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3월 22일 저녁 9시 네이버 카페 언니공동체에서 권주리 작가님의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북토크를 진행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이 어디가 좋았을까? 왜 좋지? 좋으면 좋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한 발 더 나간다면 SNS에 감상평을 남기면 될 텐데 말이다. 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북토크가 하고 싶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나는 이 책이 어디가 좋았을까?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일단 제목에서 끌렸다. 신선했다. ‘엄마 휴직’이라니. 여기서 엄마 휴직은 주양육자이자 주부인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 내려온다는 뜻이다. 지난날, 나는 부부연차제도(*부부연차제도란 엄마도 아빠 이전의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미로 1년에 15일은 자유시간을 보장하는 제도)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얼마나 칭찬했던가. 그런데 주리님은 나보다 한 수위다. 역할을 바꿀 생각 같은 건 꿈에도 못 했다.
이때 누군가는 제목만 듣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걸 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아
조금 격하게 썼지만, 이런 의심 가질 수 있다. 기혼여성 유자녀인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원하는 건)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은 가사 노동을 하고, 내가 더 많은 쉼을 보장받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다고 to-do 리스트를 만들어서 정확하게 5:5로 육아와 살림을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눌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성평등, 페미니즘 좋은 말이고 해야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어렵고, 모르고 싶어요.
이 마음도 백분 이해한다. 요즘 ‘페미니즘’은 아주 뜨거운 감자다. 나는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의 중요 키워드 중 하나를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정말 아는가? 아무튼 페미니즘은 할말하않)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그냥 모른 척하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아예 까칠한, 뜬금없는, 급진적인 존재라고 일축하면서 거리를 둬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너무 유명한 명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정치 현실을 보면 답답하지만 어쩌면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페미니즘의 색깔은 하나가 아니다. 저마다 다양한 상황, 입장,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공식처럼 이런 상황에선 이게 정답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북토크여야 했다. 나 혼자 읽고 감상평을 적는 것을 넘어서 내가 좋아하는 언니공동체 언니들과 비록 온라인이지만 얼굴 맞대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부분에서 동의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등등 다채로운 무지개빛 하모니가 보고 싶었다. 오소희 작가님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에겐 연대가 필요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토크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결정타는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분노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 그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여성과 남성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혐오와 차별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한마디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 ‘실은 정말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은 있지만 없는 사람인 척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예를 들면 육아와 살림을 담당하는 전업주부에게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놀아요’라고 말하는 거다. 슬프게도 이건 나의 과거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페미니즘은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아주아주 다양하고 많은 시도와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 목소리 중 하나가 나는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라고 생각한다. 이게 100%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지,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읽고 나누고 싶다.
영업멘트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매력은 솔직함이다.
아무도 나에게 “전업주부와 주양육자가 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왔다. 어린이집 외에는 돌봄을 맡길 곳이 없는 데다가 프리랜서는 휴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내가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이 든다. 정말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내가 여성이니까 주양육자이자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선 게 아닐까? 겉으로는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공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게 아닐까? (중략) 내 안의 가부장제는 내가 바깥양반이 아닌 안사람 역할을 자처하게 만들었다. 찰나의 의심은 있었지만 행동할 자신은 없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37p
내 돌봄노동이 있기에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늘 마음속에 있었다. '나는 겨우 집에서 밥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는 차별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나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98p
엄마 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는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마음이 남편을 향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별다른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주부와 주양육자 역할을 맡아 외로움과 억울함 속에서 허우적대던 경험을 남편도 겪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바깥양반과 전업주부의 역할을 칼같이 나눌수록 우리 집의 가부장제는 겉모습만 살짝 바뀐 채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196p
내 안의 가부장제를 의심하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공개하고, 행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긴 이 책이 좋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억울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담긴 이 실험이 정말이지 눈물 나게 사랑스럽다. 누군가는 ‘굳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오지랖’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굳이’ 엄마 휴직을 실천하고, 그걸 ‘굳이’ 책을 쓰고, ‘굳이’ 북토크를 하는 이 유난스러움이 더 자주 일어나면 좋겠다. 그것들이 모여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테니까.
