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마케팅 성공 요인 중에 하나는 책 제목이 아닐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빌려 과감하게 도발하는 듯한 이 제목은 여러 독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 독자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은 1년 전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당시 내가 참 애정하는 언니에게 먼저 선물한 책이다.
세 살짜리 딸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였던 언니는 한 달에 200-300km씩 달리는 러너였다. 남편과 아이가 자고 있는 새벽 시간만이 그녀가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만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추운 한 겨울에도 컴컴한 새벽에 15km씩은 달리고 수영장으로 들어 왔다. 물속을 벗어나서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으며 얘기하다 언니가 문예창작과를 나온 소싯적 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잘 챙겨주던 언니에게 언젠가 선물을 하고 싶었던 참에, 이 책의 출간을 알게 되었고,
작가를 꿈꾸던, 달리는 러너 언니가 읽으면 좋아할 것 같았다. 하루키의 책은 많이 읽었을 것 같아 아직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간이니깐 이 책은 안 읽었겠지하고 깜짝 서프라이즈 선물로 배송해주었다.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우리 나중에 같이 읽고 독서모임도 하자고 내가 우스개로 말했었는데, 서로 바빠 어쩌다 한번 어렵게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헤어지기에도 턱없이 시간은 부족했고,
나는 이제서야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총 6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파트마다 그 주제에 맞게 여행지나 특정 장소에서 달리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경험과 감회를 풀어낸다.
초반 파트 1에서는
저자가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와 과정을 소개하고, 달리기를 통해 체중감량에 성공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파트 2에서는 본격적으로
여행과 달리기를 접목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장소는 국내의 바다와 산과 가족들과의 해외 여행지 등 다양하다.
내가 가보지 못한 여행지에서는 그곳이 어떤 곳일까 궁금하면서도 내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최대한 그곳을 뛰고 있는 저자를 그려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아는 장소와 내가 뛰어본 곳들이 나오면 반갑고 같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특히 서울의 한강, 내가 자주 뛰는 곳, 한양도성길 등등
내가 가장 좋았던 파트는 네 번째 파트인 "만들다, 관계를"이다.
저자에게는 달리기를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다. 아마 달리기를 이렇게 즐거운 놀이와 소풍처럼 즐길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 그 친구들의 몫이 가장 큰 것 같다. 책 속에도 이 친구들이 정말 자주 등장한다.
나도 함께 하는 모임의 사람들이 좋고 재미있으면 그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 애정이 더 많이 생기고 그 활동을 더 자주 하고 더 잘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취미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 자주 볼 수 있는 근처에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복이고 감사한 일이다. 저자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부러움을 느꼈다.
달리기 여행을 하면서 나누는 우정과 달리기를 통해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볼 때 마음이 훈훈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파트인 여섯 번째 파트 "바꾼다, 나를"이라는 파트도 좋았다.
이 책은 초반은 가볍고 다소 심심한 맛이 있었는데 뒤로 갈 수록 내가 저자에게 친근하게 정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후반부가 더 깊이 있고 밀도가 있었다.
이 파트는 조금 더 자기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달리는 파트이다. 달리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의 자신에 대해 그려 보고 있다.
올림픽공원에서는 나답게 달리는 법을 말하는데, 그것은 최선을 다해 달릴 때 자신이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런던의 리젠트 파크에서는 급작스럽게 찾아온 생리 현상을 겪으면서 미카엘 에크발이라는 선수(똥을 싸며 달린 의지의 선수)를 떠올리며 남을 의식하지 않는 달리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손기정 선수와 황영조 선수를 떠올리며 마라톤 영웅의 자격에 대해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린 시절 보다 더 열렬히 응원하고 환호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손기정 옹처럼 마라톤에서 한국인이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했다.
달리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간 속초에서는 36.5도 달리기
즉, 사람의 온도를 닮은 달리기를 말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보다 할 수 없는 사람을 배려할 때 세상의 온도는 사람의 온도가 될 것이다.
