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와 관련하여 미국의 도시들은 자주 가봤지만 이상하게 유럽은 기회가 닿질 않았었다. 그러다 3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가본 것이 첫 유럽 경험이었다. 사실 재작년 딸이 덴마크에 교환 학생으로 나갔고, 그게 끝나면 합류해서 아내, 딸과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했었다. 루트를 다 짜고, 숙박할 데도 예약해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COVID-19 팬데믹이 터져버렸다. 아쉬움을 삼키며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은 발이 잘 닿지 않는구나, 하며.
이렇게 쓰면서 나는 ‘유럽’이라고 그 대륙의 나라들을 퉁치고 있다. 대체로 다들 그렇게 한다. 유럽연합(EU)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브렉시트로 영국이 뛰쳐나오긴 했지만 거의 한 나라와 같이 지내는 거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퉁치기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유럽인들이 한국과 인도를 같은 아시아라고 별로 구분하지 않고 인식한다면 과연 그게 옳은 처사일지 생각해보면 답은 뻔하다. 대한민국을 동남아시아랑 비슷하게 본다고? 우리는 중국이랑 일본하고도 같이 취급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방랑 디자이너’ 이은화는 이탈리아에서의 경험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비교하며 ‘유럽풍’이라는 단어와 인식이 굉장히 허구적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풍경 자체가 다르고,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다르다. 그녀는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의 차이보다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고 느낀다. 유럽의 나라들을 그냥 ‘유럽’이라고 묶어 놓고 보는 것은 유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독일의 경험과 프랑스 등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하고 있다. 여행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에 대한 정보가 없지 않고, 디자인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또 그게 아주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그저 저자의 유럽 경험인 셈인데,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인상 깊은 대목들이 있다.
<최후의 심판>의 놀랍도록 청명한 빛깔이 미켈란젤로가 바라봤던 하늘의 색깔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르세상스의 예술가들이, 19세기 인상파 화가들, 특히 모네와 정원과 코흐의 풍경이 바로 그들이 바라봤던 것이었다는 것도 확인한다. 우리의 인식과 작품(그게 꼭 그림이 아니더라도)은 우리의 환경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은 프랑스 리옹의 음식에서도, 독일 쾰른의 카니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저자가 경험한 유럽은 여전히 몇몇 국가에 머문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이른바 유럽의 주요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이다. 다른 나라들은 스쳐가 버리고 만다. 스페인도 없고, 동유럽의 국가들도 없고, 북유럽의 국가들도 없다. 경험한 국가들에서도 지역은 한정된다. 그녀가 주로 머물렀던, 지금도 머무는 이탈리아에서도 남쪽은 언급도 되지 않는다. 경험은 해보지 못했지만, 이탈리아의 북부와 남부는 풍경도, 경제도, 사람들의 성향도 아주 다르다던데... 프랑스는 쾰른과 파리, 영국도 잉글랜드의 런던 정도이지 스코틀랜드 같은 데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저자의 경험 안에서 그려지는 유럽인 셈이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라고 할 수는 없고, 자신의 경험한 한계 내에서 굉장히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진짜 유럽’을 표방했다는 면에서 더더욱.
유럽, 가고 싶다.
인생의 황금기에 고국을 떠나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20여년을 살면서 유럽의 핵심국가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을 살며, 여행하며 느끼고, 디자인과 예술의 측면에서 유럽의 공통점인 유럽풍을 정확하고 알기쉽게 정의해낸 작가의 독창성에 큰 영감을 받았다. 요즘처럼 코로나 19로 집밖으로 한발자욱도 못나가는 답답한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을 가지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