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처음 언뜻 봤을 땐, '이름이 별이 될 때'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이름이 법이 될 때>이다.
김용균법, 태완이법, 구하라법, 민식이법, 임세원법 등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 원인이나 상황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법 제정이나 개정으로 이어진 사례들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고 많이 화가 났고 많이 감동했으며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법들이 전부 비교적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모두 내가 알고 있는 사건들이라는 것에도 많이 놀랐다.
진작 이렇게 되었어야 할 것들이 왜 여태까지 이렇지 않은 상태로 있었나.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왜 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 뒤에 당연하게 되었나.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있는가.
이들의 죽음으로 결국 법 개정, 보완이 되긴 했지만
이전에도 비슷한 죽음들이 많이 있었으나 내내 무시되다가 '운 좋게' 여론이 형성되어 개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데 답답함도 생겼다.
법을 살피고 만들고 고쳐 나가야 할 사람들이 법 자체와 국민의 전체적 이득이 아닌,
화제가 되는 사건에 편승하여 자신의 인기와 실적을 올리려는 데에만 집중한 결과인 것도 같아 화도 났다.
그마저도 피해자와 유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먼저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는 현실도,
가장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생계를 내버리고 엎드려 빌다시피 해야 겨우 눈길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가 책 리뷰에 종종 '더이상 부모가 투사가 되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문장을 쓰곤 하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김용균법, 태완이법, 민식이법....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그 어떤 부모도 자식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남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다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내 자식은 죽었어도 다른 부모의 자식들은 내 자식 같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른 부모들은 나처럼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 고귀한 마음에 깊은 존경을 바친다.
내가 처음 잘못 보았던 책 제목처럼 이들의 이름은 법이 되었고,
그렇게 별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이름이 법이 될 때'는 책을 다 읽고 나면 한결 더 마음 아프게 느껴지는 제목입니다. 책은 이름을 딴 법이 제정되게 한 사건과 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전개됩니다. 법을 개정 및 제정하는 것은 쉽지 않고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어 화제가 된 사건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지만, 사건을 통해 계속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① 감상평과 느낀 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은 틀린 것 같다. 사람이 죽어도 여전히 사회는 개선되지 않은 채 돌아간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야만 법이 통과되는 나라, 기득권 층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아픔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보다. 기득권층은 아파보지 않았기에 국민들의 슬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되었다. 마치 나를 보호해 줄 나라가 없는 것처럼 국민들은 나라의 지도자층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첫 장부터 페이지를 넘길 수가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 대목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마치 큰 돌덩이가 나의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희망과 미래가 꺾이도록 세상을 방관한 어른으로서 미안하였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약간 불편해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법을 만드는 과정을 반대하고 만들어진 후에는 유가족을 비난한다. 특히 민식이 법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여과 없이 드려났다. 우리가 학교 앞 횡단보도를 조금만 서행하므로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면 기꺼이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자식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고, 목숨을 담보로 일터에서 일한다면 적극적으로 법을 만드는 일에 동참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와 상관이 있던, 없든 간에 사람을 귀히 여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가족을 잃은 슬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지키는 법을 만드는 것에 앞장서 주셔서 감사드린다.
② 마음에 남는 글귀
8쪽
직장에서 친구가 된 둘이 나눈 이야기는 늘 하나였다. “우리 잘릴까?” 마지막으로 함께 밥을 먹을 때 김 군이 한 말도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나 잘릴 것 같아.” 그래도 김 군은 언제 같이 여행을 가자는 말도 했다. 김 군의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늘 잘릴까 아닐까 그런 이야기만 했지 뭘 좋아하는지, 최소한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이야기를 못해 보고 살았어요. 그게 가장 후회돼요.” 김 군의 친구는 김 군이 죽은 후에도 계속 김 군에게 전화를 했다.
213쪽
김관홍은 스스로를 '노가다', '막일하는 사람'으로 불렀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법이나 제도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잠수사들의 선의가 짓밟히는 현실이 그를 바꾸어놓았다. 목소리
214~215쪽
“저희가 간 게, 양심적으로 간 게 죄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
저는 잠수사이기 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갈 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뿐이지, 국가 국민이기 때문에 간 거지 애국자나 영웅은 아네요…
218쪽
그들의 변명처럼 '법대로' 한다면 잠수사들이 그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들어갈 이유도, 다칠 것을 알면서 하루에 서너 번씩 잠수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니 '법대로' 한다면 후유증이 뻔히 보이는 일을 거절했어야 했다. 잠수사들이 마음으로 한 일을 정부는 법으로 판단했다.
219~220쪽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어려운 사람을 돕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희생하는 국민을 격려하기 위해” 국회가 처음 만든 상이었다. 국가가 스스로 ‘자랑스러운 국민'이라고 해놓고는 그 이름을 딴 법은 국회에서 몇 년을 묻혀 있었다. 자신의 안위 대신 양심과 공동체를 선택한 한 시민에 대한 국가의 예우는 그렇게 간신히 지켜졌다.
만일 그가 살아서 자신이 ‘자랑스러운 국민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도 그는 탐탁찮아 했을 것 같다.(중략)
그래서 잠수사들이 ‘함께’ 292명을 수습한 것이나 상을 주려면 잠수사들에게 ‘함께’ 줘야 한다고, 법에 이름을 붙여 그 희생을 가리고 싶다면 잠수사들의 이름을 ’함께‘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김관홍 법이 아니라 세월호민간잠수법이라고.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