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哀悼), 슬프게 서러워 하는 일을 사전적 정의로 표현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든 이별, 영원한 이별과 관련되 있고 흔히 죽음이라 지칭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판단할 수 있다.
죽음은 왜 이렇게 서럽고 슬프기만 하고 탄생은 왜 기쁨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비춰질까?
함께 할 삶이 기쁨이 되고 사랑이 되는가 하면 나, 우리를 빛나게 하는 일이기에 탄생은 죽음에 비해 환호하고 환영받을 만 하다.
하지만 죽음은 그에 비해 더이상 존재를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완전한 단절의 상태를 마음 속 깊이 가져야하는 일이며 그러함은 온전히 슬픔과 눈물로 삶을 이어지게 하는 비통함을 뜻하기도 한다.
누구나 느낄 수 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느낌은 각각이 다르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타인의 죽음, 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의 죽음을 마주하고 공들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 자그마한 안도와 함께 애도에 대한 염을 추모해 본다.
이 책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는 더이상 이 세상에 살아 존재하지 못하는 죽은자의 삶, 생활의 현장을 정리해 유종의 미를 완성시켜 주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과 의미를 보여주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한마디로 '애도'는 삼키고 싶어도 목에 걸려 서러운 감정을 토해내는 느낌을 갖게 하는 감정처럼 복잡미묘한 감정에 다름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 인간의 죽음, 동물이나 식물의 죽음에도 애도의 염은 필요하다.
죽음과 장례는 무척이나 가까워 친근함 마져 든다.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삶에 이어진 사연을 가진 존재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무연고 가족자의 사망도 많이 존재한다. 그런 그들의 사망에 아무도 울어줄 사람도 염해 줄 사람도 없다는 자체로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생각하고 싶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일은 가족이든 아니든 인간 존재의 죽음을 애도받아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한 일이다.
저자는 자신의 지금까지를 유해한 삶으로 규정짖고 앞으로의 삶을 무해하게 살고자 한다고 그래서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한 일을 한다고 밝힌다.
하루하루의 삶과 자신의 욕망에 허덕이는 스스로의 모습에 절규하는 많은 나,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 그나마 행복임을 깨닫았으면 좋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 올 수 있는 약속된 미래이다. 그 미래를 앞서 받은 이도 있고 뒤 늦게 받을 이도 있을 뿐이지만 나, 우리의 죽음 앞에 애도의 눈물을 흘려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 보면 적잔히 오늘 우리의 삶과 생활에 대한 반성과 다짐을 새롭게 가져보게 된다.
더구나 무연고자들이라면 죽음마저 그들을 외면하는 꼴이 되고말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은 우리 도두가 애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애도 받을 권리 역시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 인간에 대한 사랑, 휴머니즘에 대한 경배와 다를바 없다 하겠다.
죽음이 탄생 만큼의 환영받을 일은 아니겠지만 누구에게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는 애도의 장이자 삶의 끝을 고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함께 그 애도의 염을 추구해 보고 싶다.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캐리입니다.
"무연고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치르는 마음" 김민석의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출간소식을 듣고 어떤 책일까 궁금했어요.
잔잔하게 시작하는 애도하는게 일입니다.는 나눔과나눔에서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직접 치르며 다양한 사례들과 느낀 점을 일기장 쓰듯 옮겨 담은 책이에요.
P. 16~17
성북구에 위치한 마트 앞의 어느 골목은 내가 애인과 함께 장을 보고 산책을 하던 공간이면서 동시에 한 고인이 고립사한 주택이 있는 곳이다. 사무실 근처 아파트 앞의 상가도, 쪽방 입구에 위치한 고시원도, 도심 속 공원과 지하철 역사, 동네 뒷산 등산로, 매일 오가는 거리까지. 생각 없이 지나치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죽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연의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존재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그 죽음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내가 만난 고인들이 손을 들어 일상의 풍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 저곳에, 그리고 당신의 지척에서 내가 살다 죽었다고.
저는 무연의 죽음이 정말 아무 가족도 없고, 무언가 가난하거나 이런 사람들이 주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무연의 죽음이 내 형제 자매나 자녀가 없으면 조카 조차도 내 죽음 뒤의 일을 처리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처음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연고로 죽은 자들의 남은 흔적들도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일을 하고 있음을 책을 읽으며 진짜 가깝게 느끼게 되었어요.
P. 67~68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영아도, 청년도, 노인도 때가 되면 모두 죽는다. 마찬가지로 무연사도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주 이 사실을 간과한다. 무연 고사망자가 당연히 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사람들은 자신과 동년배이거나 나이가 어린 고인의 위패 앞에서 더욱 숙연해진다. 당연한 반응이다. ‘때 이른 죽음’이라는 생각은 안타까움을 배로 만드니까.
하지만 ‘때 이른 죽음’이 어린 나이에 죽은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인에게도 죽음이 때 이르게 찾아올 수 있으니까.
나이가 어린 고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많이 없었어요. 당연히 나이가 들어야 죽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진짜 어린 고인들을 마주하면 삶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아요.
p87
제도적인 모순은 고쳐지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의료법만 고치면 해결될 문제일까? 법은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데, 지금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
현장에 있을 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일 것 같아요. 의료법 때문에 한정되어 무연고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고인들.
이런 가족분들을 대할 때마다 애도하는 게 직업이신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지..감정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까지 발을 빼야할지..참..법엔 항상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법이지만 죽음 조차도 그 처리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떠나는 길도 참 무겁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애도가 필요한 사람과 필요하지 않은 사람을 사회에서 구분 짓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래서 적어도 지인이 죽었을 때 마음껏 슬퍼할 수 있고,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을 때 불안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
작가님의 이 이야기가 한 껏 와닿았어요. 돈이 없거나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에 화장 전에 사진 한 장만 보내달라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참 아프게 했었고 범죄자이거나 그 어떤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인에 대해선 애도할 권리가 있다는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
p224
'고인의 이름이 불릴 때 어떤 마음이 담겨있든, 내 일은 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나눔과나눔에서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시는 분이라
정말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애도할 가치가 있고 없고를 나눌 것이 아니라,
한 세상을 살고간 영혼들에 대한 애도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을
따스한 마음으로 보고 손길을 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무연고자의 장례 치뤄주시는 김민석팀장님의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는
이 추운 날씨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