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의 김민영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평으로
입소문이 난 이재은, 임지선 작가의 작품
<성적표의 김민영>을 만나보게 되었다.
책의 구성도 참 참신해서
전혀 발상을 떠올려보지 못했던 형식이라
한 권의 책이 이처럼 다양한 맛과 색을 가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독특하고 기발했다.
청주여고에서 단짝 친구로 지낸 이들은
수능 준비를 기점으로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대입을 포기한 정희를 보면서
괜히 난 마음이 자꾸 쓰였다.
지금 사춘기를 심하게 겪고 있는 큰아이의 방황하는 시간을 보며
정희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겹쳐보이는 듯 해서
마음이 아렸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과 소원해지면서
고교 시절 삼행시클럽의 위기는 불보듯 뻔해보이는데..
그렇게 학창시절 깔깔대며 울고 웃던 여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게 되는 듯 이내 우정이 가진 영원성은 소멸하는 듯
불평과 의심을 낳게 되는 참사를 맞이하게 된다.
미처 그땐 깨닫지 못한 지금의 현실과의 괴리감에
조금은 마음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대학 진학 후에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가 없는 걸 보면
각자 살기 바빠서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학이란 관문을 통과하고서 보면
이전의 내가 과거의 나를 벗어나
성장 또는 퇴화한 부분들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자기계발과 미래를 계획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점점 순수성을 잃어가게 되며 계산적인 내가 되어가는 걸 보며
슬픈 그늘을 발견하게 될 땐 참 속이 쓰린다.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너는 한국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p126
어쩌면 정희는 '더 넓은 세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더 깊은 나'를 꿈꾸는 것은 아닐까.
그가 가끔 꿈꾸는 삶은 깊은 숲속에서 홀로 약초를 캐며 사는 삶이다.
사람들에게는 잊힐 즈음 자신은 약초 박사가 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은둔을 희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 세상을 알고 싶어 한다.
민영에게는 '사차원'으로 보이는 다소 엉뚱한 정희는 오히려 제 삶을 매우 현실적인 차원으로 구축한다.
민영의 현실적 충고와는 결이 다른, 정희가 만드는 현실이다.
p153-154
과거의 기억을 소환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 보게 만드는
꿈많던 여고 시절의 친구라는 울타리가 주는 위안이 컸던 여고 시절.
그 때가 참 그립고 애틋하면서 시린 아픔이 느껴지는 기분이다.
모처럼 추억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친구들을 떠올려보며 그 때의 나를 투영해 볼 수 있었던
풋풋하고 여물지 않았던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본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면 입시에 얽매여 살던
공부에 찌든 삶 뒤로
친구와 함께였던 별 것 아닌 그 시간들이
그토록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걸 이제야 알 것 같다.
'친구들아, 많이 보고 싶다. 잘 지내니?'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이지은, 임지선 외 3명 지음 | 아르테
영화·시나리오 / p.232
한국인의 삶 F
너가 한국인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생각나.
남의 눈치를 보고, 안정된 삶을 쫓는 사람들?
바쁜 일상. 좁은 땅. 인맥. 가식과 형식.
알 수 없는 불안. 기다림. 두려움. 막연한 기대.
너가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게 맞을 수도 있어.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기다림?
음… 그래도. 앞으로 뭘 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심하다고, 덜 절실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말인데… 너는 한국인이 아니라 혼혈이었으면 해.
그런 의미에서 F를 줄게.
p.126
'저 내성적이에요.' 하면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네가?”라며 웃는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낯을 많이 가리던 나였기에, 짝이랑 내 앞, 뒤로 앉은 친구들이랑만 친하게 지냈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조금씩 활동적으로 변화했고, 민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내 친구 사진을 두 번 나눠 촬영했을 정도로 많았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스무 살 버디 무비 「성적표의 김민영」의 각본집을 읽으며 학교가 달라지고, 일하는 곳이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멀어지며 변해 버린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즐거웠던 나의 20대의 일상과 친구들도 함께 떠올려 본다.
