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티마(Diotima). 전설상의 인물로서, 만티네이아의 무녀. 성인의 경지에 오른 듯한 인물은 역시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상상력이 빚어낸 창조물이 보여준 대화에서는 고매함이 흘러 넘쳤다. 혹 내 주변에 이와 같은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떠할까. 마냥 힘이 될 거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많은 내담자들이 보여준 한결 같은 모습이 있다. 너무 막연하다,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와 닿지가 않는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건 에둘러 표현하건 그들이 느낀 감정은 긍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빠름에 익숙한 우리 세대로서는 그럴 수밖에. 마치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알약을 삼킨 것과도 같은 대화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니 갑갑함을 호소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대화 속에서 그들은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디오티마로 기재된 인물의 영험함 덕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놓쳐서는 아니 되는 게 있었다. 각자 모양새는 다르지만 달라지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기에 노력했다. 미심쩍은 기운이 들었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가 건네는 말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저항 않고 들었다. 노력해보겠다는 말에 책임을 지듯 행동한 건 물론이다. 더는 디오티마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례의 마지막 문장들이 오묘한 느낌을 선사했다. 성공과 실패. 이분법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한 나로서는 더는 상담사를 찾지 않는 내담자들이 뜻하는 바가 무언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기록은 이에 대해 그다지 친절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대화의 마무리 부분에서 이미 달라질 조짐을 드러냈던 이들이 향후 어떤 길을 걸었을지는 굳이 아니 물어도 알 수 있을 듯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현인의 언어를 많은 이들이 주목할 거 같다. 허나 나에겐 그보다 개개인의 아픔과 상처가 담긴 사례들이 더 크게 와 닿았다.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달랐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상당수였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 찾기가 힘든 경우가 있는가 하면 건강을 잃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게 된 이들 또한 등장했다. 아무리 진취적인 성향을 타고 났을지라도 익숙함을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디오티마의 거듭되는 말이 상대로부터 튕겨 나오는 것 같은 인상이 왕왕 들었는데, 왠지 그 순간이 제 3자 아닌 내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고, 심지어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을지라도 막상 상대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거부감이 드는 게 사람이다. 애정어린 시선, 조심스러운 태도에도 불구하고 공격 받는 거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우리 자신은 결국 자기 중심성을 떨쳐내기 어려워하는 존재다. 지나치가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 반대로 자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이 실수이자 평균 이하라며 절망하는 것 모두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비롯된다. 디오티마는 시종일관 따사로움을 유지하는 듯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때론 상대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석함으로써 나를 움찔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당신이 행복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프기까지 한데 왜 당신은 그와 같은 태도를 고수하려 드는가. 상대로 하여금 당신을 판단케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평가받는 삶이 진정 행복한가. 진실로 중요한 게 무언지 되묻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부귀영화가 이 질문의 답일 순 없음을 알지 않느냐고 그는 묻고 또 물었다. 나를 잃은 채 살던 혹은 나를 외면하는 일에 능했던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게 각각의 상담이 지닌 힘 같았다.
철학은 어렵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인문학의 고사를 걱정하는 숱한 목소리가 여전한지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좋긴 한데 왠지 현실 회피 같고, 너무 심오한 나머지 일상에 적용을 못하지 싶고. 그러나 숨을 잘 쉬려면, 그리하여 살아남으려면 철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행복하길 바란다면 우선 살아야 한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그에 반하는 긍정적인 감정 또한 일단은 살아있어야 느끼고 누릴 수 있다. 지금 내가 디오티마를 만나면 어떤 말을 듣게 될지,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살짝 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