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 유치원 2학기 상담을 했다. 1학기 상담은 새 반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이런 성격이니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의 말로 가득 찼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친한 친구도 생기고, 나름 적응도 잘 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2학기에 들어와서도 수업도 잘 따라가고 여러 친구들과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한테 따로 문제가 있다는 연락이나 사고를 친 소식을 받은 적도 없으니 아마 잘 지내고 있겠거니 했다. 그래도 내심 작은 불안 정도는 갖고 사는 게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다들 상담 전화를 기다리면서 긴장도 하고 하지 않을까 한다. 상담은 선생님이 “보내주셨던 설문지에 다 ‘좋음’이라고 써뒀어요, 어머니!”라는 활기찬 목소리로 시작했다.
지인이 한 말 중 내 생명줄처럼 붙들고 유념하는 한 마디가 있다. 밖에서 나가서 잘 하고 있으면 잘 키우고 있는 거다. 그렇다. 다른 데 가서 해 끼치지 않고, 자기 할 거 잘 하고 있으니 그걸로 이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것이리라. 적어도 큰 문제 없이 아이 자신에게도 문제 없이 잘 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또 한숨 돌린다. 나는 이런 점들이 모두 육아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문제(?)가 많고 육아는 전혀 모르는 엄마가 그나마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온전히 책으로 배운 육아 덕분이다. 거의 매일 조금씩 읽고 줄을 긋고 글을 남기고. 아무리 바빠도 육아서 한 두 장은 꼭 읽고 시작하는 매일이다. 오늘도 아이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눈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다시 한 번 더 아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더욱이 이런 책을 만나면 무척 기쁘다. 정말 줄줄 외우면서 다니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다. 전문가의 전문 지식 베이스에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진정 아이를 위한 길을 안내하는 책. 드물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책을 만나면 몇 날 몇 일을 그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여기 저기 소개는 물론이고 독서모임 생각까지 간절하게 만드는 그런 책. 이런 내 모습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풍덩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내 무의식에 새겨진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심리요인들이나 부모로서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등 너무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당연히 다 기억 할 수 없고 한 번에 내 말과 행동에 새길 순 없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좋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곱씹고 생각하고 되뇌이다 보면 은연중에 내 행동과 말에 스며든다는 것을. 우리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8할이 육아서이고 그 중 또 8할이 이런 양서이다.
육아서를 근 300권 가까이 읽고 심리서를 50권 넘게 읽으면서 많은 걸 알았다고 자만하려고 하면 이런 책이 불쑥 나타난다. ‘니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야. 더 수련해야 해’ 하고 말이다. 심지어 분명 알았던 것들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해서 새롭게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이 에필로그부터 날 짤짤 흔들어 댄다.
- 부모는 부모대로 힘들게 아이를 키웠는데 웬일인지 그 결과인 우리 청년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부담이 다시 부모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청년이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나아가 이런 문제가 부모의 탓이라며 원망하기 일쑤이다. (5)
너무 허무한 내용 아닌가? 하지만 무척이나 사실이라 뭐라 반박할 수도 없다. 그렇게 노력하고 신경 썼는데, 우리 아이가 행복한지 아닌지를 본다면 마음 아픈 결과들이 너무 많다. 우리 애는 아닌데요, 라고 하는 집이 있다면 참으로 축하 드린다고 전하고 싶다. 나 또한 그런 아픈 결과 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이리 읽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정말 좋은 말이 너무 너무 많지만 딱 두 가지만 내 마음에 새기고 가고 싶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래 소년 요법.
- ‘미래 소년(소녀) 요법’ 아이와 부모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고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 오류를 버리는 것이다. 아이와 같이 의논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은 미래이고 우리 아이는 미래에서 온 아이다. 미래 소년/소녀의 삶은 바로 그 미래에서 온 그들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을 잊지 말자. (38)
지금 부모인 분들도 잘 생각하면 우리 어릴 때와 지금은 너무나도 다른 환경과 상황이다. 오히려 아득히 먼 미래에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일들이 오히려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현실화 된 휴대폰이 작은 개인 컴퓨터로 활용 가능한 것에서부터 우주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 드론으로 하늘을 날아 다닐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이런 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속도도 우리는 점점 못 따라가고 있을 건데, 우리 아이들이 살 미래의 모습을 감히 예측하고 그에 맞춰서 키울 수 있을까?
인간이 공포심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 미래에 뭐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고, 종종 초조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불안해하고 초조하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에게 무작정 모든 걸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적이 불분명한데 무엇에 맞추겠다는 것인가? 그저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 아이가 온전히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다.