모든 일상을 함께했던 고3들의 생이별이 전국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생이별은 더 이상 그들이 고등학생 때처럼 같은 배경 아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다른 모양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보는 것, 말하는 것, 모든 것이 바뀐다. 그 사이에 카톡으로 연결될 수 없는 공백이 발생한다.
p.159
수능 100일을 앞두고 창작욕을 잠시 재워 두자며 삼행시클럽 해체를 선언하던 정희와 민영 그리고 수산나. 이 셋은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대학을 가지 않고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청주에 남은 정희, 청주를 떠나 대구대에 진학한 민영, 아예 한국을 떠나 하버드대에 입학한 수산나 그리고 재수를 선택한 수능 시험장에서 만났던 정일.
처음엔 서로의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 화상 채팅을 하며 만남의 시간을 갖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멀어진다 했던가?! 각자 생활하는 곳에서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셋의 우정은 점점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하며 나 또한 경험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민영 자신이 자신의 집으로 정희를 초대했음에도 자신의 편입을 위해 성적표 결과에 계속 이의신청하며 정희와 시간을 거의 보내지 않던 모습에선 내가 꼭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어 속상하고 서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홀로 민경의 집에 남겨진 정희가 민영의 일기장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보며 나도 어쩌면 민경이었던 적이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친구들에게 몇 점짜리 친구였을까?
미공개 장면까지 포함되어 있는 무삭제 시나리오 「성적표의 김민영」에선 20대가 된 친구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재은, 임지선 감독 대담과 김주아, 윤아정 배우의 에세이 그리고 영화를 읽는 다섯 명의 시선까지 만날 수 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조금씩 멀어지던 그들이었지만 마지막 정희가 민경에게 남긴 성적표와 그림대회에서의 그림은 또 다른 메시지를 보여준 게 아닐까?!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인연 또한 있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20대로 돌아가 그때가 되어 본 시간이었다. 표지에서의 수경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정희와 민경의 에피소드에 웃음 지으며,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만나보고 싶다. 세심하게 그려진 스무 살의 버디 무디 「성적표의 김민영」을 말이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남기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김: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민: 민영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영: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성적표의 김민영> 中
내 기억으로는 대본집을 읽은 게 거의 처음이지 않나 싶다. <성적표의 김민영> 대본집을 읽게 된 계기는 블로그 이웃인 소맹님이 추천한 독립영화였기 때문이다. 관람하고 싶었지만 관람할 수 없었고, 아쉬움이 있던 중에 시나리오가 책으로 발간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제목이 '김민영의 성적표'가 아니라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것도 호기심을 자극했고, 4차원 고등학생들의 엽기발랄한 일상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주인공은 당연히 김민영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인공은 정희라는 처음 보는 이름의 인물이었다.
수산나: 정희야, 근데 솔직히 너네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정희: 어?
수산나: 여기 지금 낮 12시야. 너네는 일과 다 끝내고 하는 거고, 나는 지금 시간 내서 겨우 준비해서 하는 건데. 그냥 배려를 안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하기 싫어. 아니다. 이건 내가 말이 심했고, 그냥 좀 피곤하고 어쨌든 그래. 다음에 얘기하자. 나중에 봐.
<성적표의 김민영> 中
<성적표의 김민영>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정희, 민영, 수산나, 정일. 입시제도 안에서 비슷비슷하게 흘러갔던 그들의 삶은 수능을 기점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민영은 대구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청주를 떠난다. 수산나는 하버드에 진학하면서 아예 한국 땅을 떠났다. 우연히 수능 고사장에서 만난 정일은 재수생이 됐다. 정희는 진학하지 않은 채 청주에 남았고, 테니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공간적, 상황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의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지는 수순을 겪는다. 영화는 특히 정희와 민영,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고등학생 때의 관계를 현재에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정희, 대학생이 된 지금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버거워서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에 충실할 수 없는 민영.
정희: 내 현실도 있는 거잖아. 나한텐 그래도 소중한데 그렇게 말하니까… 학점… 너가 한 만큼 나온 건데… 근데 내가 왜 이런 기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같이 약속 잡고 온 건데 내가 너한테 미안해야 돼? 내가 투명인간이야? 내가 투명해? 방문마다 통과하고 그럴까?
<성적표의 김민영> 中
두 사람의 불안한 관계는 정희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테니스장에서 잘리고, 방학을 맞아 군대 간 오빠의 서울 자취집에 간 민영이 정희를 부르면서 더욱 고조된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민영은 인서울 대학으로의 편입을 결심하지만 낮은 학점으로 성적 정정에 열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초대 받은 정희는 소외되며 상처 받는다.