오늘날 우리는 과거 누군가의 오지랖 덕분에 만들어진 지금에서 사는 건 아닐까?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끊임없이 이어 말할 때 언젠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사회적 강자의 허황과 거짓을 잠재우리라 믿는다.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시 리뷰로 옮기는 까닭은 이 책의 리뷰 중 하나를 반박하고 싶어서다. 문제의 서평을 옮겨 적을지 말지 수없이 고민하다 일부분만 공유한다.
“단 각자 역할에 장단점이 있지만. 필자는 육아가 더 힘들다는 포커스를 버리지 않는 태도는 아쉬웠다. 계획대로 역할 바꾸기를 시도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남편이 육아휴직을 1년을 내지만 소득이 적어 6개월로 단축한다. (중략) 여기서 바로 이유가 나온다. 남자 여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돈을 더 못 벌어서 육아 전담을 하는 것이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냉정하게 경제관념을 생각했으면 한다. 만약 저자가 월에 500을 벌고 남편이 300을 벌면 본인이 육아를 했을까? 평균적으로 남자가 더 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중략) 냉정히 남녀 문제가 아니라 금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인이 월등히 뛰어난 소득을 창출하면 된다. 그렇지도 않으면서 세상 탓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북토크를 하게 했던 분노의 힘, 이름도 쓰기 싫은 대통령 당선인이 말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를 보여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딴 걸 읽고 분노하는 에너지도 아깝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짚어주고, 대화를 시도할 때에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멋진 문장으로 반박하고 싶으나 내 능력이 부족해서 하지 않으니만 못할까 봐 망설였다. 그렇지만 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 능력을 탓하는 거, 괜히 말해서 일만 키우는 건 아닐까, 공격받으면 어떻하지? 이 생각의 시작이 어디서 왔는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가부장제랑 싸우는 시간이다.
저들은 말한다. 돈 못 버는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고.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왔잖아. 불만을 말하지 마. 그건 네가 부족해서야. 너만의 문제야. 너의 목소리를 내지 마. 존재를 지워.
나는 말한다. 나도 계속 일하고 싶었다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동일업무 동일임금을 지켜달라고. 돌봄 노동을 제대로 인정해달라고. 이것은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자도 사람이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묻고 싶다. 과연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책을 제대로 읽었는가. 주리님은 육아가 더 힘들다고 징징거리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엄마가 돈을 더 잘 벌면 아이 돌봄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글쓴이야말로 가부장제가 흔들리는 게 두려워 징징거리는 게 아닌가. 능력주의는 이런 데서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출산과 육아의 시기에 맞물린 혹은 준비하는 여자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자아실현만을 고려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환경이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엄마들이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년은 엄마가 애를 키워야 한다는 등의 죄책감을 강요한다. 이 악물고 직장에서 버티고 버텼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 (어쩌면 더 늦게 들어온) 남자 직원의 월급이 더 많다는 걸 알았을 때. 이게 개인의 문제라고 정말 말할 수 있느냐 묻고 싶다.
내가 지금 쓴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통계적으로도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고 말하는데 귀 막고 안 들려 하는 꼴이라니. 정말 이런 사회에서 여자가 돈을 적게 버니까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공평한 걸까? 남자들은 면접에서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가 등 이런 식의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쟁의 공정한 조건, 소위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 단 한 차례라도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가.
