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책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딘가에서 읽은 것 같은데 사람은 어떤 소중한 추억이나 기억으로 힘든 현실을 이겨 낼 수 있고, 살아 낼 수 있다고.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는 것일까? 애증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과 내가 엄마한테 받고 싶은 사랑의 간극이 컸을 뿐. 나와 엄마는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미움이든 화남이든. 관심이 없었다면 하지 않았을 믿음의 순간들.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에서건 최선을 다해 살았고, 자신만만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 같다. 훗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하나도 슬프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사랑을 주려고 하는 것일지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유년 시절을 보낸 아마가이 치히로. 그는 스무 살 여름 ‘레테’로 어린 시절 기억을 지우고 삶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도착한 것은 이상적인 청춘의 기억을 뇌에 심어주는 프로그래밍 나노로봇이다. 이것을 실수로 복용한 치히로. 이때부터 치히로는 나쓰나기 도카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존재할 리 없는‘ 소꿉친구의 기억을 갖게 된다. 도카와 함께 한 달콤하고 행복한 가짜 추억에 흔들리는 치히로. 그러던 어느 날 도카가 치히로 앞에 나타난다. 그에게 요리를 해 주고 음악을 함께 듣고 때론 잔소리도 한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때, 도카는 사라진다. 그녀의 정체를 추적하던 중 도착한 한 통의 편지. 그녀는 치히로에게 레터 대신 나노로봇을 보낸 장본인이자 서서히 죽어가는 시한부 환자였던 것. 그녀는 어떻게 치히로를 선택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그녀의 정체를 알아갈수록 치하로는 그녀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먼 훗날 우리의 기억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좋은 기억을 심고, 괴로운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런 상황을 즐길 수 있을까? 즐길 수는 없어도 나에게 유리한 상태로 바꾸고 싶을까? 내가 나인 이유는 내가 살아온 지난 과거와 현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런 기억을 지우는 것. 과거를 지우고 현재와 미래만 존재한다면 그게 과연 나이기는 한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실제가 아닌 누군가가 만든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만 사랑한다면 그게 과연 사랑인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죽음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면 좋은 기억만 갖고 저세상에 가는 게 좋은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좋은 기억만 있다는 것. 실패와 아픔은 존재하지 않은 우리의 기억. 그렇다면 행복하기만 할까? 사랑도 충분히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기에 치히로는 그녀의 흔적을 찾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일 수도. 행복하기만 한 기억. 사랑이 충만한 기억. 그리고 사랑받기만 한 기억. 이런 기억을 갖는다고 내가 나다워지고, 행복한 것인지. 슬픔과 고난이 있기에 우리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감사하며 사는 건 아닌지.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힘들고 아픈 기억도 나이고, 그런 기억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아프기만 한 기억도 아니고 행복하기만 한 기억도 없기에 우린 단단한 내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먼 훗날 사람의 기억조차 마음대로 하는 세상은 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묘하게 마음이 아팠던 소설이다.
"결핍투성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
미아키 스가루의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를 읽고
"이 세상 어딘가에 나의 운명의 상대가 있다"
-만나기 전부터 계속되어 왔고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사실은 얼마나 정확할까.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가 존재함을 안다. 그러나 진짜라고 알고 있는 기억이 정말 진실된 것일까. 그 기억이 조작되고 왜곡된 것은 아닐까. 우리의 과거 속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그 사람은 정말 실존하는 사람인 것일까. 만약 과거 기억 속에 사람이 지금 현재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이 책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을 읽으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책 속 소꿉친구인 소녀에 대한 기억은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나노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기억일까.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상상이고 허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책 속 주인공이 말하는 내용이 과연 주인공이 실제로 겪은 일일까. 아니면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그 사실을 잊은 채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시작된 순간 끝나버리는 사랑과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끝나버린 사랑, 어떤 사랑이 더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인 걸까. 한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어릴 적 소꿉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당신 곁에 나타난다면 당신은 어떨까. 그런 일이 이 책의 주인공 아마가이 치히로에게 일어난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꿉친구가 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몸에 닿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 손이 얼마나 따스한지 잘 알고 있다.
- p.10
부모님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친한 친구도 하나 없이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스무살 여름, 어린 시절 기억을 '레테'로 지우고 싶어 한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을 지우는 약대신 이상적인 청춘의 기억을 심어주도록 프로그래밍된 나노로봇이었다. 그리고 실수로 그것을 복용해버린 그는 그때부터 나쓰나기 도카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소꿉친구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더군다니 그 소꿉친구가 그의 앞에 나타나기조차 한다. 마치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놀던 그녀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에게 잘해주다가 어느 순간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녀는 과연 그의 어릴 적 소꿉친구가 맞는 것일까. 그녀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을 통해 겹핍투성이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잠시나마 첫사랑의 풋풋한 기억을 추억하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과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이야기에 푹 빠져드는 것도 어떨까.
참고로 이 책은 지난 2019년에 출간된 『너의 이야기』의 재출간본이라고 한다. 제목도 완전히 다르거니와 표지도 너무 달라서 다른 책으로 보일 정도인데 작가의 인생작이라고 적혀 있으니 더욱 궁금해진다.
원래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상당히 화제가 되었고 인기로 이어졌던 작품이 독자들의 요청으로 이렇게 재출간 되기까지 했다니 놀라운데 과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는 것이 허구를 주입할 수 있는가, 그렇게 했을 때 서로가 기억하는 부분이 달라질 수도 있을텐데 그로 인해 현실에도 혼동이 생기지는 않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기에 작가는 과연 이 의억이라는 가상의 기억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했다.