민영 Narr.
6월 29일.
서울 와서 사람들을 제일 많이 본 날.
저 많은 사람들이 편입 준비를 하면
내가 들어갈 데는 없다.
<성적표의 김민영> 中
민영 Narr.
내가 포기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 너의 춤에서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둘째, 처음부터 너에게 없는 걸 하려고 애썼지.
셋째, 너는 생활비가 부족해.
<성적표의 김민영> 中
정희가 자신의 서운함을 이야기한 후 둘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정희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민영은 성적정정 때문에 대구에 다녀오겠다는 메모만 남긴 채 사라졌다. 혼자 남은 정희는 집을 구경하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썼던 민영의 다이어리를 발견한다.
마음과 행동 A
내가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아 그러렇구나"하고 이야기를 들어줌.
물론 아닐 때도 있음.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를 봐 주고 있다는 느낌.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
<성적표의 김민영> 中
주기도문을 외운 후 펼친 다이어리에서 정희는 민영이 말하지 않은 민영의 상처와 불안을 발견한다. 이후 정희는 햇반으로 경단떡을 만들고, 그 옆에 <김민영의 성적표>를 둔 채 다시 청주로 내려간다. 돌아온 민영은 정희가 쓴 성적표를 접어 책 사이에 대충 끼워넣는다.
인간관계에 무심한 편인 터라 시나리오를 읽을 때 '관계성' 부분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초반에 내가 주목했던 건 '정희는 왜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는가?'였다. 꼭 대학을 가야 한다거나,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학하지 않은 부분은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취업도 아니고 또 다른 도전도 아니었다. 정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시나리오 중반부쯤 됐을 때 특별한 계기 없이 정희는 그 무엇도 선택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아홉의 우리도 대부분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에 진학하거나 입사하는 건 아니다. 때문에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한다. 마흔한 살에 또 퇴사할 결심을 하는 내가 정희를 재촉하다니. 어이없다.
또 하나 주목했던 건 수산나라는 캐릭터였다. 네 명의 캐릭터 중에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고 똑부러져 보였던 수산나. 나는 수산나의 이야기가, 수산나의 입장이 영화에 더 많이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수산나라고 힘든 일이 없지 않았을 것이며, 민영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정희 못지 않게 컸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 책의 절반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감상평 겸 해석, 두 주연 배우의 소회, 두 감독의 대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의 팬이라면 공감하고, 감동하며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시나리오 부분에도 미공개 컷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주요 화제는 '나는 민영이었는가, 정희였는가'였다. 누군가에게는 민영이, 누군가에게는 정희였던 경험이 모두에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계는 비단 그 시기에만 오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지나게는 변곡점마다 관계의 변화는 발생한다. 전학, 진학, 취업, 결혼, 출산, 육아 등등.
여러 친구들이 떠오르지만 지금 가장 많이 생각나는 친구는 내가 자신의 인생 템포에 맞춰 함께 걸으며 공감해주길 바란 친구였다. 결혼, 출산, 육아를 하면서 많이 힘들어 했음에도 내가 같이 하길 바랐던 친구. 나의 배려가 어느 순간 이용당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 친구. (이후 내가 느꼈던 실망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과도 받았지만 관계는 예전 같아지지 않았다. 친구가 자신의 인생에 나를 끼워넣으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나는 민영일까, 아니면 정희였을까.
나에게 그 친구는 부정적 의미에서 정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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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캐리입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일단 두가지가 눈에 띄어서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제목이 왜 성적표의 김민영일까? 보통은
김민영의 성적표가 맞지 않은가?
또 하나는 책 표지가 수경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인데
이 모습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주목받으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린 영화라고 해서 어떤 영화일까 궁금했는데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즐겁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앞부분은 시나리오로 되어있고
뒷 부분은 평론이 들어 있어서
앞에서 영화보며 스쳐 지나갔던 내용들도 평론 재밌게 읽으며
한번 더 상기 시키거나 강조되는 내용들도 있었습니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제 이름이랑도 비슷해서 더 정감이 있었구요.
김민영이 주인공이라기보다 제 생각엔 정희가 더 주인공 같아요.
