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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톰 보틀러 보든 저/이시은 역
'대부분 직장인에게 월요일은 주중 가장 어두운 날일 것이다.
평소에는 삶에 대해 별다른 의문도 들지 않건만, 월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날 때면
출근의 의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묻게 된다.
출근 전엔 울적하고 퇴근 후엔 피곤해서 아무 생각이 없다.
유일하게 활력을 느끼는 순간은 하루의 근무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그때뿐이다.' -p.44
-->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자신에 대한 긍정을 가능케 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이 세상에 자신만의 기록을 남긴다. -p. 45
* 직장은 철저히 자기 잇속을 챙기는 곳*
한비자의 철학은 한 마디로 자기 잇속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는 '무릇 인간은 안전과 이익을 좋아하고, 위험하고 해로운 것은 피하려 한다'고 말했다. p.161
직장인이라서 더욱 공감 되었던 내용.
철학이라는 어려운 부분을 넘어서야 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생활하는 직장생활의 모습들과 대조하여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이 더욱 쉽고 편안하게 와닿았던 부분이다.
출ㆍ퇴근길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내용들이였다.
나의 일상 생활들 속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수정할 수 있도록 고심해보고,
스스로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조금 더 변화하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 할 것같단 생각도 들었다.
직장인에게 출근길과 퇴근길은 어떻게 다를까? 직장인에게 일요일 밤과 금요일 밤은 어떤 의미일까?
처음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일요일 밤이 너무 좋았다. 내일이면 출근한다!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마음이 지금까지 있는가? 결혼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배우자를 보고 설레는 마음이 있다면? 심장병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만큼이나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른 형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참고로 현 직장 14년 차다.) 애 둘의 뚜벅이 워킹맘인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도, 퇴근길도 전쟁이다. 출퇴근은 어린이집 등 하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5분에 희비가 교차한다. 어느 날은, 몇 번의 버스 환승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사무실 의자에 앉기도 한다. 방금 출근했는데 말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갑자기 마구잡이로 일이 끼어든다. 하원 시키려면 칼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늘따라 퇴근시간을 앞두고 일이 주어진다. 내 잘못이 아닌데, 덤터기를 쓰고, 욕을 먹는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직장인이라면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철학자들의 이름에 갑자기 확 반감이 드는가? 글쎄... 막상 책을 읽고 나면 좀 더 가까워진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앞에서 늘어놓은 직장인에 속한다면 누구나 접할법한 상황들을 책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출근길에는 서양철학자들이, 퇴근길에는 동양철학자들이 우리의 출퇴근길을 함께한다.
출근길에 7명, 퇴근길에는 8명. 총 15명의 철학자들이 과연 직장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지혜와 사색을 통해 우리의 마음속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15개의 주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개의 주제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출근길의 불평(나를 이용하려 하지 마)에는 독일의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와 조금은 낯선 이름의 영국 철학자 데릭 파핏이 등장한다. 사람은 내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할 때가 있다. 과연 타인을 도구로 삼는 게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책 속 예는 해외여행을 가게 된 동료에게 원하는 스웨터 구매를 요청했는데, 동료가 여행 직전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를 병문안 가서 그에게 스웨터 구매를 물어본다면, 그리고 빨리 나아서 꼭 스웨터를 사다 달라는 말을 했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을까? 상황을 보자마자 열이 뻗쳤다. 당연히 안되는 거 아닌가? 사고를 당한 동료의 안부가 먼저지, 그까지 스웨터 나발이 문제인가?라고 열을 낼만하다. (아마 사고당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거다.) 여기서 칸트와 파핏이 등장한다. 둘 다 비슷한 이론을 이야기하지만, 칸트가 더 극단적이다. 칸트는 순수도구원칙을 통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파팟은 타인을 이용할 때, 타인이 해를 입지 않았다면 도덕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만약 사고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여행을 떠나서 스웨터를 사 왔다면 타인을 도구로 삼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 예는 좀 극단적이긴 했지만, 우리 실생활에서 이래저래 자주 접할 수 있는 문제이기에 꽤 신선했다.
