무리 된다.
휘트마시 부인이 되어...
" 당신의 요리가가 되고 싶어요 "
내게 인생이 짧다는 걸 상기시켰다고 어떻게 설명할까
인생은 단 한번만 오며, 그걸 낚아채어 삼켜야 된다는 걸 새삼 알았다고.
인생을 낭비하고 썩게 방치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p427-
”영국의 젊은 주부들에게 바칩니다.“
1830년대 런던을 배경으로 한
일라이저 액턴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책은 사실 기반의 픽션이자
현대 레시피북의 시초를 탄생시킨 시인이자
작가인 현대 요리책 작가로의 일라이저를 만나볼 수 있다.
시인으로서 활동하고자 꿈꿨던 일라이저에게
출판사에선 도리어 시보다도 요리책 집필을 권유한다.
시는 여성의 영역이 아님을 단칼에 거절하는 모습을 보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여성은 지적, 사회적 활동에 제약이 컸으므로
요리책 제안이 거부감이 들긴 했지만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영국 여자들은 요리를 할 줄 모르지요.
여기 숙녀들은 그림을 예쁘게 그리거나 연주하거나, 내 모국어를 말하는 법은 배워도 요리는 안 배우거든요.”
“영국 음식은 아주 형편없습니다. 런던 신사들이 선술집과 식당과 고기 전문점에서 식사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먹을 만한 음식은 오로지 프랑스인 셰프들만 만들거든요.
우린 예술가입니다. 예술가!”
p268-269
“영국인들은 소스가 하나뿐이지요. 버터. 늘 버터죠.
하지만 저는 다양한 소스를 갖고 있습니다.
각각의 소스는 시간을 멈추고, 그리하여 먹는 사람은 한순간 몸과 영혼 속에서 진정으로 살지요.”
p288
손바닥에 <가정 요리>를 올리고, 내 책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상상을 한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 이웃에게 자매에게, 친구에게서 친구로.
한가지는 확실하다. 레시피들이 말을 한다는 점. 거기에는 나름의 언어가 담겨 있다.
p417
당시 요리를 하지 않던 영국 귀족 여성들에게
요리책을 접하게 만들기란 어려움이 많았고
레시피북 또한 보완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다.
하녀 앤 커비의 도움으로 요리책 집필에 좋은 영감들을 얻게 되어
새로운 레시피북이 탄생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다양한 레시피와
색다른 요리 방식으로 테스트를 거듭하며
앤과 가까운 관계를 이어가며 둘만의 우정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주고받는 대화처럼 느껴지는 책의 흐름을
호흡으로 이어갈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엄격한 시험을 거친정확하고도 간결한 레시피.
보통의 주부들이 어려움 없이 요리할 수 있는 조리법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단순히 훌륭함을 넘어 성스럽다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완벽한 맛과 조화를 이루는 음식의 하모니가
다양한 메뉴들에 담겨있다는 생각에
나또한 요리를 맛보고 즐기고 싶어 당장이라도 조리대 위에서 칼질을 하고 싶어진다.
텍스테에 고스란히 담긴
잘 차려진 식탁 위로 풍미 가득한 음식과
다양한 식기들이 그려져있음을 글로만 읽어내야 하는 것이 참 아쉬웠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앤과 일라이저의
가슴 따뜻한 연대기를 살펴보면서
둘의 호흡만큼이나 완벽한 페어링을 구사한
요리책의 완성은 두 사람의 우정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들의 열정만큼이나 완벽한 요리의 즐거움과
매혹적인 음식의 향연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진다.
TV 드라마 제작 확정이라니 이또한 기대해보며
미스 일라이저의 조리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미식의 세계와 탐구, 꿈과 희망이 듬뿍 담긴 삶의 이야기에
흥미롭게 살펴볼 준비가 되었기를.
언제부터인가 음식에 대한 열풍이 불면서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요리와 예능이 결합된 프로그램이나 세계 각지, 우리나라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맛있고 색다른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갔을때의 즐거움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인데 나라마다 특징이 달라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음식이라고 하면 먼저 군침부터 도네요. 반면 영국 음식은 맛없는 음식의 대명사로 온라인에 많은 밈(meme)들이 올라오면서 유머의 대상이 되고 있고, 피쉬 앤 칩스 외에는 별로 떠오르는게 없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국에도 요리책에 있는데 빅토리아 시대에 일라이저라는 사람이 요리책을 펴냈네요. '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의 저자는 요리책을 보면서 이 책과 관련된 사람들을 조사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이 책을 내게 되었네요. 영국 요리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책 제목을 보면서 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앤은 일라이저 집의 하녀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일라이저 가정은 부유하였지만 파산을 하면서 아버지는 프랑스로 도피하였고 가족들은 먹고 살기 위해 뿔뿔히 흩어졌네요. 일라이저와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하숙집을 운영합니다. 앤의 가정 환경은 극도로 불우하였는데 목사님의 소개로 일라이저의 하녀로 일하게 되었네요.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라이저는 요리사에게 시키는게 아니라 부엌에서 직접 재료를 다듬으면서 요리를 하였고, 앤 역시 석탄을 나르고 물을 긷는 등 집안일을 하는 대신 일라이저의 요리 보조로 같이 일하게 됩니다. 고용인와 피고용인이지만 그런 관계에 신경쓰지 않고 서로 케미가 잘 맞아서 마치 자매처럼 보이네요.
일라이저는 시를 썼고 시집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책을 낸 이후 그동안 쓴 시를 모아서 새로운 시집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방문했는데 요리책을 쓰라는 황당한 말을 듣네요. 문학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실용적인 요리책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정마다 한권씩 있는 요리책을 읽어보면서 레시피가 얼마나 형편없고,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은 이대로 따라하기도 힘들겠다고 느끼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요리책도 충분히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앤과 같이 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어떤 재료들을 조합하였는지, 얼마나 정확하게 계량하면서 단계별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드디어 10년 만에 '현대 요리' 라는 책이 나오게 됩니다. 그중에는 여왕님의 푸딩도 있는데 정말 요리 이름 만큼이나 레시피에도 문학적인 특징이 잘 녹아있네요.
'현대 요리' 는 빅토리아 시대에 나왔습니다. 이 시기에 영국은 세계 각지로 진출해 식민지를 만들면서 대영제국을 이루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인 배경을 엿볼 수 있네요.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의 귀한 향신료가 영국으로 들어오면서 요리의 맛을 내기 위해 육두구, 정향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일라이저 아버지 친구인 부유한 신사와 혼담 이야기도 나왔는데 돈이 많이 많기 때문에 아버지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라이저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결혼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고, '신사' 들이 집에서 일하는 하녀, 요리사 등 여성들을 어떻게 여겼었었는지도 나오네요. 출판사에서는 여성은 뛰어난 시인이 될 수 없다면서 '숙녀' 라는 이름으로 요리책을 쓰도록 했는데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일라이저의 인생이 바뀌고 '현대 요리' 라는 베스트셀러가 나면서 그녀의 이름이 계속 전해질 수 있었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일라이저와 앤의 대화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책을 읽다보니 어떤 맛일까 궁금해집니다. 어떻게 보면 '현대 요리' 는 평범한 요리책인데 이 책을 보고 이렇게 소설이 탄생하게 되었다니 새삼 저자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일라이저와 앤 각각의 시각으로 내용이 번갈아가면서 나와서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