정희의 시선에서 비롯된 민영의 삶에 대해 툭툭 꺼내 놓는 이야기들이에요.
P. 12
-정희: 김
-민영: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김씨들이 모여 가장 효용 없는 한 사람을 추방하자 회의를 했다.
-정희: 민
-민영: 민영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변호하고 싶었다.
-정희: 영
-민영: 영원히 제가 이대로 살아가진 않을 거예요.
=>3행시가 굉장히 독특하게 쓰여졌어요. 톡톡튀는 10대들의 세계를 엿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신선하기도 하고 요즘에도 이러고 노는가? 하고 궁금했는데 이소영교수님의 평론을 읽어보니(134쪽)
셋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선택한 이유와 답이
"세 친구만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놀이이자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이재은 감독의 답에 이 클럽이 단 세사람으로 구성 되어 있음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 부분이 저는 읽으면서 그들만의 문화규정의 첫번째 포인트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 73
정희, 냉장고 문을 열어 안을 구경한다.
-정희: (냉장고 속 푸딩을 집어 냄새를 맡으며) 오. 푸딩 있네?
-민영: (놀라서 뒤돌아보며) 아야, 그거 누구 줄 거야. 그거 빼고 진짜 다 먹어.
정희, 푸딩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푸딩 외에 파, 다진 마늘, 레몬, 불고기 양념 소스 통만이 있는 텅 빈 냉장고 안.
=> 아 정희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별 거 아니지만 먹는 걸로 마음 상하는 것인데 푸딩 작은 거 하나 친구 못주나 싶은 마음도 들고, 푸딩하나 못받는 친구대접을 받으려고 서울에 온 것은 정희는 아니지요.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가
정희가 보는 민영의 오디션 영상은 정희도 몰랐던 꿈이 민영에게 있었다는 놀랄 만한 사실이 있었고
누가 봐도 그 꿈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데요.
민영의 간절한 노래와 춤은 이후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오로지 간절한 노래와 춤으로만 남게 되어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아예 다른 시간을 살았던 두 사람의 시간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희와 민영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갔던 것이죠.
앞으로 뭘하든 그때 우리 같았으면 좋겠어
아무도 한숨하다고도 덜 절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민영에게 경단을 만들어 주고 떠난 정희
그걸 묵묵히 먹는 민영
함축된 것들이 들어 있는 이야기겠죠..
다 말하진 않더라도 민영은 민영대로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요.
책 초반에 이 책이 쓰여질 때 정희의 섭섭함이 시작점이 있었다는 부분에 특히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별거 아니지만 섭섭함이 쌓이면 큰 간극을 만들어 내듯이..
결말에서 공모전 전시회에 나란히 걸린 두 작품에는 각각 두 인물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이전에 말 했듯
수상 확률을 높이기 위해 민영의 이름으로 한 작품 더 제출한 정희.
정희가 민영이 될 수도 민영이 정희가 될 수도 있고 나란히 가거나
뒤에 오더라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다혜기자님도 146쪽 부분에 제가 한 생각에 얹어 쓰여진 부분이 있어요.
영화의 마지막 , 정희는 자신과 민영의 이름으로 완성한 그림 두 점으로 대회 입상에 성공했다. 민영의 이름으로 출품한 그림은 뜻밖에도 정희 자신의 소망을 그림으로 그린 '숲의 정령'이다. 자신이 홀로 앉아 일하던 상상 속 숲속의 자리를 민영에게 준 것이다. 그림은 정희가 민영을 위해 작성한 또 하나의 성적표가 아닐까,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거기 있는 우정을 위하여.
=>어떻게 이 그림을 성적표로 또 해석이 가능할까요? 진짜 영화관계자분들의 해석과 해설은 남다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상실과 기대의 시간이 주는 정서를 아름답게 포착한다는 김보라감독님의 평가처럼
이 책에서는 스무살에 느낄 만한 감정들 잘 섞일 듯 섞이지 않으면서
생각보다 웃을 일도 없고 생각보다 힘든 것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며 지나간 그 기억들이 풋풋하게 살아 다시 저에게 상실했던 그런 소소한 기억들 속에
저는 어느 성적표에 들어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던 책입니다.
영화도 같이 봤는데 진짜 이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니 참 재미있었고, 책의 내용을 알아도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같이 두 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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