그렇다면 퇴근길에 기억나는 철학자는 누구일까?!잔혹(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다)의 한비자다. 역시 이번에도 예가 등장한다. 솔로이자 열정 많은 막내 사원.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도와준다. 근데, 그러다 보니 호구가 되어있다. 타인을 돕고자 한마음으로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는데, 왜 그는 지탄의 대상을 넘어 회사 사람들로부터 잔혹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사실 동양의 사상하면 떠오르는 게 공자인지라, 상대적으로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론들은 낯설다. 한비자나 순자 역시 그중 하나일 텐데, 우리의 직장 생활에는 한비자나 순자의 이론도 꼭 필요하다.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고 싶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희생할 필요는 없다. 그 희생이 내게 도움이 되고, 내 스스로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다면 다르겠지만, 타인을 위한 희생은 잔혹할 뿐이다. 막내 사원 역시 그렇다. 그저 내가 지금 바쁘지 않아서, 딱히 약속이 없기 때문에 야근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야근을 통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게 행복하다면 몰라도, 솔로라는 이유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때론 상황을 통해 잔혹한 사회에 잔혹함으로 맞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잔혹은 위선군자들에게 대항하는 무기가 되고,
직장 내 불의나 불공평을 깨뜨리는 용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내일의 출근은 두렵고, 불안하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철학자들의 조언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조금의 숨 쉴 틈을 발견했다면, 우리도 그들 철학자들도 만족할 것이다. 직장인의 생리를 철학을 통해 풀어내었던 실제적이고, 신선한 철학 책이었다.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남아 책을 읽어보았다.
걱정, 불안,혐오,부조리,낙담, 소진, 짜증 등 회사에서 우리가 느끼는 심리들에 관하여 서양 철학가와 동양 철학가의 사상들을 적은 책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고, 아픈 마음에 약이 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 책을 읽는다고 내가 처한 현실이 나아지거나 달라지는 건 없지만, 내 마음이 달라지면 답답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한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 이라는 말이 맞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 덕분에
출근길의 지혜는 서양 철학가들에게 배우고,
퇴근길의 사색은 동양 철학가들에게 배워본다.
서양 철학가를 만나다.
' 걱정' 을 인간의 가장 주된 실존 상태로 규정
걱정은 인간이 자아를 추구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동력이 내제해 있다.
"하이데거 : 죽음은 일상을 깨우는 찰나의 경종.
죽음은 영원히 내밀하고 독특하며 중복될 수 없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의식하고 나면 무리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
알베르 카뮈 - 부조리는 똑바로 서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공통된 운명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아보게 되고, 사회적 기대라는 속박을 떨쳐낼 수 있게 된다.
삶에 대한 열정, 뜨거운 애정의 표현
동양의 철학가를 만나다.
맹자 - 사람들은 키우던 닭과 개를 읽어버리면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나서는 찾아야 한다는 걸 알지 못한다.
학문의 도에나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 잃어버린 그 마음을 찾는 것이 삶의 진리라는 게 맹자의 생각이었다.
순자 - '허' . 즉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 마음에 먼저 들어와 쌓인 것들로 인해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 것,
이를 텅 비운 상태라 한다.
이전까지 받아들인 모든 것은 그것대로 한쪽에 두고,
다른 정보도 새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가슴을 넓게 열어야 한다.