공정은 사전적으로는 '공평하고 올바르다'라는 뜻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이나 서 있는 처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 출발선이 다른 데 똑같은 신호음을 듣고 출발해야 한다니. 정말 여자들이 신세 한탄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서평을 쓴 이는 편 가르고 해결책이나 답도 없이 불만만 토로하는 책이 싫다면서 오히려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목소리를 내는 여자들에게 목소리를 내지 않기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대선은 절망적이었고 그 이후도 여전히 처참하다.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무시하고, 성범죄에 있어서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최고 권력이라 불리는 대통령의 발언이 위험한 까닭은 대통령이 그렇다니 다들 그래도 되는 줄 아는 데 있다. 싸우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은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공평하게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는 그런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쓰고 또 쓸 것이다. 또 어디서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자주, 많이 낼 테다.
여성의 목소리, 각자 자신만의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서로 서로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애쓰고 있다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멋진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 길에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와 같은 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처음 제목을 읽는 순간 엄마의 육아휴직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책의 제목과 상세설명을 자세히 본 후,
아 진짜 엄마 역할 휴직에 관한 이야기구나 깨달았습니다.
어디선가 출산 후 육아를 남편이 전담했더니
출산후유증이라고 알려진 관절통 등의 증상을
남편이 겪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출산후유증 증상 중 일부가 어쩌면
주양육자에게 초기에 과도한 육아업무가 치중되어 생긴
육아후유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엄마로서의 삶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사회적으로 그것을 당연시하고
여성이 주양육자이기를 은연 중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죠.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왔던 불평등을 이야기 하는
엄마 휴직이라는 그 유쾌한 실험이 궁금하여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를 읽었습니다.
익숙하지만 생소한 엄마 휴직,
우리가 익숙한 '육아휴직'은 육아를 위해 일을 쉬는 것을 뜻하고,
한 동안 대두되었던 '엄마의 파업'은
말 그대로 엄마가 집안일을 관두고 잠시 떠난다는 의미로,
주양육자를 남편에게 넘기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소득을 버는 바깥양반이 되고자하는 개념인
'엄마 휴직'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였어요.
책을 읽으며 본인의 삶으로 엄마 휴직을 실험한
작가의 대담함과 유쾌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어요.
책에서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우리가 사회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남자가 아이를 보면 못 미덥다는 인식이나
여성이 타고난 모성애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는
사회 통념이 잘못되었다는 걸
경험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그리고 엄마 휴직이 시작되기 전,
무상으로 일하는 전업주부 노동의 가치를
여러 서비스를 빗대어 임금으로 환산한 것도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책 내용 중 가장 공감을 샀던 부분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역할이 가장 힘들다는 부분이었어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것과
전업주부이자 주양육자로 가정을 책임지는 것
둘다 어려운 일이지만 장단점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요.
서로가 합의하고 함께 해나가지 않으면
한 쪽으로 가정의 일이 치우치게 되고
불평등이 시작되는 것이죠.
단순히 내가 돈을 벌어오니 힘들다,
아이는 여자가 봐야한다,
집에서 쉬니까 다 하는 게 맞지 않느냐,
이렇게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지를
사례를 들어 제시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또한, 엄마 휴직 이야기를
담담하게 프로젝트 진행하듯이
진행 전 검토사항, 진행 경과 그리고 결과사항을
정리하여 보여주어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실제로 주양육자 교체의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하여 몰입하며 읽었어요.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
일침을 놓으며 자신의 삶에서 유쾌하게 실험을 하고
그 실험기를 적어내려간 책으로,
육아를 앞두고 있거나, 현재 육아 중이라면
한 번쯤 읽고 생각해보기 좋은 책입니다.
* 본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우리 집안에서 풀타임 직장인으로 사무실을 출퇴근하는 '바깥양반'을 담당하고 있다. 남편은 시간의 제약이 덜한 재택근무를 병행하며 '안사람'으로 30개월차 남자아이와 5살 강아지의 주양육자를 맡고 있다.(쓰고나니 바깥일하는 사람은 양반이고, 집안일하는 사람은 그냥 사람이냐! 이런 개떡같은....이란 생각이 문득)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의 작가처럼 엄마의 역할을 '휴직'했던 적은 없었다. 스스로 돌아보자면 거의 개점휴업에 가까운 '겸직' 정도가 되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최소한의(이 단어가 포인트!) 엄마 역할도 때를 놓치지 않고 해내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는 멀티 플레이어-엄마,풀타임 직장인,방통대 학생- 정도 되겠다.