사람을 닮은 달리기가 있을까? 어쩌면 그건 누군가의 속도에 맞추는 달리기가 아닐까? 페이스메이커로 달리기, 달리기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달리기, 연습파트너로 달리기.
생각해보니 많은 러너가 사람을 닮은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꼭 가수 션처럼 달리지 않더라도 러너는 마음이 따뜻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312쪽
그리고 파트 4와 파트 6에 포함된 부분은 아니지만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저자가 도쿄 마라톤에 함께 신청한 일행들 중 유일하게 자기 혼자만 당첨되어 난 생 처음으로 혼자 떠나게 된 여행이 된 도쿄 마라톤에서의 이야기이다. 혼술과 혼밥이 흔한 일상이 되었지만 혼자 여행은 나도 해본 적도 없고 상상도 잘 안된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남다른 저자가 오로지 마라톤을 위해서 혼자서 떠난 여행에서 나름대로의 자유로움과 흥분을 느꼈지만 나는 저자와 같이 외로움과 허전함을 함께 느꼈다. 다행히 그는 도쿄 전망대에서 만난 한국인 대회 참가자들, 마라톤 대회를 뛰면서 만난 미국인 할아버지 친구, 완주 축하를 위해 연락해 온 도쿄에 사는 친구들로 인해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달리기는 위대한 유산"이라는 제목의 영종도에서의 달리기 이야기.
스파르탄 레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아빠는 코치가 되고 아들이 출전하면서 1박 2일 여행한 내용이다.
아빠와 어린 아들이 단둘이 레일 바이크도 타고, 바닷가에서 일몰을 바라보는 여행을 한다는 것이 참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험한 장애물을 통과하며 스파르탄 레이스를 펼치는 아들을 보며 발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대견해하기도 하는 아빠의 모습에 나도 감정 이입이 되었다. 이날의 특별한 레이스를 통해 아들이 새로운 도전과 승부를 이어나기를 바라면서, 달기기가 아들에게 남기는 위대한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아빠의 모습에서 지금 나는 완벽하게 알 수 없지만 부모의 사랑이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유난히 아이들과 아내를 살뜰히 챙기며 이렇게 가정적인 아빠가 있을 수 있나. 특히 가족 여행을 가서 아이들과 깔깔대며 잘 놀아주고, 아내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으면서도 착실하고 건전하게 달리기라는 취미 활동을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이런 사람이 있다고?? 너무 바람직한 아빠신데. 이렇게 느끼는 부분이 많았는데, 찾아보니 작가 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육아 일기로 책도 쓰신 행복한 육아 전문가셨다.
돌연변이 아빠의 달콤한 행복 육아
각 파트 사이사이에는 이렇게 <초보 러너를 위한 친절한 TIP>이 있다.
요즘은 구글과 유튜브 검색으로 다 알 수 있지만, 진짜 초보 러너들에겐 막간을 이용한 소소한 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책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나도 종종 애청하는 유튜브채널 올레님의 #마라닉TV에 대한 소개도 나온다.
전반적으로 문장이 쉽고 기교가 없어서 편안하고 잔잔하게 읽혔다. 대중적이고 친근한 비유들이 많았다. 친구들과의 여행지에서의 달리기는 어린 아이 같은 장난스러운 면이 많이 보였다. 저자가 밝고 유쾌한 성격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생과 달리기에 대한 연륜과 깊이가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어서 눈 여겨 볼 수 있었다.
스트라바에 올린 언니들의 사진을 보고 나도 따라하고 싶어 작년에, 강원도 삼척으로 여름 휴가를 갔을 때 운동화를 챙겨갔다. 동이 트는 것을 보며 일어나 해안 길을 따라 새벽 러닝을 한 적이 있는데,
진짜.
기분 좋았다.
행복했다.
이 책을 읽고 앞으로 더욱 여행지에 가서 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싶다는 바람이 확신이 되었다. 트레일러닝도 한 번 한적 있는데 더 자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거꾸로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야겠다.