#인문 #철학 #출근길엔니체퇴근길엔장자
대만에서 독자들의 대중적 사랑을 받은 철학서인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는 직장인이 흔히 겪는 심리 상태인 걱정, 불안, 혐오, 부조리, 낙담, 소진, 짜증 등에 대해 샤르트르, 니체, 장자, 손자, 마르크스, 카뮈, 한비자, 하이데거, 공자 등 동서양 철학자들이 해석을 해주는 철학 교양서이자 심리 처방서다. 하나의 감정에 대해 한 명의 철학자가 자신의 사상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대안을 제시하는데, 위대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깊은 사유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철학자 하이데거는 걱정에는 인간이 자아를 추구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동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즉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기에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주된 실존 형식은 걱정을 통해 세계를 찾고, 세계와 나 사이의 관계를 찾는 것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쉽게 포착할 수 없을 만큼 생동하는, 주어진 한계를 넘어 뛰어넘어 솟구치는, 이해 가능할지 모르나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죽음은 인간에게 최대의 한계지만, 하이데거의 눈에는 빤한 일상을 깨우는 찰나의 경종이었다. 죽음은 영원히 내밀하고 독특하며 중복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무상함을 의식하고 나면 무리로부터 빠져나와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삶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이 말은 죽음 앞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물을 수만 있다면 빤한 일상으로부터 평생 벗어나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우리가 기대어 있던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잠시 떼어내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순간의 분리가 누군가에게 사색을 지속하는 역량을 주고, 잠시나마 자아초월의 가능성을 엿보게 할 뿐이다. 찰나의 도약으로나마 초월의 가능성을 엿본 사람은 다시금 현실의 타성에 젖는다해도, 천천히 방향을 틀어 결국에는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카뮈는 우리가 부조리의 본질을 이해할 때 세상 만물에 특별한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을 전한다. 그 어떤 가치나 의의에 대해 절대성을 긍정할 수 없게 되면, 이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 또한 그 중요성을 잃고 만다. 그리고 저자는 출근이 지긋지긋한 모든 직장인은 정장을 입은 현대의 시시포스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무의미한 일이라는 돌을 매일매일 밀어 올리는 고달픈 과정에서 오는 무력감은 그저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저자는 병이 났다는 것을 쉬어야 할 때라는 신호이듯, 부조리감은 삶을 돌아봐야 하 때라는 것을 일깨워준다고 이야기한다.
"무력하기 그지없는 우리에게 이 세계가 돌려주는 대답은 침묵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 일은 그냥 그렇게 발생했을 뿐이고, 우리는 무력하게 하늘을 향해 "왜?"라고 외칠 뿐이다.
카뮈는 인간이 이렇게 세상의 침묵과 대면할 때, 모든 일은 순전히 우연에 지나지 않음을 의식할 때 모종의 향수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이성으로 파악 가능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서 이성적 원칙이나 질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세상은 본래 혼돈으로 가득 차 있고 이성적 예측에 따라 돌아가지 않음을 발견하고 상실감과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카뮈는 부조리가 인간 혹은 세계 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 세계를 이성으로 길들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세계는 결코 인간의 이성적 요구를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과 세계 사이의 '밀당'에서 생겨나는 불협화음은 둘 사이의 관계를 잇는 유일한 끈이 된다. 즉 부조리 자체가 곧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다."
"부조리를 이해한 인간은 이러한 사회적 지침을 투사해서 상상한 미래를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그 미래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죽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뛰어넘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해방된다. 누구도 죽음이라는 마지막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모든 규범은 더 이상 절대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이렇듯 외적으로 부여된 가치에 대해 무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행동의 자유를 얻고, 자기 삶의 경험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모든 외재적 가치는 이성의 산물이다. 거기엔 아무런 절대적, 고정적 이유가 없다. 부조리는 똑바로 서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인간의 공통된 운명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사회적 기대라는 속박을 떨쳐낼 수 있게 된다. 시시포스와 마찬가지로 반항 자체가 우리를 삶의 부조리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내면의 자유를 의식하고 삶에 우리가 소망하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이것이 삶에 대한 열정, 뜨거운 애정의 표현이다."
저자는 순자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전한다.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과 행동을 '담아둔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도 지각 능력이 있기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다음에는 기억하고 담아둔다. 그 정보는 마음속에 내화되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우리가 '먼저 접한 것'들로 인해 새롱누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배척하거나, 먼저 접한 정보와 다르면 대뜸 들린 것으로 간주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폐쇄된 자아회로 안에 갇혀 지적 오만이 생기고 인식의 편향만 굳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순자는 다음과 같이 편견을 경계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음속의 아집과 폐해를 벗겨냄으로써 정서적 혼란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돕는것이 중요하며 허, 즉 망ㅁ을 비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욕망으로 가려지고, 악으로 가려지고, 시작으로 가려지고, 끝으로 가려지고, 멀어서 가려지고, 가까워서 가려지고, 넓어서 가려지고, 얕아서 가려지고, 오랜 것으로 가려지고, 지금이어서 가려진다. 만물의 다름은 이렇듯 상대를 가려 어둡게 한다. 이는 마음 다스리는 공부의 공통된 근심이다.
<출근길엔 니체, 퇴근길엔 장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아웃 상태에 빠졌거나,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심리적 문제들을 철학적 관점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책으로 흥미롭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