작가와 나는 이렇게 비슷한 듯 약간 다른 경우였지만 기혼에 자녀를 둔 여성이라면 한번쯤 주양육자, 엄마라는 단어가 내게 지우는 짐에 대해 불편한 마음과 고민이 있을 만한 부분이라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라는 단호하고 담백한 제목에서부터 공감과 쾌감이 들었다.
작가인 권주리 씨는 내가 '주리님 팬이에요~'라고 포스팅마다 댓글을 달며 팬심을 표현하는 동갑내기 블로그 이웃이기에 엄청난 내적 친목을 뿜어내며, 주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격한 고개 끄덕임과 맞장구를 나누는 기분으로 읽었다. 실제로 책도 술술 읽힌다.
01_엄마휴직을 시작하기까지
부부관계와 양육에서 '뼛속 깊이 남아 있는 가부장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역할을 바꿔서 해보면 된다. 남편이 주양육자와 전업주부가 되면 된다. (부부가 모두 바깥일을 하는 경우 남편이 주양육자가 되면 된다.) 그래야 아빠들도 돌봄노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22p)
대부분 직장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두 명의 보호자 중 여성이 주양육자를 담당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에, 직장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의 첫 질문은 "그럼 애는 누가 돌봐요?"다. 그 악의없는 평범한 질문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불편함이 있었기에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공감이 갔나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느낀 점. 이 책은 에세이 특유의 '있는 척'하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적나라하게 3인 가족의 한달 생활비를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으아닛, 이런 것까지 이렇게 공개를?'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반응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깊이 고민한 것을 쉽게 읽히는 글로 풀어내는 진솔한 블로그 포스팅 스타일과 결이 비슷한, 거기서 개그감을 살짝 덜어내고 다정한 격려를 담백하게 곁들인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여성 동지'라는 든든한 연대감마저 느낀다.
02_삼 년 만에 세상으로 나가다
전업주부 시절 가장 힘들었던 건 '삶의 주체성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삶의 주체성이 차고 넘쳤기 때문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육아에 집중하면서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내 하루가 돌아가니 숨이 턱 막혔다. 신생아 육아만 끝나면,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면, 어린이집에만 가면 양육자도 좀 편해진다는 선배 부모들의 말을 믿고 또 믿었는데 역시나! 아이 성장과는 별개로 주양육자의 하루하루는 '대기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92p)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 11개월쯤이었나, 양육자로서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어봤을 때 그의 대답은 이랬다. '말 못하는 애와 개를 데리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거? 답답한데 무료할 틈이 없는 거?' 어린이집에 다니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언제 가정보육 연락이 올지 모른 채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5분 대기조 인생?'이라고 한다. 글을 읽다가 이 생각이 문득 났다. 역시 여자든 남자든 주양육자의 삶이란...
아무튼 9 to 6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라는 직업을 잠시 쉬는 휴직을 선언한 주리님은 본업인 프리랜서 연극 강사와 연극 공연, 기획, 결혼식 사회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6개월간 열심히 일하며 공적으로 인정받는 보람과 성취감, 스스로를 채우는 시간을 만끽한다. 어유, 내가 다 기쁘네! 한편 주양육자가 된 남편 항승님은 사흘 만에 우울하다고 고백한다. 그게 조금 안쓰럽고 많이 통쾌했다는 주리님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고요.