두 번째는 아이의 발달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 많은 부모들이 특히 학습이 시작되면서부터 아이에게 화가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제껏 나는 아이에게 그렇게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자부했지만, 6살이 되고, 7살이 되면서 점점 나 또한 초조해졌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때리거나 사랑과 전쟁을 찍은 건 아니지만, 분명 불편한 감정이 오고 간건 사실이다. 이럴 때 명심해야 할 문장을 저자가 말해준다.
- 성인인 부모가 봤을 때는 아이가 잘못도 했고 떼도 쓰지만 아이는 발달 과정에서 자기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능력이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힘든 일도 있었는데 너도 노력해줘서 고마워. 우리 점점 성장할거야.”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79)
- 실제 발달상 준비가 안 됐을 때는 아무리 보상을 줘도 그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것 또한 외적 동기의 허점이다. 보상이 크다고 해서 없던 능력이 생기지는 않고, 능력 밖의 결과를 걸고 보상을 제시하는 것은 노력해도 성취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해 오히려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132)
- 부모는 아이의 능력이 아직 발달하는 중이니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 스스로 잘 해내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내 말을 듣게 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가 좋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줄 것인 것”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214)
이렇게 여러 차례 말씀하실 정도로 아이의 발달을 강조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아이가 어떤 발달 선상에 있는지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우리 아이의 발달 사항이다. 절대로 아이가 일부러 부모를 골탕 먹이려고 못하거나 안 하지 않는다. 만약 진짜 그런 경우라면 애착에 문제가 있는 거니, 가족 모두 상담소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모가 아이의 발달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로 종종 맘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5살 아이가 방금 가르쳐준 것도 모른다고 한탄하거나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는 둥 무지막지한 글을 써놓는 분들이 있다. 5살 아이의 발달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부모 혼자 초조해서 이것 저것 진행하고 평가하고 판단해 버린 거다.
심지어 저자는 강조한다. 어차피 아이가 그런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외적 보상을 아무리 크게 준다 한들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감만 생기고, 좌절감만 생길 뿐이라는 것. 자신감만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질문을 갖고 다녀야 한다. 내 말을 듣는 착한 아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떻게 아이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하도록 해줄 것인가? 이게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혼자서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도 잘 살아가야 할 우리 아이들이 좋은 선택을 하도록, 혹여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책임지고 수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을 진정으로 위한 길이 아니겠는가.
책에 정말 너무 너무 좋은 말이 많았다. 한 페이지를 다 줄 치고 있네 싶을 정도로 구절 구절 다 너무 좋아서 리뷰를 쓰는 데도 오래 걸렸다. 정리하는데 오래 걸리기도 했지만, 다시 훑어보는 것도 한 문장 한 문장 되새기면서 읽었다. 그 중 마무리로 좋을 문장을 소개한다.
- 우리는 다 별이고 보석이야. 별에도 분화구가 있고 움푹 들어간 데도 있고 나온 데 있어. 조금 더 좋아 보이는 데가 있고 조금 더 안 좋아 보이는 데 있지만 그것까지 다 합해서 우리는 별이고 보석인 거야.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고 강점과 약점이 있어. 그리고 네 안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어. 그걸 마음껏 펼치면서 살면 되는 거야. (259)
아이 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들도 다 별이고 보석이다. 이런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자체로 이미 나로서 완전하니 마음껏 세상을 누리며 살면 된다. 아이도 키우고 나 자신도 키우는 육아 삶이야말로 지금 우리 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리뷰는 다 썼다. 이제 독서모임을 준비해야겠다.
- 사실 우리가 살면서 마음이 힘든 이유의 상당 부분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래한다. 부모가 아이들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주기 시작하면, 아이의 장점과 잠재력도 더 잘 보이고, 아이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아이를 향한 마음의 눈이 떠지는 것이다. (65)
- 인정이란 감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네가 그 자리에서 나름 수고하고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인정에서 더 나가면 ‘고맙다’가 된다. (78)
- 긍정적인 마음자세는 어떤 상황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생각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을 것이고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백 퍼센트 좋기만 하거나 백 퍼센트 나쁘기만 한 일은 거의 없다. (109)
- 아이가 이렇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 “엄마도 아빠도 이렇게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거야.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좋아지는 거야”라고 이야기해주자. 스스로한테도 이야기하고 아이에게도 이야기해주자. (225)
- 아이들의 정서가 건강하게 잘 발달하려면 만족감(gratification)과 좌절감(frustration)을 둘 다 균형을 이루어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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