전작들 역시 독특한 소재로 남다른 스토리를 보여 준 만큼 단순한 기억의 이식이 아닌 가상의 기억과 가짜 추억을 구입하고 주입한다는 설정이 확실히 흥미롭게 느껴진다.
애초에 자신에게 없는 기억들을 구입한다는 설정도 특이한데 마치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하듯 존재하지 않은 기억을 구입하는 대상 역시 부부나 부모 등 대상도 다양하다. 문득 나라면 어떤 기억을 구매할까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도 당연지사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듯 어떻게 보면 기억 역시 그런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부모 자식간에 좋은 추억이 없거나 기억나는게 없거나 또 애초에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기억들을 갖고 싶은데 그걸 실제로 구입할 수 있다면 한번쯤 구입을 시도해볼 수 있을것 같긴 하다.
게다가 단순히 기억을 기억을 구입하는 것을 넘어 원치 않는 기억을 지우기도 하고(어쩌면 이 옵션이 더 수요가 많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꾸기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렇게 조작 내지는 제거된 기억이 진정으로 내것인지, 그 이후 일어날 일들을 당연히 생각해볼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작가는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자신에겐 존재하지 않는 소꿉친구라는 존재와 그 존재와의 기억. 치히로는 이런 기억을 소유하게 되고 도카는 이런 치히로의 기억 속 존재로 치히로에겐 첫사랑이기도 하다. 그러다 의억이 아닌 현실에서 도카와 비슷한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혼란이 발생하는데 과연 이 상황 속의 진실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의억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싶은 궁금증이 생기면서 어쩌면 이 모든 기억들 중 단지 치히로가 기억하지 못할 뿐 그에겐 어떤 소중한 기억이 존재했던게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커지게 된다.
제목에서부터 이들의 관계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것 같아 시간이 지속될수록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이야기이다. 상당히 독특하지만 한편으로는 애절한 로맨스 소설 같은 작품이였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비록, 닿을 수 없는 너의 세상일지라도♡
만나기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사랑 이야기
제목만 보면.. 요즘 핫한 슬픈 로맨스 일 것 같은데.. 로맨스+SF 장르라~ 신비롭더라고요. 허구의 세계에서 나는 행복했다. 현실의 세계에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기억을 소멸시키거나.. 생성하는.. 그래서 5번의 신혼여행(각각 다른 부인)이라던지.. 여러 명의 다른 기억 속 자식들.. 지우고 싶은 추억은 지워버리는~ 조금은 생소하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의억... 허구를 사랑하는 부모님ㅠㅠ 거짓된 기억을 믿고 좋아하는 부모님때문에~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치히로.. 그가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구입한 "레테"가 실은 첫사랑의 기억을 주입해주는 "그린그린"이었어요. 소꿉친구 도카~ 그녀와의 로맨스...♡
나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면... 무엇을 지우고 싶을지~ 주입하고 싶다면..어떤 기억을 넣고 싶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물론 힘들고 슬픈 기억들도 많은 과거였지만.. 첫사랑이든- 스쳐간 모든 사랑들이 저에게는 의미있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저는 더 발전하고- 지금의 예쁜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저의 모든 유년시절의 기억들은 행복이 가득한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에 만족하고~ 기억을 삭제하거나.. 넣지 않고 지금의 저로 살고싶어요^^
결핍 투성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 읽으며 풋풋했던 저의 첫사랑이 생각나기도 하고~ 요즘 로맨스 소설들 왜이렇게 설레는지..ㅋㅋㅋㅋ연애세포 몽글 몽글~ 나의 기억이 진짜인지..가짜인지.. 사랑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신비로운 설정에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현재 그녀에게 나는 생면부지의 타인인 것이다. / p.14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기억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 그냥 가끔 떠올리는 추억 정도로 남겨두는데 말도 안 되는 상상과 함께 기억을 조합하는 것은 나름의 재미이다. 그 중 하나가 기억을 가져오거나 생성하거나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크게 미련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막상 답이 떠오르지는 않다.
이 책은 미아키 스가루의 장편소설이다. 본의 아니게 일본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고 있는데 나름 취향에 맞았다. 특히, 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청소년기의 사랑 이야기처럼 예상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 지점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치히로라는 인물이다. 부모에게 크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친구들과도 그렇게 기억에 남는 유년 생활을 보내지 못한 듯하다. 치히로는 과거의 기억들을 잊기 위해 레테라는 이름의 기억을 지워주는 알약을 먹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레테가 아닌 첫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는 다른 기능을 가졌던 것이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청춘을 기억해 준다. 그 약을 먹고 치히로는 소꿉친구인 도카를 떠올리게 되고, 거짓말처럼 도카가 치히로에게 나타난다. 이야기는 그렇게 치히로와 도카의 로맨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색다른 용어들이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용어에 대한 해설이 짤막하게 실려 있는데 아마 저자가 만든 가상의 용어인 듯했다. 그런 지점이 나름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또한, 로맨스와 SF 장르를 결합한 새로운 느낌을 주어서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딱 한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관통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기억에 대한 상상을 종종 했었는데 나라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싶어할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치히로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자 했다. 아무래도 누가 봐도 외롭고 쓸쓸한 유년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면 어떤 가상의 기억을 소환하고자 했을까. 읽으면서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한 결과는 유명한 이들의 지식을 꺼낼 수 있는 기억의 기능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상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소설로 돌아가 레테와 그린그린이라는 두 가지 종류 중 하나를 고르자면 후자를 택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로맨스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읽었지만 SF라는 장르가 가미되어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읽었던 일본 작가의 로맨스 소설과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신선하게 느껴졌던 작품이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