03_남성 주양육자가 어떠냐면요
엄마 휴직이 끝나면 나도 남편처럼 조금 덜 완벽한 주부가 돼보려 결심한다 … 이틀에 한 번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살았는데 남편을 보니 생각보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바깥일을 할 때도 회의 중에 딴생각을 하는데 살림을 할 때만 왜 완벽해야 하는가? 남편이 자유롭게 살림하는 모습을 보며 한 수 배웠다. 내가 그렇게 동동거리며 살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는구나! 한 박자 쉬었다가 가도 되는구나! (126~7p)
아니, 주양육자가 된 아빠 부분에서 어쩜 이렇게 공감가는 지점이 가득하단 말인가! 연신 허허 참, 하는 헛웃음이 났다. 주리님의 글처럼 발바닥에 먼지가 많이 밟히고 쓰레기통이 가득 차있는 날이 더 많은 집, 그러나 어린이집 식단표를 벽에 붙여놓고 겹치지 않게 아이의 반찬을 매일 새롭게 만드는 모습까지 내 남편과 똑같다.
그럼에도 '역시 남자는 이렇다니까'라는 말을 하며 못이기는척 내가 하기는 묘하게 싫은 마음이다. 따라서 때로는 흐린눈을 하다 못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내가 할 거 아니면 안사람의 스타일을 존중해야지, 정 못견디겠으면 내가 해야지.
양육에 있어서 실제적인 부분에서도 신기한 지점이 있다. 심지어 모성애가 넘치다 못해 때로는 조급증과 아이에 대한 서운함이 퐁퐁 솟아나는 나와 달리, 애한테 화를 내서 뭐하나~ 나는 그저 책임감으로 육아할 뿐~ 이라며 시종일관 조곤조곤 감정의 동요 없이 아이를 돌보는 나남편을 보고 있자면 아이에게도 아빠가 주양육자로 더 적절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주리님 말처럼 우리 이제 '역시 아이한테는 엄마가 필요해' 타령은 그만하기로 해요~
04_바깥양반으로서의 반성
밖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사람이니 당연히 평생을 부양육자로 살고, 집에서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하는 사람은 평샹을 주양육자로 사는 것이 정당한 걸까? (15p)
주리님의 말마따나 '바깥양반인 동시에 퇴근 후 육아출근을 해야 하는 부양육자'의 삶을 살고 있는 나. 주양육자와 안사람이라는 말로 육아동지인 남편에게 너무 많은 걸 미뤄온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90%의 집안일과 8to7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그에게 "밖에서 일하고 오면 얼마나 피곤한데"라는 말로 가뜩이나 말수가 적은 그의 입을 막은 건 아니었는지. 아, 내가 더 잘해야겠다. 일단 남편이 꾸준히 요청하는 '입은 옷 제자리에 놓기' '영양제 선반 정리하기'부터 실천해야지...
이런 반성을 하는 와중에도 '이런 말에 공감하고 뜨끔하며 더 잘해야겠다고 반성하는 건 내가 엄마라는 타이틀을 겸한 여자 바깥양반이라 그런 게 아닐까? 남자 바깥양반들은 이런 반성조차 해본 적 없겠지?' 하는 어딘가 한바퀴 꼬인 마음이 들지만.
덧붙임,
물론 각자 다 사정이 있고 상황이 다르기에 이제까지는 우리집의 양육시스템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이게 잘 맞고 좋다'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지나갔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주변에 감히 '엄마 휴직'을 권해보고 싶다. 아, 진짜 한번쯤 해볼만 하거든요.
누군가는 팔자 좋고 이상적인 일이라 말할 수 있지만 직접 해본 입장에서는 수입이 줄어드는 부분을 감수하고 조금 용기를 낸다면 영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한 마디를 보탤 수 있다.
3월부터는 우리집의 양육 포지션에 한차례 더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졸업을 앞두고 보육실습과 교육실습이 있는 나는 연말까지 육아휴직을 하며 중간중간 안사람을 담당하고, 남편은 바깥양반으로 지내게 된다. 남편의 육아(를 잠시 쉬는)휴직-아빠 휴직인가?-을 주리님처럼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
또 한가지 든 생각, 올해 안에 시간을 내어서 우리 가족의 공동육아 시스템을 차분히 글로 정리해봐야겠다. 주리님이 엄마 휴직을 처음 결심하고 사례를 찾아볼 때 아빠가 온전히 육아와 살림의 책임자가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집이었거든요.... 아무튼 기록해두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
#엄마휴직을선언합니다
#권주리
#교양인출판사
관심있는 책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나를 권주리 작가에게로 인도했다. 주로 엄마의 20년, 엄마의 독서 와 같은 "엄마의 성장기"같은 책들 이었는데
그런 책들에 대한 생각을 남긴 글을 보면서 나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사랑에장애가있나요 를 보고 그녀의 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불어 항승님의 팬이되기도!)
권주리 작가와 나는 생각도 많이 비슷하지만, 상황도 꽤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책을 보는 내내 그녀의 생각을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책에서와 달리 우리집은 자연스럽게 나와 남편의 역할이 바뀌어 내가 "출근"을 하고 남편이 "살림"을 하는 생활을 4개월째 하고 있다.
집안일로 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좋냐면, 그건 또 아니다. 퇴근 하고 돌아가면 남편이 미쳐 하지 못한 (순수하게 몰라서) 집안일들은 고스란히 내몫이긴 하다.
남편이 예전에 내가 했던 말들을 할때면 희열을 느낀다.
"애들 등원하고 청소 좀 대충 하고 그럼 점심시간이고 밥먹고 나면 금방 또 하원 할 시간이야. 내 시간이 너무 없어"
이제야 네가 좀 내 맘을 아는구나! 경험으로부터 오는 공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위로와 감동을 준다!
남편이 예전의 나의 삶을 살아봄으로써 서로 이해하는 점들이 많아졌겠지만 이따금 남편의 불만스런 태도에서 나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시기 적절하게 찾아온 책 #엄마휴직을선언합니다 는 우리 가정의 변화를 적당히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점검하게 해 줬다.
그렇게 "일하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막상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니 아이탓을 하며 거절했다. 나란 사람은 도대체 뭘 원하는거야? (041)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주부로서 꼭 해야 하는 집안일을 재빠르게 해놓고 나면 남는 시간은 세시간 남짓. 그 사이에 무언가를 해보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가족 모두가 힘들어졌다. 나는 마음껏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니 결과물이 마땅치 않아서 불만, 남편은 그런 내 불만을 받아주는게 힘들어서 또 불만, 아이는 엄마가 자기랑 충분히 즐겁게 놀아주지 못하니 역시 불만. 나의 하루, 일주일, 한달, 일 년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093)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남편,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였어?" (...)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게 힘들지"라고 답했다. 맞다. 한 집안의 유일한 바깥양반이 된 순간부터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168)
남편이 주부가 됐다고 해서 나와 살림을 똑같이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대로 일을 할 뿐이다. 남편은 이 정도만 일을 하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181)
"주리 네가 다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그냥 아이는 어린이집 안 간다고 매일 울고, 코로나 때문에 가정 보육은 늘고, 더워서 밖에서도 못 놀고. 모든게 다 스트레스였어. 나는 매일이 힘든데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 다들 너무 잘 살아. 나만 잘 못하는 것 같아." (194)
마지막 항승의 눈물섞인 말에 나까지 울고 말았다. 남편과 역할을 바꾸고 전업주부를 이해하게 된 감정의 클라이막스 같달까.
순간순간 너무 힘들고 때때로 괜찮지만, 늘 괜찮은척 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다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것 같아서 내가 유난이고이상해 보이는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남들도 힘들다고 한들, 다들 이렇게 참고 사는거겠지... 하고 말이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다시 일터로 나온 어쩔 수 없는 엄마인 나에게 "욕심부리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큰 위로를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